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별들의 전쟁3
“이 게임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케케묵은 먼지로 가득한 자취방.
오늘은 편의점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모니터를 켠다.
게임 서비스 종료.
12시 종이 땡 치면 영원히 서버가 닫힐 것이므로. 마지막 가는 길을 홀로 배웅하는 것이다.
“내 첫 인생 게임이었는데.”
나는 아쉬움이 남아 게임을 접지 못했다.
<별들의 전쟁3>.
한때 명작으로 유명했던 로그라이크 RPG다.
풍부한 스토리와 자유도 높은 오픈 월드.
······그리고 고요한 새벽의 나라다운 지옥 불반도 같은 난이도.
뭐, 나 같은 고인물들한테는 그게 오히려 그게 도전 욕구를 더욱 자극했지만.
이대로 서비스 종료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내 아픈 손가락 같은 게임이다.
마지막으로 게임에 접속해서 둘러본다.
캐릭터 생성 창부터 광활한 아리아 대륙이 보이며, 수많은 남녀가 화기애애하게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LV 99.】
【LV 99.】
【LV 99.】
.
.
총 25명의 종결급 캐릭터들.
하나같이 모든 던전을 정복하고, 대륙일통까지 이룬 내 분신들이다.
하나 만렙 찍었으면 됐지, 뭣 하러 여러 개를 키우냐는 질문은 사양한다.
이 게임은 영웅이 총 25명으로 각기 다양한 컨셉과 스토리, 전략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까지 다 키운 건 내가 거의 유일하겠지.’
뿌듯함을 느낀다.
하기야 <별들의 전쟁3>는 하드 코어한 난이도와 빠른 망겜 트리를 타서 끝까지 남은 고인물이 현저히 적으니까.
공식 카페에서도 나 정도 고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히든 업적은 클리어하고 접고 싶었는데."
[히든 업적 달성 (998/999)]
나는 마지막까지 달성하지 못한 히든 업적이 아쉽다.
마치 조각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잃어버린 기분.
고생을 종지부 찍고 떠나려고 했으나, 먼저 서버가 닫힐 뿐이다.
“에휴, 괜히 미련 가져서 뭐하냐. 이제 다 끝났는데.”
나는 의자를 끼익, 뒤로 젖힌다.
플레이 타임만 22,345시간. 말 그대로 인생을 갈아 넣은 게임이지만 어쩌겠는가?
서비스 종료하는 게임을 계속 미련 남아봤자, 죽은 자식 나이 세는 꼴이지.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캐릭터를 삭제하시겠습니다.]
[YES.]
[캐릭터를 삭제하시겠습니다.]
[YES.]
.
.
LV99까지 찍은 모든 영웅들을 직접 삭제한다.
역대 최고 고인물답게 나 이외엔 그 누구도 죽이지 못하게 한다.
[‘NEW’ 최종 업적 달성!]
[대륙을 정복한 총 25명의 영웅들마저 소멸시킨 <별들의 전쟁3>의 진정한 왕! 신규 캐릭터 ‘마왕’이 해금됩니다!]
“?”
그러자 난생처음 보는 업적이 나타났다.
듣도 보지도 못한 업적.
아무래도 최종 업적은 lv99짜리 캐릭터 25개를 모두 삭제해야 달성되는 모양이다.
“······아니, 이딴 식으로 숨겨두면 어떻게 찾냐?"
나는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서비스 종료 직전에 발견한 최종 업적.
그 보상으로 신규 캐릭터가 해금된 모양이니까.
뼛속까지 <별들의 전쟁3> 고인물로서, 도대체 어떤 캐릭터인지 궁금했다.
[신규 캐릭터를 생성합니다.]
당장 캐릭터 생성을 클릭했다.
그러자 나타난 LV1짜리 흑발의 미남.
설명창에 캐릭터 특성이 나타난다.
[이름 : 데하칸 폰 드라코 카이서스.]
[배경 설명 : 마계 제국 ‘판데모니카’의 제17대 군주. 그러나 기존 마족들의 반란으로, 힘이 대부분 봉인된 채, 인간계에 강림했다.]
오호?
