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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73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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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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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09. 돌이킬 수 없는(2)

DUMMY

3.


소백한의 당돌한 요구에 유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어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는 것이냐?”


유나라 왕가의 정통성과 유일성, 이를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 그리고 더 나아가 상고시대 대유제국의 유적과 비전으로까지 연결되는 비밀 등.

유화의 말에는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소백한이라고 해서 그걸 모르고 얘기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천무를 익혔다고 밝힐 수는 없잖아.’


무엇이든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선 나름의 설명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멋대로 상상하며 입맛대로 살을 붙여나갈 테니까.


소백한은 구 할의 진실 속에 일 할의 허구를 섞는다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나갔다.


“사실 제게는 저들을 원상복구 시킬 수 있는 비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왕가의 혈통을 가지고 있거나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심법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추호도 거짓이 없으렷다?”


너무나 공교로운 말이라 그런지 유화의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소백한도 이런 방면에서는 만만치 않았다.


“공주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왕가의 무공에는 천마의 금제, 정확하게는 섭종의 대원만 술법을 파훼하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요.”


“음.”


공주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있었다.


‘그건 아마도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이겠지. 하긴 그러니까 왕가가 특별한 것이고, 그렇기에 숨겨야 안전해지는 원리일 테지만.’


고맥락 사회에서는 비언어적인 요소들에도 의미가 여럿 담겨있다고 하던가?

소백한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음미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제가 직접 나서서 일을 벌일 수는 있겠죠. 하지만 효율도 효율이고,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아. 너는 매번 나를 고민스럽게 만드는구나.”


소백한의 말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생각해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백성에 불과했던 그가 천마의 금제를 풀어제끼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인도자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앞뒤가 맞지 않지.’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일월신교의 새로운 대항마가 나왔다고 생각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세월 동안 근절하는 데에 실패한, 그러나 대응하는 데에는 익숙해진 왕가보다는 새로이 나타난 위협을 먼저 제거하려 들 테니까.


그럼에도 신요화는 불신 가득한 눈으로 소백한을 바라보았다.


“그냥 적당히 속이면 되는 것 아닌가? 네가 진실을 밝히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텐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평생 감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그럼 이 중에서 누가 배신자라도 나온다는 소리냐? 무엄하도다!”


신요화가 격분하여 소리를 지르자 소백한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맞받아쳤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만약 제가 마인들을 원복시켰을 때 잔재라도 남아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게 증거가 남으면 발뺌하지도 못하잖습니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저와 싸우다 보면 왕가의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겠지요. 그럼 그때 가서 수습을 해보려 해도 이미 늦은 일이 될 테고요.”


“이익!”


사실 소백한은 그녀가 방해된다거나 싫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껍기 그지없었다.


‘그런 게 공주의 호위란 자가 해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저자세로 나서야 할 필요는 없었다.

신요화가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과 소백한을 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는데.’


그리고 소백한이 무방 서열 3위인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유화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다 못한 그녀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열어야만 했다.


“좋다. 하지만 전부는 불가하다.”


“물론입죠. 그냥 내공심법 일부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간신히 발을 걸치는 수준이라고 해도 소백한은 충분히 만족했다.

그것만으로도 목적하는 바를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공주가 받아들인 의미는 조금 달랐나 보다.

유화는 소백한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서 준비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네?”


“한시가 급한 일이다. 설마 일이 마무리된 다음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지금 여기서요?”



4.


‘끙. 이거 뭔가 이상한데.’


소백한은 유화가 구결이나 몇 쪼가리 알려주고 말 것으로 생각했다.

적진의 한복판에서 무공 수련을 한다는 기상천외한 일이 현실로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이는 신요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주님. 이건 왕가의 존립 여부와도 직결되어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기는 법이다. 이건 모두 내가 책임질 테니 너는 물러나 있거라.”


“죄송합니다, 공주님. 하지만 저는 개인적인 판단과 시각이 아니라 왕가의 충복이자 공주의 호위라는 입장에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요화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듯 소백한과 유화 두 사람 사이에 버티고 섰다.


- 얌전히 물러가라. 왕가의 비전은 네가 넘볼 게 아니다!


- 거참. 공주님께 미움받기는 싫고, 그렇다고 내가 하는 짓은 싫고. 왜 이렇게 자기 편한 대로만 살려고 하는 겁니까?


- 뭐, 뭐라고!


