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청연(靑燕) 님의 Flying in the sky

상 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퓨전

청연(靑燕)
작품등록일 :
2013.02.07 21:06
최근연재일 :
2013.05.27 20:20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22,870
추천수 :
357
글자수 :
243,989

작성
13.03.28 21:12
조회
570
추천
8
글자
17쪽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1막 접선(接線)

상실(喪失) - 청연(靑燕)

감사합니다.




DUMMY

“ 어? 누구야? 뭐야 너!! “


기훈이 반복되던 주입식 설명을 듣고 있을 때, 어디선가 따지는 듯한 말투의 앙칼진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엉겁결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기훈은 작은 체구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 여자아이는 꼿꼿하게 선 채로 기훈을 쳐다보고 있었고 기훈은 같은 또래의 아이를 보자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 무의식 중에 말 실수를 하고 말았다.


“ 아, 안녕! 나는 양 덕현 이라…… “


- 쫘아악!


기훈은 눈 앞이 번쩍거리는 것을 미처 느낄 새도 없이 거실의 구석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중현의 커다란 손바닥이 기훈의 조그마한 뺨을 향해 휘둘러진 것이었다. 곧바로 중현의 고함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웠다.


“ 내가 말 조심하라고 조금 전에 말했지? “


기훈은 태어나서 처음 맞아보는 뺨이었다. 그리고 뺨이란 것을 떠나서 이렇게 무자비하게 세게 맞아 본적도 처음이었다. 어떻게 중현이라는 작자는 10살짜리 아이의 뺨을 이렇게 무식하게 때릴 수가 있는 것인지……


“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


터진 입술에서 피를 흘리던 기훈은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며 용서를 빌었다. 물론 벌겋게 달아오른 뺨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런 건 둘째 치고 처음 보는 여자아이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자체가 일단은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훈은 여자아이가 서있던 곳을 곁눈질로 슬쩍 쳐다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서있던 여자아이는 이미 어디론가 가 버렸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제서야 퉁퉁 부어 오른 뺨의 고통이 느껴졌는지 기훈은 자신의 뺨을 부여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자 중현의 고함 소리가 마치 기훈을 잡아먹을 기세로 또 한번 집안에 가득히 울렸다.


“ 울어? 이 자식이!! 뚝 안 해? “


울먹이던 기훈은 중현의 기에 눌려 겁을 잔뜩 집어먹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화끈거리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쏙 들어가버렸다.


“ 방에 가서 내가 부를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


중현은 앞으로 기훈이 지낼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훈은 부들부들 떨리던 발을 간신히 한 걸음씩 떼어서 중현의 손끝마디가 가리키고 있는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살며시 방으로 들어가던 기훈은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모습도 아주 잠시 뿐이었다. 기훈은 방문을 닫고 뒤로 돌아서자마자 무엇을 보고 놀란 듯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문고리를 붙잡은 채로 미끄러지듯이 주저 앉고 말았다. 조금 전에 거실에서 보았던 그 여자아이가 기훈이 들어간 방 책상 바로 앞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기훈의 놀란 얼굴을 보고는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귀엽게 볼록 튀어나온 덧니를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보이며 얄밉게도 실실 웃어대고 있었다.


“ 너가 내 오빠라고? “


새치름하게 물어오던 여자아이는 당황한 기훈의 표정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다만 토끼 같은 얼굴에 토끼 같은 눈을 하고는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기훈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여자아이가 묻는 대답에 조금의 대꾸도 하지 못하던 기훈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눈만 깜빡 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다시 한번 배시시 웃더니 새침하게 말을 이어갔다.


“ 너 가짜지? 근데 잘생겼네. 그래 좋아! 잘 생겼으니까 인정! 나 맨날맨날 되게 심심했거든! 너는 나랑 놀아줄 거지? “


여자아이는 그러더니 또 한번 아까처럼 배시시 웃어 보였다.


기훈은 뭐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단지 지금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잠깐의 짧은 생각으로 느낀 바로는 저 여자아이가 자신의 동생이고 유령처럼 소리 없이 움직인다는 점? 귀여운 얼굴로 배시시 웃어가며 말을 생각 없이 막 던진다는 점? 그리고 그 동안 외롭게 자랐다는 점? 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앞으로 저 아이가 자신의 가장 가까운 편이 되어서 낯선 이곳에서의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훈의 생각이었지만……


“ 오빠!! “


기훈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여자아이가 오빠를 불렀다. 기훈은 그 ` 오빠 ` 라는 소리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했다. 물론 그 아이가 확실한 자신의 동생임에도 아직은 뭔가 어색했으니까.


