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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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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5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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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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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DUMMY

4.


갑자기 왕이 되면 뭘 할거라니.

소백한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런 걸 왜 저한테 물어요? 제 모가지가 그리도 탐이 납니까?”


한원일도 자기 말이 실책임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혔다.


“흠흠. 오해는 하지 말게. 나는 그저 어떻게 보고를 올려야 할지 고민하던 것뿐이었으니.”


억지로 끼워서 맞추면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보고를 올리는 사람이 보고 받는 이의 입장을 고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높으신 분들의 진노를 살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발을 빼면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결국 소백한은 최대한 표현을 순화하여 대답했다.


“음. 제가 만약 유나라의 재상이나 장군이었다면 진즉에 군사를 보내 일을 키웠을 겁니다.”


“일을 키우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저놈들과는 타협도 대화도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만천하에 저들의 횡포를 알려야죠. 어차피 유나라 혼자서는 감당도 어렵고요.”


한원일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러다 진짜로 난동을 피우면 어쩌려고? 설마 일월신교에서 유나라를 멸망시킬 계획이라도 꾀했단 말인가?”


“아직 그 정도까진 아닐 겁니다.”


만약 그랬다면 진즉에 본대를 끌고 와서 싹 다 밀어버렸을 테니까.


“그래서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죠. 모두가 천마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면요.”


소백한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무언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내뱉는 것처럼 목소리를 깔았다.


“일월신교의 강점이자 약점은 금제입니다. 그걸 공략하면 어떻게든 활로를 만들 수 있겠죠.”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무엇이든 명령대로 행하는 무인들.

당연하게도 그것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믿음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믿음을 맹목으로, 맹목을 광기로 만드는 힘은 천마라는 불세출의 선동가가 퍼뜨린 기괴한 마공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아무튼 알아서 잘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물러가십쇼.”


“끄응.”


한원일은 고민을 잔뜩 떠안은 채 물러갔다.

하지만 소백한의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금제에 관한 생각이 맴돌았다.


‘그에 대항하기 위한 게 바로 천무인가?’


아직은 그저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 가지의 무(武), 개중에서도 군왕의 치(治)를 상징하는 무라면.

방법과 원리는 다르더라도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소백한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유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불멸존생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과거 대유제국의 영토를 다스리려면 얼마나 더 많은 군왕이 필요했을까?’


부단히 수련하여 압도적인 경지에 이르든, 아니면 다른 천무를 찾아서 대항할 수단을 갖추든.

어떻게든 외세의 간섭을 막아내는 방법들이 고안되었을 것이다.


소백한은 문득 자신이 유나라의 왕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놀랐다.


‘아, 잠깐만. 이거 뭔가 느낌이 싸한데.’


사람의 욕심이란 건 한계가 없다.

처음에야 괜찮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신의 분수와 현실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고생길과 지옥문이 열리는 건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었다.


‘어휴. 내가 미쳤지. 초심을 찾자. 아무것도 안 하면서 편히 살아가는 게 내 초심이었잖아.’


유나라 백성들에게 일월신교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만들어 저항하도록 하는 것.

공주를 만나 대천, 대안 두 제국 간 패권 다툼 속에서 유나라의 생존 전략을 논하는 것.


지금은 이 두 가지에만 집중하는 게 옳았다.

그리고 그 성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5.


소백한 일행은 연경으로 향하는 도중 여론을 살피기 위해 객잔에 들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제법 규모가 큰 객잔 안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곳에선 조금만 귀를 기울여도 옆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대충 알아들을 정도였다.


“우리가 뭘 하러 왔는진 아시죠?”


“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원일은 잠시 볼멘소리를 냈으나 소백한이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각자 맡은 방향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봐. 자네 소식 들었나? 이번에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던데.”


“아. 그, 그 뭐였더라. 일월신교가 쳐들어왔다는 거?”


“그래. 요즘 그 문제로 아주 시끄럽더라고.”


사실 시끄러운 건 객잔이지 정작 일월신교 무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심양과 상주는 조용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된 것처럼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감히 외적들이 유나라의 강산을 유린하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나마 소씨 성을 가진 협객이 아니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네.”


“천지신명께서 우리 유나라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일세!”


그 말에 잠자코 듣고 있던 한원일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사람들이 죄다 자네 얘기를 하는구먼.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구나.”


“씁. 조용히 하세요.”


소백한은 저들의 말을 들으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수금치고는 조금 과한데. 이게 바로 대천제국의 힘인가?’


정보를 통제하고 제 입맛대로 여론을 이끌어나간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대안제국처럼 아예 차단해버렸다면 모를까.

한번 그렇게 길들여 지면 왕조차 갈아치울 수 있을 정도로 폭발력 있고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마치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데 말이야.’


사람은 누가 떠먹여 주는 말만 가지고는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고 배움을 찾아 나서기까지는 너무나도 힘들고 고된 세월이 예정되어있다.


