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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81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18 00:12
조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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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1쪽

007. 출정(1)

DUMMY

1.


연경, 공주의 저택 안.

거대한 대전을 연상케 하는 그곳에서 가장 상석에 자리한 공주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월신교의 무리가 유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려 하니 그리 알라.”


그러자 바쁘신 지방관들을 대신하여 나온 대리인들은 저마다 열띤 논쟁을 시작했다.


“공주마마께서 자리를 비우신다면 연경의 주인은 누구로 칭해야 한단 말입니까?”


“어허. 공주님이 아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뿐이잖은가.”


“만약을 말하는 걸세.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야말로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공주마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길 바란다는 건가!”


겉으로는 양쪽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소백한이 보기에는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개판이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도 공주는 계속해서 제 할 말을 늘어놓았다.


“당분간은 그대들이 5급 문관 한원일을 보좌하여 연경을 잘 이끌어주시게.”


그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한원일은 흠칫 몸을 떨었다.


‘마마? 정말로 제가 여길 지키고 있어야 합니까?’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살려달라는 것처럼 애절하고 절박해 보였다.

소백한이 생각하기에도 공주라는 직접적이고 절대적인 비호 없이 홀로 연경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공주는 그 시선을 애써 외면한 채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좌중에 시선을 던졌다.


잠시간의 침묵 후.

사람들은 다시 이전처럼 쓸데없는 소리나 늘어놓으며 큼직한 대전을 소음으로 가득 메워버렸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후계논쟁은 계속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됩니다. 혹여나 공주께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찌합니까?”


“어허. 부정 타게 왜 그런 소리만 늘어놓는 거요? 속으로 일부러 바라고 있는 건 아니요?”


“이 무슨 망발인가!”


저택 안은 이제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하는 이들로 매우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소백한은 그런 모습에서 오히려 희망을 읽어냈다.


‘그래도 대놓고 반대가 없어서 다행인가?’


이런 연극이 펼쳐진 것도 직접적으로 공주를 막아 세울 명분이 없었기에 벌인 화풀이 정도에 가까웠다.

그 말은 곧 소백한의 경고가 정통으로 맞아떨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물론 졸지에 공주의 대리인으로 낙점 당한 한원일은 참담한 심정이겠지만.


상석에서 내려온 공주는 곧장 소백한에게 다가왔다.


“이제 가지.”


“그간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무얼. 이것도 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일진대.”


그 말에 소백한은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허어. 아직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이런 자세라니.’


사람은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진한 무기력과 더불어 강한 우울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즉, 이곳은 정신병이 걸리기 딱 좋은 환경이란 소리다.


하지만 공주는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극히 초연해 보였다.

소백한은 왠지 그 모습이 쓸쓸하게 느껴져 위로의 말을 건넸다.


“힘들면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후후. 과연 그런 날이 올지 의문이구나.”


공주는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한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소백한은 괜히 마음이 약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흠칫 놀랐다.


‘야. 정신 차려라. 네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남 걱정이야?’


그 사이 공주의 호위이자 무방 서열 3위인 신요화가 마차를 끌고 나타났다.


“오랜만입니다. 호소여 그 양반은 어찌 되었습니까?”


“지옥 훈련 중이니 당분간 찾지 마라.”


‘지옥 훈련?’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단어였으나 소백한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냥 나중에 고생했다고 해주면 되지 뭐. 지금 와서 따지기엔 많이 늦었잖아?’


때로는 그냥 넘어가야 평온한 일이 있는 법이다.

소백한은 부디 호소여가 무사하기만을 바랐다.



2.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사람에게 기대와 활력을 불어넣기 마련이다.


‘여기에 보물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지.’


장보도에 대한 집착은 소백한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이제는 거의 본능의 영역에서 자극받는, 아주 소중한 무언가였다.

단순히 취미나 관심을 넘어 말초적인 쾌락을 직접적으로 꽂아 넣는다고나 할까.


곁에서 소백한을 빤히 바라보던 공주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보물이 좋더냐?”


“물론이지요. 저 같은 서민들의 꿈은 한탕 거하게 챙기고 그 자리를 뜨는 것이니까요.”


“듣자 하니 이미 한 재산 모으고 은퇴할 날만 그리고 있다던데.”


“......”


소백한은 공주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음을 깨닫고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설마 내 신분까지 들킨 건 아니겠지?’


공주의 눈은 심연처럼 깊어서 속마음을 헤아리기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의심을 사기 십상이다.

뭐라도 말을 내뱉어서 주의를 환기해야 했다.


“하하.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떠돌이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똑똑해서 말이야.”


