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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70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19 22:19
조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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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007. 출정(2)

DUMMY

4.


어차피 일월신교 놈들은 금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말을 걸어봤자 입만 아팠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소백한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장 공격을 가했다.


‘군왕권(君王拳)!’


“억!”


사실 이건 무공 초식도 구결도 없이 순전히 내력을 끌어올려 내지른 일격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불멸존생 특유의 기운이 한가득 피어오르자 항거할 수 없는 폭력이 쏟아져 내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공의 고수, 공주와 신요화가 보고 있는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들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부웅.


소요화가 소맷자락을 넓게 휘두르자 무형의 파동이 사방을 뒤덮었다.


“으악!”


“뭐야!”


가까이에 있던 이들은 극심한 내상을, 멀리 있던 이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사이 공주는 가까이 있던 무인의 목을 그대로 집어 들었다.



“커, 커억!”


“흐음. 더 높은 녀석은 없나?”


손에 낀 하얀 장갑에서도 품격이 느껴지는 그녀는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주, 죽어!”


“일단 정리부터 하고 봐야겠구나. 요화. 수상한 녀석이 있으면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


두 사람이 전장을 휩쓸며 죄다 쓸어버리니 정작 소백한은 할 일이 없었다.

멀뚱멀뚱 서 있자니 조금 전 쓰러트린 무인이 꿈틀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야. 넌 어디서 왔니?”


별 의미도 없는, 순전히 시간을 때우기 위한 물음이었다.

그런데 무인의 눈에 총기가 돌아오더니 정말로 대답하는 게 아닌가.


“하나라 외곽에서 왔소.”


“아, 씹.”


‘그걸 말하면 어떡해!’


전신의 혈도에 퍼진 단약의 기운이 이제 어떤 상황에서든 발출되는 것인지.

아니면 불멸존생의 기운을 담아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능이 발현된 것인지.

어떤 이유에서든 제왕의 기세가 발현되어 천마의 금제를 허물어뜨린 게 분명했다.


‘설마 들키진 않았겠지?’


“억!”


소백한은 발에 내력을 실어 녀석의 목을 분질러 버렸다.

그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주에게로 다가왔다.


“뭔가 소득이 있었습니까?”


“너도 잘 알 텐데. 이 녀석들과는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는 걸.”


“하하. 그렇죠. 그냥 해본 말이었습니다.”


“.....?”


공주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으나 무어라 콕 집어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짙은 마기를 흘리며 다가왔다.


“네 이놈들! 감히 본교의 무인들을 죽이다니!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멀대처럼 큰 키에 창백한 피부, 그리고 감출 수 없는 광기를 머금은 눈까지.

사내의 면면을 살핀 소백한은 반사적으로 안색을 굳혔다.


‘정말로 본대가 나타난 건가?’


일월신교 동방교구에는 본단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고수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악명은 대단히 높았다.


‘민간인들까지 가차 없이 살육한다지? 전장이 복잡할수록 더더욱 날아다니고.’


마기는 음기에서 갈라져 나온 힘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하고 음습한 곳에서 힘이 증폭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온갖 건물과 잔해들로 가득한 시가전에서 싸우는 데에 특화되어 있고.


‘게다가 표적을 끈질기게 물어뜯기로 유명하지.’


만약 저 사내가 진짜 마인이라면 아무리 유나라 무방 삼사 위를 다투는 고수라 할지라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나 공주는 오히려 잘 됐다는 듯 흐릿한 미소를 흘렸다.


“월척이군.”



5.


‘월척? 정말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신요화의 반응은 거기서 한술 더 떴다.


“씨알이 조금 작은 것 같은데요.”


“음. 그래도 미끼로는 쓸 수 있지 않겠느냐?”


“그거야 뭐......”


‘역시 보통 실력이 아니었군.’


유나라 무방은 변방이라는 지역적 한계로 그렇게까지 정보가 많지 않았다.

더구나 전투가 자주 일어날 일도 없어 화제성도 약하니 신문에서도 가끔 이름자나 몇 줄 나오는 정도였다.


‘이번에 제대로 실력을 볼 수 있는 건가.’


소백한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바라보는 사이.

신요화가 먼저 뛰쳐나갔다.


“이놈!”


신요화가 휘두른 검은 마인의 허리춤을 베고 지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몸을 날린 마인은 살갗만 베인 채 끝났다.


“감히!”


피를 흘린 게 수치스러웠는지 마인은 거칠게 주먹을 휘두르며 사방에 마기를 흩뿌렸다.

하지만 정작 세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덤덤할 따름이었다.


‘뭐지? 뭔가 필살기 같은 느낌이었는데.’


마인은 자신의 수법이 먹히지 않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걸 숨기려고 쉴 새 없이 팔을 휘두르며 시커먼 마기를 뿌려댔으나 돌아오는 것은 살갗을 핥아 먹고 지나가는 검날뿐이었다.


“크어억!”


결국 마인은 허무하리만큼 쉽게 무너져내렸다.

그에 소백한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얘 진짜 마인 맞아?’


