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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칼란의 아이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depriver
작품등록일 :
2021.10.12 00:11
최근연재일 :
2021.11.08 17:0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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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1
추천수 :
24
글자수 :
228,594

작성
21.10.1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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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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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EP. 1> 5 - 6

DUMMY

40년 만에 다시 찾은 동굴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칠흑 같은 어두움과 뾰족한 바위들, 음산한 굉음, 방문자를 희롱하듯 울려 퍼지는 메아리.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유물과 침묵하는 주검들······.



우리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바통은 노우에게 넘겨졌다.


노우는 아이들과 동굴을 뒤졌다.


어머니와 나도 동굴 구석구석을 돌며 혹시 우리가 빠뜨렸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숨을 몰아쉬며 어머니가 말했다.


“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나도 노우에게 말했다.


“내가 말했잖니. 이곳은 우리가 잘 안다고. 배는 없다. 어디 숨겨놓을 만한 곳도 없어.”


나는 노우가 샤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끄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때 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여기 뭔가 있어.”



우리는 텐이 있는 곳으로 갔다.


나란과 텐이 손전등으로 동굴 벽을 비추고 있었다.


깎아지른 암벽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우가 동생을 나무랐다.


“뭐가 있다는 거야.”


나란이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뭔가 있어.”


녹조류가 뒤덮은 암벽 틈새로 가는 물줄기가 흘렀다.


그뿐이었다.


나란이 노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기, 만져봐.”


노우의 손이 허공을 어루만졌다.


“이게 뭐지?”


노우의 손끝에서 무언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와 나도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단단한 물체가 만져졌다.


무슨 벽 같았다.


손바닥으로 더듬어보니 그것은 일정한 패턴을 가진 물체로 된 벽이었다.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40년 전, 폐가의 마당을 에두른 돌담.


공간을 왜곡하는 돌담.


지금까지 나는 헛것을 봤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금 내 손에 만져지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담장이었다.


공간을 왜곡하는 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는 두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담장을 따라갔다.


몇 걸음 안 가 모퉁이가 나왔다.


모퉁이를 돌자 몇 미터 전방, 허공에 웬 물체가 떠 있었다.


지지대도, 밧줄에 매달린 흔적도 없이, 말 그대로 허공에 둥둥 뜬 2차원의 평면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평면 내부에 3차원 공간이 숨어 있었다.


무려 2년이나 동굴을 드나들었는데도 이런 공간이 숨어 있는 걸 몰랐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모두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왔다.


입이 마르고 목이 칼칼했다.


손으로 몸을 만져보니 방금까지도 땀에 흠뻑 젖어있던 옷이 보송보송했다.


방이 수분을 뺏어간 것이다.



벽에 홰가 걸려 있었다.


바닥엔 몇 개의 돌조각이 굴러다녔다.


부싯돌이었다.


노우가 홰에 불을 붙였다.


횃불이 삽시간에 활활 타올랐다.


횃불에서 한 줄기 불길이 뻗어 나왔다.


불길이 화선(火線)이 돼 담장을 타고 이동했다.


강한 기시감이 엄습해왔다.


둘째들의 사냥터!



“으아!”



나는 비명을 지르며 입구로 도망쳤다.


어머니가 내 손목을 붙들었다.


“정신 차려라!”


나는 겁에 질린 채 방을 둘러봤다.


횃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방은 가로 십여 미터, 길이 이십여 미터가량 직사각형 공간이었다.


방 중앙에 배 한 척이 놓여 있었다.


소형 어선 크기였다.


양 현이 길고 폭이 좁았다.


길쭉한 배의 형태에 맞춰 방을 직사각형으로 만든 것 같았다.



배 바닥에 돛대가 놓여 있었다.


노도 실려 있었다. 한쪽 뱃전에 세 개씩 모두 여섯 개였다.


방 한쪽 구석에는 일정한 크기로 재단된 통나무가 쌓여 있었다.


배를 물가로 옮길 때 바퀴 대용으로 사용하는 것 같았다.



노우가 배의 이물에 올라섰다.


어디서 찾았는지 녀석의 어깨에는 한 묶음 밧줄이 감겨 있었다.


노우가 배의 이물에 밧줄을 걸며 말했다.


“내가 앞에서 배를 끌 테니 통나무를 배 밑에 넣어 줘요.”



노우 혼자 배를 끌기에는 무리로 보였다.


그런데 노우가 힘을 쓰자 놀랍게도 배가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 보니 방바닥이 동굴의 입구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통나무는 보기보다 무거웠다.


어머니와 내가 한 개 옮기는 것도 벅찼다.


우리보다 나란과 텐의 도움이 컸다.


녀석들은 날 듯이 이물과 고물을 오가며 통나무를 옮겼다.



배를 밀고 동굴을 빠져나오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온 산에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여러 개의 서치라이트가 산을 뒤지고 있었다.