“ 으, 으응? “


기훈이 쑥스럽게 대답을 하자 여자아이는 또 한번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것도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욱 밝게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아이는 이제야 비로소 말문이 트였는지 아주 사소한 이야깃거리부터 이야기를 해줘도 기훈이가 잘 모르던 엉뚱한 소리까지 두서없이 마구 해대기 시작했다.


“ 오빠! 나 있잖아. 오늘 꿈을 꿨거든? 근데 꿈에서 있잖아~ 내가 놀이동산에 가있는 거 있지? 거기에서 백설공주도 만나고 피노키오도 만나고 같이 막, 마구 뛰어 다니면서 정말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친구들이 집에 가야한대서…… 그냥 나 혼자서 놀았어 “


정말 꿈에서 보았던 모습대로 즐겁게 논 사람처럼 밝은 얼굴로 빠르게 이야기하던 아이는 말이 끝날 무렵 금새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이 여자아이는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았을 놀이동산 이라는 곳에 단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처박혀서 지내는 게 전부였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에게는 같이 어울려서 놀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 나 어제도, 그저께도 놀이동산에 갔었는데…… 실은 놀이동산에는 맨날 간단 말이야. 근데 맨날 혼자야 “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어버린 아이의 얼굴에는 외로움에 사무친 흔적이 너무도 많이 보였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흔해빠진 놀이동산, 그리고 정말 애타게 원하던 친구들.


아이에게는 그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기훈은 자신보다 훨씬 부유하게 자라온 여자아이가 고아원에 버려졌던 자신보다 행복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이 그랬다. 일밖에 모르는 무서운 아버지, 그리고 오빠밖에 모르는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이혼하여 존재 조차도 모르는 엄마. 그래서 혼자 외롭게 지내야만 했던 아이였으니까.


여자아이는 기어이 꾹꾹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소리만큼은 내지 않았다. 기훈이 겪었던 것처럼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인 중현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싫어하는 듯 했다. 그래서 아이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런 아이가 가엾게 느껴진 기훈이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 가짜 오빠 ` 기훈의 따뜻한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아마도 오늘처럼 울고 싶었던 날에 누구의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으며 울어본 적도 없었을 아이였다. 기훈은 그런 아이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울던 아이는 이제야 마음이 진정됐는지 고개를 들어 기훈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서 입을 열었다.


“ 나 이제 괜찮아. 이제 오빠가 있잖아. 헤헤. “


기훈은 아이의 얼굴을 보며 함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말만 동생이었지 아이의 정확한 이름과 나이를 몰랐다. 그래서 물어보려는 찰나에 여자아이가 먼저 스스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 현미야. 최 현미. 9살. 그리고 궁금한 거 있으면 얘기해 오빠! “

“ 아~ 현미! 예쁜 이름이구나? “


현미는 또 금방 얼굴이 풀어져서는 배시시 웃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기훈은 그런 현미의 말을 그저 들어주고만 있었다. 기훈은 ` 누군가와 얼마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면 저럴까? ` 라는 생각을 했다. 현미의 모습 뒤로 가려진 웃음이 불쌍하도록 슬프게만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 근데 현미야. 오빠도 좀 앉으면 안될까? “


그러고 보니 의자에 앉아있던 현미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바람에 기훈은 어디든 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선채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벌써 한 시간도 훨씬 넘는 시간 동안 말이다.


“ 헤헤, 저쪽에 앉아야겠다 “


기훈은 현미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는 생각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는지 애써 웃어가며 말을 했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현미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침대 쪽으로 와서 기훈의 바로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는 기훈이 일어났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현미가 앉아있던 의자로 가서 앉았다. 기훈의 행동에 현미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토라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 왜? 오빠 왜 그래? 내가 싫어? “

“ 아, 아, 아니야. 안 싫어 “

“ 그럼 왜 도망가는데? “

“ …… “


기훈은 다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미의 옆으로 가서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현미에게는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상처를 주기가 싫어서였다. 이제야 다시 밝은 표정을 보이던 현미는 다시금 배시시 웃어가며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댔다. 정말 숨도 안 쉬고 떠드는 것 같았다.


기훈은 그런 현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어느새 사이 좋게 잠이 들고 말았다.



