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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0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0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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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추천
7
글자
12쪽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DUMMY

6.


처음에는 괜히 떠본다고 생각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무작정 까발리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소백한을 너무 얕잡아 본 판단이었다.


“외적의 무리가 유나라의 강산을 헤집고 다니는 엄중한 시국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빈손으로 쫓아 보내려 하다니. 관리란 자가 정말로 그래도 되는 것이냐? 설마 뒷돈이라도 받아 처먹은 건 아니겠지?”


“허.”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관리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한원일이 공주의 인장이 찍힌 패를 슬그머니 꺼내 보이자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아무리 그래도 원칙은 지켜져야 하는 법이네.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라면 진즉에 공문이 날아왔겠지.”


“너무 많은 걸 바라지는 않겠다. 이곳 관아에 협력하고 있는 곳이 명호문이던가? 그쪽에 인력을 내어달라는 공문 하나만 써 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지.”


“끙.”


원래 이런 일은 소소하게나마 대가가 오가는 것이 기본이자 상식이었다.

하지만 소백한은 물론이고 한원일조차 그럴 기미가 없자 맥 빠진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강제할 순 없고 그저 권고할 뿐이네. 잘못됐을 때의 뒷감당도 전부 자네들이 져야 할 걸세.”


“알겠으니까 얼른 내놓기나 하라고.”


관아에서 나오자마자 한원일은 경고를 날렸다.


“앞으론 조심하게. 오늘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니.”


하지만 소백한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인장이 찍힌 종이를 펄럭거리기나 했다.


“거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맙시다.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 아닙니까?”


“후우. 조금 전에 네가 저지른 죄목만 몇 가진 줄 아나? 들키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해라!”


한원일은 가슴 주변을 매만지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직도 서늘한 무언가가 얹혀있는 것 같아 절로 몸서리가 쳐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백한의 대답은 너무도 태평했다.


“나야 여차하면 여길 뜨면 그만인데 뭘. 난세에 사람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티라도 날까?”


“......”


한원일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지금 자신과 말을 나누고 있는 상대는 대체 누구인가?

이름, 출신, 내력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신념과 목표를 가졌는지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모든 게 거짓일지도......’


“자네, 이제 보니 무서운 사람이었군.”


“그렇게 괴물 보듯이 쳐다보진 마십쇼. 저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인생을 날로 먹는 게 최종목표니까.”


‘그런 놈이 일을 이렇게까지 벌인다고?’


한원일은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한 모습이 재밌어 보였는지 소백한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어도 연경까진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아무리 일월신교라도 전쟁을 바라는 게 아니면 거기까지 쳐들어오진 못하겠죠.”


“그럼 그 길로 곧장 유나라를 떠날 생각인가?”


연경의 항구는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나라를 넘어 서방 대륙까지 나아갈 수 있는 열린 창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소백한은 애매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글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겠지요.”


‘서방이라. 그쪽 동네도 답이 없겠지? 노란 원숭이 취급이나 받으며 살고 싶진 않은데.’


자신과 다른 이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고도로 발전된 현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여기서까지 겪을 필요가 있겠는가.


‘일단 공주는 한번 만나봐야겠어. 그래야 이 나라에 미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소백한은 유나라에게 자신을 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했다.


‘아, 가능하다면 왕가의 무공은 어떤지도 보고 싶은데.’


지금까지는 그 혼자서 모든 구결을 상상하고 추측해야만 했다.

하지만 왕이든, 공주든 진짜를 보게 된다면 천무에 담긴 비밀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흐응. 흥.”


고민을 마친 소백한이 콧노래를 부르자 한원일의 시선이 절로 그쪽으로 꽂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한원일은 당장이라도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첩자라 단정 짓기엔 증거가 없고. 알면 알아갈수록 의문만 커지고. 대체 네 정체는 무엇이란 말이냐.’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생각을 품으며 걸음을 옮겼다.

덜컹거리는 마차 소리만큼이나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조합이었다.



7.


“자자, 집중. 이 중에서 자기가 힘 좀 쓴다고 하는 분들은 싹 다 나오시오.”


공문의 힘은 놀라웠다.

소백한의 말 한마디에 명호문의 무인들이 대부분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하지만 공문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무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무사 하나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모이라 해서 모이긴 했는데. 관리가 대체 무엇 때문에 무림인의 힘을 빌리겠다는 거요?”


“연경까지 우리를 호위해주면 되는 아주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설마 상주 무림의 영웅호걸들이 지레 겁을 먹고 발을 빼진 않겠죠?”


“허 참. 관군은 어디다 팔아먹고 엄한 우리한테 오라 가라야. 엉? 보아하니 수고비도 제대로 안 챙겨줄 것 같은데.”


한번 험한 소리가 튀어나오니 분위기는 곧바로 싸늘하게 변했다.

한동안 웅성대는 꼴을 바라보던 소백한은 한원일에게 속삭이듯이 물었다.


“한 노야.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가장 먼저 무얼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대뜸 날아든 질문에 한원일은 순간 멈칫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백한의 말이 우르르 쏟아졌다.


“노야. 당신은 그 나이 먹고도 잘 모르는 겁니까? 생각보다 책을 가까이하지는 않나 보군요. 아니면 경험 부족이거나.”


“......”


“잘 보십시오. 분명 배울 점이 있을 테니.”


‘감히 나한테 그런 막말을.....!’


한원일은 혈압이 오른 듯 목덜미를 잡고 입만 뻐끔뻐끔 움직였다.

