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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79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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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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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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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DUMMY

3.


본래 관리라는 자리는 절대로 윗분들의 오해를 사서는 안 됐다.

언제 역모니, 횡령이니 하는 중대범죄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지 모르니까.

이건 전직이든 현직이든 가리지 않고 지켜야 할 불문율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르지도 않을 터인데......’


소백한이 막 나가기 시작하자 한원일의 껍데기도 한 꺼풀 벗겨졌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이대로 같이 죽기라도 하겠다는 게야?”


“오히려 그 반대죠. 저는 우리 두 사람 모두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오래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끙. 그러면 상식적이고 건설적인 얘기를 해야 할 게 아닌가.”


“살살 간이나 보면서 선을 넘으려니까 그렇죠.”


사람이 만만해 보이는 순간 이용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보와 배려도 여유가 있어야 나오는 법.

지금처럼 난세라면 들이닥친 위기를 넘기기 위해 쓰고 버려지기 쉬웠다.

당장 한원일만 해도 그러지 않던가.


‘어쩔 수 없었다느니, 상황이 이러므로 양해해 달라느니. 나중에 가서 이러면 진짜 답도 없지.’


성인군자나 그에 버금가는 위인이 아닌 이상에야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가장 우선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보여줘야 했다.

소백한은 절대로 만만하지 않으며 함부로 건들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놈이라는 것을.


“자네 말이 좀 거칠군. 누가 들으면 내가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어.”


“그게 협박이 아니면 뭡니까?”


“사실을 말한 것도 잘못인가? 다 자네를 걱정해서 한 말이잖나.”


“하. 저야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됩니다만. 머리가 있으면 당연히 그쪽을 먼저 노리겠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결국 잃을 게 많은 한원일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후우. 그럼 이 근방에 있는 상주 관아와 명호문에 요청해보지.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게.”


“좋습니다. 일단 거기까지 가봅시다.”


대충 협상이 끝나고 나니 한원일이 물음을 던져왔다.


“그나저나 자네 출신이 어디인가?”


“길바닥 버러지한테 무슨 출신을 묻겠다는 겁니까? 아까 돗자리 깔고 밥 먹는 거 못 봤어요?”


“굳이 숨기고 싶다면야 말리지 않겠네. 다만 연경에 가면 어떻게든 밝혀질 테니 명심하게나.”


한원일의 눈에는 짙은 의심이 어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삼십 대로 보이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언변과 지식을 갖추기란 절대 쉽지 않았으니까.

분명 어디선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이만한 인재가 여기서 썩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만약 소백한이 타고난 배경만 좋았더라면 진즉에 정계에 진출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능력 있는 실무자를 선호하는 지방과는 달리 중앙정계에서는 임기응변에 능한 달변가가 활약할 구석이 많았으므로.


‘공주님께 한번 말씀을 드려봐야겠군. 외교관으로도, 백성들의 마음을 홀리는 선전관으로도 중히 쓸 수 있을 게야.’


소백한은 한원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게 그의 눈빛은 전생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왔던 눈빛이었으므로.


‘감히 나를 부려 먹겠다고? 하. 어림도 없지.’


안전만 확보된다면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평온히 여생을 보내겠노라고 스스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기억을 더듬던 소백한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치판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보고 다녔죠. 그들이 뒤에서 뭘 해대는지, 이념에 집어삼켜지면 무엇을 추구하게 되는지 같은 거요.”


“허어. 굳이 그렇게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네. 아무튼 내 말을 너무 가벼이 듣지는 말게나.”


한원일은 소백한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만한 가문의 자제가 어찌 이런 곳에서 쟁자수 짓이나 하고 있겠는가?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한점의 거짓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런지.

소백한은 벌써부터 그때가 기다려졌다.



4.


한바탕 난리가 지나간 뒤.

모두에게 표행의 취소를 알린 장 표사는 삼화표국을 대표해 깊은 사죄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역량이 부족해 한 노야와 대협을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내실이 탄탄하다고는 하나 삼화표국은 이 동네에서나 먹어주는 작은 기업이었다.

그에 반해 일월신교는 동방 대륙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는 세계적인 단체였으니 조금만 강짜를 부려도 큰 타격을 입을 게 뻔했다.


한원일은 그 마음을 다 이해한다는 듯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가 사과할 게 뭐 있나? 세상의 이치란 게 다 그런 것을.”


“나중에라도 찾아오신다면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허허. 자네의 충정은 내 절대 잊지 않겠네.”


한원일은 마치 큰 은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자비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소백한은 그 모습이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게 말했던 것과 공주의 특명을 받았다는 걸 보면 반전주의자 같기는 한데. 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얻으려는 게 뭐지?’


소백한이 보기에 한원일은 신념을 앞세우긴 했으나 뒤에 시커먼 속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토록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겠는가!


‘내가 이런 냄새는 수백 번도 더 넘게 맡아봤거든. 어디 언제까지 숨길 수 있나 보자.’


대궐 같은 집에 하루가 멀다고 어른들이 오가던 어린 날.

그때 보았던 추악한 면면들과 대화를 떠올리니 절로 구역질이 치밀었다.

소백한은 일장 연설이라도 내뱉으려는 한원일의 등짝을 쿡쿡 찔렀다.