*****************



가장 호화스러운 저택들만 모여있다는 동네. 그 중에서도 가장 커다랗고 고급스러웠던 저택에서 한 통의 전화벨 소리가 높은 담장 너머로 나직하게 흘러 나왔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새벽 3시의 시간이었지만 전화벨 소리와 함께 저택의 거실에서는 은은한 샹들리에의 불빛이 발코니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거실 안에서는 중현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 철컥.


중현이 수화기를 내려 놓는 조그마한 소리에 기훈의 눈이 번쩍 떠졌다. ` 아, 잠이 들었었구나! ` 생각을 하며 옆을 보니 현미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현미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 꿈속에서 한창 놀이동산을 뛰어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 딸깍.


기훈의 방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천천히 열리던 문 틈으로 중현의 모습이 보였다.


기훈은 혼날 준비를 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현미를 돌려보내지 않고 여기서 재웠으니 혼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중현은 그런 모습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침대에서 자고 있던 자신의 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 나와! “


중현은 방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냥 문지방 앞에 서서 한 마디의 말만을 던지고 거실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곧 기훈이 거실로 나오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기훈도 중현을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대문 밖에는 이미 중현이 차에 시동을 걸어놓은 채 기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훈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차에 올라탔다.


기훈을 태운 중현의 자동차는 어둠 속을 가로질러서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었던 고속도로를 빠르게 질주했다. 중현은 운전을 하면서 옆에 앉은 기훈에게 어제 이야기 했던 똑 같은 주의사항을 한번 더 말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잊어버리지 말고 명심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훈의 할아버지인 ` 동인 ` 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도 말해주었다.


한참을 쉬지 않고 달린 중현의 자동차는 어느새 목적지와 거의 가까워진 휴게소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곳에 잠시 정차를 한 중현은 기훈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말 하고는 차에서 내려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났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동인의 수행보좌관 이었다.


“ 그래.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다고? “


중현이 물었다. 보좌관은 동인을 미행하며 지켜본 고치재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보좌관은 잠도 한숨 못 잤을 테지만 역시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으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중현의 고개가 몇 번이나 아래위로 끄덕여졌다. 비록 주위는 어두워서 중현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빛만큼은 확실히 빛을 내고 있었다.


“ 첫닭이라고? “

“ 네! 첫닭이 울면 성황당 앞으로 장관님의 핏줄이 나타난다나 뭐라나…... 그런데 청장님!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이번에도 장관님께서는 속 좀 아프시겠습니다. 또 속으셨어요 “

“ 첫닭이라…… 음, 알겠네! 거기 위치만 알려주고 이제 자네는 그만 돌아가게 “


보좌관은 현재 동인이 머물러 있는 고치재의 위치를 대강 설명을 해주었고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첫 닭이라…… “


보좌관이 사라지자 중현은 다시 차를 몰고 보좌관이 설명해준 고치재의 굿 터를 향하여 움직였다.

그렇게 조금 더 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고치재 입구의 표지판이 중현의 눈에 들어왔다.


중현은 입구부터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에서는 일부러 자동차의 전조등까지 끄고는 천천히 길을 따라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속이기 위한 참으로 치밀한 계획이었다.


천천히 산을 오르던 중현은 한적한 공터에 차를 잠시 세웠다. 첫닭이 울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덧 새벽의 까만 하늘은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푸르게 다가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중현이 기다리던 반가운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고 울리기 시작했다.


- 꼭끼오~~~오!


새벽 첫닭의 울음소리가 들리자마자 중현은 자동차의 전조등을 켜고 불과 몇 미터밖에 남지 않았던 고치재의 굿 터를 향해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언덕으로 이어진 커브 길을 돌자마자 전조등 불빛의 끝에 서 계신 자신의 아버지를 보았다. 중현의 입가에는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이제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끝이 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중현은 보좌관이 일러준 대로 정확하게 성황당 바로 앞에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 기훈에게 내리라는 지시를 하고 자신도 차에서 내렸다.


동인은 성황당 앞에 세워진 중현의 자동차를 보고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어서 차에서 내린 자신의 아들과 어린 남자아이를 보고는 더욱 크게 놀랐다. 정말 천상선녀의 몸에 실린 세 신이 예언했던 ` 새벽 첫닭이 울 때 성황당 아래를 보거라. 네놈의 핏줄이 있을 터이니 `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어서였다.


