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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로 시작하는 정복군주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두천斗天
작품등록일 :
2022.10.30 21:51
최근연재일 :
2022.11.30 06: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2,876
추천수 :
297
글자수 :
130,936

작성
22.11.1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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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DUMMY

1.


“커억......”


더 이상 물어볼 게 없어진 소백한은 꼬챙이로 급소를 찔러 남은 세 사람을 전부 죽여버렸다.


‘괜히 후환을 남기고 싶진 않으니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일월신교라는 거대한 세력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소백한 역시도 철저하게 변해야만 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은퇴 전 마지막 한탕일지도 모르겠어,’


그의 나이 서른다섯.

여기서 몇 년 정도 더 고생하더라도 아직 충분히 젊은 나이였다.

소백한은 진정으로 평온한 노후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고생은 감수할 의사가 있었다.


시체를 대충 파묻은 세 사람은 대천제국의 사자가 있는 신문사를 향해 마차를 몰았다.

근처 마을에서 넉넉하게 식량을 사들인 소백한은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가지.”


“음.”


호소여는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창을 비켜 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천생 무인인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달아 펼쳐졌으나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한원일은 소백한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의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놈이 왜 저러지?’


“뭔가 문제라도 있나?”


“나중에 얘기합시다.”


혹시나 해서 말을 걸어봐도 귀찮다는 듯 손만 내저을 뿐 별다른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소백한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면 다른 의미로 경악했으리라.


‘어디 보자. 내가 예전에 어디까지 봤었더라.’


위키와 커뮤니티에 찌들었던 지난날.

매일같이 소설이나 인터넷으로 허비했던 전생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상만사에 대한 대처방안과 해답을 제시해주는 책사, 열쇠이기도 했다.


‘얼핏 보면 냉전 시대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춘추전국시대나 삼국지 느낌도 좀 나는데.’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던가?

당시에는 별 쓸데도 없는 내용들이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제법 유용한 구석이 많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끙끙거리며 기억을 떠올리던 소백한은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을 마쳤다.


‘유나라 입장에서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이때를 놓치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변방에 있는 약소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온 국민이 국왕이나 그에 버금가는 명분을 지닌 영웅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야 했다.

그래야 쥐꼬리만 한 힘이라도 결집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대업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소백한이 보기에 일월신교의 침입은 굉장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화가 오히려 복이 되었다는 건가.’


대천이냐 대안이냐.

그도 아니면 또 다른 세력을 만들어 틈을 비집고 들어갈 것이냐.

이런 고민은 나중에 가서 해도 충분했다.


‘일단 눈앞의 생존을 위한 초석을 놓는 게 우선이니까. 쓸 수 있는 패는 모조리 가져다 써야 한다.’


소백한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팽팽 돌아갔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호소여와 한원일의 표정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정말로 나라가 심각한 상황인가? 그럼 이건 명호문만의 문제가 아닐 텐데. 설마 징집이라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일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설마 상부에서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이제 슬슬 출발하죠.”


“아, 음.”


그렇게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그 모습은 마치 유나라의 신민들을 한데 모아놓은 듯했다.



2.


유나라는 땅덩이가 좁고 산과 강이 많았다.

그래서 군데군데 나 있는 우회로로 돌아가면 이곳 지리에 해박하지 않은 이상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여기까진 신경 쓰지 못했나 보군.’


만약 연경으로 쭉 나갔다면 포위망에 걸렸을지도 몰랐다.

사고 현장과 유기된 시체들을 보면 어디를 틀어막아야 할지 윤곽이 보였을 테니까.


‘설마 내가 심문에 성공할 줄은 몰랐겠지만.’


과연 상고시대 제왕의 치세를 본떴기 때문인지 아직 제대로 된 무공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효과가 굉장했다.


‘지금이야 허점을 파헤치는 데에 그쳤지만 나중에 가서는 더욱더 수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


생각도 잠시.

어느새 갈양이라는 지역에 도착한 소백한은 가장 먼저 신문사부터 찾았다.


“사주님을 만나러 왔는데. 시간이 괜찮은지 묻고 싶군.”


그러자 어디선가 새하얀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나 세 사람의 면면을 훑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대략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여인은 눈짓으로 소백한과 한원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두 분만 들어오시랍니다.”