게임 속 최종 보스였던 마왕 데하칸을 플레이할 수 있게 됐다.
이후 확인한 특성창.
‘와.’
역대 최고 고인물이라고 자부하는 나조차 마왕 특성 창을 보고 나도 모르게 감탄해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 저주받은 육체 (WORST).]
[효과 : -99lv로 시작. 온갖 두통과 질병, 저주를 계속 앓습니다. 최대 생명력 90% 감소.]
* 특수 조건으로 해제 가능합니다.
먼저 페널티 특성 ‘저주받은 육체’.
창백한 피부에 두통을 겪는 아이콘이 그려져 있다.
말 그대로 종합병원 같은 페널티다.
나조차 이런 극악의 페널티는 처음 보았다.
‘······만렙이 200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허나 씨익 미소가 생긴다.
<별들의 전쟁3> 영웅들은 총 포인트가 정해져 있어서, 단점이 있으면 그만큼 장점도 있어야 하므로.
이렇게까지 강력한 페널티가 있으면 어떤 후반 포센셜이 있을지 궁금했다.
[2. 데몬 하트 (MASTER).]
[효과 : 마력 무한.]
‘······미친.’
두 번째 특성은 마스터급 특성 ‘데몬 하트’.
검은 배경 속 꿈틀거리는 악마의 심장이 그려져 있다.
효과는 무려 마력 무한!
말 그대로 마나 무한 치트를 친 것과 같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이지만, 다음에 나오는 특성은 그 이상이었다.
[3. 봉인된 영혼 (MASTER).]
[효과 : 피와 증오를 흡수할수록, 봉인된 힘이 깨어납니다.]
* 첫 번째 봉인된 권능.
* 두 번째 봉인된 권능.
.
.
“미친!”
나는 마지막 특성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마스터급 특성 ‘봉인된 영혼’.
차가운 얼음 크리스탈 속에 갇힌 마왕 데하칸의 영혼이 그려져 있다.
효과는 무려 피와 증오를 흡수할수록 봉인된 힘이 해방되는 특성이다.
이 게임에서 권능은 특정 종족이나 조건을 해금해야 겨우 하나 해금하는 비기.
이를 특성 하나로 여럿 해금할 수 있다니!
과연 마스터급 특성답게 후반 포텐셜이 대단히 가치가 높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기캐인 것도 아니야.’
나는 특성 효과를 읽어보며 제작진의 개발 의도를 깨달았다.
올 후반 특성 마왕.
초반만 버티면 그 누구도 막지 못하는 괴물로 각성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초반에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으로 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난 상관없다. 낮은 레벨 때도, 페널티 특성을 모조리 극복할 수 있으니까.’
나는 특성 설명창을 하나하나 다시 읽으면서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갔다.
다른 일반 유저나, 어지간한 고인물라면 도저히 못 해먹을 난이도라고 손사레를 쳤겠지만.
역대 최고 고인물인 나는 다르다.
나는 모든 초반 공략을 알고 있을 뿐더러, 모든 스킬을 마스터하면서 시약 계열도 마스터해봤으니까.
마왕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 기존 25명의 영웅들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엔딩까지 능히 공략할 수 있다.
-난이도 설정 : ‘신규’ 리얼리티 헬 모드.
‘오.’
심지어 신규 난이도까지 해금됐다.
나는 흥이 오르는 걸 느낀다. 역대 최고 고인물로서 새로운 단계에 기대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비록 서비스 종료가 머지않았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서버가 닫히기 전까지라도 최대한 해보고 싶었다.
“빨리 시작하자. 빨리.”
그렇게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자, 사내가 날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네놈도, 내가 겪은 무한한 절망감을 느껴봐라.】
과연.
최종 캐릭터다보니 다른 영웅들과 달리 플레이어에게 말도 거는 건가?
나는 더욱 흥미가 올라 흥분됐다. 마왕 관점에서 플레이해본 적은 없기에 극도로 기대됐다.
바로 그때,
번쩍! 꽈르르릉!
창밖에서 천둥 번개가 떨어졌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다.
나는 그대로 감전됐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 작가의말
* 2023/10/20) 1-15화를 리메이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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