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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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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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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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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2 12:54
조회
464
추천
4
글자
13쪽

66화

DUMMY

(66편)


슬기는 오랜만에 옛 남친를 만났다.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라 좀 더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무슨 일인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왠지 얼굴이 가물가물한듯해서 그녀는 속상했지만, 오빠는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서 오랜만의 데이트에 신이 났는지 그녀의 팔을 잡고는 서둘러 길을 걸었다.

좀처럼 이렇게 손을 잡고 간 적이 없었던 터라 슬기는 살짝 당황해하면서도 일찍이 맛보지 못한 달콤함을 느끼며 마지못해 이끌렸다.

그렇게 둘이 걸어간 길의 끝에 커다란 아치형 문이 저 혼자 달랑 서 있었다.

아치형 문 위에 대문짝만하게 ‘천마성’이라 쓰인 현판을 보고서 슬기가 급히 오빠의 팔을 잡아 당겼지만, 오랜만에 만난 오빠는 호리호리한 체격임에도 어찌나 힘이 센지 버틸래야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빠의 손에 잡혀 성문을 지나자 갑자기 왠 정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정원에는 백여 그루의 나무가 멋들어지게 심겨 있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인줄 알았던 그것들은 사람이 거꾸로 바닥에 박혀 있는 모습이었다. 슬기는 그 낯익으면서도 괴기스러운 광경에 그만 헛바람을 삼키고 말았다.

“헉!”

그 소리에, 마침 한 사람이 나무를 심다 말고, 아니, 사람을 거꾸로 땅바닥에 꽂다 말고 슬기를 쳐다보았다. 익숙하기 그지 없는 흑의의 그 사내는 바로 천마였다.

“아..아저씨.”

천마가 특유의 눈이 보이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하고서 슬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슬기는 사람 시체로 이루어진 이 살벌한 광경의 정원 한가운데에서도 천마가 앞에 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곧 함께 왔던 남친이 사라진걸 깨닫고 급히 천마에게 물었다.

“아저씨, 우리 오빠 못봤어?”

“봤다.”

그 대답에 슬기는 다급히 물었다.

“어디서?”

그러자 천마가 옆에 심은 나무 둥지 같은 사람 몸뚱아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헉!!!!”

비명소리 대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뜬 슬기는 캄캄한 자신의 방 천장을 바라보고서 곧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악몽이었구나...’

처음에는 분명히 악몽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꿈에 나와준 남친의 모습은 너무나도 그리웠고, 또한 달콤했었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는 것.

‘목걸이가 없어서 그래. 얼굴을 못 본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거야.’

노스텔지어의 목걸이가 있을 때는 매일매일 남친과의 추억을 재생하곤 했었다. 당연히 꿈속의 남친 모습은 현실처럼 또렷했었다. 그랬었는데 오랜만에 남친이 나온 이번 꿈은 그렇지 않았다. 남친의 얼굴 윤곽이 불분명한 만큼 그를 잊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슬기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게다가 그렇게 남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 천마라는 작자가 꿈에서까지 나타나 남친을 땅바닥에 처박아 버려?!

슬기는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고 화내다가도, 다시 슬퍼하고 괴로워했다.

그렇게 소리없는 슬기의 눈물은 아무도 닦아주는 이 없이 흐르다가 말랐다가 다시 흐르기를 반복했다.


*


이틀 뒤, 남끝별의 성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더 원 길드의 제1 공격대인 ‘더 원’ 공격대가 성좌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렬의 맨 뒤쪽 편에서 미스란디르는 평소처럼 그의 백마를 타고서 느긋한 손길로 은색 수염을 쓰다듬으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햐, 그 놈을 어떻게 해야 입맛대로 써먹을수 있을까? 강하면서도 적당히 멍청해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놈이었는데.’

그에게 큰 수모를 안겨줬던 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천마라는 자는 이번 확장팩 끝판왕의 동명이인답게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모양이었다. 일찍이 드래곤 공격대도 단신으로 박살내더니, 이번에는 도깨비 소굴까지 개박살을 내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것도 단순한 박살이 아니라, 아예 공격대원들을 땅에다 심어서 사람 나무로 정원을 만들었댄다. 이정도면 개박살이라 할만했다. 그 결과들을 귓말을 보냈던 에릭도 겨우 나무 꼴을 면했다며 벌벌 떨어댔다.

‘참 좋은 패인데 말야.’

