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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5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15 11:43
조회
68
추천
5
글자
11쪽

006. 여행 준비(1)

DUMMY

1.


“크으. 진수성찬이로구나!”


소백한이 맨 처음 들린 곳은 다름 아닌 호화 요리 전문점이었다.

갖가지 해산물을 넣고 끓인 전골,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삶아낸 수육, 여기에 별미 중 별미라는 소 혓바닥, 우설까지.

시대의 한계로 인해 잡내가 조금 거슬렸으나 생각보다 먹을 만은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지? 어느새 내 입맛도 변했나 보군.’


게다가 유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급 식당이었기에 재료의 상태와 요리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다.

하지만 곁에서 깨작깨작 젓가락질하던 한원일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아니, 음식값이 뭐 이리 비싸단 말인가?”


요리 하나에 4인 가족 일주일 치 생활비라니.

때깔 좋고 양이 좀 많다는 이유로 이런 가격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황당하다는 반응에 소백한은 어리석고 우매한 대중을 가르치듯 말했다.


“무림인이 직접 도축하고 숙성시킨 고기라잖아요. 그 사람들 몸값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서 그래요?”


“고기가 다 똑같은 고기지 다를 게 뭐가 있다는 건가?”


그에 소백한은 수저도 내려놓고 정색했다.


“하, 이거 참. 동물에 대한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하고 신속하게 도축하는 게 아무나 할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그 귀하다는 빙한계열 연공자가 몇 날 며칠을 정성스레 어루만졌으니 신선도가 보통이겠습니까?”


“......”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무림인인데 설마 그런 잡스러운 일에 종사할까 싶었다.

하지만 한원일은 곧 납득하고 말았다.


‘하긴 요즘은 보호비만으론 생활이 어렵다고 했지?’


어떤 직종이든 바닥을 깔아주는 이들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가와 영합한 이상 이전처럼 편하게 돈을 벌기는 힘들 것이다.

온갖 규제와 감시가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 벌써 여기까지 흘러왔구나.”


그대로 침몰하느냐, 아니면 그 위에 올라타느냐의 양극단 속.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일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후우.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한원일이 씁쓸한 표정으로 술병을 매만지자 소백한이 말을 걸었다.


“마음이 불편하신가 보군요.”


한원일은 자기 생각과 감정을 감추기 위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식사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게 말이 되는가! 이게 다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세금이지 않나!”


“무림이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건 아니고요?”


“.....!”


소백한은 가끔가다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한원일은 그럴 때마다 속내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때 소백한이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를 꺼냈다.


“제가 공주님의 곁에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뭔가 방법이 있는 게냐?”


한원일은 마시던 술잔도 내려놓고 몸을 앞으로 바짝 내밀었다.

그에 소백한은 신묘한 계책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낱 무지렁이에 불과한 제가 공주님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면 무림인을 포함한 모든 민중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지요. 참으로 좋은 계획이지 않습니까?”


“이익!”


늘 그래왔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농락만 당하는 그였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맥락을 곱씹어 보면 뭔가 묘하게 현실적이라는 것이 더 불쾌했다.


“어디 보자. 음식에 술까지 다 합쳐서 금화 이십 개입니다요.”


“...... 여기 있네.”


식대를 지불하고 나온 한원일이 다시 한번 잔소리를 하려는 사이.

소백한이 먼저 선수를 쳤다.


“한 노야. 혹시 고향이 어딥니까?”


“연경일세. 그건 왜 묻나?”


“요즘 인기가 많은 관광지가 있나 싶어서요.”


“끙. 내가 지방관 생활만 사십 년을 넘게 했네. ”


그러자 소백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그럼 그곳도 모르겠군요. 저는 얼마 전에 들어서 알았는데.”


“...... 어디를 말하는 건가?”


문득 불안해진 한원일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소백한은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자였다.


“공개 연회장이요. 듣자 하니 외로운 남녀들이 짝을 찾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던데. 하핫. 벌써 기대되네요.”


‘조금 전까지 공주님과의 혼사를 논했으면서 그런 곳에 가겠다고?’


한원일은 시시각각 바뀌는 화제에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아무래도 소백한은 뿌리부터 글러 먹은 새끼임이 틀림없었다.



2.


빼곡하게 차 있는 사람들.

그 사이로 거의 헐벗다시피 노출한 젊은 남녀들이 경쾌한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가히 쾌락과 환락의 장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휘익!


휘파람 소리와 함께 여인들의 이목이 두 사람에게로 집중됐다.

그 시선을 즐기던 소백한은 어색한 표정으로 이도 저도 못 하는 한원일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한 노야. 여기까지 왔는데 뭐 하십니까? 그렇게 길이나 막고 있으면 욕먹습니다.”


‘아이고. 말세로다, 말세야.’


한원일은 누가 자기를 알아볼까 무서워 고개를 쳐들지 못했다.

그나마 결혼을 못 해 욕보일 가족이 없다는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석에 박혀서 물만 홀짝이던 한원일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응? 어째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지?’