그 말에 소백한은 상대의 수준을 대강 가늠해볼 수 있었다.


‘역시 정보가 빠르군.’


고작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신상과 그간의 행적을 파악했다라.

어쩌면 이곳에 찾아오리라고 예상했을 확률도 높았다.


“잠시 마차를 지켜주십시오.”


“음.”


호소여에게 주변의 경계를 맡긴 소백한은 한원일과 함께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역시 하얀 비단옷에 머리카락과 수염까지 전부 허옇게 센 노인이 두 사람을 반겼다.


“장한백이라 하네. 나를 보고자 했다고?”


“몇 가지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대뜸 찾아와 내뱉는 말이 이런 것이라니.

황당해할 법도 하건만 노인은 태연하게 응수했다.


“그래? 그런데 이거 어쩌지. 우리 사이가 그런 얘기를 나눌 만큼 가깝진 않은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 말에 소백한은 이를 살짝 깨물었다.


‘사정을 다 알면서 저런 말을 한다라. 나를 시험하려는 건가.’


유나라와 대천제국과의 관계, 초월세력이라고까지 불리는 일월신교의 횡포, 그리고 그에 관한 해법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자신만의 확고한 견해가 있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소백한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능숙한 정치인처럼 입을 놀렸다.


“그동안 유나라가 동방 대륙의 패권 경쟁에 무심했던 건 맞습니다. 하지만 어찌 소국이 대국들의 행사에 감히 끼어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눈치만 보다가 양쪽에서 득을 보려 했다는 건가?”


“거참 말씀을 섭섭하게 하십니다. 우리 유나라는 변방에서 근근이 무역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역량도 얼마 되지 않고 영향력도 크지 않아 늘 변두리 신세였지요. 그래도 이제부터 기회를 주신다면 얼마든지 부름에 응하겠습니다.”


전국 각지는 물론이거니와 필요하다면 해외 원정까지 다녀야 하는 게 도굴꾼의 일이었다.

여기에 대천제국에서 배포하는 지역신문까지 두루두루 읽어놓은 터라 이런 쪽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한술 더 떠서 그 와중에도 이득을 보고자 약을 치기까지 했다.


‘그 전의 행적이 묘연해서 의문스러웠는데. 역시 아무나 데려온 건 아닌가 보군.’


어쩌면 유나라 왕가 또는 공주 개인적으로 준비한 비밀병기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뭔가 좀 더 알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솟았다.

하지만 그 의도를 알아챈 소백한은 먼저 선수를 쳤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대천제국과 어떠한 앙금도 없습니다.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도움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거짓말이다.

직업 특성상 상대의 말에서 습관적으로 진위를 가려대는 장한백은 단번에 그 말이 거짓임을 알아챘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허술해 보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일부러 의도한 건가.’


어떻게든 감추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오히려 대놓고 알리는 게 더 수준 높은 수법이었다.

게다가 ‘앞으로의 관계’라는 말에 담긴 숨겨진 의미를 헤아려 보면 장진백에게 비수를 겨눈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대화로 인한 결과까지 그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이런 변방 국가에도 저만한 인재가 있을 줄이야.’


장진백은 갑자기 기분이 유쾌해졌다.


“크하하하!”


한바탕 웃음을 쏟아낸 장진백은 돌연 정색했다.


“난놈은 난놈이군. 그래서 우리에게 득이 될 게 뭔가? 좀 더 건설적인 제안을 해보게.”


그러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려버렸다.


“괜히 시간을 끌거나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놓진 말게.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네가 이 방을 나서는 동시에 일월신교와 유나라 왕실에 소식을 알릴 터이니.”


‘내 이럴 줄 알았지.’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말이었다.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상대를 압박하는 것쯤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협상술이었으니까.


‘이쯤에서 패를 꺼내야겠군.’


따라 일어난 소백한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천제국에는 상고시대 유적에서 영감을 얻은 신기한 발명품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안제국에는 제대로 된 수출이 어려웠지요. 제가 알기로는 그곳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 강유 때문이라던데. 물론 명목상 내세우는 이유지만요.”


“그런데?”


