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e****** 님의 서재입니다.

칼란의 아이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depriver
작품등록일 :
2021.10.12 00:11
최근연재일 :
2021.11.08 17:0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2,316
추천수 :
24
글자수 :
228,594

작성
21.10.12 07:20
조회
64
추천
1
글자
11쪽

<EP. 1> 4 - 5

DUMMY

집을 찾아오는 여자들은 점점 늘어갔다.


쫓겨난 대리모뿐 아니라 출산에 실패한 여자들까지 가세했다.


어떻게 서로 연락이 닿았는지 떼로 몰려다녔다.


수가 모이자 여자들은 대담해졌다.


김에게 일정한 액수를 제시하고 내놓지 않으면 비밀을 까발리겠노라고 협박까지 했다.



내가 아는 한, 김의 재산은 모두 동굴에서 나왔다.


유물을 처분해 여러 분야에 투자했다고 한다.


모녀의 재산 규모를 알 수는 없어도 가늠해볼 수는 있다.


이런 산속에 이렇게 큰 저택을, 그것도 지하 2층의 연구실까지 갖춘 건물을 짓고, 고가의 연구 설비를 들여놓고,


양 박사 같은 고급 인력을 고용하려면 막대한 현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므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돈이 들어갈지 모른다.


그 와중에 떠나보낸 대리모들까지 빚쟁이처럼 찾아오고 있으니······.



언젠가 나는 일단의 여자들이 김에게서 돈을 뜯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사나워 보이는 여자들이었다.


그들에게 둘러싸여 고군분투하는 김이 측은해 보였다.


여자들이 떠난 후 김은 넋이 나간 얼굴로 뇌까렸다.


“저년들 때문에 우리는 길바닥에 나앉고 말 거야······.”


그때 나는 김의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았다.



***


노우는 5세대였다.


연구 초창기, 양 박사는 실험체의 세대 간 터울을 3년, 종별 개체 수를 둘로 정했다.


3세대부터는 방법을 바꿨다.


세대 간 터울은 유지하되 종별 개체 수를 한 명씩으로 줄였다.


이유는 거인들을 수용할 공간 부족이었다.



그런데 6세대 복제를 앞두고 양 박사는 또 한차례 방법을 바꿨다.


세대 간 터울을 5년으로 늘린 것이다.


양 박사가 세대 간 터울을 계속 늘려가는 이유가 뭘까.


정확한 이유는 기록에 없지만, 나는 짐작이 갔다.


연구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실험의 규모를 축소하는 건 재정 문제일 확률이 컸다.


내가 그렇게 짐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복제된 거인 중 마지막 세대는 6세대다.


6세대인 나란과 텐의 나이는 아홉 살이다.


양 박사가 5년이라는 터울 기준을 지킬 요량이었으면 지하실에는 이미 7세대 아이들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양 박사는 무려 9년 동안 다음 세대를 복제하지 않고 있다.



연구가 최종단계에 이르렀으므로 실험체가 불필요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연구의 규모는 축소되고 있었다.



그런데 3세대는 왜 노우 혼자일까.


원래 3세대도 둘째와 거인족을 하나씩 복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한 대리모가 그만 임신 중독증으로 죽고 말았다.


양 박사는 임신이나 출산 중에 발생한 사고를 정확히 기록해놓지 않았다.


『대리모의 건강 이상에 따른 실험 중단』이라고 짧게 언급한 게 전부였다.


짐작하건대 이런 사고는 더 있었을 것이다.


이런 고난도의 연구를, 그것도 이런 외딴 장소에서 수행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는 안 교수의 시행착오를 파헤칠 생각이 없다.


그 일은 과거의 일,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건 이런 일들이다.


예컨대, 노우는 왜 전 세대들처럼 지하에 갇히지 않은 걸까.


양 박사의 기록에 이유가 나와 있었다.



노우는 둘째와 대면하고도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최초의 거인족이었다.


끔찍한 동물을 대하듯 기겁하던 전 세대와 달리 노우는 둘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이 대목에서 양 박사의 엉뚱한 상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양 박사는 그 이유를 노우의 유전자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거인들의 복제에 사용한 유전자는 세대별로 조금씩 달랐다.


1세대와 2세대는 둘째의 손가락에서 채취한 유전자를 이용했다.


그러나 3세대부터는 동종의 전 세대 유전자와 둘째의 유전자를 배합해 사용했다.


그러자 녀석들이 반목하는 수준에 변화가 생겼다. 덜 으르렁거린 것이다.