사방에는 무제한으로 퍼먹을 수 있는 술통이 널려있었고 각양각색의 연기가 피어올라 숨을 턱 막히게 했다.


그런데 소백한은 여전히 정신이 멀쩡해 보였다.

심지어 내공심법까지 운용하는 중인지 주변의 공기가 자체적으로 정화되는 신기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두리번거리는 걸 보면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건가?’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백한에게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시원시원하게 쭉 뻗은 몸에 고양이상의 얼굴, 여기에 진한 화장까지 더해지니 절세의 미인이라 불릴 정도였다.


“반가워요. 장영화라고 해요.”


“소백한입니다. 종종 온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벌써 만날 줄은 몰랐군요.”


연경에 오자마자 소백한이 한 일은 연경의 정세를 살피는 일이었다.

그리고 장영화는 그의 처지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빼먹을 정보가 많은 상대였다.


‘잠깐 간만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첫날부터 찾아왔다는 건 저쪽에서도 관심이 있다는 뜻인가?’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고려하면 오히려 반겨야 했다.

그 사이 장영화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얘기는 들었어요. 공주님께서 친히 영입하신 인물이라지요? 대천제국에서 한껏 띄워준 덕분이라던데.”


“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공주님의 편에 서실 건가요? 그분이 어떤 처지인 걸 안다면 별로 재미없을 텐데요.”


‘어쭈.’


신인의 등장은 늘 관심이 따르는 법이다.

이 새끼가 어떤 새끼일지, 잠재적으로 내 편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어떤 씹새끼의 따까리가 될 것인지 등등.


소백한은 그런 저렴한 표현과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욕망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더럽고 추한 것이라도 어설프게 치장해놓은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장영화와 시선을 마주한 소백한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연경에서 녹을 먹는 고위 관리가 왕세자를 지지하다니. 세상이 참 좋아졌습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몸값이 높아지는 거죠.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른다. 이런 간단한 원리도 모르시진 않겠죠?”


‘어쭈. 이것 봐라.’


환락가로 위장한 사교계를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한 점의 숨김도 없이 당당하게 드러낼 줄이야.

배짱도 보통 배짱이 아니었다.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건데. 어째서 공주는 이 꼬라지를 가만히 놔뒀을까.’


설마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모자란 자였다면 애당초 소백한을 이렇게까지 영입하려 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한꺼번에 쓸어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건가.’


자신 앞에선 동방 대륙 전체를 집어삼킬 듯 굴었으면서 이렇게 기회를 노릴 줄도 알다니.

하지만 이왕 그녀의 밑에서 일하기로 한 거 제대로 신고식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손을 써야겠군.’


천재는, 정확하게는 자신을 천재라고 칭하는 이들은 적어도 그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일일이 묻고 지시를 받는 것보다는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더 천재다운 풍모 아니겠는가?


한동안 그녀와 대화를 주고받던 소백한은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앞으로 자주 보겠네요. 한동안 연경에 머물 예정이라서.”


“당신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 말이 진심이길 바라죠.”


장영화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그의 어깨를 툭 건드리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소백한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흐흐. 언제까지 그 여유를 간직할 수 있을지 지켜보겠다.’



3.


소백한은 그 뒤로도 한동안 사람들과 부대끼며 웃고 떠들어댔다.

자연스럽게 위장하기 위함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도 끝물이네요. 이제 슬슬 가죠.”


“또 어딜 가려고 그러나?”


“이제는 숙소에만 있을 생각인데요.”


“정말인가?”


한원일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추가적인 요구가 따라붙긴 했어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 그러니까 방 좀 좋은 곳으로 잡아주세요. 공주님 저택만큼은 아니더라도 근사하고 멋진 곳으로요.”


“으음. 고관대작이 임시로 이용하는 곳 정도면 괜찮겠나? 대신 외인을 들여서는 절대로 안 되네. 보안이 무너질 수도 있거든.”


“물론입니다. 저 혼자 아늑하게 보내겠습니다.”


한원일은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다 못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후우. 어쨌거나 사고나 치지 말게. 일을 벌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란 말이야. 자칫 공주님께 피해라도 가면 어찌하려고 그러나?”


“영입하려고 꼬실 때는 언제고. 말이 좀 섭섭합니다?”


“......”


소백한의 말에 한원일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어휴. 내가 미쳤지. 저런 놈한테 빈틈을 보이는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든 여기까지 끌고 오기만 해도 설득은 공주가 다 알아서 했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욕심이 앞서는 바람에 적극적으로 포섭하려 들었던 게 패착이었다.


‘물론 덕분에 목숨은 구했지만.’


원래 사람은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법이잖은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소백한에 대한 미움, 부담감 따위만 남게 된 그였다.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만나기로 하지.”


“늦잠 잘 거니까 천천히 오세요.”


“끙. 알겠네.”


그렇게 한원일을 떠나보낸 뒤.

정원 안에 들어선 소백한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인사는 충분히 했으니 곧장 쳐들어가도 이상하지 않겠지?’


공주가 준 기한은 고작 나흘.

금쪽같은 시간을 허투루 보낼 정도로 소백한은 미련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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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4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9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3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60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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