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안녕하세요

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4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04 18:06
조회
232
추천
16
글자
11쪽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DUMMY

1.


소백한의 외침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울림은 쟁자수들의 마음에 선명히 박혀 들었다.


“뭐라고? 첩자?”


“언제 여기까지 침투했단 말인가!”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이목이 소백한에게로 쏠렸다.

일단 바라는 대로 되기는 했으나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젠장. 이게 무슨 지랄이람.’


원래 소백한은 이렇게 앞으로 나서길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을 넘어 저들처럼 방구석에 박혀 어쭙잖게 논평이나 해대는 쪽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여기서 머뭇거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일단 판을 벌였으면 어떻게든 끝을 봐야 했다.

그것이 목숨을 건 도박일 경우엔 더더욱.

소백한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 그러지 않으면 어찌 한 선생을 노린단 말이냐? 유 나라가 이제껏 존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더라도 꿋꿋하게 버텨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라에 헌신하는 충신들 덕분이었다!”


그 말에는 한원일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냉소적이었거늘. 정말로 같은 사람이 맞단 말인가.’


소백한이 다음 말을 이어 나가려 할 때.

더는 보다 못한 복면인 중 하나가 암기를 날렸다.

하지만 그는 두 팔을 휘저으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더니 단검을 붙잡아버렸다.

백성들의 가슴을 보듬는다는 구결이 담긴, 짧은 시간이었으나 수도 없이 반복해왔던 초식이었다.


“이것 보아라. 옳은 말을 하는 이를 죽이려 드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가? 모두 힘을 합쳐 외적을 섬멸하자! 아직 정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말이다!”


세세히 따져보면 이것저것 허점이 보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소백한의 목소리에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판단하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무엇보다 표국 무사들로 이루어진 대열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감히 노야를 건드리다니!”


“싸우자! 쪽수는 우리도 만만치 않다!”


잔뜩 흥분한 쟁자수들은 복면인들을 향해 냅다 달려들었다.

다행히 이곳에는 닭장 속의 여우처럼 양민학살이 가능한 무림 고수는 없었다.

그 말은 아무렇게나 던진 돌멩이 하나, 칼질 한 번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복면인 하나가 쟁자수 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

어차피 저놈들은 개돼지다.

하나만 도륙을 내도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게 뻔했다.


하지만 저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소백한이 복면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허. 여기부턴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놈!”


별 의미도 없는 것 같던 입문 체조가 펼쳐지자 막대한 공력이 진동하며 상대를 압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쥐어짜인 복면인은 내상을 입고 울컥 피를 토했다.


“이 무슨.....!”


“더 해볼 테냐, 병신아?”


“이익!”


그렇게 전력이 분산되고 숨통이 트이자 삼화표국 소속 무인들도 기세를 되찾았다.

이번 표행의 책임자, 강중영 표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양건! 우측이 비었다. 파고들어!”


“장 표사! 어떻게든 버텨라. 곧 그쪽으로 갈 테니!”


한번 승기가 기울어지자 복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그렇게 소백한 혼자서 쓰러뜨린 숫자만 다섯 명이 넘었을 때.

드디어 저들이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했다.


“잡아라!”


“끝까지 죽여!”


잔뜩 흥분한 쟁자수들은 돌과 삽, 낫 따위를 들고 쫓아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 무인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싸움의 끝, 흥분이 가라앉은 그들이 마주한 것은 싸늘하게 널려있는 시체와 부상자들이었다.


“장형! 아이고오.”


“내 팔! 제발 살려줘!”


선동이란 이름의 마법은 이렇게 현실을 마주한 순간 허깨비처럼 풀리기 마련이었다.

슬픔과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을 보니 가슴이 괜히 답답해졌다.


‘후. 이래서 나서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말로 대의와 정의를 추구했다는, 그래서 희생에 통렬히 책임을 느낀다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로지 소백한 본인의 생존과 이득에 기반한 최상의 선택을 한 것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어떤 의미로는 지극히 순수했으며 거짓도, 변명할 말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전생에서 그토록 질색하고 환멸을 느꼈던 정치 괴물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었다......


‘씁쓸하구먼.’


소백한은 적어도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렇게 늙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살았을 때의 결과를 아버지란 놈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역시 아무것도 안 하는 한량이 제일 낫지.’


소백한은 하루빨리 은퇴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강중영의 눈길이 느껴지자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으리란 것을.



2.


주변을 수습하는 사이.

강 표사는 소백한에게 다가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대협이 없었다면 큰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딱히 소백한이 엄청난 신위를 보여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당황하고 있을 때.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들을 결집하여 대항한 것은 지도자의 자질과 협객의 심성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저, 그게......”


