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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넘기 방.

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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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778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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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76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76화




“미치겠구만. 허참.”

마흔을 훌쩍 넘어 내일모레면 쉰 살이 될 빌헬름이 너털웃음을 짓자, 그의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 잡혔다. 굳은살이 박힌 오른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자, 거친 턱수염의 감촉이 까끌까끌하게 느껴졌다.

“이봐, 그러니까 나보고 뭘 하라고?”

빌(빌헬름)이 다시 묻자, 앞에 서 있던 차갑게 생긴 젊은 여성 관리 요원이 실내를 둘러보며 방금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 했다.

“천마 일행을 추격하여, 그들 일행에 합류하세요.”

그녀의 말은 빌헬름 뿐 만 아니라 이 방에 있는 모든 현장 요원들의 귀에 똑똑히 들어갔다.

“아니, 그거 말고 말이오. 왜 나 같은 늙다리 아저씨를 파견하는 거냐고?”

빌은 말하면서 옆에 함께 앉아있는 요원들을 슬쩍 쳐다보았다. 딱딱한 돌벽으로 둘러싸인 학교 교실같이 생긴 방안에 십여 명의 남녀 요원들이 모여 앉아 있는데, 그 중에서 빌보다 나이 든 요원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과반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요원들이었다.

“환심을 사야한다면서? 천마라는 놈이 년이 아니라 놈이라면서? 근데 나 같은 늙은 남자보고 뭘 어떻게 환심을 사라는 거냐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빌의 얼굴을 보며 관리 요원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천마의 성적 취향은 현재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동성애자일 경우의 수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건 알겠는데, 내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빌은 그만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관리 요원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지금 동성애자 비하하시는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빌은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 여자가! 지금 위험한 소리를 하는구만? 그럼 동성애자도 아닌데, 나보고 동성애자 역할을 하라는 건 인권 무시 아닌가?”

빌의 항변에 관리 요원은 딱딱한 목소리로 명료하게 답을 제시했다.

“싫으면 그만두시든가.”

옳거니 하고 냉큼 그만두겠다고 말하려는 빌보다 한 발짝 빠르게 그녀가 뒷말을 이었다.

“오해 하실까봐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번 프로젝트만 그만두시라는 게 아니라 아예 요원일을 그만두시라는 말입니다.”

밥줄을 끊겠다는 그녀의 말에 빌은 하려던 말을 꿀꺽 목 뒤로 삼켰다.

‘지는 그냥 말만 전하면 땡이라는 거지! 하여간 관리직에 있는 것들이란!! 지들은 그냥 명령만 내리면 끝이라 이거지?! 씨발 것들!’

빌은 부디 천마가 자신과 같은 취향을 가졌기를 바랐다. 어차피 이 프로젝트는 파견되는 12명의 요원 중 한 명만 성공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냥 설렁설렁하다보면 야심차고 어여쁜 여성 요원이 먼저 성공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알기라도 한 걸까, 관리 요원이 인센티브를 꺼내 들었다.

“성공한 요원에게는 미션수당으로 1000%를 지급하겠습니다.”

그 말에 빌이 벌떡 일어났다.

“씨발, 내가 한다, 내가 해!! 뽀뽀도 하고 부비부비도 다 할게, 내가!!”

다른 요원들과 달리 빌에게는 딸린 처자식이 있었다. 게다가 마침 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다.


하지만 돈은 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빌을 비롯한 모든 요원들이 기대 이상의 보너스에 들뜨기 시작했다. 미션 난이도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천마 일행을 찾아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 일행에 합류하여 그들의 동태를 파악 및 보고하고, 특히 천마라는 작자에 대한 정보를 모으라는 것이 미션의 전부였다.

“혹시 그를 죽여야 하나요?”

가장 예쁘게 생긴 은발의 여성 요원이 손을 들어 묻자, 관리 요원이 고개를 저었다.

“천마 일행이 있는 곳이 일급 레이드 던전이나, 범죄 집단 소굴인가요?”

역시나 매력적으로 생긴 다른 여성 요원의 말에 관리 요원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천마라는 자가 흉악무도한 지명 수배자입니까?”

예쁜 애 옆에 있던 이쁜 애 옆에 있던 다른 예쁜 요원의 질문에 관리 요원이 다시 고개를 젓자, 현장 요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수근거렸다.

“전혀 문제될 거 없는 미션이잖아?”

“그냥 어떤 파티의 환심을 사서 함께 다니기만 되는 미션에 인센이 1000%라고?”