정작 그 자신도 개박살 난 적이 있으면서도 군사는 그런 적이 전혀 없는 냥, 천마를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그에게 천마는 그저 힘은 세지만 적당히 멍청한 패, 잘만 쓰면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패에 불과했다.

의심이 많은 자들은 다루기 어렵다. 하지만 천마는, 그는 물론 그의 일행들도 잠시 말을 섞어 본 결과, 딱히 머리를 잘 굴리지도 못했고, 의심도 적은 자들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목걸이 하나 때문에 그렇게나 순순히 더 원의 마당개 노릇을 하겠다고 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녀석들이 그리 뛰어난 머리를 가지지 못했다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가 있었으니, 그들은 전략과 전술을 짜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한가지, 세심함이 부족했다.

헤어질 때면 당연히 포박을 풀어주고 가야지, 그것들은 어이없게도 손하나 까닥하지 못하는 군사를 그대로 두고 가버렸다. 생각이 없는 것들이었다. 아니, 멍청한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늑대밥이 되도록 그렇게 남겨두고 떠났지.”

결국 군사는 지나가던 배고픈 늑대무리에게 잡아 먹혔었다. 그 끔찍한 경험은 곧 천마와 그 일행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군사는 결심했다.

‘이것들을 아주 그냥 골수가 쪽쪽 다 빨릴 때까지 부려먹어야지.’

힘 센 천마는 용병으로 사용하고, 잘생긴 놈은 잘생겼으니까 시종으로 부리고, 예쁜 소녀도 역시나 예쁘니까 시종으로 부리고, 못생긴 년은... 죽여 버려야겠다고, 그것도 입에 주먹만한 돌멩이를 한 세 개 쯤 집어넣은 다음에 죽여 버려야겠다고 미스란디르는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은 그보다 선결해야 될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이것들을 어디서 찾는다?”

어제 저녁에, 그러니까 2, 3, 7공격대가 성좌를 성공적으로 탈환한 그 다음 날 저녁에 에릭으로부터 귓말 벌레가 날아왔다.

그들이 성좌를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그 갑작스럽고도 생뚱맞은 보고에 미스란디르는 잠시 할말을 잃을 정도였다.

“목걸이 내놓으라며 그런 온갖 수모를 다 안기더니, 갑자기 다른 목걸이라도 구했나, 왜 떠났지?”

그딴 목걸이 하나 찾겠다고 무려 3주나 걸릴 거리를 불과 2주만에 주파했던 그들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달려왔을 터였다.

‘아니지, 천마라는 놈이 비행술이 있었었지?’

목걸이를 향한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살짝 퇴색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그들은 그 목걸이 하나 내놓으라며 사실상 몇 명 되지 않은 규모로 무려 정예 공격대원 백인의 앞을 막아 섰었다.

‘그리고 그 천마라는 놈은 혼자 공격대를 깨부술 정도로 셌었지. 그 놈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이길 줄 알고 있었던 거야..’

다시 그들의 간절함이 퇴색되어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못생긴 여자가 보였던 그 간절함 만큼은 진짜였다. 목걸이를 되찾고자 천마군에 맞서 성좌 탈환을 돕겠다고 결의한 그들이었다. 그걸 보면 목걸이를 향한 그들의 간절함은 진짜였다.

그랬기에 그들이 갑자기 그렇게 목걸이를 포기하고 떠날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히 그에 따른 방비도 하지 못했다.

혹시 다른 말이라도 남겼냐고 물어보니, 그저 나중에 다시 오겠다는 말뿐이었단다.

“설마하니 내가 계속 부려먹으려는 걸 알아 차린건 아닐테고.”

천마들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수집되어 있었더라면 그들의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도 있었겠지만,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얻은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군사는 충분한 정보를 얻어서 다른 약점을 잡기 까지 최대한 목걸이를 주지 않고 시간을 끌 계획이었다.

어쨌든 갑자기 그들이 종적을 감춘 이상, 그들의 위치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오늘 아침 에릭에게서 다시 한번 귓말 벌레가 왔었다. 괴마가 다시 천마군을 이끌고 와, 성좌를 빼앗겼다는 것이었다.

미스란디르는 자신이 오해했음을 인정했다. 천마의 제자라길래, 한번 죽으면 끝나는 유니크 몹인줄 알았더니, 특정 반복 이벤트를 수행하는 이벤트 몹이었던 모양이었다. 즉 그말인즉, 천마의 제자라는 것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는 매우 까다로운 존재라는 것이었다.

“죽이지 말고, 봉인을 하든 감금을 하든 해야 한다는 말인데..”

