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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님의 서재입니다.

칼란의 아이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depriver
작품등록일 :
2021.10.12 00:11
최근연재일 :
2021.11.08 17:0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2,315
추천수 :
24
글자수 :
228,594

작성
21.10.12 07:16
조회
68
추천
1
글자
11쪽

<EP. 1> 4 - 2

DUMMY

둘째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체구가 컸다.


쭈그려 앉아서도 나를 내려다볼 만큼 거구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둘째는 하체보다 상체가 발달한 가분수 체형이었다.


흰색 면티에 헐렁한 운동복 바지를 입은 모습이 서커스에 나오는 기형 인간 같았다.


면티 밖으로 드러난 황토색 팔과 목덜미, 어깻죽지에는 까슬한 털이 수북이 자라 있었다.


하체는 나무 밑동처럼 뭉툭하고 단단해 보였다. 육중한 체구를 버티려고 그렇게 진화한 것 같았다.



머리는 반곱슬에 검붉은 빛을 띠었는데 조명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눈과 펑퍼짐한 코, 어금니 부위까지 찢어진 입은 김의 표현대로 해태상을 떠올리게 했다.



커다란 손에 포크를 들었는데 소꿉놀이용 식기를 든 것 같았다.


내 머리통만 한 그 손을 한 번만 휘둘러도 유리벽을 산산조각 낼 것 같았다.



금발의 여자가 걱정스러운 듯 내게 물었다.


“교수님, 괜찮아요?”


여자는 ‘카테리나’라는 러시아 사람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자신을 ‘카챠’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김이 카챠에게 말했다.


“카챠. 교수님한테 아이를 소개해야지.”


아이?


둘째를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양 박사가 연구를 어떻게 진행해왔을지 상상해봤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둘째는 카챠의 몸을 통해 태어났을 것이다.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카챠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교수님, 소개할게요. 이쪽은 보바입니다. 보바, 교수님께 인사드려요.”


카챠의 태도는 담임 선생님에게 아이를 소개하는 학부모 같았다.


보바의 입술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말소리가 새 나왔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와 전혀 다른 생명체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흘러나오다니.


그것도 우리말이.


얼떨결에 나는 존댓말을 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여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카챠가 말했다.


“말씀 낮추세요, 교수님. 아직 어린아입니다.”


보바가 유리벽을 치며 소리쳤다.


“내가 왜 어린애야!”


그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철부지였다.



김이 내 팔을 끌었다.


“다음 방으로 갑시다. 다 만나려면 시간이 없어요.”



‘다 만나려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둘째를 몇이나 복제한 건가.



지하실에는 열 개의 방이 있었다.


빈방이 네 개였고 나머지 방이 모두 채워져 있다면······



다음 방은 유리벽이 중간에서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 벌어진 틈으로 여자가 음식 접시를 주고받고 있었다.


여자는 카자흐스탄 사람, 이름은 우비나였다.


우비나가 서툰 우리말로 방안의 존재를 소개했다.


“교수님. 이쪽은 샤말이라고 합니다.”



나는 우비나의 말소리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리방의 존재에게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런 생명체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생명체 진화의 정점에 선 존재를 보는 기분이었다.



놀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내게 샤말이 말했다.


“반가워요, 교수님.”


기다란 금속관을 통해 나오는 소리.


중저음의 색소폰 소리 같은 음색.



샤말은 거인족이었다.


죽죽 뻗은 기럭지가 시원시원하다 못해 우아해 보이는, 그러나 나무처럼 강하고 다부져 보이는 존재였다.


보바보다 신장이 크면서도 보바처럼 가분수 체형이 아닌, 인간과 유사한 균형 잡힌 체형의 존재였다.


선천적인지 햇빛을 보지 못한 탓인지, 피부는 희다 못해 투명해 보였고 허리까지 흘러내린 은빛 머리카락은 조명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반짝거렸다.



약간 돌출된 이마, 은빛 눈썹, 쌍꺼풀진 눈매 속 크고 까만 눈동자가 왠지 친근해 보였다.


처음 대면하는데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솜털로 뒤덮인 둥그스름한 턱선은 녀석이 아직 성년기에 접어들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샤말의 복장도 면티에 운동복 바지 차림이었다.


같은 옷차림의 보바가 서커스에 나오는 기형아처럼 보였다면, 샤말은 가벼운 차림으로 정원을 산책하다 온 고대의 신(神)처럼 보였다.



거인들의 방은 구조가 같았다.