“혹시 국가 원수 급 중요 인물 아닐까?”

현장 요원들끼리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관리 요원 캐릭터 ‘마리’를 조작하고 있던 이벤트 관리실의 수석부팀장 차은혜는 사실 ‘이 천마’가 니들이 아는 ‘그 천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이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게 더 나을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럼 잠시 후에 특수 장비들을 하나씩 지급할테니 그걸 받고 떠나도록 하세요.”

이어서 관리 요원은 벽에 걸린 지도의 한 점을 가리켰다.

“천마 일행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던 장소는 여기, ‘성 슈드의 성좌’입니다. 이들은 일주일 전에 이곳에서 천마군들을 상대하고 그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곳에서부터 추적을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관리 요원의 손끝을 향했다.


*


빌은 다른 요원들과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그가 그럴듯한 이두 마차를 하나 빌려 소울 시를 출발한 것은 다른 요원들이 모두 사라지고도 반나절이나 지난 무렵이었다.

내일 모레면 쉰 살이 되는 그가 인생을 살며 깨달은 것은, 모름지기 일의 성패는 우연과 필연의 꼬임과 풀림에 달린 법이라는 것. 만약 천마 일행이 정말 그와 인연이 있다면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만나게 될 것이었고, 인연이 아니라면 아무리 서둘러도 만나지 못할 것이었다.


현실의 대한민국과 비슷한 기후를 지닌 사우스랜드는 이미 한껏 무더운 여름에 접어들고 있었다. 마부석이 가려지도록 차양막을 길게 앞으로 빼내 설치한 빌은 마차를 끄는 말들을 다그치지 않고, 적당한 소리로 길을 따라 마차를 몰았다.

한여름에 대낮이라 그런지 주변에 다니는 마차도 없었다. 사실 기후 탓이 아니라, 날씨가 좋은 날에도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길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말을 타고서 산과 들판으로,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걸 선호했다. 그들에게 이리저리 구불구불한 길은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했다.

“길은 모름지기 돌아가는 맛이지.”

빌은 완만하게 이리저리 휘어져가는 길을 따라 흔들리는 마차의 움직임에 맞추어 박자를 세어 가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빌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빌의 마차가 달리고 있는 길 바로 옆에서 한 남자가 평원을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전방이 아닌 하늘을 향한 채였다.

마치 하늘에 있는 무언가를 쫓기라도 하는 듯한 그 모양새에 빌은 저도 모르게 차양막을 슬쩍 젖히며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시선을 내려 그 남자를 쳐다보자, 그 남자는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서 달리고 있었다.

“쯧, 저러다 넘어지고 말지.”

하지만 빌의 예상과 달리 하늘을 보고서 달리는 그 남자는 턱에도 눈이 달렸는지, 용캐도 넘어지지 않고 잘만 달렸다.

그 기묘한 남자를 쳐다보고 있다 보니 빌이 이끄는 마차의 속도가 절로 줄어들었다. 빌은 이 남자의 행동이 자못 신비로와 좀 더 지켜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 기묘한 동행을 하던 중에 이 우연한 만남을 인연으로 만들어야 할지, 그저 우연으로 치부해야 할지 결정지어야 할 때가 왔다. 곧 완만하게 굽어지는 길을 따라 빌의 마차와 하늘을 보는 남자는 헤어지게 될 참이었다.

결국 빌은 남자에게 크게 소리쳤다.

“이보쇼. 뭘 그리 열심히 보는 거요?”

“억!!”

빌의 목소리가 방해라도 됐는지, 하늘을 보던 남자가 발을 헛디딘 모양새로 넘어지고 말았다.

빌이 급히 마차를 세우고, 뛰어내리자 넘어졌던 남자는 어느새 일어나서 빌을 노려보았다.

“누구시길래 본인의 행사를 방해한 거요?”

하늘에 남은 천마의 잔상을 쫓던 파용은 방해꾼 때문에 스킬이 깨지자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에도 짜증이 잔뜩 묻어났다.

하지만 빌은 그런 파용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허리에서 술 부대를 끌러 마개를 열며 파용에게 내밀었다.

“미안하게 됐소. 본의 아니게 아까부터 보게 되었소만, 꽤 먼 거리를 달리셔서 목이 꽤 마르시겠소.”

대뜸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빌의 모습은 밉지 않는 능청스러움이 있어서 파용은 그만 화를 낼 시점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술까지.

“겉은 이래도 귀한 술이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멜라니산 와인인데..”

