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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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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801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7 07:00
조회
428
추천
5
글자
13쪽

80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80화




산 속의 해는 짧다. 어느새 늬엿늬엿 산자락을 넘어가는 붉은 노을을 보던 천마와 슬기, 실리엔등의 얼굴에도 저물어가는 태양 빛이 붉게 번져 올랐다.

“개토가 좀 늦네. 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슬기가 천마를 힐끗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선 천마는 두 시간 전부터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바위처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슬기는 분명 아무런 자세 변화가 없는 천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속이 조금씩 끓어오르고 있음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개토야, 빨리 와라. 지금이라도 접속하면 머리는 건진다.’

팔 하나쯤은 날아갈지도 모르겠지만, 목숨이라도 건사하면 그게 어딘가 하는 생각을 하며 슬기는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한 마음이 되었다.

문득 천마가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어허, 교수라는 작자들 대가리를 들고 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인가보군. 꼭 들고 올 필요까지는 없는 일인데 말이야. 그냥 힘들면 포기하고 올 것이지...”

괜한 일을 시켰다는 듯이 말하는 천마의 모습에 순간 멍하니 입을 벌렸던 슬기는 재빨리 그의 말에 동조했다.

“맞아, 아무래도 개토가 듣는 수업이 많나 봐. 하나하나 찾아다니다 보면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

“흥, 그깟 거짓 스승놈들의 대가리 따위가 무에 중요하다고! 이놈이 제 목숨 귀한 줄도 모르고, 승단무의 시기를 놓치는 구나.”

천마의 어투에서 깊은 빡침을 느낀 슬기가 조심스레 물었다.

“승단무가 뭐야? 그게 개토 목숨까지 걸린 일이야?”

물어보던 슬기는 돌아보는 천마의 시선에서 만년한빙과 같은 찌를 듯한 한기를 느끼고 그만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흥, 파천무의 단공이 올라가는 수련을 승단무라고 하는데, 이걸 놓친다면 녀석은 본좌가 누차 말한대로 칠공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될 것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천마의 말에 슬기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뭐? 아저씨, 아침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말은 안했었잖아?!”

“본좌가 왜?”

천마의 반문에 슬기는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그렇게 오늘 수련이 중요했다면,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어야지!!”

하지만 슬기의 외침에도 천마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고수했다.

“무슨 소릴 하는게냐, 모든 수련은 모두 동일하게 중한 법. 하물며 깨달음과 진보는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녀석에게 미리 말해줘야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만일 깨달음의 시기를 미리 알고 준비한다면 그게 과연 제대로 된 깨달음이겠느냐, 흥!”

큰 콧방귀 소리 이후로 천마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 모습에 슬기는 마음 한 구석이 왠지 무거워졌다. 비록 게임 안이고, 캐릭터의 죽음이야 늘상 있는 일이며, 죽어도 다시 살아나면 그만이라지만, 왠지 천마의 반응은 광개토의 죽음이 그런 단순한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든 까닭이었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이미 해는 산을 넘어갔다. 노을로 붉게 물들었던 서쪽 하늘은 어느덧 그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고, 동쪽 하늘은 이미 남청색으로 완연한 밤하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윽고 천마가 팔짱을 풀며 돌아서더니 말했다.

“아가씨야, 밥이나 먹자.”

평소와 다름없는 그 천연덕스러운 말투에 슬기는 방금까지 그가 말했던 광개토에 대한 얘기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순식간에 광개토의 죽음에 대한 걱정이 저녁거리의 고민으로 바뀌었다. 마침 낮에 실리엔이 잡아왔던 멧돼지가 슬기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으응, 그럼 오늘은 고기나 구워먹을까, 낮에 꼬맹이가 맛있는 저녁거리를 잡아왔던데.”

슬기의 말을 들은 천마가 기특하다는 듯 실리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이때다 싶었는지 실리엔이 예쁜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어떻게 이 자식은 아침 이후로 하루 종일 코빼기도 안 보일 수가 있죠? 나중에 오면 그 새끼, 아주 그냥 다리 관절을 여덟 개로 만들어 버리세요. 천마님.”

그 말에 천마는 가타부타 대답 않고 천막 속으로 들어갔다.


*


병태의 짧고 굵은 활약 덕분에 가복과 일학년 새내기들의 텐션이 급격히 올라갔다. 그 바람에 가복과 일학년의 단합회(?) 술자리는 병태의 생각 이상으로 길어져 버리고 말았다.