열 평 남짓, 안쪽으로 긴 직사각형 구조였다.


한쪽 벽에는 책장과 책상, 침대, 옷장 등 가구가 놓여 있고 반대쪽 벽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판자로 채워져 있었다.


방 가장 안쪽에는 욕실 겸 화장실이 있었다.


방 중앙에 여러 개의 마대가 놓여 있는데 역시 용도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과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었다.



샤말이 유리벽 틈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게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았다.


망설이는 내게 김이 말했다.


“악수해봐요.”



나는 놀이공원에서 별난 체험하는 사람처럼 머뭇머뭇 샤말의 손을 잡았다.


커다란 손에 완전히 감싸진 내 손이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작게 느껴졌다.


가볍게 악수만 하는데도 녀석의 잠재된 힘이 느껴졌다.



악수하는 동안 샤말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뜯어봤다.


그 크고 까만 눈동자가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결혼하셨네요?”


나는 약간 놀랐지만, 내 나이를 생각했다.


이 나이에 결혼 안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샤말의 다음 발언이 나를 정말 놀라게 했다.


“아이는······ 없고요.”


샤말의 얼굴에 측은한 표정이 드리웠다.


내 첫 아이의 슬픈 운명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그걸 어떻게······.”



김이 내 팔을 끌었다.


“얼른 갑시다. 시간이 없어요.”


슬그머니 내 손을 놓는 샤말의 얼굴에 예의 밝은 표정이 돌아와 있었다.



세 번째 방은 통로의 우측에 있었다.


방에서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크레졸 냄새와 항생제 냄새였다.



이 방은 다른 두 개의 방과 분위기가 달랐다.


유리벽 앞에 선 여자의 표정도 무거웠다.


여자 이름은 암카. 몽골 여자였다.


암카가 내게 유리방의 존재를 소개했다.


바트라는 이름의 둘째였다.



바트는 유리벽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추위를 타는지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안색이 매우 좋지 않았다.


전형적인 환자의 모습이었다.


도드라진 광대뼈, 움푹 꺼진 눈, 쩍쩍 갈라진 입술, 탈모증에 걸린 듯 듬성듬성 빠진 머리칼······.


병중에서도 심한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암카에게 물었다.


“바트의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가요?”


암카가 기다렸다는 듯 크게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카의 표정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내게 뭔가 도움을 바라는 것 같았다.



바트의 책상 위에도 스케치북과 연필 같은 문구류가 놓여 있었다.


이런 존재가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됐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제 몸도 못 가누는 바트에게 질문을 던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음 방에서도 크레졸 냄새와 항생제 냄새가 났다.


여자 눈가에 눈물 자국이 엿보였다.


영이. 강원도 출신 여자였다.


여자 곁에 노우가 있었다. 노우의 표정도 여자처럼 그늘져 보였다.


영이가 내게 거인을 소개했다.


“박사님. 이쪽은 바위입니다.”



바위는 거인족이었다.


한 눈에도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움푹 꺼진 눈, 창백한 얼굴.


병세가 아주 심해 보였다.


머리카락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항암 치료를 받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바위의 표정은 매우 편해 보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걸 수 있었다.


“바위라고 했나요. 안종문입니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바위가 유리벽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지그시 내 손을 잡는 바위의 손길에서 약한 존재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다.



바위의 그 깊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노라니 나는 마음속에 깊은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덩치만 클 뿐, 바위는 아직 십 대 후반 청소년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얼굴이 낯익었다.


어디서 한 번 본 듯한 얼굴이었다.


‘어디서 봤을까?’



나는 힐끗, 노우와 바위의 얼굴을 비교해봤다.


둘의 얼굴이 닮아 보였다.


나는 조심스레 영이에게 물었다.


“둘이 형제인가요?”


영이가 가만히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 집에 처음 방문할 때부터 나는 노우에게 마음이 끌렸었다.


친동생이나 조카 같은, 가까운 친척과 재회하는 기분이었다.


바위가 노우의 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녀석에게 마음이 갔다.


무슨 병을 앓는지는 몰라도 녀석을 힘껏 돕고 싶었다.



다음 방은 유리벽이 삼 분의 일 정도 열려 있었다.


유리벽을 살펴보니 천정과 바닥에 좁은 틈이 나 있었다.


그 틈으로 유리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구조였다.



방안에서 한 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새삼, 모든 생명체는 본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는 둘째였다. 여덟 살이었다.


