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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7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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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6 01:52
조회
71
추천
7
글자
11쪽

006. 여행 준비(2)

DUMMY

3.


한원일이 내어준 저택은 확실히 대단했다.

규모도 규모인데 인공연못에 인공산까지 만들어놓아 경치가 아주 죽여줬으니까.

마당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들끓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겠지?’


무작정 쳐들어가서 떼를 쓰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착각을 유발할 거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백한은 가장 먼저 천무를 떠올렸다.


‘무력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긴 해. 그나저나 지금 내 수준은 어느 정도지? 겁을 집어먹게 할 수준은 되나?’


소백한은 연못을 거닐며 대자연의 기운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러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기가 축적되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제약도 한결 가벼워졌어.’


입문 체조를 해야만 운기조식이 가능했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단전에 내공이 쌓였다.

대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는 절대 숙여선 안 된다는 둥 몇 가지 귀찮은 조건이 추가되긴 했지만.


살짝 흥이 오른 소백한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자세를 취했다.


‘잠깐 수련이나 해볼까. 흡기권세(吸氣拳勢).’


고오오오.


소백한이 주먹을 앞으로 뻗자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일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기운이 일제히 몰려들면서 사방을 휩쓸어버렸다.


여기엔 허이짜 허이짜 같은 불필요한 기합도 필요 없었다.

그저 힘을 오롯하게 한 지점에 모아 발출하면 되는 문제였으니.


‘원래 이렇게 쉬운 거였나?’


본래 강력한 힘을 발산하는 것보다 그걸 통제하는 게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소백한은 처음 무공에 입문했을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펼쳐냈다.


“후우우.”


‘이 정도면 혼자서 판을 벌여도 괜찮겠군.’


한원일에게서 사고를 치지 말라는 말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수많은 이들의 이해관계에 얽히고설킨 연경에서 공주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그가 난동을 부렸다가는 분명 문제가 커질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잖아.’


공주가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만에 하나 시간이 오래 걸리기라도 한다면?

반란, 혹은 그에 버금가는 정치적 공세가 날아들 확률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전에 적당히 정리는 해놔야지.’


어쩌면 공주가 나흘이라는 시간을 준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몰랐다.

소백한은 자신이 일을 벌이기만을 고대하고 있을 그녀를 떠올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흐흐. 기다려라. 내가 곧 간다.’


사적인 욕망도 충족하고.

겸사겸사 공무(?)도 수행하고.

여러모로 기대되는 밤이었다.



4.


“위군암행(僞君暗行).”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히고 활용하기 시작한 소백한은 구결을 외울 때마다 마치 역사 속 장면을 간결하게 요약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장한 군주가 야밤을 틈타 길가에 나오니, 이는 햇빛 아래 가려진 어둠까지 살피려 함이로다.’


소백한은 구결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어둠 속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자 묘사해놓은 그대로 현현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거 느낌 있는데?’


자신감을 얻은 그는 곧바로 장영화가 머무는 장원으로 달려갔다.

벽을 넘을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인기척을 느낀 소백한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누구...... 억!”


‘씁. 혈도를 제대로 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구나.’


무협지에서는 손을 대충 휘두르기만 해도 픽픽 쓰러지더니만 실전은 아무래도 만만치 않았다.

소백한은 저릿한 손을 매만지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이쯤 어디 있을 텐데.’


소백한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떠들어 댔던 얘기를 허투루 듣지 않았다.

개중에는 장영화가 자주 머무는 장소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었다.


‘의외로 혼자 있을 땐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럼 저쪽으로 가봐야겠군.’


잠시 주변을 살피던 그는 어느 건물 앞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오오.’


마침 그녀는 가벼운 차림으로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호롱불 사이로 보이는 유려한 곡선은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소백한은 오히려 경계심을 잔뜩 품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한낱 욕망에 저버려서야 대업을 이룰 수 있겠는가.

순식간에 건물 안에 진입한 소백한은 일부러 기척을 드러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군.”


“다, 당신은......”


장영화는 이 만남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굴에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에 소백한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곤 남은 손으로 목 주변의 경동맥을 압박하자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조용히. 잠깐 대화만 할 생각이다. 승낙하면 고개를 끄덕여라.”


순식간에 침착함을 되찾은 장영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수건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매서운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다.


“감히 우리 장씨 가문을 건드리다니! 이러고도 가만히 있을 줄 알아?”


“워워. 해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다만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위서 장가가 이 근방에선 워낙 유명하잖나.”


“우린 연경 장가다!”


연경은 대도시다.

위서는 연경의 여러 행정구역 중 하나에 불과하니 야망이 큰 그녀에게는 치욕에 가까웠다.


그에 소백한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원한다면 연경쯤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물론 그만한 공을 세웠을 때 이야기겠지만.”


“하. 네 손아귀에 모든 게 들어있다는 것처럼 구는구나.”


장영화는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때.

소백한이 숨겨두었던 기세를 한껏 드러냈다.


‘이, 이건...... 대체 뭐지?’


