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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8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12 21:18
조회
91
추천
3
글자
12쪽

005. 군주의 자질(1)

DUMMY

1.


장차 군주가 되기를 바라는 이에게 백성은 어떤 존재인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심오한 질문에 공주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백성들을 어찌 생각하고 있냐니. 쉽지 않은 물음이로다.’


공주가 고민에 빠지자 한원일이 급히 귓속말을 건넸다.


“자네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감히 일개 백성 주제에 군주에게 자질을 묻다니.

한원일은 소백한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대답이 길어질 기미가 보이자 소백한은 물음을 바꿨다.


“그럼 장차 백성들과 함께 할 꿈은 무엇인지요?”


표현은 바뀌었으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비슷했다.

그러면서도 공주 본인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목표까지 오롯하게 녹여낼 수 있는 물음이었다.


공주는 소백한과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나의 꿈은 유나라가 과거 대유제국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과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시대를 함께 열어가고자 한다.”


‘허어.’


작금의 유나라가 대유제국의 영광을 꿈꾼다라.

소백한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당장 땅덩이만 비교해도 백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그걸 해내겠다고? 심지어 왕위에도 오르지 못한 한낱 후계자가?’


수백 년짜리 계획을 세워도 부족한 규모이거늘.

소백한은 그녀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물음을 던졌다.


“정말로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하늘이 우리 유나라를 돕고 있다. 천시가 따르고 명분까지 갖췄으니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


“멀리 갈 것도 없이 왕위에 등극하는 것부터 큰 난관을 앞두고 있잖습니까? 어찌하여 그리도 큰 꿈을 백성들에게 짊어지게 하려는 건지 모르겠군요.”


“그거야 네가 도와주면 되는 일 아니냐?”


“......”


소백한은 공주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보통 인물은 아니군.’


일부러 반응을 끌어내기 위함인가?

아니면 기어이 나를 포섭하려는 건가?


어떤 이유에서든 이런 말을 당당하게 내뱉는 공주는 온 천하를 뒤져봐도 그녀밖에 없을 것 같았다.

소백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게 보였는지 공주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어찌 되었든 연경에 온 걸 환영한다. 여행길이 순탄치 않았을 텐데. 좀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


- 대화는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하지. 그때까지 앞으로의 행보를 차분히 생각해보도록.


‘허.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겠다?’


소백한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면서도 찝찝함을 이기지 못하고 복잡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다 옆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한원일과 시선이 마주쳤다.

“한 노야. 안내하시죠.”


“응? 갑자기 뭘?”


난데없이 날아든 말에 한원일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에 소백한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아니, 머나먼 타지에서 손님이 왔는데 대접이 이게 뭡니까? 어서 주변 소개나 해주십쇼. 맛집이나 관광명소면 더 좋고.”


“......”


어째서인지 공주와 소백한이 매우 닮아 보이는 한원일이었다.



2.


연경은 바다와 맞닿아 있어 해산물이 풍부했다.

생선구이와 찌개 전문점에서 푸짐하게 먹어 치운 소백한은 불룩 솟아오른 배를 탕탕 두드렸다.


“끄윽. 잘 먹었다.”


하지만 한원일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염병할. 대체 얼마나 처먹은 건지.’


당연하게도 모든 경비를 대야 했던 그는 지갑 사정을 떠올리고 급격히 우울해졌다.


‘퇴직금이 언제쯤 나오더라. 공주님께 얘기를 해봐야 하나?’


그 사이 소백한은 소화도 시킬 겸 옆에 있는 산에 올라갔다.

그러자 연경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야. 이거 보통이 아닌데?”


공주의 거점이라 할 수 있는 연경은 그녀의 입맛대로 철저히 개조되어 있었다.

혹여나 사고라도 칠까 싶어 황급히 따라온 한원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헉헉. 뭘 그리 보고 있나?”


“아. 시가전이 벌어지면 꽤 볼만 할 것 같아서요.”


성냥갑처럼 우뚝 솟은 건물들.

미로처럼 굽이굽이 쳐진 골목길.

그러면서도 곳곳에 박혀있는 요새와 연경 주변을 빙 두르는 참호까지.

겨우 이십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렇게까지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국방력에 정말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곳엔 전략 병기가 얼마나 있습니까?”


이 시대의 전략 병기는 크게 무인과 상고시대의 유물, 이렇게 두 가지가 나뉘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신으로 대도시 하나 이상을 궤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였다.


당장 호소여 정도만 되어도 일반 병사 무리에 뛰어들면 일당백의 무력을 뽐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술 병기, 더 나아가 전략 병기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존재 자체가 사기가 되어야 했다.


“공주님 본인부터가 무방 서열 사위의 강자일세. 하지만 전략 병기급 무인은 아쉽게도 셋밖에 보유하지 못했지.”


“시간이 제법 지났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그대로라고요?”


“그래. 유나라에 무슨 대단한 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만 해도 선방한 게지.”


“음.”


소백한은 기억을 더듬어 유나라 무방 명단을 떠올려 보았다.


서열 삼 위이자 유나라 왕가의 무공을 계승한, 신요화.

서열 이 위이자 국경의 수호자, 공릉후 유영.

그리고 서열 일 위이자 유나라 무림의 지존, 태정문 문주 안태명까지.


이들은 삼십 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유나라 무방 서열의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전략 병기들이었다.


