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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69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08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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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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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DUMMY

1.


덜컹덜컹.


근처 마을에 들러 마차까지 수리한 세 사람은 상주를 넘어 연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나마 말을 몰아본 경험이 있는 소백한은 마부석에 앉아 태연하게 사과를 씹었다.


아그작.


‘이것도 제법 운치가 있구나. 세상이 잠잠해지면 맨얼굴로 여행이나 다녀볼까?’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피면구 덕분에 음식을 먹는 것쯤은 별문제 없었다.

하지만 언제 허점이 드러날지 모르는데 평생 마음 졸이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전에 빨리 종적을 감추든가 해야지. 흩어 놓은 비자금도 슬슬 회수할 때가 됐고.’


다행히 지금까지는 크고 작은 설계가 잘 맞아떨어졌다.

무려 대천제국에 대항할 수 있는 패도 무럭무럭 싹을 틔우는 중이었으니까.


‘이 시대에 그만큼 깨어있는 인물도 보기 어렵지. 나이가 조금 많다는 게 문제지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때마침 한원일이 심심했는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뭘 그리 고민하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지만 늘 그렇듯 소백한의 대답은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어떻게 하면 노야를 골려줄지 생각 중이죠. 지난번 숙제는 잘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이놈!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경험도 월등할 터인데 어찌 매번 수모를 주느냐!’


한원일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느릿하게나마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천지신명이시여! 제발 연경까지 무탈하게 도와주소서!’


하지만 한원일의 이성은 그것이 지극히 순진한 바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일월신교는 한번 물어뜯은 목표는 절대 놓치지 않기로 유명했으니까.

바로 지금처럼.


히이잉!


고삐를 잡아당겨 마차를 멈춰 세운 소백한은 내력을 두 눈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저 멀리서 길목을 틀어막고 있는 복면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 대협.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음.”


기다란 창을 베개 삼아 선잠을 자고 있던 그는 소백한의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훌쩍 몸을 날려 마차 밖으로 뛰쳐나오는 모습에 소백한은 절로 탄성을 흘렸다.


‘캬. 보기만 해도 장난이 아니란 말이지.’


호리호리한 몸에 비늘 문양이 새겨진 호신갑이 착 달라붙으니, 마치 한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소백한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호소여에게 다급히 말을 걸었다.


“호 대협. 잠시 숨었다가 신호를 보내면 그때 덮쳐 주십시오. 조금 알아볼 게 있어서요.”


“.....?”


고개를 갸웃거린 호소여는 곧바로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한원일이었다.


“한 노야. 혹시 무공 익혔습니까?”


“엥? 무공은 무슨 무공?”


황당하다는 반응에 소백한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저 사람 혼자서 싸우라고 내버려 두자고요?”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좌우로 쏙쏙 빠져나오면 죄다 뒤지고 말 것이다.

그제야 말귀를 알아들은 한원일은 민망한 듯 헛기침했다.


“크흠. 건강을 위해 내공심법만 조금 수련했네.”


“에휴.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럼 마차 문 꽉 걸어 닫고 숨어계십쇼. 아, 혹시 모르니 귀는 열어놓고요.”


“도대체 뭘 하려고......”


“잠자코 지켜보면 압니다. 졸지 말고 똑바로 듣기나 하세요.”


의미 모를 소리를 내뱉은 소백한은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대판 싸우기 전에 먼저 패 하나 정도는 까보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뭘 노리고 왔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소백한은 오늘부로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싹 다 정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보시오. 거기 왜 그리 모여있소?”


너무도 태연한 목소리에 복면인들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우리는 사람 하나를 찾고 있다. 협조만 해준다면 해치지 않으마.”


“아하.”


연경으로 향하던 중에는 아예 다 때려 부수려고 하더니만.

어느 정도 포위망이 갖춰진 곳은 이렇게 대화도 하려나 보다.

하지만 소백한은 결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먼저 안심시킨 다음 뒤통수를 때리는 건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수법이었으니.’


그래도 저들의 속내를 알아내려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협조를 해줘야 했다.

소백한은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대체 누구를 찾고 있는 겁니까?”


“교의 신물을 가지고 있는 자다.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을 테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야 뭐. 얼마든지 뒤져보시죠.”


소백한은 떳떳했다.

단약은 먹어버렸고 구결이 담긴 책자는 외운 뒤 불태워버렸다.

나머지 자잘한 흔적들이야 장득수에게 장물로 넘긴지 오래라 추격조차 불가능하리라.


그런데 저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불쾌하고 음울한 느낌이 드는 바람에 흠칫 몸을 떨었다.

기감을 끌어올리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저들이 품은 의도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뭐야. 이 녀석들 대화를 시도할 생각 자체가 없었구나.’


소백한은 불멸존생을 수련한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그것이 진정으로 영원불멸하는 군주를 상징했다면 이런 식의 위협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을 테니까.

그래서 지체하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짧지만 굵은 외침이 허공에 울려 퍼졌을 때.

저 멀리서 태양 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창날이 매서운 기세로 쏘아졌다.


“제가 뒤쪽을 맡겠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는 말보다는 몸이, 대답보다는 직관이 더 앞서야 했다.

소백한은 재빨리 저들의 틈을 파고들어 뒤를 점했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이었다.



2.


싸움을 업으로 삼은 무림인은 확실히 놀라웠다.

