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정석_98. 공손연에게 농락당한 손권(캐스트 어웨이)(上)
요동은 대대로 공손씨가 다스려 왔는데, 과거 요동의 주인이었던 공손도는 중원과 거리가 먼 것을 믿고 황제처럼 행세를 하고 살았다.
그가 죽자 아들인 공손강이 그 뒤를 이었는데, 공손강은 아버지와 달리 위나라에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조조가 오환족을 정벌하고 요동 인근까지 압박해 오자, 공손강은 원상, 원희 형제의 목을 베어 조조에게 바치고 양평후(襄平侯)에 봉해졌다.
그 후 공손강이 죽자 동생 공손공이 요동태수로 추대되었지만, 공손공의 인생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의 주변에는 호랑이 새끼가 한 마리 있었으니, 바로 공손강의 아들인 공손연이었다.
‘요동은 원래 내 것이다! 어찌 왕의 자리를 아들이 아닌 동생에게 넘겨준단 말인가?!’
몇 년 후, 성인이 된 공손연은 반란을 일으켜 공손공을 내쫓고 요동의 주인 자리를 꿰차 버렸다. 그러자 위 황제 조예는 공손연에게 양열장군(揚烈將軍)겸 요동태수 관직을 내렸는데, 공손연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나는 이미 요동의 황제나 다름 없는데, 태수가 웬 말이냐?!’
조예의 처우에 불만을 품은 공손연은 바다 건너 오나라에 사신을 보내 양다리 외교를 하기 시작했고, 공손연의 속내를 모르는 손권은 몹시 기뻐하였다.
‘요동은 말이 많은 곳이 아닌가?! 공손연이 기병을 앞세워 유주, 기주를 공격해 주면, 내가 회남을 손에 넣기 쉬워질 것이다! 요동에서 말을 들여와 기병을 강화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232년 가화 원년 3월, 손권은 공손연과 우호를 다지기 위해 장군 주하, 교위 배잠 등을 요동에 파견했다. 주하 등은 뱃길을 통해 요동에 도착했고, 공손연에게 손권의 서신을 무사히 전달하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요동을 출발한지 오래지 않아, 주하 일행이 풍랑을 만난 것이었다. 오의 선박들은 파도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다닌 끝에, 북해의 동쪽 끝 성산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뜻밖의 인물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위나라 여남태수 전예였다. 전예는 손권이 요동에 사신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자, 오의 선박들이 성산으로 표류할거라 생각해 미리 병력을 배치해 둔 것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성산에 도착한 오의 사절단은 모두 전예에게 생포되었고, 전예는 가차없이 주하의 목을 베어 버렸다.
이렇게 오의 1차 사절단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오와 요동의 교류는 계속되었다. 그 해 10월, 공손연은 교위 숙서와 낭중령 손종 등을 오에 파견해, 손권의 신하가 될 것을 맹세하며 말과 동물가죽 등을 공물로 바쳤다. 그러자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요동에 대규모 사신단을 파견하려 했는데, 승상 고옹(顧雍) 등 대신들이 일제히 말리고 나섰다.
“폐하, 요동의 공손 씨는 황제를 칭하는 등 분수를 모르고 참람한 짓을 벌여 왔습니다. 공손연이 갑자기 폐하의 신하를 자처하는 것은 뭔가 수상합니다. 잠시 시간을 두고 요동의 움직임을 지켜보십시오.”
하지만 손권은 공손연을 젼혀 의심하지 않았다.
“공손연은 야심이 크기 때문에 우리와 손 잡고 위나라를 침략하려는 것이오. 짐과 공손연은 서로 목적이 같으니, 힘을 합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요. 저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오!”
결국 손권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요동에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233년 가화2년 3월, 손권은 공손연을 연왕에 임명한다는 조서를 작성하고 태상 장미, 집금오 허안, 장군 하달 등에게 막대한 재물과 함께 병사 1만을 주어 요동으로 가게 하였다. 다행히 오의 사절단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요동에 도착했지만, 공손연의 음흉한 계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주 조예가 요동을 경계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이번에 오의 대규모 사절단이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요동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중원의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조금 더 시간을 벌어야 겠는데..’
위나라의 침략이 두려웠던 공손연은 오의 사절단을 제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공손연의 군대는 오의 사절단을 기습했고, 무방비 상태로 기습을 받은 오의 사절단은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장미, 허안 등은 생포되었고, 오의 병사들도 모두 무장해제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공손연은 장미, 허안 등의 목을 베어 위 황제 조예에게 보내고, 엄청난 재물과 수천 명의 병사들은 자신이 거두어 들였다. 그러자 조예는 공손연을 대사마에 임명하고 낙랑공(樂浪公)에 봉해주었다.