그 동안 얼마나 애타게 찾아서 헤맸던가? 동인이 평생 살았던 60년의 인생보다도 더욱 길게 느껴졌던 6년이었다. 손자를 자신의 손으로 잃게 했다는 죄책감에서 이제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던 동인이었다. 동인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통한의 눈물이었다.


“ 니가 기훈이냐? 어이구, 많이 컷구먼…… 그려, 이 할애비를 알어 보것어?? “


동인은 밤새 진행되던 고된 굿판에 기운이 다 빠져버린 몸이었어도 기훈을 향해 달렸다. 무작정 달렸다. 비록 느릿한 걸음이었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훈을 얼싸안고 한 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중현은 그런 두 사람을 감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먼저 차에 올라타 버렸다.


동인은 알지 못했다. 신들이 예언대로 정말 자신의 ` 진짜 핏줄 ` 을 찾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모순이었다. 신들이 원했던 것은 동인의 고조부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업보를 그의 후손이 회개지심(悔改之心)으로 무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기훈을 보내 준 것이었다. 그렇다고 신들이 비록 가짜 손자였지만 기훈을 찾아 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예언의 목표는 사실 기훈이 아니었으니까.


예언의 목표는 바로 동인의 아들이었던 중현이었다.


신들은 중현이 이런 사악한 짓을 벌일 것이라고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예언의 진짜 속내는 중현 스스로가 또 다른 업보를 만들지 않길 바라던 신들의 시험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지금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동인은 자신에게 손자를 찾아준 신당을 향하여 연거푸 절을 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동인의 입장에서는 신들이 말했던 예언대로 동인이 그토록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 핏줄 ` 이 자신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던 기훈을 가리킨 게 아니라 중현을 이야기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11막 접선이 끝났습니다.

전편 계교편에서 미리 말씀드린대로 기훈과 동생 현미가 만났고

동인과 손자인 기훈이 만났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4년이라는 세월이 이제 모두 ` 끝 ` 입니다.

 

이제 다음편부터 다시 현실로 돌아갑니다.

본격적인 주인공들은 얼추 윤곽이 잡혔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는 그려졌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달려봅시다.

그 동안 무겁게 진행된 이야기를 약간은 코믹한 쪽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다음편은 14년전의 회상이 이루어졌던 ` 기훈 ` 의 병원씬 부터 들어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3.28 21:34
    No. 1

    머리를 한 참 써서 읽었습니다... 잘 읽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청연(靑燕)
    작성일
    13.03.28 21:49
    No. 2

    내용이 어려웠나요? 몇편에 걸쳐서 장황하게 늘어놨던 이야기들을 이번 ' 접선 ' 편에서
    포텐이 터지도록 몰빵을 시키느라 제 머리도 터질지경 이었어요^^
    만약 이해가 가지 않으신다면 말씀해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13.03.28 21:44
    No. 3

    점점 필력에 탄력이 붙는듯 하군요. 글을 쓰다보니 숨겨졌던 솜씨까지 부활하시는듯해요. 글을 잘쓰시네요. 몰입도높게. 상황에 잘맞는 문장선택이나 단어가 인상적이에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청연(靑燕)
    작성일
    13.03.28 22:35
    No. 4

    언제나 우리 윈드윙님이 저에게 보여주시는 관심은 저로 하여금
    용기를 북돋아 준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3.28 22:06
    No. 5

    ㅎㅎㅎ. 재밌게 잘쓰셔서 지적할 것도 없어요..
    제가 진짜 쓰고 싶은 sf를 청연님처럼 쓰고 싶어졌다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청연(靑燕)
    작성일
    13.03.28 22:39
    No. 6

    아직은 완전 구상이 아니라 언제 스토리가 바뀔지 모르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동방존자
    작성일
    13.04.27 15:14
    No. 7

    오오, 스토리 좋습니다. 감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청연(靑燕)
    작성일
    13.04.27 15:50
    No. 8

    앗 ㅠㅠ
    감사합니다. 칭찬은 부끄러워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걱정이 있다면 스토리에 걸맞는 필력의 뒷받침이... ㅠㅠ

    솔직히 상실의 스토리 구상은 작년에 했던건데 이걸 써? 말어?
    이러다가 올해 2월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글을 거의 10년만에 써보는지라, 어찌나 막막하던지... ㅠ

