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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3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01 05:20
조회
459
추천
95
글자
8쪽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DUMMY

1.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정치가 싫었다.

처음엔 매일 같이 찾아오는 아저씨들이 떠들어 대는 게 시끄러워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대화와 맥락을 이해할수록 인간 자체가 혐오스러워졌다.


‘더러운 위선자들. 남에게 기생해야만 살 수 있는 해충 새끼들.’


성인이 되자마자 집 밖을 뛰쳐나간 나는 알바를 전전하는 백수가 됐다.

물론 반발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 땅에서 네가 내 도움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거지로 살아도 당신처럼은 안 살 겁니다!”


누구와도 깊이 엮이지 않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삶.

처음에는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은 위키, 커뮤니티 중독에 고독사였다.


‘아. 이 짓도 내 몸 하나쯤은 건사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


그래서 무협 소설에서나 볼 법한 세계로 전생한 뒤에는 조금 더 열심히 살았다.

남의 무덤이나 오래된 유적을 파헤치는 도굴꾼.

그건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줄을 대고 서로의 약점을 들춰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서 잘 먹고 잘사는 게 훨씬 더 익숙했으니까.


...... 근데 벌 만큼 벌어 놓으니까 곧 전쟁이 터진단다.

좆같이 정치하는 새끼들만 아니면 모든 게 다 좋았을 텐데.


어디 이민 갈 데 없나?

진짜 무공이라도 배워야 해?



2.


난세가 도래하면 사방에서 도적들이 활개 치고 다닌다.

하루가 멀다고 사건이 터지니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유사 업종인 도굴꾼도 사정이 좋은 편이다.

평소라면 삽 한번 들이밀기 어려운 곳도 눈치만 잘 보면 기회가 생기거든.


어느 이름 없는 무덤가.

무성하게 자란 잡초 속에서 유(諭)나라의 도굴꾼 소백한은 낡아빠진 지도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여기가 상고시대 황제의 묘인가? 드디어 찾았구나!’


확실한 건 건강히, 오래 살기 위한 비급이 숨겨져 있다는 것뿐.

무슨 왕조인지, 어떤 인물인지, 심지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 같은 놈한테 기회가 왔겠지만.’


평소라면 감히 시도해볼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이곳 심양은 수많은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니만큼 보는 눈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난세가 도래하고 온 천하가 전운에 휩싸인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어수선해졌다.

덕분에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녀도 물자를 구하러 다닌다는 식으로 적당히 둘러댈 수 있었다.


“읏차.”


등에 멘 봇짐에서 팔뚝 길이의 작은 삽을 꺼내든 소백한은 조심스럽게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보도에 기록된 대로 노끈과 철사가 보일 때마다 날카로운 단검으로 끊어냈다.


‘기관 장치는 다 망가뜨렸고. 이제 흙만 퍼내면 되는 건가? 아. 오늘 안에 끝났으면 좋겠는데.’


소백한은 삽질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잡생각이 떠오르는 바람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게 이번 작업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요것만 한탕하고 가면 아주 깔끔한데. 제발 진짜여라, 제발.’


돈은 충분히 벌었다.

서른다섯이라는, 도굴꾼으로서는 아직 풋내나는 나이임에도 시기를 잘 타고났는지 수십 개가 넘는 무덤과 유적을 파헤쳤으니까.

거기서 나온 재물만 잘 관리해도 족히 삼대는 먹고 살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씨발. 니들만 입이냐? 나도 절세 무공 맛 좀 보자.’


그동안 허공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무림인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게다가 내공심법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무병장수는 기본이요, 온갖 기상천외한 수법을 가능하게 만든다지 않던가.

돈 많은 졸부에 불과한 소백한에게 절세 무공이란 평온한 노후를 완성 시켜 줄 마지막 조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명문대파의 제자가 되는 건 최악의 수지.’


실력과 자질만 좋으면 전승을 이을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다.

소백한이 보기에 이름난 문파의 수장들은 힘 좋고 충성스러운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내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수준이면 좋겠는데. 아니, 그전에 여기 묻혀있는 게 맞긴 해?’


상고시대 유적은 워낙 수가 적다 보니 허탕을 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조바심과 함께 서서히 의심이 싹트는 가운데.

소백한은 장장 한 시진이나 더 파헤치고 나서야 겨우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오!”


소백한은 한층 섬세해진 손놀림으로 땅을 팠다.

그러자 좁은 통로와 함께 사방이 벽으로 막힌 작은 방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중하게 발을 들이민 소백한은 각종 도구를 꺼내 벽을 찔러댔으나 별다른 소득을 거두진 못했다.


‘정말 방 하나가 전부라고? 설마 위장인가?’


무덤의 형상을 한 보물창고라.

소백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나무로 된 작은 상자 하나와 투명한 약물에 담긴 책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 봤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연 소백한은 신비로운 광채를 머금은 단약을 발견하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를 꽉 깨물며 간신히 참아낸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단약의 진위를 가늠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더 따질 필요도 없이 진품이었다.


‘냄새만 맡았는데 이토록 진한 기운이라니. 이건 분명 절세의 보물이 틀림없구나!’


숨을 들이쉴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고 활력이 샘솟는 것이 다른 건 몰라도 건강에 굉장히 좋아 보였다.

이런 물건과 함께 있는데 당연히 곁에 있는 책자도 범상치 않을 것이다.


‘얼른 튀어야겠어.’


귀한 보물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화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아무도 모를 때 날름 집어삼키는 게 상책이었다.


파낸 흙을 도로 채워 넣으며 주변을 꼼꼼하게 정리한 소백한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 근방은 인적이 드물고 수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이대로 몇 년, 아니 몇 달만 흐르더라도 자신이 왔다 갔다는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져 완벽범죄가 성립되리라.


‘제발 이대로 잊어주라. 제발!’



하지만 닷새 후.

소백한의 바람과는 달리 한 무리의 무인들이 무덤가를 찾았다.


개중에서 가장 선두의 사내는 인상이 사납고 강한 위압감을 흘리는 것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오금이 저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검은색 피풍의 사이로 천마전(天魔殿)이라는 글귀까지 비치니 아무도 그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히이잉!


고삐를 잡아당겨 걸음을 멈춘 그는 두툼하게 솟아오른 봉분을 감회에 젖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천자의 보물을 손에 넣는구나. 이것만 있으면 장차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한 세력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무수한 사람들의 지지와 복종을 받아내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상고시대 천자가 남긴 보물에는 그걸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권능이 있다고 한다.

시기도 시기이거니와 태생부터 음지에 머무를 수밖에 없던 교의 입장에서는 매우 절실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영 신통치 않게 돌아갔다.


“소마(小魔)! 큰일 났습니다.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어라? 그럼 성녀의 예언이 틀리기라도 했단 말이냐!”


사내의 목소리에는 진득한 살기가 어려있었다.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무인들은 황급히 몸을 놀려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길 보십시오. 이미 누군가 왔다 간 것 같습니다.”


“...... 얼마나 된 것 같으냐?”


“못해도 사흘은 지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내는 울분이 치솟는지 허공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


처음에는 분노와 한탄이 주를 이뤘다.

그러다 아쉬움, 원망, 안타까움 등 온갖 감정이 줄지어 딸려 나왔다.


그렇게 처절하게 한 곡조 뽑아낸 사내는 점점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녀석이 황위를 계승하기 전에 잡아야 한다. 어서 뒤를 쫓아라!”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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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4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60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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