4세대에 와서는 더욱 호전됐다.


그러다 5세대인 노우가 태어났다.


둘째와 대면한 노우의 반응은 전 세대와 확연히 달랐다.


둘째를 아예 적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6세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6세대인 나란과 텐은 서로 친구처럼 지냈다.



세대가 지날수록 거인들의 반목이 줄어드는 이유가 뭘까.


양 박사는 거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유전 정보에 기억해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고 생각했다.


즉, 거인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덜 반목하는 이유는 전 세대의 경험을 유전적으로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양박사가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다.


생명체가 제 삶의 기억을 유전자에 담아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


내 임무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거인들의 면역력을 복구해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


두 번째는 성장한 거인의 몸에서 정상적인 유전자를 채취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연구가 성공해야 두 번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지 칠 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거인들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시술에 필요한 설비와 도구를 들여오고 병원에서 세포 이식을 참관하며 방법도 익혔다.


이식은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문제는 시술 준비 과정과 시술 후 회복 과정이었다.


보통 1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치고 시술 후 1개월 이상 무균실에서 상태를 지켜봐야 했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 처리해야 했는데 이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사이 바트와 바위의 몸은 더욱 악화됐다.


둘 중 바위의 상태가 더 위중했다.


같은 날 태어났지만, 둘의 상태에는 차이가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유전자의 원주인보다 유전자를 제공받은 돌연변이가 더 강했다.


그러나 둘은 똑같이 죽어가고 있었다.



***


시술 순서는 바트가 먼저였다.


김의 지시였다.


“모든 시술은 둘째가 먼저에요. 안전하다고 확신이 서면 거인족에게 하는 거에요.”



바트의 몸은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잘 받아들였다.


이식은 성공적이었다.


무균실에 들어간 지 일주일 만에 바트의 세포는 골수에 생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이 주 만에 골수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성됐다.


경과가 빠르게 호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삼 주째에 접어든 날, 바트가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침대 위에서 의식을 잃고 무섭게 몸을 떠는 바트에게 나는 진정제를 투여했다.


그 상태로 바트는 코마에 빠지고 말았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이식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


굳이 원인을 대라고 하면 시술 시기를 놓친 것이 가장 컸다.


면역력이 저하될 대로 저하된 바트의 몸이 체내의 급격한 변화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집안 분위기는 급랭했다.


제3의 전멸에 대한 공포가 집안을 떠돌았다.


환자가 코마에 빠졌지만, 이식이 실패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식만 놓고 보면 성공적이었다.


나는 김을 설득했다.


“더 지체하지 말고 바위의 이식을 진행해야 합니다.”


김은 줄담배만 피웠다.


“그대로 두면 바위는 어차피······ 죽습니다.”


마지못해 김은 바위의 이식을 승인했다.



이튿날, 바위의 골수이식이 이루어졌다.


불행하게도 바위는 자신의 세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주 느리게 세포를 주입했음에도 바위는 이식하는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바위의 눈을 감겨준 건 김이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나는 송구했다.


김은 수술실에 남아 한동안 바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생명이 빠져나간 바위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찌푸린 듯 감은 눈은 피로에 지쳐 보였고 마른 입가엔 희미한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때, 연구실 벽이 흔들리며 심한 진동이 전해왔다.


누군가 주먹으로 나무판자를 치고 있었다.


평소에 들려오던 템포와 세기가 아니었다.


거의 일 초 간격으로 속사포처럼 연타하는, 육중한 기관포화의 소리 같았다.


누군가 바위의 소식을 듣고 몸으로 우는 소리였다.


샤말일 것이었다.


벽이 흔들릴 때마다 천정의 불빛이 점멸했다.


더럭 겁이 났다.


거인들이 얼마나 강하고 위험한 존재인지 실감한 순간이었다.



***


일지를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온 것은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불 꺼진 바위의 방은 을씨년스러웠다.


마음이 착잡했다.


노우와 영이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나는 유리벽 앞에 서서 주인 없는 방을 들여다봤다.


방 안쪽 쪽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대리모들이 청소할 때 드나드는 문이었다.


이 집에 온 후 나는 한 번도 거인의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거인들 방 뒤쪽에는 비좁은 통로가 있었다.


나는 연구실 뒷문을 통해 비상 통로로 갔다.


쪽문을 열고 바위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망자의 방이라 그런지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다.