“저는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습니다. 아니, 시간과 예산만 충분히 주신다면 그 누구라도 가능합니다.”


“.....!”


소백한 개인은 솔직히 별것 아니었다.

아무리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한들 그래봤자 변방의 이름 없는 책사, 전략가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이면서도 대체 불가능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랐다.

다시 소백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한백은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 너를 대체 뭘 보고 믿어야 하지?


“조만간 자리를 만들어보지요.”


- 공주님, 혹은 국왕 전하와의 자리를 주선해보겠습니다.


소백한은 한원일 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얼떨결에 공주의 증표를 꺼내든 한원일은 날카롭게 훑고 지나가는 시선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앞서 말한 건 잊었나?”


- 이 자리에서 증명을 해줬으면 좋을 텐데.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얘기잖습니까.”


-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죠. 어차피 검증은 그쪽의 몫이니.


짧은 순간이었으나 남들의 두세 배는 될 법한 분량의 말들이 서로 오고 갔다.

그리고 상황의 주도권을 가리는 무게추는 소백한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있었다.


“일단은 사실관계만 배포하겠네. 나도 유나라가 혼란을 빠지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선수금 잘 받았습니다. 나중에 좋은 자리에서 다시 뵙지요.”


그렇게 두 사람, 어쩌면 두 나라일지도 모르는 거래는 위대한 첫발을 내디뎠다.



3.


‘허어. 이럴 수가.’


다시 마차에 올라탄 한원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본래 국왕이나 후계자급 인사를 위한 지원을 이렇게 쉽게 받아낼 줄이야.


게다가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대화는 그의 마음속에 진한 파문을 일으켰다.


‘나는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나라의 녹봉을 수십 년간 받아먹은 데다가 공주의 특명까지 받은 그였다.

그런데 어떻게 일개 쟁자수 하나보다도 역량과 수완이 부족하단 말인가.


‘적어도 정세를 읽는 눈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거늘......’


마치 캄캄한 밤을 헤치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한원일이 이런 물음을 던진 건.


“만약 자네가 왕이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텐가?”


“......?”


나보고 지금 왕이라도 되라는 건가?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 아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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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011. 심양성을 구원하라(1) +1 22.11.30 15 1 11쪽
25 010. 돌파(3) +1 22.11.29 18 1 11쪽
24 010. 돌파(2) +1 22.11.28 26 1 11쪽
23 010. 돌파(1) +2 22.11.26 33 2 11쪽
22 009. 돌이킬 수 없는(3) +3 22.11.25 33 3 11쪽
21 009. 돌이킬 수 없는(2) +2 22.11.24 35 3 11쪽
20 009. 돌이킬 수 없는(1) +2 22.11.23 37 2 11쪽
19 008. 마인들의 습격(2) +2 22.11.22 39 2 11쪽
18 008. 마인들의 습격(1) +2 22.11.21 46 4 11쪽
17 007. 출정(2) +4 22.11.19 52 4 11쪽
16 007. 출정(1) +3 22.11.18 53 5 11쪽
15 006. 여행 준비(3) +3 22.11.17 60 3 11쪽
14 006. 여행 준비(2) +3 22.11.16 71 7 11쪽
13 006. 여행 준비(1) +3 22.11.15 68 5 11쪽
12 005. 군주의 자질(2) +2 22.11.14 99 9 11쪽
11 005. 군주의 자질(1) +2 22.11.12 91 3 12쪽
10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2) +2 22.11.11 91 3 11쪽
» 004. 소문은 백수도 열사로 만든다(1) +2 22.11.10 99 3 11쪽
8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2) +2 22.11.09 119 6 11쪽
7 003. 외적에게 죄를 물으시다(1) +2 22.11.08 131 9 11쪽
6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3) +2 22.11.07 155 7 12쪽
5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2) +2 22.11.05 183 9 11쪽
4 002. 떡잎부터 남다른 선동가(1) +2 22.11.04 232 16 11쪽
3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2) +5 22.11.03 296 43 11쪽
2 001. 신분 세탁의 시작은 짐꾼으로(1) +5 22.11.02 336 51 13쪽
1 000. 서장 - 노후 대비로 큰 거 한탕 했다 +23 22.11.01 459 9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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