“이쯤하고 가시죠.”


“에잉. 그럼 다음에 보세.”


다행히 삼화표국에서 말과 마차, 그리고 약간의 생필품을 챙겨주었기에 길바닥에 나앉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랑 두 사람만 남게 되었으니 어색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부석에 앉아 애꿎은 고삐만 매만지던 소백한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물음을 던졌다.


“여기서 연경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못해도 일주일 이상은 걸리겠지. 그나마도 날이 맑았을 때 얘기네.”


“엑. 그런데도 혼자 가려고 했다고요?”


“이런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나. 공주님 얘기는 극비였단 말일세.”


‘젠장. 길이 엉망진창이라 그런가.’


여차하면 그냥 돌파할까도 생각했었다.

한데 조막만 한 땅덩이 주제에 그렇게나 오래 걸리다니.

이럴 때마다 열악한 시대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여기에 일월신교의 무리까지 상대해야 한다면 끔찍한데.’


그나마 지금은 심양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상주로 향하는 중이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복면인들을 만나 경을 쳤으리라.


한참을 달리던 마차는 어느 한적한 공터에 멈춰 섰다.


“여기서 자고 갑시다. 뭐라도 좀 먹어야 하나?”


“에잉. 나는 안에 있을 테니 깨우지 말게.”


한원일은 아직도 따뜻한 밥과 식사가 그리운지 배부른 소리를 해댔다.

결국 홀로 남은 소백한은 대충 모닥불을 피운 채 건포와 따끈한 물을 홀짝였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무공을 수련한 지도 벌써 삼 주가 지났구나.’


본래 무공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재능의 집약체였다.

한데 지금 소백한은 일류까진 아니어도 이류 무인쯤은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었다.

스스로 보기에도 뭔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성취였다.


‘만약 제대로 배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입문 체조는 말 그대로 입문일 뿐이었다.

기초부터 다지느라 뒤에 이어져 있는 무공 구결은 아직 손도 대지 못했다.

어쩌면 그 안에는 일류, 아니 절정 고수조차 발아래에 둘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잠들어 있을지도 몰랐다.


‘상상만 해도 벅차오르는데?’


하지만 소백한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하나 더 있었다.


‘진정한 불멸이 되기 위해서는 만인의 추앙을 받아야 한다라.’


본디 무공은 지극히 개인적인 성장을 추구했다.

아무리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홀로 깨달음을 얻고, 홀로 경지를 돌파해야 하니까.

그래서 얻은 성과물 역시 개인에 국한되며 다른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건 뭔가 다르다.’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까진 그렇다 치자.

불문의 사자후나 일월신교의 흡성대법 등 내력을 매개로 삼으면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얼마든지 이뤄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다른 이들의 감정, 혹은 정신적 작용을 자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다니.

이건 어떻게 보면 신앙과 충성 등 추상적인 개념을 원료로 삼는 신과 종교의 영역에 더 가까워 보였다.


‘정말 영웅이라도 되라는 건가? 아. 그건 싫은데.’


사실 이쯤 됐으면 천무는 무공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봐야 했다.

사람들을 홀리는가 싶으면서 군왕의 도를 논하고 만인의 어버이를 자처하는 등.

유혹할 거면 그냥 유혹만 할 것이지, 세상에 어떤 무공이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친단 말인가?


정말로 황제가 되기 위해 배우는 제왕학에 기반을 두었기에 이러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뿐인가?


‘나중에 진지하게 알아봐야겠어.’


그렇게 풀리지 않는 고민 속에서 밤은 점점 깊어져 갔다.



5.


다행히 상주까지 가는 데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유나라도 엄연히 주권을 가진 국가인데 고작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한 지역을 완벽히 봉쇄한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하지만 소백한은 이것도 시간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일월신교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일개 개인은 뼈도 제대로 못 추리고 당할 게 뻔했다.


‘그러니까 그 전에 빨리 지원군을 얻어 도망가야지. 겸사겸사 비호도 얻고.’


어느덧 상주 관아에 도착한 소백한은 마차를 세우고 한원일을 끌어 내렸다.


“자자.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들어가십쇼.”


“끙. 정말로 이렇게까지 해야겠는가?”


“그럼 여기서 사람이라도 모집할까요? 네?”


“어휴. 알겠네. 알겠어.”


소백한은 느긋한 마음으로 마차에 기대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기별이 없자 슬그머니 문틈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한원일과 관리 하나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말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


“원칙은 원칙이요. 거 보니까 말년에 꼬여서 창업이라도 하려다가 잘 안 풀린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썩 꺼지쇼.”


대놓고 날아든 모욕에 한원일의 표정이 대번에 굳어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소백한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보나 마나 뻔한데. 설마 이래서 주저했던 건가.’


별다른 인맥이나 거창한 뒷배 없이 은퇴한 관료의 말로는 전부 이런 것인가?

이런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한원일의 태도도 이해가 됐다.


‘이거 더는 못 봐주겠군.’


“커흠.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헛기침하며 안으로 들어간 소백한은 당당한 모습으로 관리에게 다가갔다.


“댁은 또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너는 공주님의 사자도 못 알아본단 말이냐?”


그 말에 한원일의 표정은 소태라도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감히 공주님의 사자를 사칭하다니. 그건 대역죄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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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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