소백한이 뭐라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다행히도 강 표사는 알아서 사정을 이해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신분을 숨기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이니 감히 존함을 묻진 않겠습니다. 역시 장득수 나리께서 사람 보는 눈이 있으신가 봅니다.”


‘걔가 거기서 왜 나와? 그렇게 대단한 놈이었나?’


옆집 형이자 친한 동업자 정도로 여겼었는데 이거 생각보다 거물이었나보다.

강 표사는 그렇게 혼자서 주절거리다가 물러갔다.


홀로 남은 소백한은 복면인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시체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품속에서 해와 달이 교차하는 문양이 새겨진 신표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잠깐. 일월신교가 놈들이라고?’


동방 대륙에는 하나의 국가를 넘어 대륙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들이 여럿 존재했다.

개중에서 일월신교는 상고시대의 유적을 바탕으로 일어났으나 지나치게 흉포하고 편협한 교리로 인해 음지로 쫓겨난 세력이었다.


신표를 매만지던 소백한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설마 나를 쫓아온 건가?’


심양만 벗어나면 그래도 한결 수월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일월신교처럼 거대한 조직이 포위망을 펼치면 유 나라를 벗어난다고 해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잠깐만. 추궁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잖아.’


소백한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한원일의 모습을 찾았다.

다행히 그는 옆면이 뜯겨 나간 마차 안에 평온히 앉아있었다.


“무사하셨습니까?”


“아. 왔나? 이 모든 게 자네와 삼화표국 덕분이지.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네.”


변명 한마디 없이 이렇게 날로 먹으려 든다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소백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봅시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소백한이 신표를 내밀자 한원일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건...... 기밀이네. 자칫 잘못하면 자네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보아하니 표국에 이런 것까지 알리진 않은 것 같은데. 약관 위반으로 법정에 서 봐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소백한이 계속해서 압박하자 한원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후우. 그래. 이런 상황에서까지 말을 아끼는 건 실례겠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테고.”


대천제국의 눈과 귀는 또 다른 패자(霸者), 대안제국을 제외하면 어디든 열려 있었다.

이만한 사건이 터졌는데 잠잠하길 바란다는 건 지나친 바람이었다.


한원일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나는 공주님의 특명을 받고 연경으로 향하던 중이었네. 자세한 내용은 기밀이나 유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일일세.”


연경은 유나라의 유일한 항구가 있는 곳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경지대였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일개 쟁자수 나부랭이에게 꺼낸다는 것은 무언가 노림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어?’


하지만 소백한의 불안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된 거 자네가 나를 그곳까지 호위해주지 않겠나?”


“하하...... 저도 그러고는 싶지만 따로 맡은 일이 있어서.”


소백한은 안타까운 기색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에 한원일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걸세. 이미 자네도 표적이 되었을지 모르니까.”


‘이런 젠장.’


소백한은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도 한원일과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심양을 벗어나려는 행렬을 전부 뒤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수많은 사람 중에서 하필 삼화표국만 노렸다는 것은 정보가 새지 않은 이상 말이 안 됐다.

게다가 아예 표적을 확정했더라면 고수들로 이루어진 본대를 보냈으리라.


‘그렇다는 건 앞으로도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한다는 소린가? 그걸 위해 나를 방패막이로 세우려는 거고?’


확실히 관료 출신이라 그런지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과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마도 소백한을 끌어들여야만 목숨줄을 부지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지.’


이건 자존심을 넘어 두 사람 중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의 싸움이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지게 된다면 상대에게 숨통을 내어주는 것과 같았다.

이 순간 소백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험험. 알겠습니다.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것쯤이야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대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민간인들을 데리고 선동질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선동이 먹히리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적의 수준까지 운에 맡겨야 한다면 소백한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일 것이다.


‘마음 놓고 있다가 천마라도 뜨면 어쩌게.’


소백한은 먼저 관이나 무림의 비호를 받는 선택지를 제안했다.


“관아에 가면 도움을 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설마 관군을 빼 오자는 건가?”


“아니면 협력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든가요. 최소 절정 고수 하나는 있어야겠습니다.”


한원일은 곧바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내가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게 문제일세. 마땅한 명분이 없지 않은가.”


“그럼 아예 대놓고 드러냅시다. 유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여정이라고 밝히면 누구든 관심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의용군이라도 모집하자는 건가? 그건 반역이네!”


그러자 소백한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누가 의용군이랍니까? 전부 한 노야의 인품에 반해 자발적으로 모인 지지자들인데요.”


“.....!”


한원일은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에 소백한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끌어들이려면 이 정도 각오는 해야지. 안 그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4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3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60 95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