79. 움직이는 그림자 (4)
여명의 대표 이사가 건네준 파일을 들고 국정원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이동욱 국장이 다시 한번 박이사와 분담하여 접촉 키로 한 자신의 리스트를 살펴 본다. 잠시 후 자신의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 김국장! 잠시 내 방에서 볼 수 있을까? 알았네, 기다리겠네! ”
찬찬히 리스트를 살피던 이국장의 귀에 누군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웃음을 짓는다.
“ 무슨 일인데? 이따 소주나 한잔 하면서 이야기 해도 되는 거 아냐? ”
“ 술은 당연히 마실 거고 거기에 좀 앉아 보게. ”
“ 어제 이 난국을 타개할 누군가를 만난다고 하더니 그 이야기? ”
“ 맞네! ”
“ 그럴 사람이 있어? 이 대한민국에? ”
김국장이 소파에 몸을 던지다시피 앉자 이국장이 향이 그윽한 차 두 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 ”
“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
“ 장난하지 말고 나 진지해, 지금! ”
빙글 빙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하는 이국장의 모습에 김국장이 찻잔을 든다.
“ 평소 자네 답지 않게 왜이래? 낮술 했어? ”
“ 아니, 너무 멀쩡 하다네. ”
“ 그런데 왜 그래? 그 의미 모를 웃음은 또 뭐고? ”
“ 그렇지? 내가 좀 이상하지? ”
“ 많이! ”
이국장이 자신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차를 넘기고는 내려 놓으며 다시 말을 이어 간다.
“ 김국장! 정말 앞이 보이지 않지 않나? ”
순간 몸을 움찔 하던 김국장이 무슨 소리 냐는 듯이 대뜸 입을 연다.
“ 이 훤한 대낮에 왜 앞이 안 보여? ”
“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이야기 하겠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김영수 국장님! ”
순간 이국장의 얼굴을 뚫어 져라 쳐다 보던 김국장이 진지한 어조로 대답을 한다.
“ 어둠은 깨어나지 않은 새벽일 뿐이지요! ”
“ 하하하하! 자네가 그럴 줄 알았네. ”
“ 자네도....?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국장이 엉거 주춤 자리에서 일어난 김국장을 얼싸 안는다.
“ 나도 여명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섰네. ”
“ 참 세상 좁군. 나와 절친인 자네도 나와 같이 여명의 도움을 받았다니 말일세. ”
김국장이 아직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자 이국장이 자신의 책상에 놓인 리스트를 들고 자리에 앉는다.
“ 이국장, 자네 지금 여명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건가? ”
“ 아니라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듣기 바라네. ”
이국장이 여명의 대표 이사와 박술암 이사를 통해 알게된 일본의 음모에 대해 찬찬히 설명을 끝내자 김국장이 얼굴이 붉게 물들며 이를 악문다.
“ 이 개새끼들이 정말...... ”
“ 진정하게! 이제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중요 하다네.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이 종이에 여명의 도움을 받아 우리 나라 각계 각층에서 이 나라의 번영을 위해 애쓰고 있는 애국지사들의 이름들이 있네.
자네와 내가 이들을 접촉 하여 일본의 음모를 퍼뜨리고 일본에 협조 하고 있는 ‘上’의 정체와 그 놈인지 놈들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상황에서 일본에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알아 내야 하네. “
“ 한번 줘 보게! ”
김국장이 두 페이지 짜리 리스트를 찬찬히 훑어 보고는 침음성을 낸다.
“ 각계 각층에 두루 두루 퍼져 있군. 대단해! ”
“ 자네와 내가 여기에 같이 있는 것만 봐도 여명이란 곳이 이 나라를 위해 한 일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지. ”
“ 나눌까? ”
“ 그래, 자네와 내가 서로 접점이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나누어 오늘부터 접촉 키로 하세. ”
“ 알았네! 내 부서에도 여명 출신이 있다니 놀랍군. ”
“ 국방부, 기무사, 국회 등 주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접촉을 시작해 보세. ”
이국장이 낮은 목소리로 김국장과 각자 접촉할 사람들을 분류 하기 시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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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님, 저 이국장입니다. “
“ 네, 말씀 하세요. ”
“ 지금 박이사님과 같이 있습니다. 잠시 뵐 수 있으신지요. ”
“ 네, 풍각에 계십니까? ”
“ 네, 부탁 드립니다. ”
여명의 리스트를 넘긴 지 사흘 되는 날 저녁 준이 이국장의 전화를 받고 급히 풍각으로 향한다.
“ 어서 오시지요! ”
예의 그 방에 모여 심각한 표정을 짓고 무엇인가를 논의 하던 박이사와 이국장이 여명의 대표 이사로 변장한 준을 맞이 한다.
“ 무슨 일이신지요? ”
“ ‘上’에 관한 건입니다. ”
“ 혹시 정체를 파악 하셨습니까? ”
“ 아닙니다. 정체는 모르지만 무엇을 할 지는 알아 내었습니다. ”
준이 자리에 앉자 이국장이 차분하게 다시 말을 이어 간다.