‘그래서 사람은 원래 스스로 생각하길 좋아하지 않는 거지. 어쩌면 대천제국의 황제는 천마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선동가일지도 모르겠어.’


소백한은 전생의 더러운 정치인들이 생각나는 바람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일부러 한원일에게 말을 걸었다.


“연경에 가면 바로 공주님을 뵈러 갈 겁니까?”


“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원래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엄중한 시국에 한가하게 놀고만 있을 순 없었다.


그때 소백한이 대뜸 물음을 날렸다.


“공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세하게 설명 좀 해보세요.”


마치 맞선이라도 보러 가는 듯한 느낌에 한원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허. 대체 그분을 뭐라고 생각하는 게냐? 그렇게 가벼이 물을 분이 아니시다!”


눈치가 빠른 소백한은 한원일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순식간에 알아맞혔다.


“아하.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해서요.”


“뭐, 뭣이? 자연스러운 만남?”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납득이 됐다.

하긴 요즘처럼 자유분방한 세대라면 그런 얘기를 꺼낼 만도 했다.


‘쯧쯧. 그래서 출산율도 낮아졌다지? 말세야, 말세.’


한원일은 대천제국의 힘을 직접 목격했으면서도 어느 순간 그에 길들여지고 만 뒤틀린 지식인이 표본이었다.

더 이상 그런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고 싶지 않은 소백한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공주님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신 분인지 궁금해서요. 미리 알아가야 실례를 덜 하지 않겠습니까?”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게냐.’


소백한이 말을 꺼낼 때마다 딴지를 걸고 싶었으나 사안의 중요함을 인지한 한원일은 잠자코 대답했다.


“여느 대장부 못지않게 강하고 단단하신 분이시다.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백성들을 생각하는 분이시지.”


“으음.”


미사여구가 조금 섞여 있긴 했으나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혹시 그분은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물론이지. 왕족들은 누구나 왕가에서 내려온 무공을 수련하니까.”


“그럼 힘의 논리로 세상을 이해하기 쉬운데 어째서 외교에 더 집중하는 겁니까?”


“음. 그건 아마도 백성들을 위해서겠지.”


소백한은 솔직히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백성들을 위한다라.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고충에 시달리는지,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이 중에서 하나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려본 적이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직접 만나봐야겠군.’


군왕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자질 중 하나는 사람을 보는 눈이리라.

그리고 소백한은 이번에도 천무가 제대로 힘을 써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6.


일을 더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서일까.

연경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어떠한 걸림돌도 없었다.


“나는 먼저 가보겠네.”


그렇게 사라진 한원일이 미리 얘기해두었는지 소백한 일행은 곧바로 공주를 만나볼 수 있었다.


연경에 있는 고급 주택 안.

그곳에서 소백한은 난생처음으로 고귀한 혈통을 알현했다.


“얘기는 들었다. 네가 바로 소문의 협객인가?”


‘호오. 이거 의외인데?’


공주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체구가 작고 여려 보이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눈에 맺혀 있는 정기는 여태까지 봐왔던 누구보다도 강렬했다.


“어서 예를 표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공주의 곁에 있던 호위무사는 곧바로 호통을 쳤다.

하지만 소백한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주가 말 위에서 내려왔다.


“공주님!”


“야인에게 예를 표하라는 것도 너무 지나친 요일 테지. 됐다. 편하게 하거라.”


그에 소백한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무명소졸 소백한이라 합니다. 저 역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가 눈짓으로 한원일을 가리키자 공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듣자 하니 내 이름을 그렇게 팔아댔다는데. 겁도 없이 일을 벌였더구나.”


“소, 송구하옵니다.”


한원일은 허리까지 굽혀가며 사과를 올렸다.

그러나 정작 소백한은 별로 문제 될 게 없다는 듯 태연하게 대꾸했다.


“국익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나라를 구한 것이 죄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호오.”


그 말에 공주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아무리 성향과 성격을 미리 전해 들었다 한들 이렇게 감쪽같이 행동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한원일을 통해 그의 본모습을 전해 들었으리라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자신에게 이런 능력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건가?’


과연 그 생각이 맞았는지 소백한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배짱이 대단하군. 하지만 그 정도 공으로는 죄를 덮긴 어렵다.”


“기준과 법도가 무너지면 일월신교 못지않게 혼란이 일 것으로 판단하시는 겁니까?”


“잘 알고 있구나. 그럼 내가 무슨 벌을 내릴지도 맞혀 볼 수 있겠느냐?”


그 말과 동시에 공주의 몸에서는 놀랄 만큼 대단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소백한은 본능적으로 이번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게 가야지.’


“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먼저 물은 건 나였을 텐데. 뭐, 좋다. 그대의 대답을 들을 수만 있다면야.”


“감사합니다. 그러면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습니다. 백성들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십니까?”


“......”


내놓고 날아든 물음에 공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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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8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19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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