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파용이 가죽부대를 낚아채더니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가죽 부대에 마법이라도 걸렸는지 와인은 무척 시원하고 청량해 한 모금 두 모금 마실 때마다 파용의 마음속에 있던 짜증이 점점 사라져 갔다.

금세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마셔버린 파용은 한숨을 내쉬고서 빌에게 빈 가죽 부대를 돌려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소.”

“아, 별말씀을. 아직 많이 남아있거든!”

그렇게 손 사레를 친 빌은 적대감이 사라진 파용을 쳐다보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계속 하늘을 보면서 달리시던데, 대체 뭘 그렇게 쳐다보신 거요?”

“아, 그건..”

빌의 능청스러운 태도와 따뜻한 행동에 파용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


“사부님, 오늘은 제자가 꼭 가야할 곳이 있어서..”

“아오, 입만 열면 구라치는 녀석. 아이디가 아깝다, 인마!”

광개토가 입을 열기 무섭게 광개토의 천적, 슬기가 달려들었다. 슬기는 이른 아침부터 수련 빼먹을 생각만 하는 이런 못된 놈은 욕으로 장을 담궈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아가씨! 오늘은 진짭니다. 수강 신청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뭐? 수강 신청? 지금 방학이었어?”

“아니, 맨날 하루 종일 접속해 있는 거 보면 모르십니까? 방학이니까 이렇게 접속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난 또 수업 빼먹고 게임하는건 줄 알았지.”

“저, 이래뵈도 엄청 성실한 사람입니다. 성.실.한.광.개.토. 모르십니까? 역사책에도 나오는 건데.”

“실성한 광개토로 만들어 버릴까보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광개토의 성실성은 슬기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녀 입장에서야 다른건 할래야 할 수 없기 때문에 잘 때 말곤 항상 시온에 접속하는 거였지만, 광개토는 천마와 약속을 한 이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새벽과 저녁에는 반드시 시온에 접속해 파천무를 수련해왔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입산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도 처음을 제외하고선 거의 한달 가까운 기간동안 성실하게 수련을 따라왔었던 광개토였다.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마가 냉기가 풀풀 풍기는 차가운 어조로 광개토를 노려보며 말했다.

“수강 신청이 무엇이냐?”

광개토는 빠르게 준비한 답변을 내놓았다.

“듣고 싶은 수업을 신청하는 겁니다.”

“수업? 그것은 무언가를 배운다는 말 아니냐?”

“네. 그렇습...”

대답을 하던 광개토는 갑작스레 천마에게서 일어나는 만년빙설같은 기세에 그만 입이 얼고 말았다.

“이 놈이 감히 본좌 외에 딴 사부를 두고 있다고? 허허. 이런 빌어먹을 경우를 봤나, 클클. 본좌가 뻐꾸기 새끼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놈의 뻐꾸기를 튀겨 먹을까, 쪄 먹어 버릴까?”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습성이 있는데, 둥지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본능적으로 원래 둥지에 있던 알들을 모두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버리고, 어미의 사랑을 독차지 한다. 그러면 제 새끼들의 원수인지도 모르고 어미는 이 뻐꾸기 새끼를 키우게 되고, 결국 장성한 뻐꾸기는 먹튀를 하고 만다.

천마의 눈에는 광개토가 꼭 뻐꾸기 새끼 같아 보였다.

“아, 아닙니다. 사부님!! 저에게 사부님은 오직 한 분, 바로 천마 사부님 뿐이십니다!!”

광개토는 급히 그 배움이라는 것이 천마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고, 슬기까지 가담하여 광개토를 옹호하고서야 천마의 노기는 겨우 사그러들었다.

평소와 같은 분위기로 돌아온 천마가 광개토에게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본좌가 십분 양보하겠노라. 네 놈은 가서 교수라는 작자들에게 네놈이 그 녀석들의 제자가 아니라는 확인서를 받아 오도록 해라. 그게 아니라면 놈들의 목을 잘라와도 좋다.”

“네?”

멍한 표정을 지은 광개토는 한참 동안이나 로그아웃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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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화 19.12.04 438 5 13쪽
72 72화 19.12.04 422 5 12쪽
71 71화 19.12.04 433 7 12쪽
70 70화 19.12.03 437 5 11쪽
69 69화 19.12.03 439 5 12쪽
68 68화 19.12.03 456 5 11쪽
67 67화 19.12.02 442 6 12쪽
66 66화 19.12.02 464 4 13쪽
65 65화 19.12.02 44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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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19.12.01 45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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