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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92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2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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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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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009. 돌이킬 수 없는(1)

DUMMY

1.


계곡 안으로 들어가니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소백한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설마 벌써 손을 쓰진 않았겠지? 되도록 별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얻어맞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먼저 나서서 싹을 잘라버리는 게 훨씬 더 속 시원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가슴 한구석에 켕겨왔던 불편함이 조금씩 스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참으로 끔찍했다.


“공주님! 조심하십시오.”


“하아. 짐작은 했지만 정말로 이리될 줄이야.”


계곡 초입에는 산속에서 밭을 매며 살아가던 화전민들이 무언가에 취하기라도 하듯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소백한은 문득 생각이 나 유화에게 물음을 던졌다.


“천마가 금제를 걸 수 있는 조건이 대체 뭡니까? 직접 왔다 갔을 리는 없을 테고. 이토록 많은 유나라의 신민들을 어떻게 홀렸단 말입니까?”


“음. 그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한데,”


유화는 조속한 대처와 제대로 된 상황 파악,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대개 천마가 직접 금제를 거는 것처럼 와전되긴 했으나 그 정체는 바로 ‘섭종(攝從) 대원만’라는 상고시대의 사술이다.”


“.....!”


소백한은 섭종 대원만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단어의 뜻만 헤아려보더라도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당기고 버틴다는 의미의 섭과 따르게 만든다는 의미의 종이라. 그런 수행을 대원만이라는 궁극의 경지까지 도달하기 위한 술법이라고?’


지금이야 눈에 보이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무공이 주류가 되었으나 상고시대에는 무형의 것을 다루는 술법이 높은 대우를 받았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마가 발굴해낸 섭종 대원만은 굉장히 등급이 높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소백한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상고시대의 수많은 제국 중 하나인 진령(鎭靈)은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관한 연구를 많이 해왔다고 하지. 천마는 수십 년 전 그곳의 유산을 계승한 게 분명하다.”


“진령! 출처가 그곳이라면 절대 범상치는 않겠군요.”


대유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다섯 제국을 꼽을 때 항상 순위 안에 들어가던 곳이 바로 진령이었다.

그 이상의 자료는 오직 유적을 발굴한 이만 알고 있겠으나 한 번씩 세상에 출현할 때마다 큰 파란을 일으켰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유화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천마는 그걸 일반인도 익힐 수 있도록 무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하들도 일정 수준까지는 금제를 거는 게 가능하지. 물론 여전히 특수한 자질이 필요한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하아.”


이건 신, 성자, 대자연 같은 초월적 존재의 힘을 인간이 다룰 수 있도록 해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 사실에 소백한은 경악과 더불어 의문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천마가 노리는 게 뭘까?’


그들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천무, 혹은 황가와 왕가들을 물리치고 동방 대륙을 집어삼키는 게 목적일까?

아니면 단순히 더 강해지고 싶은 욕심?


‘어쩌면 천무를 손에 넣어 양극단에 있는 힘을 하나로 합치려고 들지도 모르지.’


양극단이 돌고 돌아 다시 하나로 이어진다는 원리는 이미 많은 곳에서 증명된, 제법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해야지.

미지의 힘에 대한 분석도 다 끝나지 않았을 텐데 벌써부터 대척점과 융합까지 고려한다는 것은 조금 지나친 얘기였다.


“끙.”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머리통 안에 들어있는 뇌가 익어버릴 것처럼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에 유화는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혼자서 애쓰지 마라. 어차피 당장 답을 내릴 순 없는 문제 아니냐?”


“공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진짜 문제는 왕세자죠.”


“음. 너는 정말로 내 오라버니가 그런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는 게냐?”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아무리 구시대적인 왕정 체제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성들에게 밉보이면 오래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의지를 억지로 꺾어버린 채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은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한둘이면 모를까. 그 수가 기천을 넘어서니...... 정말 답도 없구나.’


소백한은 멍하니 넋을 잃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게 정말로 왕세자 측에서 힘을 보태주거나 직접 손을 쓴 결과라면 유나라는 유례없는 재앙을 맞이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새끼가 이런데도 단일화니 뭐니 약을 팔고 다녀?’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가치들을 무참히 짓밟고 다니는 인간 말종.

그게 소백한이 왕세자에게 내린 판단이었다.


그때 신요화가 울분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이들을 구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보십쇼. 금제가 가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내가 직접 살펴보마.”


유화는 한 여인의 얼굴을 붙잡고 이곳저곳을 면밀하게 살폈다.

감길 듯 말 듯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을 젖히고 정면으로 시선을 쏘아 보내자 조금씩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군. 소백한? 네 생각은 어떠냐?”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대한 천무의 기운을 억누른 소백한은 공주와 같이 눈꺼풀을 젖혀 다른 사람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화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이대로 몇 분만 더 있으면 당장이라도 정신을 차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이쿠. 큰일 날 뻔했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소백한은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 사람들은 금제가 깃들긴 했으나 아직 완벽하게 자리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 서둘러 일월신교 놈들을 처단해야겠습니다.”