반면 이 사건으로 손권의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손권은 길길이 날뛰며 소리쳤다.
“짐의 나이가 예순이 될 때까지 온갖 어려움을 모두 이겨냈는데, 요동의 쥐새끼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니 참을 수가 없다! 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가서, 쥐새끼의 목을 베어 바다에 던질 것이다. 설사 일이 잘못되더라도, 짐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자 상서복야 설종 등 대신들이 일제히 손권을 뜯어말리고 나섰다.
“폐하, 높으신 신분으로 어찌 한낱 쥐새끼를 직접 상대하려 하십니까?! 이는 격이 맞지 않는 일로, 폐하께서 요동에 가시면 천하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 겁니다.
그리고 요동까지 뱃길로 이동하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과 같습니다. 앞서 주하의 군대도 풍랑을 만나 산산히 부서지지 않았습니까?! 무사히 요동까지 도착해도, 병사들이 지쳐 제대로 싸우지 못할 겁니다! 부디 요동을 공격하는 일은 위를 멸망시킨 이후로 미뤄 주십시오!”
손권은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으려 했지만, 대신들이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화를 가라앉혔다.
이렇게 손권은 요동 정벌은 포기했지만, 서쪽의 제갈량은 북벌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234년이 되자, 제갈량은 네 번째 북벌 준비를 마치고 황제 유선을 알현하였다.
“폐하, 신이 3년동안 군대를 출병시키지 않고 나라 살림을 보살핀 결과, 군량과 말먹이 풀이 넉넉하고 병사들도 기운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전력을 다해 위를 공격해 중원을 되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유선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승상,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삼국 중에 우리 한의 국력이 가장 약하오. 험한 지형을 이용해 굳게 수비를 하면서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 아니겠소?!”
이에 제갈량은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폐하, 선제께서 나라를 여신 것은 한 황실을 부흥시켜 간사한 적들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음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우리의 국력이 가장 약한 상황에서 그저 지키기만 한다면, 위, 오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져 결국 우리가 먼저 패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력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영토를 넓혀서 국력을 키워야 합니다!”
“승상의 뜻이 그러 하다면 내 북벌을 허락하겠소. 이번에는 꼭 좋은 소식을 들려주길 바라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만약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하면, 신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황궁을 나온 제갈량은 소열 황제 유비의 사당으로 향했다. 제갈량은 소, 양, 돼지 등 제물을 갖추어 제사를 지내면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유비에게 전했다.
“신 제갈량이 수 차례 군사를 내었으나, 중원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신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울 것이니, 폐하께서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제사를 마친 제갈량은 황제 유선에게 상주문을 하나 올리고 한중으로 떠났다. 상주문은 오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오가 회남을 공격하게 만들어 위의 수비병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였다.
며칠 뒤, 참군 비의, 시중 동윤(董允)이 사신이 되어 건업을 방문했는데, 다행히 손권은 제갈량의 위나라 협공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날 저녁 손권은 사신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 주었는데, 술자리가 무르익자 손권이 비의에게 물었다.
“제갈 공을 위해 선봉에 서는 장수는 누구이고, 옆에서 군사업무를 돕는 사람은 누구요?” “선봉장은 정서대장군 위연이고, 군사업무는 장사 양의가 돕고 있습니다.”
비의의 대답에 손권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내 멀리 떨어져 있으나 두 사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소. 위연과 양의는 재주가 조금 있지만 소인배에 불과하니, 훗날 제갈공이 없어지면 큰 분란을 일으킬 것이오. 이들은 임무를 맡은 지 오래되어 적지 않은 세력을 키웠을 것인데,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훗날 재앙이 닥칠 것이오!”
손권의 말에 비의는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이웃 나라의 황제가 자신들의 치부(恥部: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부분)를 이리 잘 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비의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데, 동윤이 나서서 말했다.
“폐하! 위연과 양의가 불화한 것은 사적인 감정일 뿐이며, 과거 경포(黥布)와 한신(韓信)처럼 관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강적을 토벌하고 천하를 통일해야 하니, 널리 재능 있는 사람들을 등용해야 합니다. 후환을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물리친다면, 오히려 비바람을 일으켜 배를 부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손권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난 비의만 뛰어난 인재인 줄 알았는데, 동윤도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구려! 자네들 같이 훌륭한 인재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내 기쁘네!”
동윤의 재치 있는 대답 덕분에 잔치는 화기애애하게 끝났고, 손권이 공동출병을 약속했다는 소식에 제갈량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갈량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군량수송이었다.
‘이번에도 사마의는 나와 싸우려 들지 않을 것이다. 압도적 전력을 바탕으로 수비를 하며 우리가 군량이 떨어질 때를 기다리겠지··· 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군량수송을 원활하게 해야 하는데···’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