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잃어버린 시간 - 1막 악몽(惡夢)
상실(喪失) - 청연(靑燕)
감사합니다.
웬만한 호텔 급 보다 좋은 강남 오성 종합병원 특 VIP병실. 실내가 전부 빛나는 대리석에 원목으로 만들어진 엔틱한 더블 사이즈 침대, 푹신한 소파와 개인 서랍장, 그리고 50인치 LCD TV에 홈시어터, 컴퓨터, 게임기 등등…… 거기에다가 개인 전용 엘리베이터까지.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유명인사나 사생활 노출을 꺼려하는 돈 많은 사람들이 이 VIP병실의 주 고객이었다. 병실은 홀로 처박혀서 지내기에 전혀 무료하지 않도록 각종 편의시설 어지간한 것은 전부 갖추고 있었다.
지금 이 병실 침대 위에, 그녀가 누워있다.
베개맡으로 퍼지게 늘어뜨린 유난히도 까만 생머리, 투명하고 빛이 나는 피부, 넓고 훤한 이마와 가지런하고 곧은 눈썹. 그리고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딸기 같은 입술.
서랍장 위로 비스듬히 올려놓은 사진 액자, 그녀는 그 속에서 애교가 넘치는 귀여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반할 만큼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지금, 가슴 언저리까지 오는 얇은 담요를 덮은 채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 아…… 또 같은 꿈이구나. ‘
그녀가 꾸는 꿈,
벌써 한 달 째 반복되는 꿈이다.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이 매일같이 말이다. 언제나, 매번, 늘, 항상, 똑같이, 매일 반복되던 지긋지긋한 빌어먹을 그 꿈! 그녀는 그런 개 같은 꿈 때문에 하루하루를 조금씩 미쳐가고 있었다.
감고 있던 눈을 뜬 그녀는 송글송글하게 식은땀이 맺혀있는 이마를 대충 손등으로 훔쳐 내었다. 그리고 예쁘장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괴팍한 목소리로 괴성을 질렀다.
“ 아악! 짜증나! 누구야? 대체 어떤 놈이야? 뭐 어쩌자는 거야? ”
그녀는 마치 누구에게 물어보듯이 말을 건넸지만 사실은 괴로운 마음에 혼잣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참을 화가 난 표정으로 있던 그녀는 길게 늘어뜨린 검은색 생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마구 헝클어댔다. 그러다가 휘적거리던 손을 덤불처럼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카락 속에 그대로 멈춘 채 고개를 떨구었다. 꿈에서 보았던 내용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원래 성격은 이정도 까지 신경질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정다감하고 온순한 성격도 물론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매일 밤마다 자신의 꿈속에 찾아오던, 기억에서 사라진 정체 모를 남자 때문에 날이 갈수록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꿈에 정체 모를 남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때는 그 남자에 대해서 오히려 호감을 갖고 궁금해 하기까지 했었다. 비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었지만 기억에서만 사라진 것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남자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기도 했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기도 했고, 집 앞에서는 짜릿한 입맞춤까지….... 비록 낯선 남자와의 데이트였지만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을 두근두근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남자를 향했던 그녀의 호감은 날이 갈 수록 더욱 커져만 갔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듯 말듯 하게 다가오던 그 남자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평소 같으면 궁금하긴 했어도 그냥 무시 해버렸을 꿈이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 것에 대해서 목숨 걸고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매일마다 반복되던 똑같은 꿈은 무신경한 그녀의 마음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었다. 특히 ` 도대체 저 남자는 누구? 나하고는 어떤 사이? ` 라는 궁금증이 그녀의 마음속에 차츰 자리를 잡아갔던 그날부터였다.