공주도 똑같은 감상이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 이리도 약할 줄이야. 아무래도 잔챙이였나 보구나.”


“고문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물론 별 기대는 안 하시겠지만.”


신요화는 마인의 다리를 붙잡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공주는 소백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생각은 어떠냐? 저 녀석을 데리고 있으면 본대가 모습을 드러낼 것 같으냐?”


“아마도 찾으러 오겠죠. 시체라도 건져야 면이 설 테니까요.”


“후후. 이쪽의 생리에 대해서도 제법 잘 꿰고 있구나.”


“하, 하하...... ”


출정 이후로 공주는 이렇게 자꾸만 캐묻는 걸 좋아했다.

그때마다 소백한은 진땀을 흘리며 화제를 바꾸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 마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잠깐 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소백한이 운을 띄우자 공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마을 근처에서 머물러야지. 가서 먹을 거라도 좀 사 오거라.”


“예이!”


그녀로부터 돈주머니를 받아든 소백한은 마을을 향해 한걸음에 달려갔다.

오랜만에 집밥 느낌의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겸사겸사 소식도 살펴봐야겠어.’


원래는 이게 더 우선시 여겨야 할 목적이거늘.

소백한은 어느새 일상에 젖어버린 자신을 보고 썩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후. 이렇게 잊힌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6.


“으악!”


어느 한적한 숲속.

비명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적막함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나 여전히 경치 하나는 끝내줬다.


“흐암.”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늘어지게 하품을 한 소백한은 오늘 아침에 막 구해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콧노래는 덤이었다.


‘흥흥. 오늘은 또 무슨 헛소리가 적혀있을까.’


그런데 그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가득했다.


- 구국의 영웅 소백한! 이번에도 마인 격파!


- 일월신교의 야욕은 어디까지? 유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이건 대체......’


소백한이 마인에게 중상을 입힌 건 맞다.

하지만 마지막에 조금 손을 거들었을 뿐이거늘.

정작 기사의 내용은 그 혼자서 나라를 구한 것처럼 묘사되어있었다.


마차로 달려간 소백한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음을 던졌다.


“공주님. 이것 좀 보십쇼.”


“음.”


“설마 벌써 손을 쓰신 겁니까?”


생각보다 덤덤한 반응에 소백한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만약 그랬더라면 나중에라도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공주의 대답은 전혀 예상외였다.


“오히려 내가 물어야 할 판이다. 혹 왕세자 측과 접선한 적이 있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보기엔 누군가가 너를 노리고 있는 것 같구나.”


다행히 의도가 불순하다거나 첩자로 의심받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누군가가 자신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것은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었다.


‘영웅은 만들어지는 법이라지? 근데 그게 왜 하필 나냐고.’


영웅이 된다는 건 극단적인 상황에 몸을 내맡기는 것과 같다.

매 순간 관심을 받을뿐더러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게 된다.


‘거기다 왕세자라. 이거 느낌이 싸한데.’


지배자에게 미움을 받고 찍히는 순간.

이후의 미래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뻔했으니까.


‘점점 나를 구석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단 말이지.’


이건 결코 일개 개인의 판단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문제였다.

아마도 대천제국에서 무언가 손을 쓴 게 분명했다.


소백한이 고민에 차 있자니 공주가 슬며시 말을 걸어왔다.


“각오는 되어있느냐?”


“저야말로 묻고 싶은데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는 것.

다른 이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소백한의 불안을 느꼈는지 공주는 진솔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이미 나라는 개체의 삶을 포기한 지 오래다.”


“......”


소백한은 이전처럼 어쭙잖은 위로나 위안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와 인내의 세월을 거쳤을지 짐작이 갔으므로.


그 대신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공주님의 존함도 모르고 있었군요. 혹시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공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표정을 살피니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 보였다.


‘개인의 삶을 포기했다고 말했음에도 굳이 이름을 묻는 저의가 무엇인가?, 정도겠지.’


이래서 옛날 사람들과는 말이 잘 안 통한다니깐.

소백한은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한 명쯤은 공주님의 이름을 기억해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훗.”


소백한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 공주는 한층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차 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무게를 짊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듣고 싶으냐?”


공주의 경고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소백한은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호기심이 솟구쳤다.


‘대체 왜 그러는 거지? 뭔가 심오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나?’


도굴꾼은 날로 먹는 놈들이다.

남이 이뤄놓은 성과를 홀라당 집어삼킬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불태우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사전 조사하고, 결정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경쟁자들을 따돌리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달픈지 모른다.


무엇보다 위험을 각오하고 목표를 성취하려는 그 태도만큼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출중했다.

겁대가리가 없는 것을 넘어 호랑이 입 안에 머리를 집어넣는 수준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 중에서 나름 정상을 찍어본 놈이란 말이지.’


게다가 이미 일이 여기까지 흘러왔는데 굳이 발을 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소백한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알아서 다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쇼.”


그에 공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이름은 유화다. 그 말, 명심하도록.”


순간 소백한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거 느낌이 이상한데. 왜 나보고 책임지라는 소리 같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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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10. 돌파(2) +1 22.11.28 25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2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4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0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8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19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5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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