방도를 궁리하던 군사는 문득 드는 의문에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말하고 말았다.

“아니면... 아직 죽으면 안되는 것들이라서 살아난건가?”그렇다면 감금이나 봉인을 하더라도 결국은 풀려나게 될 것이고, 이번 성좌 탈환은 처음부터 실패가 결정난 이벤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다시 탈환을 해보면 확실히 알겠지.’

군사는 줄지어 떠오르는 의문점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계속 수염을 쓰다듬었다.


*


산 속의 밤은 일찍 찾아오는 법이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이름 모를 산 기슭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런 천막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천마 일행이 에릭에게서 보상 받은 고급 소비 아이템 중 하나인 ‘왕의 이동식 천막’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최고급 가죽인, 동대륙에만 서식한다는 ‘거대 코끼리’의 가죽으로 만들어져 상당한 수준의 방어력과 보온 효과를 갖추고 있었고, 실내가 널찍하여 네 명이 휴식을 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가운데 피워진 모닥불의 경우, 연기는 중앙에 길쭉하게 뚫린 공기 통로를 통해 모조리 천막 밖으로 배출되고 온기만 남아 모닥불 근처에 쪼그리고 앉은 일행들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슬기는 천마에게 망토를 건네받았다. 그녀가 반짇고리를 열어 바늘을 꺼내들자, 광개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씨, 그런 바늘로 아이템 수리가 가능합니까?”

“천이니까, 가능하지.”

슬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자, 광개토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아무나 바느질로 수리를 할 수 있습니까?”

왠지 그 말에 심기가 거슬린 슬기가 탁 소리나게 망토를 내려놓았다.

“아.무.나?”

슬기의 정색에 눈에 띄게 당황한 광개토가 급히 말했다.

“아니, 그게... 바느질 같은 건 좀 미적 감각도 있고, 손재주도 있어야 잘하지 않나 싶어서 말입니다.”

슬기의 인상이 점점 더 굳어갔다.

“미적 감각? 손재주?”

광개토는 점점 궁지에 몰리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는 사나이였다.

“솔직히 아가씨 얼굴을 보면, 아무래도 그, 미적 감각이나 손재주가 의심이 안 들 수가 없어서 말이지..말이..그게..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슬기의 살기에 광개토는 ‘말이지 말입니다’라는 말을 마저 할 수 없었다.

정색한 슬기가 가르치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개토야, 잘 생각해봐, 여기에 누구나 맞히기 쉬운 문제지가 있다 치자. 응? 누가 풀어도 100점을 받을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거지. 그런데 어느 날, 어떤 학생이 빵점을 받은 거야. 이 쉬운 문제들을~ 여기서 문제! 과연 빵점 받은 이 학생은 정말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일까, 사실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까?”

‘과연’이니 ‘정말로’, ‘사실은’ 같은 표현에서 이 질문의 의도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 광개토는 차마 외면하지 못했다.

“사실은..잘하는 학생?”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개토야.”

그 말에 광개토는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니까 아가씨의 말은, 정답을 알아야 빵점을 받을 수 있듯이, 미적 감각이 뛰어나야 반대로 추한 몰골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인데....

다시 말해, 일부러 만든 못난 얼굴이 저 정도로 괴악한 몰골이라면 그 반대로 나라가 망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경지, 경국지색의 미모로도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인 것인데, 평소 하는 행실하며, 툭툭 내뱉는 욕설을 볼 때는 차라리 지금 얼굴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광개토는 문득 슬기의 현실 얼굴이 궁금해졌다.

‘아가씨의 원판은 어떨까? 원판도 저럴까, 아니야. 원판이 못났었다면 일부러라도 캐릭터를 예쁘게 만들었을거야. 캐릭터 얼굴이 이렇게 개판이라는 것은 어쩌면 아가씨의 본 모습은...’

생각에 빠진 광개토의 모습을 자신의 논리에 감복한 것으로 생각한 슬기는 의기양양해하며 다시 바늘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망토에 바느질을 하려는데, 그만 실수로 자기 손가락을 찌르고 말았다.

“어맛!”

가운뎃 손가락에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피를 바라보던 슬기가 갑자기 픽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평온하게 잠든 얼굴을 하더니, 그대로 픽, 하고 사라져 버렸다.

“헐.. 뭐야, 바늘에 찔렸다고 잠까지 들어? 아가씨가 무슨 잠자는 숲속의 공줍니까?”

광개토는 갑작스런 슬기의 로그아웃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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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19.12.02 44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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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19.12.01 45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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