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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78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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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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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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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1쪽

005. 군주의 자질(2)

DUMMY

4.


공주는 확실히 고수였다.

평범한 나뭇가지에 기를 불어넣었을 뿐인데도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갈라버렸으니까.


소백한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면서도 상대의 수준을 가늠했다.


‘최소 절정 초기!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그때 호소여가 창을 뽑아 들었다.


“이건 좀 너무하군.”


“가만 있어라!”


호소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으나 신요화의 방해로 저지되고 말았다.

그에 공주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러나 묘하게 날이 서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은 무림인인가? 죽이려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검에 살기를 담았던데.”


“실전이 아니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 나는 내 수하들이 어떠한 순간에도 의지가 꺾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에 호소여는 두 눈을 번뜩였다.


“모든 게 당신의 마음처럼 되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역겹군.”


애당초 호소여는 왕족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여기에 호위 대상인 소백한까지 위협을 당했으니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는 것보다 신요화가 끼어드는 게 먼저였다.


“이놈! 감히 공주님께 무슨 무례란 말이냐!”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는 것이 유나라 왕실의 법도인가?”


“정 원한다면 수준에 맞춰주겠다. 덤빌 테냐?”


“한 수 가르침을 받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광경에 소백한은 어이가 없었다.


‘야, 새꺄! 어디 가냐!’


아무래도 그는 소백한을 위해서라기보다 단순히 시비를 걸고 싶은 듯했다.


그렇게 호소여가 신요화를 따라 사라진 사이.

홀로 남겨진 소백한은 공주가 겨눈 나뭇가지를 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공주마마. 고정하시옵소서.”

“갑자기 웬 존칭이냐? 이전처럼 편하게 하거라.”


‘칼 들고 쫓아오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낱 나뭇가지에 불과했으나 그것은 진짜 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공주는 성큼성큼 걸으며 시시각각 거리를 좁혀왔다.


“너는 똑똑한 놈이다. 내가 본 그 누구보다도 머리가 잘 돌아가지.”


“그러면 말로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소백한의 절규에 공주가 말했다.


“하지만 마음가짐이 썩어빠졌지. 언제까지 현실에서 도망치기만 할 생각이냐? 너 같은 놈은 흠씬 두들겨 맞아봐야 겨우 정신을 차릴 것이다!”


공주의 호통에는 뼈가 있었다.

더구나 무협지 속 주인공처럼 압도적인 기세까지 뿜어내니 평범한 이들은 절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을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저렇게 새하얀 도화지 같은 사람이 어쩌다가 얼룩덜룩하게 변하는지 말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알아?’라거나, ‘네가 대체 뭔데?’처럼 흔해 빠진 대사를 꺼내진 않았다.

대신 소백한은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하하. 잿더미도 불씨를 품고 있기는 하지요.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다 산 노인네처럼 말하는구나. 네 나이대에는 패기와 열정으로 살아야지!”


“아니, 그건 너무 편견이 심한 거 아닙니까? 자기가 그렇다고 남들까지 그러리란 법이 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이제 보니 공주는 젊은 꼰대였나 보다.

서른도 안 되어 보이는 그녀한테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청풍은 절로 오기가 치솟았다.


‘때리고 패면서 길들일 생각이라면 명백한 오산이다.’


적어도 소백한 자신에게는 그런 게 먹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앞으론 이런 수를 쓰지 않을 테니까.


“으아아아!”


그동안 계속 뒷걸음질만 치던 소백한은 돌연 고함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단전에서 신묘한 내력이 솟구치더니 공주의 나뭇가지를 거칠게 뒤로 밀어냈다.


‘불멸회천장(不滅回天掌)!’


이전에는 구결을 떠올리며 내용을 음미할 여유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급박한 실전 속에서는 몸 깊숙이 배어있는 동작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다 보니 입문 체조를 넘어 대충 머릿속에 각인시켜놓은 무공 초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광경에 공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특이한 무공을 익혔구나.”


‘감탄을 할 거면 최소한 물러서기라도 하라고!’


과연 무방 서열 4위의 실력은 대단했다.

공주는 느릿하게, 하지만 착실하게 공격의 수준을 높여나갔다.

무공을 익힌 지 겨우 한 달이 넘어가는 소백한으로서는 가볍게 휘두르는 한 수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그나마 무협지와 인터넷을 수시로 뒤적거렸던 가락으로 상대하고 있긴 한데.’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약빨이 떨어지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결국 무아지경이 답인가?’


소백한은 눈을 감고 자신이 위태롭다는 사실마저 잊으며 오직 천무를 펼치는 데에만 몰입해나갔다.

그러자 그의 몸짓은 어느새 춤사위가 되어 사방에 기이한 파장을 퍼뜨렸다.

멀찍이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한원일은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두려운 기세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대체 무슨 힘이란 말인가.’



5.


