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정석_87. 원한을 잊고 오와 동맹을 맺는 한(마술사 서성)(下)
한편 위의 조비는 오와 한이 재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에 크게 분노하였다.
“오가 촉과 다시 손을 잡은 것은 짐에게 대항하려는 것이다!”
조비는 촉은 이릉대전의 대패로 국운이 기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만 토벌하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조비는 신하들을 모아놓고 오를 정벌할 것을 논의했는데, 신비가 나서서 말했다.
“오와 초(형주)는 지세가 험하고 백성들이 포악해 예전부터 제왕들의 근심거리였습니다. 하지만 폐하께서 천하를 손에 쥐고 계시니, 반역한 무리들은 머지않아 순종할 것입니다.
선제께서 중국을 평정하셔서 토지는 광활하지만 인구는 적으니, 아직 군사를 쓰기엔 이롭지 않습니다. 과거 선제께서도 정예군을 수 차례 일으키셨으나 장강을 넘지 못하셨고, 우리의 병사수가 전보다 크게 늘어나지 않았으니 전쟁을 일으켜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폐하께서 백성들을 어루만지며 둔전으로 군량을 비축하시면, 10년이 못되어 나라는 부강해지고 정예병의 수도 늘어날 겁니다. 그때 군을 일으키시면 단번에 오와 촉을 평정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상 오 토벌을 반대하는 신비의 말에 조비는 기분이 나빠졌다.
“경의 뜻에 따른다면, 근심거리인 적을 자손에게 남기는 것 아니오?!”
“과거 주문왕께서 상은(商殷)을 무왕에게 남긴 것은 때를 안 것입니다. 때가 되지 않았을 때는 일을 성사시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조비의 생각은 달랐다.
“과거 주왕은 포악하여 나날이 나라가 쇠퇴했으니 정벌을 미루는 게 가능했소. 하지만 오는 쇠퇴하지 않고 발전하고 있으니, 정벌을 미루면 안될 것이요. 경의 말을 옳지 않소!”
224년 위나라 황초 5년 8월, 조비는 조휴 등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동오 정벌에 나섰다. 조비는 친정(親征: 임금이 직접 정벌에 나섬)에 나서면서 사마의를 급사중 겸 녹상서사에 임명해 나라 일을 살피도록 하였다.
원래 사마의는 조조가 채용한 신하였지만, 조조는 사마의를 경계하며 중히 쓰지 않았다. 조조는 사마의가 야심이 큰 인물임을 눈치채고 있었는데, 우연히 사마의가 낭고상(狼顧相: 이리처럼 고개만 돌려 뒤를 돌아보는 관상. 당시 반역을 하는 관상이라 생각함)이라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하루는 조조가 시험 삼아 사마의를 뒤에서 불렀는데, 사마의는 과연 고개만 돌려서 조조를 바라보았다.
그 후 하루는 조조가 꿈을 꾸었는데, 말(馬) 세 마리가 하나의 구유(槽: 말, 소 등에게 먹이를 담아주는 그릇)에서 먹이를 먹는 꿈이었다. 조조는 세 마리의 말이 사마의, 사마사, 사마소 삼부자를 뜻하고, 구유는 조(曺)씨를 뜻한다고 해석하였다. 이후 조조는 사마의를 한층 경계하며 조비에게 말했다.
“사마의는 남의 신하로 남을 사람이 아니니,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는 이것을 알고 더욱 몸을 굽히며 조조, 조비 부자를 정성껏 섬겼고, 결국 조비는 사마의에 대한 의심을 풀고 그를 중요한 자리에 앉힌 것이었다.
이후 조비는 황제의 전함인 어용주(禦龍舟)에 올라 영수(潁水), 회수(淮水)를 거쳐 수춘으로 나아갔고, 소식을 들은 손권은 신하들을 소집해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번에 조비가 직접 수군을 이끌고 건업으로 오고 있다고 하오. 내 육손에게 수비를 맡기고 싶으나, 그는 형주목으로서 강릉을 지키고 있어 함부로 자리를 비우기 어렵소. 누가 조비를 물리쳐 내 근심을 덜어주겠소?”
“신이 재주는 없으나 군대를 거느리고 조비를 막고자 합니다!”
우렁찬 목소리에 모두가 바라보니, 안동장군 서성이었다.
“고맙소, 경이 강남 일대를 지켜준다면 내 믿을 수 있소!”
손권은 흡족해하며 서성에게 양주 일대의 군사를 지휘할 권한을 주었다.
이에 건업으로 달려간 서성은 장강 수백 리에 걸쳐 목책을 설치하고, 목책의 뒤편에는 나무로 벽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전쟁을 앞두고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벌이니, 많은 장수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장군, 장강을 건너 회남 땅에 영채를 세우고 육전을 준비하거나, 장강 남쪽 기슭에 수군기지를 세워 수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수백 리에 걸쳐 목책을 설치하면 우리의 병력이 분산될 뿐 이로움이 없습니다!”
“나에게 생각이 있으니 기다려 보시게!”
서성은 장수들의 반대를 일축하고 토목공사를 강행하였다. 며칠 뒤 목책과 나무로 된 벽이 완성되자, 서성은 나무 벽 위에 깃발과 허수아비 병사를 많이 세워놓게 하였다.