바로 그날부터 그녀는 매일 밤 찾아오던 악몽 같은 남자와의 데이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 그놈. ` 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꼭 정체를 밝혀서 매일마다 자신을 괴롭힌 대가로 아주 끔찍하고도 잔인한, 처절한 응징을 꼭 하고야 말겠다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 아, 미치겠다! 돌아버리겠네, 진짜! 콱, 그냥! ”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가 이번에는 헝클었던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겉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랄까?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던 기억이 다시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녀는 꿈을 꾸기 위해서 잠자리에 들기 전, ` 오늘은 기필코 정체를 알아내겠어! ` 라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었다. 더구나 그 모든 것이 전부 부질없는 짓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그래서인지 그녀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면 항상 오늘과 같은 ` 짜증. ` 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정말 제대로 된 진상이었다.
결국 이미 예상 했던 일이었지만, 그녀는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싶은데 아직까지 우거지상으로 저러고 진상을 떨고 있는 그녀를 보니 가히 ` 따봉! ` 이라고 외쳐주고 싶을 만큼 집념이 대단했다. 이런 것을 집념이라고 해야 맞는 것인지 고집이라고 해야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어제, 그제, 일주일 전에도 이룰 수 없었던 그 다짐을 결국은 돌아오는 오늘밤에 또 다시 해야만 했다.
“ 한 승아씨! 어디 불편하세요? ”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머리채를 마구 헝클어 쥐어 뜯고는 고개를 떨군 상태로 오만상을 쓰고 있는 모습이 마치 토악질이라도 하듯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아는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등장한 간호사가 집중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물어온다는 것이 남자에 대한 꿈을 떠올리는데 있어서 더욱 짜증나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저 간호사는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 중에서 승아가 가장 싫어하는 간호사였다. 그래서 승아의 찌푸린 미간 사이의 주름은 더욱 구겨졌다.
“ 한 승아씨! 괜찮아요? ”
사분사분한 말투로 똑같은 멘트를 한번 더 날린 간호사는 이윽고 허리를 숙여서 승아의 얼굴을 빠끔히 들여다보았다.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다. 간호사의 얼굴은 심려에서 비롯된 표정이 아니었다. 뭔가 눈치를 살피는 듯한 간호사의 표정은 ` 꾀병? 아니면 진짜? ` 사이를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간호사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승아는 예쁘장한 얼굴에서 도저히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살벌한 표정을 짓고는 눈을 매섭게 치켜 떴다. 무언의 협박 비슷한 것이었지만 승아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감정이 아주 살짝 섞인 감탄사까지 내 뱉어버렸다.
“ 에라이~ 씨ㅂ……. “
하룻밤 입원비가 100만원대에 육박했던 VIP병실은 병원에서도 아주 특별하게 관리를 하고 있는 터라 그곳에 입원한 환자에 대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매 시간마다 전부 상부에 보고를 해야 했다. 병원의 근무수칙 중에 VIP병실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고객 클레임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구절도 있었다. 그러니 병원에서 VIP병실을 얼마나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누가 보더라도 딱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VIP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는 총 4명이었다. 주간 야간 12시간씩 맞교대로 근무를 하는데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 병동 끝에 마련된 숙소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말만 숙소였지 그곳 또한 마찬가지로 여느 호텔방이 부럽지가 않았다. 더구나 간호사들이 한 달 동안 근무를 하고 수령하는 금액이 다른 곳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3배였다. 그리고 VIP병실 한 군데만 관리를 하면 되었으니 근무 수칙이 조금 까다롭기는 했어도 일 자체는 무척이나 쉽고 편했다. 그래서 너 나 할 것 없이 다들 그 병동에 근무하기를 희망한 것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이 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확히 저 ` 진상 같은 한 승아 ` 가 VIP병실에 입원을 하고부터는 최고의 대우, 최고의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기피하는 병동이 되어버렸다. 이미 승아는 병원 내에서 까칠하고 지랄 맞기로 따지면, 아마도 입원한 환자 중에서 최고봉일 거라고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유명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저렇게 아픈데도 없으면서 아픈 척 진상을 부린다는 것을 전부 다들 알고 있었다. 더구나 얼마 전에 새로 부임한 오성 종합병원의 이사장이 바로 승아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VIP병실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간호사들이 여럿 바뀐 병동에 서글서글한 성격이었지만 약간 어딘가 모르게 조금 모자란듯한 간호사 오직 한 명만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승아가 가장 싫어하는, 방금 전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였다. 하긴, VIP병동에 그녀를 제외한 모든 간호사가 승아 때문에 제 발로 뛰쳐나갔으니 승아의 신경에 거슬리는 짓을 가장 많이 했던 간호사는 그녀일 수 밖에 없었다.