가구와 운동기구는 평소처럼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책장에는 동화책과 스케치북이 잔뜩 꽂혀 있었다.


‘열아홉 살짜리 청년에게 동화책이라니······.’


바위의 처지를 생각하자 가슴이 저렸다.



거인들은 모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는 진작부터 거인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다.


나는 책장에서 스케치북 한 권을 꺼냈다.



표지를 넘기자 산(山) 그림이 나왔다.


먼 곳의 산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었다.


솜씨가 제법 좋았다.


바위가 직접 산을 봤을 리는 없으니 어느 책에 나온 사진이나 그림을 따라 그렸을 것이었다.



다음 페이지에는 산에서 내려다본 들판 그림이 나왔다.


드넓은 평야를 큰 강이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림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 페이지들을 넘기자 차례로 숲을 가로지른 오솔길, 오솔길을 가로막은 문(門) 그림 등이 나왔다.


나는 그림들이 어느 특정한 장소나 지역을 그린 연작(連作) 그림임을 깨달았다.



나는 책장에서 다른 스케치북을 꺼냈다.


이것도 연작 그림이었다.


바위와 나무로 빼곡히 채워진, 특이한 형태의 산을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바위는 어떤 자료를 보고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 공부하려고 다른 책에 실린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일까?



바위의 책장을 뒤져봤지만, 동화책뿐이었다.


바위가 표본으로 삼을만한 책은 한 권도 없었다.


상상력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면 누군가 설명해준 걸 듣고 그림으로 옮긴 것일까?



나는 책장에서 다른 스케치북들을 꺼냈다.


책장을 넘기던 나는 문득, 양 박사의 ‘기억하는 유전자 이론’을 떠올렸다.


양 박사의 이론이 맞는다면, 이 그림들은 다른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이 아닐 수 있었다.


누군가 설명해준 광경을 그린 것도 아니었다.


이 그림들은 바위가 직접 목격한 장면을 표현한 그림일 수 있었다.



모든 스케치북에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 최근의 스케치북을 꺼냈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바위가 무슨 그림을 그리며 지냈는지 알고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칼란의 아이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이 글은 스마트폰 화면에 최적화되도록 작성하였습니다. 21.10.20 47 0 -
41 <EP. 2> 2 - 7 21.11.08 41 0 11쪽
40 <EP. 2> 2 - 6 21.11.04 43 0 12쪽
39 <EP. 2> 2 - 5 21.11.01 45 0 11쪽
38 <EP. 2> 2 - 4 21.10.29 44 0 11쪽
37 <EP. 2> 2 - 3 21.10.28 50 0 12쪽
36 <EP. 2> 2 - 2 21.10.27 52 0 11쪽
35 <EP. 2> 2 - 1 21.10.26 53 0 11쪽
34 <EP. 2> 1 - 6 21.10.25 53 0 12쪽
33 <EP. 2> 1 - 5 21.10.21 51 0 13쪽
32 <EP. 2> 1 - 4 21.10.20 55 0 12쪽
31 <EP. 2> 1 - 3 +2 21.10.19 58 0 12쪽
30 <EP. 2> 1 - 2 21.10.18 53 0 11쪽
29 <EP. 2> 1 - 1 +2 21.10.15 67 0 11쪽
28 <EP. 1> 5 - 7 +2 21.10.14 80 1 12쪽
27 <EP. 1> 5 - 6 +2 21.10.14 75 1 12쪽
26 <EP. 1> 5 - 5 21.10.13 66 1 15쪽
25 <EP. 1> 5 - 4 21.10.13 68 1 15쪽
24 <EP. 1> 5 - 3 21.10.12 70 1 14쪽
23 <EP. 1> 5 - 2 21.10.12 73 1 11쪽
22 <EP. 1> 5 - 1 21.10.12 66 1 11쪽
21 <EP. 1> 4 - 7 21.10.12 64 1 13쪽
20 <EP. 1> 4 - 6 21.10.12 64 1 12쪽
» <EP. 1> 4 - 5 21.10.12 65 1 11쪽
18 <EP. 1> 4 - 4 21.10.12 68 1 12쪽
17 <EP. 1> 4 - 3 21.10.12 64 1 11쪽
16 <EP. 1> 4 - 2 21.10.12 69 1 11쪽
15 <EP. 1> 4 - 1 21.10.12 66 1 15쪽
14 <EP. 1> 3 - 6 21.10.12 65 1 16쪽
13 <EP. 1> 3 - 5 21.10.12 65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