온몸을 비틀 듯 회전한 호소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소백한의 앞에 다다랐다.


“가서 각주님께...... 억!”


어떻게든 본대에 알리고자 소리를 질러댔으나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창날이었다.

고작 한 수만에 목을 꿰뚫어 버린 호소여는 그 자리에서 훌쩍 뛰며 다음 목표를 노렸다.


‘크으.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깐.’


등 뒤를 맡겨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자 소백한은 눈앞의 복면인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허이짜, 허이짜! 감히 나를 능멸하려 들어?”


“이익!”


소백한은 입문 체조의 일부를 몇 번이고 반복하며 달려들었다.

동작 하나하나는 별것 아니었으나 그 안에 담긴 오묘한 이치와 웅혼한 공력이 어우러지자 손발이 꼬이며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워졌다.


‘여태까진 위협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이번엔 다르다.’


소백한은 조금 전 얻은 실마리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기감을 증폭시키며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하나 간질간질한 느낌만 들뿐 별다른 변화는 확인하지 못했다.


“죽어라!”


그러다 악에 받친 복면인이 검을 꼬나들고 무작정 달려들었을 때.

생명의 위기 속에서 소백한은 오히려 두 눈을 감고 기감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세상이 극도로 느려지며 그때의 감각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하아.’


느껴지는 것은 끈적한 살기와 얼룩덜룩 오염된 신념, 믿음, 소망 등.

농밀하면서도 불쾌한 감정이 쉴 새 없이 밀려드니 소백한의 의지 따위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야 한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린 소백한은 그 짧은 시간에 적절한 구결과 동작을 찾아냈다.


‘백성들의 갸륵한 정성을 모아 더 큰 은혜로 돌려주니.’


파앙!


소백한의 두 손은 제각기 위아래로 향하며 태극을 그렸다.

그리고 그사이에 복면인의 검이 찔러오는 순간.

음과 양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물고기가 태어나 천지를 그리더니 미친 듯이 회전하며 강한 흡인력을 만들어냈다.


“말도 안 돼!”


복면인은 어떻게든 검을 빼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력만 쭉쭉 빠져나갈 뿐이었다.


‘뭇사람들은 무한한 칭송을 보냈으나 죄인들은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하도다.’


우르릉!


다음 구결에 이르러서 소백한은 손날을 세운 두 손을 앞으로 쭉 뻗어버렸다.

그러자 마치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복면인은 저 멀리 튕겨 나갔다.

태극과 천지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반탄력이었다.


“크아......!”


내력이 뽑혔다가 되돌아가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적어도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린 다음 처맞는 것보단 아프리라.


복면인은 단전이 깨져나갔음에도 내력이 온몸을 휘돌며 혈도를 찢어발기는 바람에 정신없이 몸부림쳤다.

소백한은 그런 그를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마음을 곱게 처먹었어야지. 세상 어떤 군왕이 너 같은 새끼를 백성으로 삼고 싶겠어?”


그런 식으로 도망가려는 몇 놈을 추가로 조져놓았을 즈음.

어느새 주변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시체와 신음을 흘리는 복면인들로 가득 찼다.


“호 대협. 수고하셨습니다. 뒤처리는 제게 맡기시지요.”


“음.”


소백한은 주변을 살피며 살아 있는 이들을 한데 모으더니 하나도 빠짐없이 마차에 묶었다.

그 모습에 마차 안에서 벌벌 떨고 있던 한원일이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뭐 하려고 그러나?”


“뭘 하긴요. 가끔 부끄러워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거든요. 이번 기회에 말 좀 트이게 해주려고요.”


“이, 이런......”


한원일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딱히 말리려 들지는 않았다.


‘고문은 필요악이니까.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월신교의 의도가 뭔지 알아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소백한은 상황을 유쾌하게 넘어가려 했을 뿐, 단 한 번도 장난삼아 일을 벌인 적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에 내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었나.’


하나를 알면 열을 찾아내야 하는 공부.

그건 학당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윗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해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실전에서 목숨을 걸고 배우는 것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그리고 한원일은 저도 모르는 사이 소백한의 가르침에 점점 익숙해졌다......



3.


사람들이 무림인을 무서워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들이 사람의 몸에 대해서 굉장히 해박하다는 사실이었다.


‘밥 먹고 하는 짓이 그건데 뭐.’


그리고 여기에 사람의 심리와 본능까지 꿰뚫어 볼 수 있으면 그 효과는 배가 되리라.

달리는 마차 속 소백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흐응. 흥. 자, 지금은 몇 놈이나 살아남았을까. 한 노야. 한번 확인해보세요.”


그러자 창백한 표정을 한 한원일이 답했다.


“속이 안 좋아서 그런데 잠시 쉬었다 가면 안 되나?”


“어허. 큰일을 도모해야 할 위정자라는 분이 그렇게 몸을 사려서 쓰겠습니까?”


“나는 일개 지방관 출신이라고! 네가 말하는 위정자와는 한참 거리가 멀단 말이다!”


한원일은 절규하듯 소리를 내질렀으나 결국 달달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마차 뒤편으로 향했다.

하지만 처참하게 박살 난 면상들을 본 순간.

치미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토를 쏟아내 버렸다.


“우욱!”


아무래도 완전히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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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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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2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4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1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0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8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19 6 11쪽
»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5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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