“허억. 허억.”


소백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그 모습에 공주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놀랍구나.”


소백한은 천재를 다루는 법을 물었고, 공주는 목숨의 위협으로 답했다.

그리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소백한은 어떠한 벽을 돌파했다.


“네가 원한 대답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구나. 하지만 내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어쨌거나 정답은 정답이었지 않느냐?”


“하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줄이야.

예전이었다면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곧바로 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소백한은 그녀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무식하게라도 달려드는 것에 동질감마저 느꼈다.

어쩌면 두 사람 다 ‘군주’라는 자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지망생이란 위치라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까짓거 해보죠.”


“그 말은......”


“대유제국의 옛 영토를 수복하는 것을 넘어 동방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 두 사람이 살아있을 때 말이죠.”


소백한의 폭탄 발언에 한원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미친! 공주님을 설득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판을 키우다니.’


하지만 공주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정말 가능하겠느냐? 그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닐 수 있는 길이 존재하냐는 것이다.”


“확률은 낮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어차피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뭐라도 해야죠.”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을까.

공주는 품에서 작은 양피지를 꺼냈다.


“이게 내가 말했던 상고시대 유적에 대한 정보다.”


소백한은 그것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장보도!’


은퇴는 했다지만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매진해온 경험과 본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소백한은 저도 모르게 욕심이 샘솟는 것을 느끼고는 미간을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공주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그렸다.


“역시 보물 앞에선 누구나 똑같은 모양이구나. 한번 살펴보거라.”


“그래도 되겠습니까?”


소백한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장보도를 받아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용을 살피니 처음부터 숨이 턱 막혀왔다.


- 천 개의 돌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여. 왕의 유산이 잠들어있는 곳에 길이 있도다......


‘이건...... 천무를 뜻하는 건가?’


문체도 비슷하거니와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 역시 불멸존생을 얻었을 때와 상당 부분 비슷했다.


‘어쩌면 또 다른 천무와 연관되어있을지 모른다.’


이왕 불멸존생을 얻은 거 아예 끝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은퇴 후에 소일거리 삼아 하는 게 최선일 테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소백한은 내색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최대한 빨리 출발하기로 하죠. 그리고 겸사겸사 일월신교 나부랭이들도 혼내주면 좋고요.”


“아주 좋구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


어떻게 하다 보니 코가 꿰인 것 같았으나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이용할 것들은 다 이용해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 잠깐만 참자. 여기서 공주를 생환시키고 왕위에 올려놓으면 내 임무는 끝나는 거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나라를 새로 세운 창업 군주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 업적일 테니.

소백한은 자신의 역할을 딱 그 정도로 제한했다.


‘그래야 빠져나올 때도 한결 수월할 테니까.’


아직까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은퇴 후 편안한 여생에 대한 미련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소백한은 문득 누군가의 빈 자리를 느끼고 물었다.


“호 대협은 어디로 갔습니까?”


“호위라고 했던가? 보아하니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 보이더구나. 요화가 철저히 단련시켜줄 터이니 너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말에 소백한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 이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사실 호소여는 자발적으로 따라나섰을 뿐 호위도 뭣도 아니었다.

하지만 소백한은 굳이 해명하지 않았다.


‘흐흐. 너도 한번 당해봐라.’


소백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주는 한결 후련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만입니다.”


“그거야 나중에 얘기해보자고. 해야할 일이 태산 같으니.”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살아지도록 설계가 됐다.

자기 주관이라는 게 없으면 인간은 그저 누군가의 노예로 전락할 따름이니.


하지만 어느새 소백한의 무의식 속에서는 공주의 말이 휘돌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개화할 것인지는 그 스스로도 지켜봐야 할 문제였다.


공주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렸다.


“나흘 뒤 내 저택으로 찾아와라. 필요한 게 있으면 알아서 청구하고.”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도 고용주랍시고 공손히 고개를 숙인 소백한은 뒤따라 사라지려던 누군가의 옷깃을 붙잡았다.

“한 노야?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얼른 이 자리를 떠나고 싶었던 한원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뭐, 뭣 때문에 그러나?”


“경비처리 된다잖아요. 그러니까 놀고먹고 화끈하게 보내야죠.”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하면 될 일 아닌가. 나는 어서 집에 돌아가 쉬고 싶네.”


“당장 돈은 누가 내고요. 설마 그 정도 상식도 없는 겁니까?”


“......”


나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일지 모른다는, 아니 실은 자신의 주머니가 탈탈 털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원일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우선이었다.

대체 불가능하며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이에게는 세금이나 개인의 사유재산조차 ‘한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마련이었기에.


“천천히 좀 가게. 내 몸이 옛날 같지 않으이.”


“멀쩡한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얼른 와요. 안 그러면 폭주합니다?”


소백한의 경고에 질겁한 한원일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산에서 내려와 연경의 도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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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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