    습작인데 너무 장편으로 잡은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 수록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어찌어찌해서 주위분들의 격려속에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상 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8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10막 계륵(鷄肋) ~ 3 +8 13.05.27 518 5 10쪽
47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9막 계륵(鷄肋) ~ 2 +4 13.05.19 320 12 8쪽
46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8막 계륵(鷄肋) ~ 1 +4 13.05.09 447 6 10쪽
45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7막 교우(膠友) +6 13.05.06 439 4 10쪽
44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6막 내면(內面) +6 13.05.01 360 8 10쪽
43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5막 우연(偶然) ~ 2 +10 13.04.29 495 11 9쪽
42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너의 뒤에 - 4막 우연(偶然) ~ 1 +6 13.04.25 546 11 10쪽
41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항상 너의 뒤에 - 3막 해후(邂逅) ~ 4 +7 13.04.21 411 6 11쪽
40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항상 너의 뒤에 - 2막 해후(邂逅) ~ 3 +6 13.04.19 438 12 8쪽
39 제 3장 나의 그리움은 항상 너의 뒤에 - 1막 해후(邂逅) ~ 2 +6 13.04.18 317 6 9쪽
38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6막 해후(邂逅) ~ 1 +8 13.04.18 302 7 3쪽
37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5막 상기(想起) +6 13.04.17 471 6 12쪽
36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4막 추억(追憶) ~ 2 +7 13.04.16 420 5 10쪽
35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3막 추억(追憶) ~ 1 +6 13.04.15 332 5 13쪽
34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2막 진실(眞實) ~ 6 +6 13.04.12 458 6 17쪽
33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1막 진실(眞實) ~ 5 +6 13.04.11 297 6 13쪽
32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0막 진실(眞實) ~ 4 +6 13.04.10 494 6 11쪽
31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9막 진실(眞實) ~ 3 +6 13.04.09 365 7 10쪽
30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8막 진실(眞實) ~ 2 +6 13.04.08 526 6 10쪽
29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7막 진실(眞實) ~ 1 +8 13.04.06 391 6 10쪽
28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6막 흔적(痕跡) ~ 3 +4 13.04.05 432 5 11쪽
27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5막 흔적(痕跡) ~ 2 +4 13.04.02 471 4 12쪽
26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4막 흔적(痕跡) ~ 1 +4 13.04.01 423 12 13쪽
25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3막 조력자(助力者) +6 13.03.31 420 13 9쪽
24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2막 흑백(黑白) +6 13.03.30 386 7 8쪽
»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1막 접선(接線) +8 13.03.28 571 8 17쪽
22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1막 계교(計巧) ~ 2 +6 13.03.28 473 11 13쪽
21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0막 계교(計巧) ~ 1 +5 13.03.25 378 6 9쪽
20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9막 업보(業報) ~ 2 +4 13.03.21 535 5 11쪽
19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8막 업보(業報) ~ 1 +4 13.03.21 388 9 16쪽
18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7막 위작(僞作) ~ 6 +4 13.03.19 387 9 15쪽
17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6막 위작(僞作) ~ 5 +5 13.03.16 476 7 10쪽
16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5막 위작(僞作) ~ 4 +6 13.03.15 524 10 12쪽
15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4막 위작(僞作) ~ 3 +4 13.03.14 498 8 11쪽
14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3막 위작(僞作) ~ 2 +7 13.03.13 385 7 10쪽
13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2막 위작(僞作) ~ 1 13.03.12 536 5 11쪽
12 제 2장 흔적은 머물렀다 - 1막 선물(膳物) +2 13.03.05 574 8 13쪽
11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11막 비밀(祕密)~3 +2 13.02.28 656 8 12쪽
10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10막 비밀(祕密)~2 +4 13.02.27 556 6 23쪽
9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9막 비밀(祕密)~1 +2 13.02.26 571 8 6쪽
8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8막 해방(解放) +2 13.02.23 392 5 16쪽
7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7막 다크문(黑月) ~ 2 +2 13.02.22 494 7 17쪽
6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6막 다크문(黑月) ~ 1 +5 13.02.21 600 6 12쪽
5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5막 연리지(連理枝) +4 13.02.21 633 7 9쪽
4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4막 시작(始作) ~ 2 +7 13.02.20 494 6 6쪽
3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3막 시작(始作) ~ 1 +8 13.02.19 522 9 9쪽
2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2막 삭제(削除) +14 13.02.19 612 7 9쪽
1 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1막 악몽(惡夢) +18 13.02.19 1,137 13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