지원군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때 주변이 환하게 밝아왔다.


우리 그림자가 절벽에 투영되는가 싶더니 우리를 비췄던 동그란 빛 덩어리가 절벽을 타고 멀어져갔다.


돌아보니 바다 위에 여러 척의 함정이 떠 있었다.


함정의 서치라이트가 해안 절벽을 훑듯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무얼 찾는지 뻔했다.


서둘러야 했다.



물길 위로 파도가 넘쳐흘렀다.


평소보다 수위가 높았다.


우리는 배를 물길 근처로 옮겨왔다.


어머니가 노우에게 물었다.


“이제 뭘 하면 되지?”


숨을 몰아쉬며 노우가 말했다.


“보름달이 뜨면, 물길이 열린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하늘을 가리켰다.


“봐라. 보름달이 높이 떴다. 이제 뱃길을 열어라.”


노우가 머리를 저었다.


“샤말 형을 기다려야 해요.”


어머니가 노우에게 눈을 흘겼다.


“샤말? 얘야······. 샤말은 오지 않아.”


“형이 왜 안 와요?”


“바트랑 싸우고 있잖아.”


노우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형이 바트를 이기고 올 거에요.”



어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한테는 안 됐지만, 샤말은 오지 않아. 그 아이는 바트를 이기지 못해.”


노우의 눈이 번쩍 빛을 냈다.


“아뇨. 할머니가 틀렸어요. 우리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얘야. 내 말을 들어. 내가 녀석들을 왜 집에 두고 왔겠니. 너희와 다툴 게 뻔하기 때문이야. 결국 계획이 틀어지긴 했지만······.”


어머니가 노우를 달래듯 말했다.


“샤말은 오지 않아. 그러니 자, 얼른 뱃길을 열어.”



노우의 얼굴이 차갑게 변해갔다.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그렇게 말할 것까진 없잖아. 노우 말대로 샤말을 기다리자.”


어머니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 바보 같은 것아! 바트가 오면 끝장이야. 모든 게 엉망이 된다고!”


어머니가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봐라. 저 사람들도 우리를 찾고 있어. 곧 이리 들이닥칠 거야. 그럼 아무도 못 떠나. 그 전에 우리라도 떠나야 해.”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샤말을 두고 가다니.


우리를 위해 바트랑 싸우고 있을 샤말을!


우리가 떠나면 배도 없는데.


나는 반대했다.


“그렇다고 샤말을 두고 가면 어쩌자는 거야. 그 아이 혼자 여기서 살라는 거야?”


어머니가 비명 지르듯 말했다.


“그럼 다 못 가! 다 못 가는 것보단 나아!”


나는 어머니가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내······ 형을 버리고 우리끼리 가자는 말이죠?”



노우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눈동자가 원래부터 파란색이었던가, 생각했다.


노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경고하는데······ 형이 오기 전에는······ 아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아요.”


어머니도, 나도, 입을 다물었다.


노우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리고 녀석의 몸에서,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이상한 기운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매우 위협적인 기운,


조금 전 바트에게서 느껴지던 기운······.


살기였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나는 우리의 여정이 여기까지라는 걸 직감했다.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떠날 생각이 없다는 걸 바로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야. 알고 있지? 어떻게 뱃길을 여는지.”


노우가 내 시선을 외면했다.


“샤말이 오기 전에 준비해둬야 하지 않을까?”


노우는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생각을 정했는지 노우가 성큼성큼 배의 이물로 걸어갔다.


이물의 한 곳을 가리키며 노우가 말했다.


“여기에 칼을 꽂고 칼끝에 투구를 걸어야 해요. 그럼 뱃길이 열릴 거에요.”


내가 말했다.


“한번 해보렴.”


노우가 배에서 가방을 내렸다.


노우가 가방에서 투구를 꺼낼 때였다.


땅이 흔들렸다.


절벽에서 돌이 굴러떨어졌다.



구웅.



진동이 가까웠다.


절벽 너머를 쳐다보며 노우가 중얼거렸다.


“샤말 형······.”


절벽 위에 검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검은 실루엣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아니, 추락이라는 표현이 맞았다.


샤말이었다.



착지하는 순간, 샤말이 푹 고꾸라졌다.


노우가 달려가 샤말을 부축했다.


샤말의 한쪽 팔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나는 샤말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녀석의 투구는 부서져 눈두덩이 드러나 있고 돌갑옷은 어깨가 떨어져 나가 한쪽 팔이 드러나 있었다.



샤말이 말했다.


“얼른 배에 타······.”


그때였다.



구웅.



마지막 진동이 땅을 흔들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주변에 드리웠다.


하늘을 쳐다보니 시커면 형체가 보름달의 표면을 잠식하고 있었다.


형체가 우리 코앞에 착지했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쾅!



둘째였다.


그러나 처음 보는 존재였다.


아니었다.


바트였다.



바트······.