고삐리들과의 다툼이 있기 전만 해도 가장 변두리에 앉아 있었던 병태는 동기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술자리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옆자리에서 가복과의 퀸카 이지수가 병태의 술잔을 채워 주었다.

이지수에게 술잔을 받다니, 이런 꿈같은 일은 정말로 1학기 초에 꿈에서나 한두어 번 망상해봤을까,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도그럴것이 그녀는 학기 초부터 병태와 고교 동창이었던 성근, 대식 등과 조 활동을 하게 되었었고, 둘에게 이런저런 병태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지, 그 이후로는 그의 근처로도 오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어왔다.

“너 무슨 무술이라도 배웠니? 혹시~ 선수야?”

물론 아까 성근이와 대식이가,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병태가 시온 안에서 사부를 모시고 무술을 배웠니 마니 하는 그런 얘기들을 하긴 했었지만, 이지수는 그런 기억들을 모두 머릿속에서 지웠다. 살벌했던 고등학생들이 모두 물러가고, 다친 성근이를 대식이가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아직도 바로 옆 기둥 벽에는 선명하게 주먹 자국이 찍혀 있었다.

“아니, 무술은 무슨. 그냥 개인적으로 운동을 조금 했어.”

병태는 일부러 시온과 천마, 파천무등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모처럼 인싸로 올라섰는데, 그런 얘기들을 꺼낸다는 건 괜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야, 무슨 운동을 했길래 시멘트벽에 주먹으로 도장을 찍냐?”

성근과 대식이 떠나고 병태를 제외하고선 유일한 남학우, 박정우가 감탄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아니, 그게 뭐.. 어렵나? 하하하.”

“하하하”, “호호호”

병태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은연중에 자랑을 했지만, 다들 웃어주는 분위기였다.

혹시 조직에 몸담고 있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지만, 우스갯소리인지라 병태는 그리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취기로 얼굴이 발그레진 조교 누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병태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과는 반 이상이 여자니까, 남자인 니가 우리 과 애들 잘 지켜야돼. 알겠지?”

“선배님, 제가 뭐라고 과 여자애들을 지킵니까?”

병태가 손사레를 치자, 여학우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병태를 추켜세웠다. 이지수가 기분 좋은 향수 냄새와 함께 몸을 바짝 붙여오며 말했다.

“나부터 지켜줘야 돼, 장병태. 알겠지?”

살짝 얼굴이 붉어진 병태는 고개를 젖혔다. 그의 시선에 저쪽 변두리에 홀로 앉은 정해영이 보였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이서 아웃사이더로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앉은 자리만큼이나 거리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소속감과 동기들의(특히 여자 동기) 환대에 병태는 마치 비행기를 탄 듯 붕뜬 느낌으로 자리까지 옮겨가며 2차 술자리에 돌입했다. 잠시 귀가할 것을 망설이기도 했지만, 주인공이라며 잡아끄는 동기들의 손길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손길이 처음이라 병태는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렇게 즐겁게 노닐던 병태는 문득 드는 이상한 기분에 급히 외쳤다.

“지금 몇 시야?”

다급한 그의 말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지수가 폰을 들었다.

“7시 반인데, 왜?”

“뭐? 아침? 저녁?”

“무슨 소리야, 당연히 저녁이지. 봐봐, 밖에도 지금 어둑어둑해졌잖아.”

그 말에 병태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으악!! 큰일났다. 이런 제기랄!!”

그러자 일행들이 모두 깜짝 놀라 병태를 쳐다봤다.

“왜, 왜?!”

“아놔!! 내가 미쳤지!! 이제 난 죽을거야!!”

사부한테 맞아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급히 자리를 빠져나가려던 병태는 급격하게 몸을 움직이는 순간, 갑자기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답답한 욕지기에 그만 목구멍에 걸린 액체를 입밖으로 토해내고 말았다.

푸악-

갑자기 병태의 입에서 튀어나온 선혈 한웅큼이 테이블로 쏟아졌다.

“꺄~악!!!”

갑작스런 봉변을 당한 일행들이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병태 역시 자기 목구멍에서 나온 선혈을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깜짝 놀란 병태가 말하려는 순간, 다시 한 번 한웅큼의 선혈이 입에서 쏟아졌다. 다급히 병태가 손으로 막으려 하자, 도리어 피는 사방으로 튀었고, 주변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으어, 뭐..뭐야. 이게..?”