신요화는 살면서 이런 지적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는지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결국 반박하지는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리 호위라 하더라도 공주의 결정을 꺾을 수는 없는 법이지.’


이미 왕이 결단을 내렸는데 시시콜콜 따지고 드는 신하는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충정 때문에 입바른 소리를 한다면 백번 양보해서 이해는 해줄 수 있겠으나......


‘그 안에 개인의 사욕이 들어가 있다면 완전히 다른 성격의 문제가 되어버리고 말지.’


충성심과 애국심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맡기는 것과 단순히 이기적인 것은 겉으로 보이기엔 비슷해 보일 순 있어도 본질을 따지면 크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소백한은 부디 그녀가 이번 기회에 정신을 차렸으면 했다.


‘뭐 성깔을 생각하면 조금 더 길들여줄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야.’


단번에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기를 꺾어주다 보면 알아서 정신을 차리리라.

소백한은 그녀가 부디 순수한 마음으로 오래 자리를 지키기를 소망했다.


“공주님. 진행하시죠.”


“알겠다. 웃옷은 벗어두거라.”


겨우 상황이 정리되자 유화는 본격적으로 내공심법 전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조금 특이했다.


“나는 네게 오직 내공심법만을 알려줄 것이다. 그것도 구결 대신 기를 직접 인도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도 하겠느냐?”


심법의 이름도, 구결도, 심지어 제대로 된 운기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겠다는 건 오직 공주 본인의 힘을 빌려야만 내공심법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소백한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괜찮습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소백한이 유화에게 왕가의 내공심법을 얻고자 한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천무와의 유사성을 파악하고자 한 것이었다.


‘둘 다 섭종의 대원만 술식과 천적 관계라면 뭔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조금 전 사람들을 구하려 들었을 때 퍼뜩 든 생각에 그렇게 얘기를 했으나 역시 모든 일이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느낌적인 느낌으로 때려 맞추면 되는 문제니.’


소백한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서로 간의 비교와 검증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

유화의 손이 소백한의 등짝에 닿더니 신묘한 기운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으어어!’


소백한은 전신의 털이 삐쭉 치솟는 느낌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던 혈도가 뻥 뚫리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특이한 경험에 몸이 이리저리 튀어 나갈 듯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건 별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겠지. 최대한 참아야 해.’


소백한은 필사적인 각오로 이를 악물며 고통을 견뎌냈다.

그러자 조금씩 정신이 맑아지며 몸속을 흐르고 있는 선명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약의 기운과 융화되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원래 한 갈래에서 나온 힘이라는 건가?’


그렇게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소백한은 자신의 단전에 성공적으로 기운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유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체질에는 문제가 없군. 이제 실습을 해봐야겠구나.”



5.


‘속전속결이라는 말이 어울리는구나.’


유화의 성미를 이미 알고 있던 소백한은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몸은 굳


“저, 공주님?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적진 한복판에 들어왔는데 무얼.”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진 유화는 정말로 마인 하나를 붙잡아왔다.

하지만 너무 팔팔하게 살아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감히 일월신교의 마인을 해하려 들어?”


그 모습에 소백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요화님. 어서 저 녀석 입 좀 막아주십쇼.”


찌릿.


너무나 자연스러운 지시에 신요화는 소백한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소백한의 반응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아, 이제 이런 부탁쯤은 할 수 있는 사이 아닙니까? 이거 너무 서운합니다.”


“나도 엄연히 유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다. 네가 나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라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네가 감히 나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하, 거참. 대의를 위해서 그 정도 협조도 못 해주겠다는 겁니까? 그래도 오랜 시간 함께 해오며 서로 목숨까지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로 여겼건만.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군요.”


신요화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응수하자 소백한은 치사하게 유화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공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요화야. 시키는 대로 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 이번만이다. 다시는 공주님을 볼모로 삼아 강요하지 마라. 만약 그랬다가는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신요화가 쏘아 보낸 살기에 소백한은 흠칫 몸을 떨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유화는 소백한에게 물었다.


“정말로 자신이 있는 게냐?”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누굽니까? 유나라의 영웅 아니겠습니까?”


“......”


확실히 자기가 잘났다는 소리는 제 입으로 하게 되면 분위기를 깨는, 그런 게 있는 듯했다.

소백한은 민망한 기색을 거두고 곧바로 마인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읍읍!”


‘이거 되고 있기는 하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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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5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0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8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19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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