그런 그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소백한은 돌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게 말해서는 알아듣지 못하는군. 나라에 그대들이 필요하다는데 여기에 무슨 토를 달겠다는 건가?”


“설마 징집이라도 하겠다는 게야? 나라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그래! 병신같은 정치로 나라나 망하게 만들고. 오히려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거 아냐?”


‘호오.’


생각 이상으로 강경한 발언에 소백한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하지만 이렇게 말이 통하는 저항은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소백한은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청년 하나를 콕 집어서 물음을 던졌다.


“이봐, 거기. 그대는 유나라 태생인가?”


“그렇소. 일평생 다른 곳은 가본 적이 없소.”


“그대가 나고 자란 강산은 모두 유나라의 치세에서 나온 것인데 어찌 아무런 득을 보지 못했다 그러는가?”


“하. 그냥 울타리만 세워놓고 세금을 거둬가면 그게 국가란 말이요?”


청년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나는 내가 피땀 흘려 무공을 익혔고 뼈 빠지게 일하며 돈을 벌었소. 심지어 나랏일 하는 관료들을 위해 힘을 보태주기까지 했지. 하지만 돌아온 것은 푼돈 쪼가리에 유사시 징집하겠다는 말뿐이었소. 정말로 이것이 정상이란 말이오?”


소백한은 걸려들었다는 듯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제 고생만 기억하고 남이 베풀어준 은혜는 까맣게 잊어버린다더니. 그동안 무림을 묵인해준 건 전부 역대 국왕들의 배려였잖은가!”


“뭐요?”


“방황하고 굶주린 이에게 땅과 울타리를 세워주었다면 최소한 그 빚은 갚고 얘기를 나눠야 할 게 아닌가! 그대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나?”


여기까지였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수습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백한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버렸다.


“눈을 돌려 대천제국이나 대안제국을 보아라. 거기에서 무림인들이 무슨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를! 정녕 사람이 아닌 가축으로 부림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겠나?”


그 말에 명호문 무인들의 얼굴이 일제히 붉어졌다.


“뭐, 뭣이?”


“그럼 우리의 존재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냐!”


흥분이 뇌를 지배해버리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논리고 뭐고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 소백한의 광대짓까지 더해지니 일대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보게. 다들 진정하게나. 여러분들은 무려 공주님을 뵐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잡은 것이니. 아아! 그 곱디고운 손으로 악수라도 해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경에 펼쳐진 바다처럼 넓은 가슴이라면 어떤 말이든 다 들어주실 텐데,”


“저 새끼 잡아!”


“때려눕혀!”


그런데 그때.

늘씬한 몸에 큰 키를 가진 사내 하나가 무리를 헤치고 그에게 다가왔다.


“재밌군. 연경까지 호위해달라고 했나? 내가 가지.”


“사형! 어찌 저런 천박한 무리와......”


소백한은 혹여나 그가 마음이 변할까 싶어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대협. 혹시 별호와 이름 좀 물을 수 있겠습니까?”


“호소여. 강호의 동도들은 나를 세류창(細流槍)이라 부르더군.”


‘세류창이라.’


얼핏 들으면 가느다란 시냇물을 연상케 했으나 소백한은 결코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자고로 별호란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인받은 자신만의 간판, 인증서와 같은 것.

그렇기에 세류창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표면적인 의미 이상으로 심오한 무언가가 깃들어있음이 분명했다.


‘아마도 정교하고 군더더기 없는 찌르기를 뜻하는 것이겠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은 기본이고.’


게다가 천무를 익힌 뒤로는 기감도 남달라졌는지 상대의 몸 안에 깃들어있는 웅혼한 내력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소백한은 무협지와 더불어 그동안 만나왔던 무림인들을 떠올리며 대강 수준을 가늠해보았다.


‘최소 일류 극한, 잘하면 절정 초기인가? 월척이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소백한은 말 그대로 두 팔을 벌리며 환영했다.


“하하.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설마 이렇게까지 반길 줄은 몰랐는지 호소여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곤 곧장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잉. 사내대장부가 무슨.’


한원일은 속으로 혀를 차며 뒤따라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소백한의 말이 그의 걸음을 멈추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한 노야가 보기에는 저 사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자네가 골라 놓고 그게 무슨 소린가?”


한원일은 난데없는 물음에 화들짝 놀랐다.

설마 호소여가 숨겨진 첩자라도 된다는 소린가?


“조금 전 제 말에 흥미를 느낀 자라면 어떤 인물일지 잘 생각해보시죠. 아마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소백한은 그 말만 남기고는 마부석 위로 올라가 버렸다.

뭔가 찝찝한 얼굴이 된 한원일은 곧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공주님께 죄를 물으러 가겠다는 소린가? 그동안 진 빚은 이번 일로 갚은 셈 칠 테니까?’


일평생 관리로 살아오면서 국가와 왕가에 대한 충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절대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세상은 그것들을 낡아빠진 구시대의 규칙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허어. 세상이 정말 변하긴 변하려나 보구나.’


아직은 때를 기다리며 각지에서 힘을 비축하고 있는 영웅호걸.

그리고 그들을 모아 일어설 수 있는 선동가 혹은 군주.

어쩌면 조만간 세상은 그 둘의 만남으로 인해 큰 진통을 겪을지도 몰랐다.


‘그 속에서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렇게 한원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생각들을 품게 됐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소백한의 눈길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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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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