두 손을 적신 피를 보며 말을 하려던 병태는 갑작스레 온몸으로 치밀어 오르는 열기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


배부르게 고기를 먹고 난 천마를 보고서, 이제 기분이 좀 좋아졌겠다 생각하며 슬기가 넌지시 물었다.

“승단무인가 뭔가 하는 그거 있잖아. 그거 안 한다고 정말로 죽거나 그러진 않겠지?”

기분 좋게 앉아 있던 천마가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본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느니라. 본좌가 산다 하면 살 것이요, 죽는다 하면 죽는 것이니라.”

“그럼, 어떡해? 좀 전에 수련 빼먹었잖아.”

슬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며 동고동락 한 터라 이제는 실제 가족보다 더 가족처럼 느껴지는 광개토였던 까닭이다.

그런 슬기의 안색을 살핀 천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마땅히 승단무의 깨달음을 통해 2단공으로 상승해야할 천마기이건만, 만약 천마기가 충분히 성장하거나, 시일이 다 되었는데도 순리대로 상승치 못한다면, 곧 역천의 성질을 천마기는 보유자의 육체를 공격하고 만다.”

“뭐? 왜? 어차피 기운이란 것도 그 몸의 일부잖아. 근데 왜 그게 몸을 공격한다는 거야?”

슬기가 다급하게 묻는데, 천마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천마기, 고 놈이 본디 성질이 더럽게 더러운 놈이거든. 이름부터 ‘천마’기 아니냐? 종놈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주인의 성정을 안다고, 아무래도 천마라는 놈이 성질이 보통 더러운 새끼가 아닌 모양이다.”

매우 근엄한 표정으로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 욕을 하는 듯한 모습의 천마를 보며 슬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마가 아저씨 말하는 거 아냐? 지금 아저씨, 본인 욕하는 거야?”

하지만 천마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여전히 천마기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천마기가 오장육부를 공격하면, 입과 코에서 토혈이 이루어지니라. 그러나 이때는 아직 바로 잡을 여지가 있다. 비록 순리에는 조금 벗어났지만, 본좌가 조금 도와준다면 충분히 적공을 이룰 수 있는 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시기를 놓친다면, 더욱 악이 뻗친 천마기는 뇌를 비롯한 사지를 공격할 것이며, 그리하여 눈과 귀에서 피를 쏟아내게 되면 그때는 그냥 죽은 목숨이라 보면 되느니라.”

눈과 귀를 운운할 때부터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슬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까지 되면 정말 죽는 거야? 아저씨도 못 살려?”

언젠가부터 슬기의 마음속에서 천마는 무엇이든, 어떤 위기나 어려움이든 모두 해결해 줄 것만 같은 그런 존재였다. 그런 천마가 죽은 목숨이라고 단정 짓 듯 말하자 슬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슬기는 애써 웃었다.

“그렇지만 아저씨도 알다시피 개토는 요괸데. 알잖아, 요괴들은 죽어도 금방 다시 살아나는 거. 아마 천마기 때문에 죽더라도 금방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날거야. 안 그래?”

그러자 천마가 슬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비록 앞머리에 눈이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그렇게 슬기를 쳐다보던 천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자 놈이 죽는다고, 녀석의 몸 속에 있던 천마기가 사라지더냐?”

슬기의 눈이 커졌다. 그랬다. 그동안 몇 번 죽은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몸 속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은 살아날 때마다 미쳐 날뛰는 천마기에 의해 계속 죽게 될 것이니라. 그렇게 계속 죽다보면 녀석은 차라리 자신이 한 번만 죽고 마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다.”

천마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엄숙했고,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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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5화 19.12.05 43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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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화 19.12.04 438 5 13쪽
72 72화 19.12.04 423 5 12쪽
71 71화 19.12.04 433 7 12쪽
70 70화 19.12.03 437 5 11쪽
69 69화 19.12.03 439 5 12쪽
68 68화 19.12.03 456 5 11쪽
67 67화 19.12.02 442 6 12쪽
66 66화 19.12.02 464 4 13쪽
65 65화 19.12.02 450 6 12쪽
64 64화 19.12.01 436 5 11쪽
63 63화 19.12.01 460 4 12쪽
62 62화 19.12.01 454 4 11쪽
61 61화 19.11.30 474 4 12쪽
60 60화 19.11.30 490 4 13쪽
59 59화 19.11.30 48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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