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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77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09 02:42
조회
119
추천
6
글자
11쪽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DUMMY

4.


“......”


소백한의 손속은 잔뼈 굵은 무림인, 호소여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잔혹했다.

곁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한원일은 그로 인한 결과물까지 마주하자 맥이 쭉 풀려버렸다.


“후우. 그나마 한 명은 깨어있는 것 같네.”


“그래요? 딱 알맞은 숫자네.”


간신히 쥐어 짜낸 말에 소백한은 마차를 세우고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온통 피투성이로 물든 세 사람이 걸레짝이 된 채 매달려 있었다.


‘역시 이 정도론 절대 안 죽는다니깐. 요즘 무림인들이 얼마나 튼튼한데.’


처음에는 다섯 명이었으나 말이 힘들어하길래 그 즉시 두 명을 죽여버렸다.

지금 와서 보니 부상이 심각했던 두 명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아마도 남은 하나는 엉망진창이 된 채 속으로 쌍욕을 퍼붓고 있으리라.


‘슬슬 시작해볼까. 이 정도면 기가 좀 꺾였겠지?’


한적한 숲속.

풀밭에 쪼그려 앉은 소백한은 품속에서 쇠꼬챙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틈틈이 해부하며 배워놓은 경험으로 혈도를 푹 찔렀다.


“끄아아악!”


“어때? 정신이 번쩍 들지? 좋게 말할 때 얘기해라.”


과연 일월신교의 무인인가.

시뻘건 눈을 뜬 복면인은 대답 대신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퉷!”


쪼그려 앉은 채로 몸을 날린 소백한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쭈. 이걸 어쩌나. 내가 주는 고통은 매번 새로운 맛일 텐데.”


사람은 고통에 절대로 익숙해지지 못한다.

단지 고통을 느끼는 신체가 망가지고 닳아지다 죽어버릴 뿐이니.

그 완급조절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고문 기술자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척도였다.


‘그리고 나는 이 방면에선 전문가라 할 수 있지.’


하지만 상대는 생각보다 잘 버텼다.

조금 지루해진 소백한은 피와 땀에 절어있는 복면을 벗겨버렸다.


‘이런 미친.’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앳된 얼굴은 이곳저곳이 쓸리고 함몰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소백한은 그의 눈에 어려 있는 눈물을 보고 그제야 진실을 알아챘다.


‘끙. 천마란 새끼도 제정신은 아니군.’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엄마 젖이 그리운 애송이를 가져다가 금제를 걸어놓고 무작정 돌격시키다니.


소백한은 피가 엉겨 붙어 있는 꼬챙이를 치우고 대신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곤 열심히 입문 체조를 펼쳤다.


“허이짜, 허이짜!”


그와 동시에 눈을 감고 기감을 펼치니 사방엔 오직 두 사람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집도를 시작한다.’


천마의 금제는 청년의 정수리를 꿰뚫고 나선 모양으로 박혀있었다.

사람 형상을 한 정신체는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고통만 더해질 뿐이었다.


‘이걸 뽑아내야 하는 건가.’


이는 독을 밴 복어를 손질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어찌나 정신을 집중했는지 소백한의 이마에선 땀이 구슬처럼 맺히며 떨어졌다.


‘삿된 마음으로 눈먼 이여, 내게로 오라.’


구결을 외우자 이제는 한결 자연스럽게 초식이 펼쳐졌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호소여는 그 모습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늘 무덤덤해 보이던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이토록 정교하게 기를 통제하다니. 무서울 정도로 대단한 재능이군.”


“저게 그렇게 엄청난 건가?”


한원일 같은 일반인의 눈에는 사람 반 죽여놓은 다음 숫제 제사라도 지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호소여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음.”


‘너까지 날 무시하는 거냐!’


한원일이 또다시 수모를 참아내는 사이.

어느새 초식을 전부 마무리한 소백한은 소매로 땀을 닦아냈다.


“후우. 야. 이제 말 좀 해봐라.”


광기가 걷히고 정신이 바로 잡히니 청년의 눈빛이 한층 살아났다.

물론 꼴에 무림인이랍시고 목소리를 높이는 건 여전했지만.


“크흐. 대체 뭘 말하라는 것이냐!”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이 머나먼 변방까지 쳐들어온 이유 말이다.”


소백한은 상대의 혈도를 짚으며 잔뜩 흥분한 몸뚱이를 가라앉혔다.

여기에 불멸존생의 기운까지 흘러 들어가자 잔뜩 움츠러들었던 정신이 조금씩 소생할 기미를 보였다.


“우린...... 그저 신물을 찾으러 왔을 뿐이다.”


“신물?”


“그래. 상고시대 대유제국이 남긴 신물 말이다.”


그 말에 소백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갑자기 대유제국이라니? 상고시대 국가들은 자료도 얼마 없는데.’


먼 옛날 이 세계의 모든 대지가 하나로 합쳐져 있었을 때.

지금의 유나라와는 다른 의미의 대유제국이 세상의 절반을 지배했다.

소백한이 알고 있는 거라곤 고작 이것뿐이었다.


‘한창 성세를 누리다가 주변 국가들의 합공으로 멸망했다고 하던가.’


그래서 정신적 계승자를 자처한 유나라의 심양은 그 당시를 상상으로 꾸며낸 각종 설화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소백한은 흥미가 동한 것처럼 일부러 물음을 던졌다.


“재밌군. 그런 거라면 나도 관심 있는데.”


“흐으. 이미 늦었다. 하귀(遐鬼)님께서 이르시길 이미 누군가 무덤을 열고 도망쳤다고 했다.”


‘개새끼들. 생각보다 일이 꼬여버렸는데.’