이전에 한원일이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건 마치 군왕이 아랫사람을 훈계할 때 근엄하게 무게를 잡는 것과 비슷했다.


장영화가 당황한 사이.

소백한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네가 추종하는 왕세자는 악인가? 아니면 선인가?”


“무엄하다!”


“내가 보기엔 악이다. 당장 너도 잘 알고 있을 테지.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될 때까지 모습 한번 비추지 않았으니.”


대천제국이 배포하는 신문에는 거짓과 과장이 섞여 있긴 하나 진실이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그곳에 왕세자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다만 잡다한 소문을 주로 다루는 황색 언론에서 간간이 등장할 따름이었다.


장영화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그분은 단지 왕위계승이 조용하게 진행되길 바라서 그럴 뿐이다. 괜히 소란을 피워봤자 좋을 건 없지 않으냐?”


“그래서 대중들에게 검증받을 기회조차 저버리겠다는 거냐?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


그 말에 장영화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처럼 천한 것들이 감히 군왕의 재목을 가늠하겠다고? 이건 반역이다!”


“하하. 그럼 언제까지 개돼지로 살라고 내버려 둘 테지? 나 같은 생각을 가진 놈이 정말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나?”


“......”


사실 장영화도 그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공개 연회장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 것도 전부 민심을 살피고 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인정할 정도로 그녀의 머리는 유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필요한 다툼은 최소한으로 하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일화를 제안해도 공주님은 어떠한 답변도 없으셨다. 이제 누가 더 문제인지 잘 알겠지?”


“푸하핫!”


소백한은 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같은 진영이면 모를까.

매일매일 전쟁을 부르짖는 주전파와 방비는 철저히 하되 외교적인 수단을 우선시하는 주화파는 결코 섞일 수 없었다.


그런데 단일화라는 그럴듯한 명분에 저토록 순진한 반응을 보이다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총명하고 똑똑해 보이던 인상이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이게 바로 주입식 교육의 결과물인가?’


자기 생각은 없이 철저히 남의 생각만 추종하다 보면 아무리 책을 읽고 공부해도 그릇된 방향으로 향하기 마련이었다.

더는 말을 섞기가 싫어진 소백한은 마지막으로 경고를 날렸다.


“네 아버지이자 위서의 지방관, 장용무에게 일러라. 민중들을 우습게 여기지 말고 분수를 지키도록. 선을 넘는 순간 가장 먼저 버려질 건 그대들일 테니.”


“거기 서!”


장영화는 반사적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하지만 차마 뒤따라가지는 못하고 제 자리에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믿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인가?’



5.


장영화와 대화를 나눈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덕분에 순찰조가 교대하기 전에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우. 이 정도면 충분한 건가.’


솔직히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는 게 중요했다.


‘아무리 정보력이 좋다고 한들 나를 파악하기에는 한참 이른 시점이니까.’


이걸 신인에게 주어지는 보정이라고 해야 할까?

몇 번 써먹으면 허장성세라는 걸 눈치채겠지만 가장 처음에는 약빨이 먹힐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장영화에게 말을 전해 받은 장무용은 한층 신중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소백한과 공주는 그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까지만 귀환하면 되었으니 한층 여유가 생겼다.


‘출출한데 뭐라도 먹을까?’


길거리를 걷다 보니 갑자기 야식이 땡겼다.

소백한은 가까이에 있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여기 영업합니까?”


“예이, 어서 오십쇼.”


어탕국수와 곡주 한 병을 주문한 소백한은 고단한 직장인의 심정을 상상하며 국물을 한 입 떠 마셨다.

그러자 뜨끈하고 구수한 향이 입 안과 위장을 데우며 퍼져나갔다.


“크으. 여기 국물이 진짜 진국이네요.”


“감사합니다!”


소백한의 칭찬에 주인장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와 달리 소백한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지치고 병들어 있었다.


‘하아.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무림인도, 관리도, 심지어 정식으로 수하가 된 것도 아닌 주제에 무슨 대업이요, 협박이란 말인가.


‘어쩌면 도망치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회귀? 빙의? 환생?

이세계에 가면 치열하게 살겠다고?


처음에는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이들과의 차이를 느껴 겉돌게 되면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게 현실을 살아간다는 감각이 결여 되는 순간.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날로 먹는 인생을 진심으로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힘을 내자. 어떻게든 힘을 내보자.’


소백한은 잿더미 속에서 불씨를 찾아 움켜쥐는 심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지독한 권태와 무기력 속에서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뭐라도 하는 것이었으니.


그런데 그때.

소백한은 위기감을 느끼고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암습인가!’


얼핏 보니 누군가가 도자기로 머리를 내리치려 했다.

하지만 소백한은 순식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흡기권세, 일월조영(日月照影)!’


군왕의 주먹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나니!

해와 달도 빛을 잃어 그림자만 남기노라!


콰앙!


내력이 담긴 도자기와 주먹이 부딪히자 강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흩날리는 파편 속에서 소백한은 날 선 경고를 날렸다.


“얼른 튀어나와라. 진짜 뒤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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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4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1 3 11쪽
»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2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9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3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60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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