“ 어머나~~ 우리 승아씨 역시나 괜찮으시구나! 알았어요, 알았어~ 나갈게요. 나갑니다~. 호호홍~~ ”
이미 간호사는 승아에게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매일마다 겪었던 아주 일상이 되어버린 일이었기에 간호사에게는 그저 익숙한 장면일 뿐이었다. 하지만 매시간마다 작성해서 상부에 올리는 보고서에 뭔가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했기에 간호사는 그냥 별 생각 없이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 혹시나 ` 였지만 진짜로 아픈 것 일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특별한 마음가짐 없이 병실로 들어온 간호사는 그래서 사근사근하긴 했지만 알랑거리는 말투로 비꼬듯이 말을 했고 ` 호홍~ ` 하는 특유의 웃음소리만을 병실에 남겼다.
승아는 귀찮은 존재가 없어지자 잠시 더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다시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 다시 잠들면 알아낼 수 있을 거야. `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 하지만 잠들지 못하던 감은 두 눈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까만 배경뿐이었다. 그 까만 배경에 억지로 그 남자의 모습을 맞추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 아! 뭐 이런 그지 같은 새끼가 다 있어! ”
하며 벌떡 일어나 오히려 푸념 섞인 말들만 잔뜩 늘어 놓았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발길질이라도 한방 먹이듯이 있는 힘껏 담요를 걷어 차 버렸고 결국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아----아악! 짜증나----아! ”
흡사 돌고래의 비명과 같이 찢어지는 고주파의 소리로 악을 쓰던 승아의 목소리는 엄청난 속도로 복도를 지나 간호사들이 근무를 하는 간호사실까지 메아리 쳐졌다.
업무를 보고 있던 당직 간호사 두 명중에 이 병실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던 아까 그 간호사가 고음의 비명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저 또라이 또 시작이네! 연지야! 아까는 내가 갔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가봐. ”
“ 순진 언니가 가보면 안 되요? 한 승아씨는 언니를 제일 싫어하니깐……. ”
“ 맞을래? 으이구~ 알았어! 그러면 가위 바위 보 해! ”
환자의 몸과 건강과 마음을 챙기고 보듬어야 할 간호사 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결국 가위 바위 보에서 진 연지가 윗입술을 씰룩 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대로 가위바위보에 이긴 순진의 얼굴에는 화사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 올랐다.
“ 순진 언니! 너무 한다! 진짜! ”
“ 잘가아아아~ 아 맞다! 그리고 쟤가 뭐 던질 수도 있으니까 몸 조심해~ 호호호홍~. ”
복도를 걷던 연지는 약 올리는 듯이 ` 호홍~. ` 하는 콧소리가 가득한 간드러진 순진의 웃음 소리에 맞장구를 치듯이 비꼬는 말투로 말을 했다.
“ 순진 하기는 개 뿔!! 이런 개진상 같으니라고. ”
이 소리를 들어버린, 물론 들으라고 내뱉은 말 이었지만……
순진은 그 소리에 발끈했다. 좋은 게 좋은 거 라고 그냥 모른 척 해도 됐을 텐데 말이다.
“ 야! 너 설마 나한테 그런 거야? ”
“ 에이~ 아뇨! 내가 설마 언니한테…… 한 승아씨요! ”
병실 앞에 다다른 연지는 문 안쪽을 조심스럽게 슬쩍 들여다 보았다. 아까 순진 언니가 말 한대로 승아의 분노 게이지가 극에 달했을 때는 정말 무엇을 집어 던지기도 하였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의 입장에서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겁이 나는 마음부터가 먼저인지라 연지는 이렇게 행동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 히포크라테스 선서 ` 와 ` 나이팅게일 서약 ` 이 자꾸만 마음에 거슬렸다.