‘이 중에서 공주가 포섭한 자는 몇이나 되지?’


소백한이 의문을 품은 것과 동시에 그의 뒤편에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그는 진득한 살기가 느껴지는 바람에 제자리에서 입만 나불댈 수밖에 없었다.


“이거 대단하신 분이 납셨군요. 공주님께서 보내셨습니까?”


“......”


‘후우. 죽이지 않을 걸 알고 있는데도 무섭네.’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소백한이 긴장감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여인의 가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정계에 진출할 거라면 왕세자보다는 우리가 더 나을 것이다.”


그 말에 소백한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하.’


대중들에게 흥행몰이한 깜짝 인사를 등용하는 것은 전생이든 여기든 다 똑같나 보다.


‘이거 몸값이 너무 많이 올라도 곤란한데.’


어쩌면 대천제국은 소백한을 이용해 유나라 정계를 쥐고 흔들 생각일지도 몰랐다.

선수금치곤 과한 홍보를 해준 것만 봐도 충분히 의심해볼 만했다.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정계에 입문할 생각이 없습니다.”


“공주님이 그리도 매력이 없단 말이냐?”


“크흠. 다른 쪽이라면 모를까. 아직은......”


소백한이 장난을 치자마자 섬뜩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스릉,


“선을 넘는 것도 적당히 하는 게 신상에 좋을 것이다.”


서늘한 금속의 느낌에 진득한 살기가 엉겨 붙으니 당장이라도 목이 베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위협에도 소백한은 절대로 굴하지 않았다.

아니, 누르면 누를수록 더 튀어 오르려는 용수철처럼 반발심이 절로 솟구쳤다.


‘황제는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으니. 만민의 꾸짖음만이 벌할 수 있도다.’


파앙!


“.....!”


진기를 끌어올려 넓게 퍼트리니 강한 기파가 몰아치며 검을 튕겨내 버렸다.

그러곤 저 멀리 보이는 숲 사이를 노려보았다.


“공주님.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3.


“고, 공주님!”


어느새 한원일의 곁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화 정도면 네 맞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떻더냐?”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과연 공주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딱히 숨길 이유는 없었으나 소백한은 습관적으로 발을 뺐다.


“저는 무림인도 아닌 무명소졸에 불과합니다. 어찌 무방 서열 삼 위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지금은 그렇게 해두기로 하지.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리면 흥미가 식는 법이니.”


“......”


마치 연애 초기 밀당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에 소백한의 표정이 싸해졌다.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은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번에 너는 내 꿈을 물었더랬지. 그리고 요 며칠 동안 내가 연경에 무엇을 준비해두었는지 대강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제 가감 없이 말해 보거라. 내 꿈이 마냥 허황한 것이냐? 아니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느냐?”


공주의 말에는 진심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소백한은 오히려 쓴웃음을 지었다.


“저 같은 외인에게 답을 구하려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답답하셨나 봅니다.”


“하하. 들켰구나.”


시대의 흐름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가다 쓴맛을 본 천재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들까지 포함한다면 더더욱.


소백한은 아예 여기서 모든 말을 다 쏟아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작금의 유나라는 홀로 살아남는 게 불가능합니다. 당장 일월신교 동방교구만 나서더라도 시간을 끄는 것밖엔 못 할 테니까요.”


“그래서?”

“이왕 대천의 손을 잡은 거, 좀 더 확실하게 노선을 정하십시오.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유일한 살길일 테니까요.”


잠자코 듣고 있던 공주는 한층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 사실 내게는 상고시대 유적에 대한 정보가 몇 가지 있다. 그것만 온전하게 손에 넣는다면 유나라도 여느 강국 못지않게 전략 병기를 배치할 수 있겠지.”


“한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인 겁니까?”


“그곳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라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 같은 인재들이 든든하게 버텨준다면야 걱정하지 않고 살펴볼 수 있겠지.”


두근.


순간 소백한은 심장이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성에 대한 호감도, 권력에 대한 욕망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자립하여 외세의 간섭을 막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

그건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기만 하던 소백한의 전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한 일면이었다.


‘내가 미쳤지. 믿음을 줬다가 상처만 입은 세월이 얼만데.’


누구에게나 초심은 있다.

하지만 그걸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과도 같은 그것은 손에 잡힐 듯 햇살처럼 내려앉으나 결국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스러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상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그러나 가까워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이정표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 역할을 마냥 부정할 수만은 없다. 어찌 되었든 현실을 직시해야 하니.’


소백한은 공주와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군주의 덕목 중 하나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고들 하지요. 하나 군주는 단순히 알아보기만 해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공주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어떻게 쓸지 알려달라는 것이냐?”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소백한의 목소리에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단호함과 결연함이 깃들어있었다.


“여기 한 명의 천재가 있습니다.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믿음을 주지 않죠. 공주님이라면 이런 인물을 어찌 다루겠습니까?”


언뜻 자아도취에 빠진 것처럼 들렸으나 공주는 의외로 진지하게 받았다.


“내가 식견이 넓은 건 아니지만 너 같은 부류에 대해서는 좀 알지.”


“호오. 말씀해보시지요.”


“그에 대한 답은......”


공주는 갑자기 나뭇가지를 꺾으며 소백한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죽기 직전까지 패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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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4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1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2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9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2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3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60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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