슈퍼맨 로고가 새겨진 티를 입고 있었다.


어린이 씨름 선수 같은 통통한 체구에 황토색 피부, 곱슬거리는 붉은색 모발을 가진 아이였다.



암카가 아이를 호명했다.


“나란.”


나란이 뒤뚱대며 달려와 내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이제 여덟 살이라는 아이가 나와 키가 비슷했다.



“내 방 구경해요.”


녀석이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본능적으로 버텼다.


그러나 녀석의 힘은 보통 센 게 아니었다.


나는 맥없이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러지 마라!”


김이었다.


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란이 황급히 암카 뒤에 숨었다.


녀석에겐 김이 무서운 존재 같았다.


그 광경을 보니 노우를 대하던 김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은 모든 아이를 엄하게 다루는 것 같았다.



다음 방도 유리벽이 열려 있었다.


한 소년이 차려자세로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비나가 말했다.


“교수님, 텐입니다.”



텐은 여덟 살짜리 거인족 소년이었다.


단발로 자른 은빛 머리에 또렷한 이목구비, 아이돌그룹 멤버 같은 날씬한 몸매.


오월의 햇살에 견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이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음에 행복을 느낄 것 같았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김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야기는 나중에 얼마든지 나눌 수 있어요.”



내 사무실은 통로 끝방이었다.


널찍한 공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화장실 겸 샤워실까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연구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은 따로 있습니까?”



사무실 안쪽에 별도의 문이 있었다. 김이 키패드를 눌렀다.


짧은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사무실보다 몇 배는 더 넓은 공간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설비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초저온 냉동고, 전자현미경, 유전자 분리기, 배양기, 인큐베이터 등.


유전자 연구에 필요한 대부분 설비가 비치돼 있었다.


간단한 수술 설비, 무균실까지 있었다.



연구실 한쪽 구석엔 컴퓨터 서버실이 있었다.


양 박사가 데이터를 직접 관리해온 것 같았다.



연구실 투어까지 마친 후 김과 나는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가장 궁금한 건 거인들을 어떻게 되살렸는가였다.


그들의 DNA를 어떤 방법으로 확보했는지 알고 싶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김이 말했다.


“내가 들려준 이야기 속에 답이 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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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P. 2> 2 - 7 21.11.08 41 0 11쪽
40 <EP. 2> 2 - 6 21.11.04 43 0 12쪽
39 <EP. 2> 2 - 5 21.11.01 45 0 11쪽
38 <EP. 2> 2 - 4 21.10.29 44 0 11쪽
37 <EP. 2> 2 - 3 21.10.28 50 0 12쪽
36 <EP. 2> 2 - 2 21.10.27 52 0 11쪽
35 <EP. 2> 2 - 1 21.10.26 53 0 11쪽
34 <EP. 2> 1 - 6 21.10.25 53 0 12쪽
33 <EP. 2> 1 - 5 21.10.21 51 0 13쪽
32 <EP. 2> 1 - 4 21.10.20 55 0 12쪽
31 <EP. 2> 1 - 3 +2 21.10.19 58 0 12쪽
30 <EP. 2> 1 - 2 21.10.18 53 0 11쪽
29 <EP. 2> 1 - 1 +2 21.10.15 67 0 11쪽
28 <EP. 1> 5 - 7 +2 21.10.14 80 1 12쪽
27 <EP. 1> 5 - 6 +2 21.10.14 75 1 12쪽
26 <EP. 1> 5 - 5 21.10.13 66 1 15쪽
25 <EP. 1> 5 - 4 21.10.13 68 1 15쪽
24 <EP. 1> 5 - 3 21.10.12 70 1 14쪽
23 <EP. 1> 5 - 2 21.10.12 73 1 11쪽
22 <EP. 1> 5 - 1 21.10.12 66 1 11쪽
21 <EP. 1> 4 - 7 21.10.12 64 1 13쪽
20 <EP. 1> 4 - 6 21.10.12 64 1 12쪽
19 <EP. 1> 4 - 5 21.10.12 64 1 11쪽
18 <EP. 1> 4 - 4 21.10.12 68 1 12쪽
17 <EP. 1> 4 - 3 21.10.12 64 1 11쪽
» <EP. 1> 4 - 2 21.10.12 69 1 11쪽
15 <EP. 1> 4 - 1 21.10.12 66 1 15쪽
14 <EP. 1> 3 - 6 21.10.12 65 1 16쪽
13 <EP. 1> 3 - 5 21.10.12 6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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