아무리 시대가 좋아졌다고 한들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 데에 제약이 심한 유나라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게 절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설프게 신문만 읽고 떠들어대는 작자들이 판을 치는 거고.


“내게는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우린 이미 한배를 타지 않았느냐?”


소백한은 공주의 말에서 끈적한 거미줄로 만든 올가미가 숨겨져 있다고 느꼈다.


‘이렇게 교활한 녀석이었나?’


단순히 포용력과 용기뿐만 아니라 심계까지 뛰어날 줄이야.

보면 볼수록 색다른 모습이 드러나는 게 나중에 가면 아주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소백한은 적당히 둘러대며 화제를 돌렸다.


“하하. 오래된 물건을 감정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식이 쌓였나 봅니다. 그나저나 장보도에 적힌 글귀가 굉장히 심오하더군요.”


대놓고 알아볼 수 없게 써놨으면 그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암호학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접근 방식으로 진행하면 상당 부분 해결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처럼 추상적이고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는 경우라면 얘기가 많이 달라졌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와 맥락이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때에 따라서는 특정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것들도 존재하지.’


그리고 소백한이 보기에 이번이 딱 그런 상황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떠한 무공 구결, 혹은 깨달음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만. 혹 짐작 가는 게 있으십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공주는 이에 대한 해답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거라면 나도 같은 생각이다. 과거 대유제국의 전승을 조금이나마 이어받은 유나라 왕가의 무공에 비슷한 대목이 있었으니.”


그 말에 소백한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


‘과연 대유제국의 신수는 무엇이었을까.’


번듯한 나라라면 건국 신화를 바탕으로 신수 하나쯤은 걸어두기 마련이다.

하지만 천자의 나라라고 칭하는 제국들은 신수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설마 용인가?’


용에 대한 깨달음?

아니, 그 이전에 이 세상에 용이 정말로 실존하기라도 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득해진 소백한은 공주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걸 노리고 계신 겁니까?”


그에 공주는 흐릿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다 알면서 물어보는 것이냐? 태초의 빛 아래 세계를 머금은 못이 있나니. 그곳에서 피어나는 제왕의 기상은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도다.”


“......!”


그 표현들은 전부 상고시대 유적에서 용이라는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름 수십 년간 수많은 유적들을 발굴해낸 소백한은 단번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공주의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내 추측이긴 하나 이 유적은 대유제국의 수호룡과 관련되어있다. 그리고 아마도 일월신교의 무리가 냄새를 맡고 쳐들어왔겠지. 그런 놈들에게 우리 유나라의 보물을 내어줄 순 없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긴 한데......’


범인은 현장에 나타난다는 말을 깨뜨리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건만.

소백한은 다시 현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살짝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당당하게 행동할 수밖에.


“일단 첫 번째 단서가 있는 심양으로 가야겠군요.”


“음. 그때까지 힘을 비축해두거라.”


마치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듯한 말에 소백한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네가 익힌 무공의 내력을 직접 캐물어야 하겠느냐?”


‘아, 그러면 할 말 없고.’


공주가 천무의 정체를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백한이 천무를 계승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을 확률이 절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거든.’


아무리 상고시대 유적들을 뒤져봐도 천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니 소백한이 발굴해낸 그곳이 매우 특별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단 잠이나 자야겠다.’


더 이상 질문을 받았다가는 밑천까지 털릴 것 같다는 생각에 소백한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3.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신요화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흘러들어왔다.


“공주님. 전방에 수상한 무리가 얼쩡거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공주가 소백한을 바라보았다.


“일월신교의 무리를 어디서 봤다고 그랬지?”


“심양과 상주 일대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곳에 진을 치고 있을 겁니다.”


“심양과 상주라. 저들이 단단히 미치긴 했구나.”


유나라를 사람으로 쳤을 때 두 지역은 심장부와 가까운, 어떻게 보면 목 주변의 경동맥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였다.

그런데 그런 곳을 외부 무장세력이 무단으로 점거하고 통제하는 것도 모자라 민간인들을 학살하기까지 하다니.

이건 공주에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가만히 보고 넘길 순 없겠군.”


그녀는 곧장 검을 빼 들고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공주의 자태는 과연 무시무시했다.


‘와. 죽이긴 하네.’


사실 소백한은 고수를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이들과 마주하기보다는 도망치는 게 일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뺄 순 없지.’


이미 상당 부분이 까발려진 이상 몸을 사리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공주의 뒤를 따라 마차 밖으로 튀어 나간 소백한은 가장 만만해 보이는 놈 하나를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놈! 공주마마의 행차시다. 비키지 않고 뭣들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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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 007. 출정(1) +3 22.11.18 54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100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9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20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6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4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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