한편 광릉(廣陵)에 도착한 조비는 강 건너편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강 연안을 따라 수백 리에 걸쳐 성벽이 펼쳐져 있고, 성벽 위에는 수많은 오군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조비는 광릉에 주둔하던 장수를 불러 물었다.
“오군이 언제 저런 성을 쌓은 것이냐?!”
“소장들이 수시로 정찰을 하였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최근 며칠 사이 안개가 자욱해 강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거대한 성벽이 나타났습니다!”
오군이 수백 리에 걸친 성벽을 불과 며칠 사이에 쌓았다는 말에 위의 장졸들은 모두 두려워했고, 조비 역시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 정예기병이 많아도 소용이 없구나. 강남의 인물들이 저렇게 뛰어나니 아직은 도모할 수 없구나..”
조비는 서성이 만든 가짜 성벽에 겁을 먹고, 싸워보지도 않고 전군에 후퇴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위군이 허무하게 물러가자, 오의 장수들은 서성의 계책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조비가 오를 공격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동안, 한의 제갈량은 착실하게 남중3군의 반란을 평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중은 머나먼 오지였지만, 그곳의 반란으로 한이 입는 손실은 결코 적지 않았다.
남중의 반란으로 익주 일대의 민심까지 흔들리고 있었고, 남중지방에서 조세를 거둬들이지 못하는 재정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었다. 225년 촉 건흥3년 2월, 준비를 마친 제갈량은 황제 유선을 알현하여 말했다.
“폐하, 지금 남중의 3개군이 반란을 일으킨 지 오래이고, 영창군만이 외롭게 버티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들을 방치하면 나라의 큰 걱정거리가 될 것이니, 신이 직접 가서 남중을 토벌하고자 합니다.”
이에 유선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북쪽의 조비가 눈을 번득이고 있고, 동쪽의 손권도 동맹을 맺었다고는 하나 아직 믿을 수가 없소. 그승상은 이곳을 지키고, 다른 장수를 보내 남중을 토벌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러자 제갈량이 읍을 하고 말했다.
“조비는 얼마 전 동오 원정에서 군량만 소모하고 돌아가서 당분간 군을 움직일 여력이 없습니다. 설사 조비가 쳐들어온다 하더라도, 진북장군 위연이 한중을 능히 지켜낼 것입니다.
손권은 위와 관계가 틀어진 상황이라 우리 한나라를 적으로 돌리지 못할 것이고, 영안에 이엄이 주둔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외부정세가 우리에게 유리한 틈을 이용해, 신속히 남중을 정벌해야 합니다!”
그제서야 유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승상의 말에 일리가 있구려. 승상의 뜻대로 하시오.”
하지만 유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가 반대하고 나섰다.
“폐하, 소신이 지난번 말씀 드린 것처럼 승상이 직접 원정을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보니, 승상장사 왕련(王連)이었다.
“승상, 남중은 오곡(五穀)이 자라지 않는 불모(不毛: 땅이 거칠고 메말라 식물이 자라지 않음)의 땅으로 풍토병이 많습니다. 국가의 막중대사를 맡은 승상이 이런 곳에 원정을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반란군의 수장인 옹개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니, 대장 한 사람을 파견해 토벌하더라도 충분합니다.”
그러자 제갈량이 웃으며 말했다.
“승상장사가 날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내가 직접 남중을 정벌해야 하는 이유가 있네. 남중은 워낙 먼 곳이라, 이곳 사람들은 폐하의 은혜를 모르고 날뛰고 있네. 단순히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 황실을 믿고 따르도록 하기 위해 내가 직접 가려는 것일세.
자네가 염려하는 풍토병에 대한 대책도 생각해 놓았네. 정벌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약재를 많이 준비해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이네.”
이렇게 왕련을 타이른 제갈량은 남중 정벌군을 일으켰는데, 그 진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운이 대장이고 장익, 마충, 이회 등을 부장으로 삼았는데, 거느린 병력은 3만명에 달했다. 제갈량이 성도를 떠나자 많은 관리들이 배웅을 나왔는데, 그 중에는 제갈량이 아끼는 마속도 있었다. 유비가 죽기 전에 마속을 중히 쓰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제갈량은 마속을 참군(參軍)으로 삼아 수시로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에 제갈량이 마속을 보고 반가워하며 말했다.
“내 남쪽 원정을 떠나는데, 자네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면 말해주게.”
그러자 마속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남중 사람들은 그 길이 멀고 험한 것을 믿고 불순한 마음을 품은 지 오래이니, 오늘 정벌한다 해도 내일 또 반역을 꾀할 겁니다. 남중의 무리를 모두 없애려 하는 것은 어질지 못한 뿐만 아니라 시일도 오래 소요되니, 하책일 뿐입니다. 승상께서 적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을 상책으로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자네의 말이 맞네, 내 저들의 마음을 빼앗아 오겠네.”
마속과 웃으며 헤어진 제갈량은 남중 3군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월수로 향했다. 제갈량은 조운, 장익과 함께 월수의 고정을 토벌하러 가면서, 마충과 이회에게 병사를 나눠주어 각기 장가, 익주군를 공략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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