“좋다. 이제는 정말 싸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겠구나.”


유화는 결연한 표정으로 계곡 안을 노려보았다.

진정으로 왕세자가 그런 일을 벌였다면 왕가의 일원으로 그 책임 역시 짊어져야 했다.


‘부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만은 피할 수 있기를.’


유화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간절히 기도했다.



2.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무한정 고통받게 되면 희망과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월신교가 만들어낸 인해장벽은 대충 지옥이라 불러도 그럭저럭 말이 통하는 곳이었다.


‘이런 젠장.’


끝도 없이 밀려드는 공세에 소백한은 마치 좀비에 둘러싸인 것만 같아 골이 아파졌다.


“여기서부터는 각개전투다. 어느 한쪽이 위험하면 곧바로 지원을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싸워라!”


“알겠습니다.”


“꼭 와주셔야 합니다!”


소백한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노획한 검을 양손으로 휘둘렀다.


촤악!


소백한의 검술은 조잡하고 엉성했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도 남을 만큼의 기세가 형체를 갖추고 쏘아지니 사방을 난도질하기에 충분했다.


“크악!”


“괴, 괴물!”


‘괴물은 마인 녀석들이고. 어디 저게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소백한은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마인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한둘이면 모를까, 워낙 숫자가 많은 탓인지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공격을 조금씩 허용하고 말았다.

게다가 공격수단도 점점 특이하고 괴이하게 변하고 있었다.


“흐흐흐. 이 몸의 체액은 어떤 독보다도 지독하지. 과연 네가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어떤 마인 하나는 길쭉하게 뽑아낸 혀에서 끔찍한 악취가 나는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더러운 새끼. 그러고도 네가 무인이라 할 수 있느냐?”


“이게 어때서? 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바로 마도(魔道)이거늘!”


마기는 무의식을 오염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얼룩덜룩 물들어버린 정신과 마음은 기이하리만큼 강력한 기세를 다룰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기의 유형화라는 거대한 고비를 넘은 자만이 진정한 마인이 될 수 있지.’


만약 소백한이 익힌 불멸존생이 마기와 환각, 환영, 공포 따위에 거의 면역에 가까울 정도로 상성이 좋지 않았더라면.

마인을 처치하기는커녕 진즉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는데. 그냥 이대로 튀어버려?’


공주 일행과 자꾸 같이 행동하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이 제한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운신의 폭이 좁고 매 순간 눈치를 봐야 하니 발생하는 문제였다.


‘아. 그냥 이민 가버릴까.’


맥 빠지는 소리였으나 소백한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달려들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그래서 해내야만 한다면.

당당하고 활기차게 나아가는 편이 훨씬 더 나았으니까.


“죽어!”


“케엑!”


소백한의 검과 주먹은 어느새 물리력의 화신이 되어 사방에 무인들로 이루어진 피떡을 만들어냈다.

이건 지독하리만큼 잔인한 광경이었으나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잔인한!”


“네놈들이 더 잔인하다, 새꺄!”


그야 그런 말을 내뱉은 놈부터 먼저 조져버렸으니까.

어느새 대여섯쯤 되는 마인들을 물리친 소백한은 유화가 분전하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공주님!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음. 본대의 흔적으로 보이는 깃발을 발견했다. 철갑귀마대, 혹은 칠성추살대 정도로 추측해볼 수 있겠군.”


“허!”


일월신교는 본대가 향하는 자리에 일부로 표식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대놓고 부대 명칭을 밝히면서 지레 겁을 먹게 하는데 이번에는 이조차도 혼선을 유도했나 보다.


소백한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님. 저희만으로 철갑귀마대나 칠성추살대 본대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부대 하나 단위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부대주급 이상이 끼어있으면 불가하다.”


촌 동네, 변방 국가 무방 서열 최상위권 따위는 이들 앞에서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다.

그나마 유나라는 생각 이상의 저력을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전문적으로 훈련된 마인들의 군세를 감당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 이대로 멈추는 게 맞는 건가?’


그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미 호랑이굴에 들어왔는데 지금 와서 뒷걸음질을 친다면 이미 표적으로 찍힌 뒤일 테니까.


‘그러면 매일매일을 불안 속에서 보내야한다는 거잖아.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평온하기 그지없는 삶.

그것을 위해서 이 멀고도 험한 길을 걷고자 결심한 게 아니던가.


소백한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천마의 금제를 역으로 이용해서 우리 편으로 만드는 겁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유화는 소백한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에 소백한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유나라 왕가의 무공을 제게도 조금만 알려주십시오. 그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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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4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8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7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1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2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9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2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3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7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60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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