소백한은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했다.

그나마 천마가 직접 강림한 건 아니라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잠시 절망이 내려앉았으나 회복은 빨랐다.

꺾으려 해서 꺾이던 인생은 이미 저 멀리 떠나보낸 뒤였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누가 뭐래도 물건을 먹은 건 나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놓쳤다는 거잖아?’


이미 벌어진 일을 탓해봤자 무엇하리오.

소백한은 침착하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한다는 짓거리가 무덤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거냐? 전에 보니까 완전히 씨를 말리려고 들더만.”


“그, 그건......”


주저하는 기미가 보이자 소백한은 내력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심령이 온전히 제압되었는지 한결 편안한 목소리로 답했다.


“우리가 신물을 찾고 있다는 건 본래 아무도 알아선 안 되는 일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낌새를 눈치챈다면 전부 죽이는 수밖에.”


“그렇다면 설마......”


“그래. 하필 공주의 특명을 받았다는 관리가 유적지 근처를 지나치는 바람에 아주 난리가 났다. 하귀님께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유나라 전체를 몰살시킬 계획을 짜고 계시다.”


“허.”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백한은 이득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숱하게 봐왔다.


“...... 일월신교가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대체 궁극적인 목표가 뭐길래?”


“세계대전의 발발. 대천과 대안, 두 제국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일단 작은 곳에서 분란을 만들어야 하니......”


청년은 기력이 떨어졌는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떨궈버렸다.

소백한은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 씹. 이거 진짜 큰일 났는데?’


기껏 해봐야 나라가 조금 시끄럽다가 말 것으로 생각했건만 이런 비화가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잠시 눈을 감은 소백한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림을 그려보았다.


‘유나라가 화마에 휩싸이면 주변에서 온갖 명목으로 군대를 보내올 것이다. 그리고 대천과 대안 두 제국이 서로 맞붙기라도 한다면...... 바로 세계대전이 터지겠지.’


그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끝은 당연하게도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었다.


‘하. 안 되는데. 이러다 진짜 세상이 뒤집히는 거 아냐? ’


소백한은 평등을 바라지 않았다.

적당한 불평등 속에서 그 혼자만은 잘 먹고 잘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도 생태계가 유지되었을 때 이야기지.’


당장 지구가 망하기라도 하면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그리고 소백한은 이 상황을 그에 버금가는 엄중한 사태로 인식했다.


‘바로 대책을 세워야겠어.’


아무래도 은퇴는 조금 미뤄야 할 것 같았다.



5.


“이 사실을 공주님께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희망의 불씨라도 피워볼 수 있을 테니까요.”


청년의 말을 요약하여 일러준 소백한은 대뜸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원일의 반응은 냉담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으실 것 같은가?”


“뭘 그리 걱정합니까? 어떻게든 믿게 만들면 되잖아요. 세상은 항상 진실만으로 돌아가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언제고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네.”


옛 학자들과 성현들의 글귀로 공부해 온 책상물림다운 대답이었다.

하지만 소백한의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다.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산물이죠. 흠 없이 정정당당하게 패배해봤자 누가 알아준답니까?”


“그런 거대세력과 맞붙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 줄 알기나 하나?”


“물론입니다. 설령 모른다고 해도 저들이 유나라의 강산을 유린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겠다는 겁니까?”


“끄응.”


소백한이 늘어놓은 말에 한원일은 일단 의심부터 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당장이라도 유나라를 떠날 것처럼, 그리하여 세속과는 완전히 결별을 선언할 듯한 소백한이었다.

그런데 일월신교 청년 무인과 대화를 나누더니 갑자기 가슴 뜨거운 애국자가 되어버리다니.

뭔가 미심쩍은 마음이 절로 솟구칠 수밖에 없었다.


‘후우.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녀석을 데리고 연경으로 가는 게 맞나?’


수많은 부정적인 말들이 튀어나올 듯했으나 목구멍에 걸려 차마 내뱉지 못했다.

실은 그 자신도 초법적인 횡포를 부려대는 무리들을 화끈하게 쓸어버리고 싶었으니까.


‘적어도 다 늙어빠진 나보다는 낫겠지.’


게다가 소백한을 영입하려던 건 원래 그의 계획이었잖은가.

어쩌면 공주님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저 녀석을 제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결국 한원일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말했다.


“일단 연경에 소식부터 넣어야겠네. 근처 관아로 갈 텐가? 길을 모른다면 내가 일러주도록 하지.”


“거기 가봤자 뭘 하겠습니까? 대국적으로 하려면 신문사에 가야지요.”


그 말에 한원일의 얼굴이 또다시 창백해졌다.


“뭐, 뭣이? 거긴 대천제국의 대사관이나 다름없지 않나!”


“걱정하지 마십쇼. 외교적인 담판은 아직 때가 이르니까요.”


‘그럼 나중엔 하러 가겠다는 건가? 네가 유나라를 대표하기라도 한다는 게야?’


한원일이 충격을 받아 입만 벙긋거리는 사이.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호소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재밌군. 생각 이상으로 미친놈이었어.”


“하하. 요즘 그런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그거 칭찬 아니라고!’


한원일은 황당함을 넘어 이제는 무서움까지 느꼈다.

소백한의 곁에만 있으면 자꾸만 자신의 상식이 위협받았기 때문이다.


‘요괴도 이런 요괴가 없을 것이다. 정녕 방법이 이것밖에 없단 말인가.’


요괴보다 한술 더 뜨는 놈이니 오히려 난세를 극복할 수 있는 원리인 걸까.

한원일은 부디 소백한의 미친 짓이 유나라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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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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