녀석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해 있었다.


체구는 한층 더 비대해지고 거대한 몸은 가시 같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근육이 불끈 솟은 어깨와 목덜미는 곰의 그것처럼 구부정했고 검붉은 모발은 빳빳한 가시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무서운 짐승을 피하듯 우리는 뒷걸음질 쳤다.



프로펠러의 굉음과 함께 절벽 위에 서치라이트가 나타났다.


바트가 몰고 온 헬기였다.


헬기 스피커에서 말소리가 나왔다.


< 무기를 내려놓아라. 무기를 내려놓고 땅에 엎드려라. >


바다 위 함정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암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어머니가 돌변한 건 그때였다.



어머니가 바트에게 달려갔다.


“바트······.”


바트가 부릅뜬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무슨 짓이냐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나도 어머니에게 똑같이 묻고 싶었다.


‘엄마! 얼른 돌아와!’


그러나 순식간의 일이라 입에서 말이 안 나왔다.



어머니가 손을 뻗어 바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바트. 오, 바트······. 네가 오기만 기다렸다.”


바트가 기분 나쁜 듯 어머니를 노려봤다.


어머니가 손으로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트. 네가 없는 동안 나는 확실히 알았다. 저놈들은 너를 두고 갈 작정이다.”


바트가 우리를 노려봤다.


네놈들이 감히! 하는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바트. 내가 다 알아 놨다.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명심해라. 저놈들은 너를 데려가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행동은 자살행위였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바트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얘야, 바트······. 너는 배에 타기만 하면 된다. 배가 너를 그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그곳에만 가면!”


어머니가 바트의 눈을 응시했다.


“너는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 너와 나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바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녀석이 무언가 자각한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말하듯 바트에게 말했다.


“바트. 너희가 어떻게 태어난 줄 아느냐······? 너희의 목적은 단 하나. 그들을 부수는 것이다.”


어머니가 바트를 충동질하고 있었다.



바트가 으르렁댔다.


녀석이 몽둥이를 쳐들었다.


노우가 땅을 박찼다.


헬기가 급히 후진했다.


샤말이 소리쳤다.


“노우, 안 돼!”


노우가 바트를 목표로 했는지 어머니를 목표로 했는지 알 수는 없다.


노우가 땅바닥에 나동그라질 때 나는 바트의 공격을 보지 못했다.


바트의 몸놀림은 이미 다른 차원에 있었다.



“노우 형!”


나란과 텐이 노우에게 달려갔다.


노우는 바닥에 누운 채 미동도 없었다.


샤말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비통해할 뿐이었다.


나는 모든 게 끝장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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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P. 2> 2 - 7 21.11.08 40 0 11쪽
40 <EP. 2> 2 - 6 21.11.04 41 0 12쪽
39 <EP. 2> 2 - 5 21.11.01 43 0 11쪽
38 <EP. 2> 2 - 4 21.10.29 43 0 11쪽
37 <EP. 2> 2 - 3 21.10.28 49 0 12쪽
36 <EP. 2> 2 - 2 21.10.27 50 0 11쪽
35 <EP. 2> 2 - 1 21.10.26 51 0 11쪽
34 <EP. 2> 1 - 6 21.10.25 51 0 12쪽
33 <EP. 2> 1 - 5 21.10.21 49 0 13쪽
32 <EP. 2> 1 - 4 21.10.20 53 0 12쪽
31 <EP. 2> 1 - 3 +2 21.10.19 57 0 12쪽
30 <EP. 2> 1 - 2 21.10.18 51 0 11쪽
29 <EP. 2> 1 - 1 +2 21.10.15 65 0 11쪽
28 <EP. 1> 5 - 7 +2 21.10.14 78 1 12쪽
» <EP. 1> 5 - 6 +2 21.10.14 74 1 12쪽
26 <EP. 1> 5 - 5 21.10.13 63 1 15쪽
25 <EP. 1> 5 - 4 21.10.13 66 1 15쪽
24 <EP. 1> 5 - 3 21.10.12 69 1 14쪽
23 <EP. 1> 5 - 2 21.10.12 71 1 11쪽
22 <EP. 1> 5 - 1 21.10.12 64 1 11쪽
21 <EP. 1> 4 - 7 21.10.12 64 1 13쪽
20 <EP. 1> 4 - 6 21.10.12 62 1 12쪽
19 <EP. 1> 4 - 5 21.10.12 63 1 11쪽
18 <EP. 1> 4 - 4 21.10.12 66 1 12쪽
17 <EP. 1> 4 - 3 21.10.12 62 1 11쪽
16 <EP. 1> 4 - 2 21.10.12 67 1 11쪽
15 <EP. 1> 4 - 1 21.10.12 65 1 15쪽
14 <EP. 1> 3 - 6 21.10.12 64 1 16쪽
13 <EP. 1> 3 - 5 21.10.12 6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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