“ 주신 리스트에 있는 국군 기무사령부 서울 지역 관할 602 부대장으로 있는 박용신 중령으로부터 받은 정보와 자료가 있습니다. ”
“ 어떤 내용 인지요? ”
“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이국장이 자신의 앞에 놓인 두툼한 기무사 마크가 선명한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자 준이 내용물을 꺼내어 읽어 내려 가기 시작한다. A4 지 약 70여 쪽 분량의 내용을 정독 하는 동안 이국장과 박이사가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 채우고 있었다.
“ 계엄입니까? ”
“ 네, 지금 현 상황에서 일본의 요구를 들어 주기에는 국민 정서가 자신들의 편이 아님을 파악 했는지 비상 계엄령을 준비 하고 있더군요. ”
“ 정확히 비상 계엄은 무엇이며 누가 지시를 할 수 있는 것 입니까? ”
“ 그것은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최연소 재판소장을 역임한 박이사가 침중한 어조로 설명을 한다.
“ 헌법 제 77조 1항, 계엄법제 2조 2항에 따르면 비상 계엄이란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적과의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거나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 하기 위해 선포 하는 계엄을 지칭 합니다. ”
“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 ”
준이 중얼 거리자 박 이사가 다시 말을 이어 간다.
“ 그렇습니다. 그리고, 계엄법 제 10조에 의해 비상 계엄은 선포와 동시에 계엄 사령관은 계엄 지역 안의 모든 행정 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 하며 비상계엄 지역안에 있어서 일정한 범죄는 군사 법원에서 재판 하게 되어 있습니다. ”
박이사의 말이 끝나자 이국장이 마시던 잔을 내려 놓으며 말을 받는다.
“ 서류에서 보셨다시피 비상 계엄 선포시 단계적 대응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시행 등 4가지의 큰 제목 아래 20여개의 항목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읽어 보셨다시피 이 안에는 언론 뿐만이 아니라 SNS까지 통제 하는 세부 계획과 시민 단체 및 좌파 성향의 단체등의 급습 및 체포 계획 까지 세밀 하게 기획 되어 있습니다. ”
“ 흠! 설마 계엄 까지 생각 할 줄이야.... ”
“ 그런데, 이사님! 제가 아까 이야기 한 비상 계엄을 선포 할 수 있는 주체는 대통령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 일까요? ”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에 준이 침음성을 내며 입을 연다.
“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박이사님, 계엄을 선포 하기 위해서는 국방부 장관의 동의가 필수 이지 않습니까? ”
“ 맞습니다! 기무사도 국방부장관의 휘하 조직 중 하나 이지요. 이러한 문건이 나왔다는 것은 국방부 장관의 지시라고 판단 됩니다. ”
“ 대통령의 의지와 국방부 장관의 지시..... ”
“ ‘上’이 현재의 대한민국 대통령인 박석근대통령이 아닐까요? ”
이국장의 조심스런 말에 박이사와 준이 침묵을 지키며 각 자의 생각을 정리 한다.
“ 왜, 뭐가 부족해서 일국의 대통령이 이런 짓을 하려고 하는 걸까? ”
박술암 이사가 한탄 어린 어조로 입을 열자 준이 눈 앞에 놓인 서류들에서 시선을 떼며 대답을 한다.
“ 그것을 알아 내야 합니다. 박대통령이 왜 이런 짓을 하려고 하는 그 이유를! ”
“ 일단 계엄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국장의 말에 박이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 막아야 하네. 일단 계엄이 발동 되면 이 땅에 민주주의는 말살 되네. 모든 것이 군에 의해 통제 되고 수 많은 국민들이 피를 쏟아야 할지 모르네. 반드시 막아야 하네. ”
“ 예상 시기에 대한 언급이 없군요. ”
“ 조만간 구체적인 일정이 내려 오면 박중령이 정보를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국장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긴 준의 모습을 박이사가 열기 띈 눈으로 바라 본다.
“ 박이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
“ 말씀 하시지요! ”
“ 계엄을 막으려면 누가 자리를 비우면 됩니까? ”
“ 일단 국방부 장관이 일순위이고 기무사령관이 이순위지요. ”
“ 그 둘만 자리를 비우면 계엄의 발동을 막을 수 있습니까? ”
“ 이 들이 부재 중이라면 그 차상급자가 그 권한을 위임 받아 움직이겠지만 이러한 비상 계엄의 경우 쉽지 않을 것입니다. ”
“ 알겠습니다. 두 분은 계속 계엄 관련 하여 새로운 정보가 생긴다면 제게 연락 부탁 드립니다. 저는 이 비상 계엄을 막을 방도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
“ 어떻게 하실 생각 이신지요? ”
“ 박 이사님의 말씀대로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령관이 자리를 비우도록 해야 지요. 그 방법은 제가 강구해 보겠습니다. ”
이국장과 박이사와 긴밀한 논의를 끝낸 준이 풍각을 나서는 차 안에서 자신의 폰을 든다.
“ 훈! 지금 당장 지나를 제외한 DB 멤버들을 소집 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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