연지의 눈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침대에 앉아있는 승아가 보였다. 매일매일 한 없이 왕 재수였던 그 진상 환자 말이다. ` 멀쩡한 것 같은데 도대체 퇴원은 언제 하는 거야? ` 라고 지겹도록 생각했던 환자였지만 승아의 쪼그린 모습에서 보여지는 슬픈 느낌에 연지는 측은함과 연민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래서 병실 안으로 살며시 들어가서는 차분하고 부드럽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 저…… 한 승아씨! 괜찮으세요? 제가 뭐 도움을 드릴 만한 것이 있을까 해서…… 그래서 와봤어요. ”
연지는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긴장은 했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전한 말이었다.
VIP병동을 포함하여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간호사들 전부가 까칠한 성격의 부잣집 딸인 승아를 뒤에서 씹어대기 바빴었다. 물론 승아라는 진상 환자를 가까이 하기가 힘들어서도 그랬겠지만 그래도 정작 마음을 열고 단 한 번이라도 승아의 속 마음을 들어주었던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하긴 매일마다 저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고 있으니 그 누구한테 좋은 소리가 나올까? 아무튼 연지의 진심 어린 물음에 승아는 별 다른 반응도, 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연지는 ` 에이…… 그냥 나갈까? ` 하고 생각 했지만 용기를 내어서 다시 한번 물었다.
“ 승아씨! 우리 나이도 똑같은데…… 친구 해 줄게요!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
상냥하게 묻고 있던 연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아가 갑자기 고개를 ` 휙! ` 하고 들었다. 연지는 움직임이 없던 승아가 갑자기 움직이자 꼭 해코지를 당할 것 같은 생각에 순간 놀라서 움찔했다. 연지가 움찔하는 동시에 승아의 입에서는 이미 예상했던 독한 말이 흘러나왔다.
“ 꺼져! ”
“ 에에? 네? ”
“ 제발 꺼지라고, 쫌! ”
“ ……! ”
물론 승아가 무엇을 던진다던가 하는 짓 따위는 안 했지만 진심 어린 배려에 ` 꺼져 ` 라고 답을 하는 승아의 말에 연지는 기분이 나빴다. 정말 진심으로 승아를 위해서 했던 말이었는데 말이다.
연지의 눈에는 승아가 정말 더욱더 미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느꼈던 연민의 감정은 점점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별의별 공격성 말들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연지는 차분하게 가슴속에서 정제를 시켰다. 그래서 다행히도 맞장구 칠 만한 단어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 기분이야 뭣 같았지만 승아는 누가 뭐래도 VIP고객이었으니까. 말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단칼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까.
어찌됐든 결국은 연지가 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연지의 머릿속에 문득 순진 언니가 떠올랐다. 저 재수 없는 환자를 막 다루던 그 분의 순진했던 내공 앞에 연지는 다시 한번 존경심을 느낄 수가 있었다.
승아는 쪼그리고 앉아서 양 무릎을 두 팔로 감싸 안은 그 자세 그대로를 유지한 채, 가슴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다시 파묻어버렸다. 연지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저 진상은 매일마다 저렇게 저기압으로 여러 사람을 괴롭히는 것 인지? ` 에 대해서 말이다.
연지는 스스로의 생각에 대한 질문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러려니 이해하기로 했다. 뭐 딱히 그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기도 했으니까. 연지는 그것보다 일단은 이 기분 나쁜 병실을 빨리 나가야만 했다.
“ 저 그냥 갈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벨 눌러요! ”
연지는 퉁명스럽게 톡 하고 쏘는 말투였지만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 냉정함과 싹싹함의 중간쯤 정도라고 할까? ` 싶은 오묘한 말투로 말을 했다. 연지는 스스로가 적어도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연지는 곧바로 병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작품 후기를 이제서야 올리네요.
이번 1막은 스토리의 가장 핵심이자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결과물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 스타트 ` 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살 시작했습니다.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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