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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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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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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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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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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추천
5
글자
13쪽

59화

DUMMY

(59편)


낙심한 광개토는 실리엔의 다리를 놓았다.

‘차라리 죽는게 낫겠어.’

광개토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한 슬픔으로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곧 그의 몸은 그의 마음처럼 허공에 아무렇게나 나부꼈다. 그러다가 곧 천장에 떨어져 죽겠지만, 그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천마가 손을 든 순간, 광개토와 슬기는 순식간에 천마 앞으로 당겨져 왔다. 둘다 인지와 중력의 부조화를 느끼는 중에 갑자기 강제 이동을 당하자 꽤나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젠장할, 욱, 이거 기분 더러운데. 우우엑”

슬기는 구토가 쏠리는 걸 느끼며 얼른 눈 앞에 보이는 바닥을 향해 입을 열고 토했다. 그녀의 인지에서는 분명 땅바닥이 바닥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작용하고 있는 중력은 천장을 향해 있었고, 바닥을 보고 뱉어낸 구토는 결국 하늘을 향해 솟구치며 그녀의 턱과 옷에 흥건히 묻고 말았다.

“으악!!! 씨발!! 이 게임은 미쳤어!!!!”

슬기가 그녀의 몸과 옷에 묻은 오물에 질색하며 이런 것까지 구현해낸 시온의 어느 변태 개발자에 대해 마구 짜증을 내뱉었다.

천마는 일단 이들을 눈 앞으로 당겨오긴 했지만,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오물을 손으로 털어내며 슬기가 역정을 냈다.

“아저씨, 우리 좀 바로 만들어봐.”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아까 보니까, 적 대장이 쓰던 주술을 아저씨도 쓰던데, 이것도 그렇게 못해?”

슬기가 말하는 동안 광개토는 슬픈 표정으로 조용히 있기만 했다. 실연의 아픔이 큰 듯 했다.

슬기의 눈에 입구 쪽에서 아직도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천마군들이 보였다. 하지만 전투의 규모가 아까보다 작은 것이, 그들끼리의 분쟁이 정리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슬기가 다시 말했다.

“아무거나 말해봐. 언제 아저씨가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한 적이나 있어? 뭐, 그냥.. 돌아와라, 원래대로 되어라, 뒤집어져라. 뭐 그런 말들 아무거나 좀 해보라고.”

천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기를 쳐다보며 말했다.

“원래대로 돌아오너라.”

그러자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구토물들이 다시 모여들며 슬기의 옷과 턱으로 돌아오더니, 이내 슬기의 입으로..

“미쳤어!?”

무슨 일이 일어나나 지켜보던 슬기가 다급히 손으로 입을 막으며 빽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재빠른 방어에 오물들은 옆으로 튕겨 날아갔고, 마침 곁에 있던 광개토가 오롯이 뒤집어 써버렸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슬기.

하지만 광개토는 나갔던 정신이 아직 안돌아왔는지, 얼굴에 튄 오물들이 흘러내리는 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슬기는 얼른 손을 들어 닦아주려 했지만, 어짜피 손도 더럽긴 마찬가지라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얘가 충격이 심했나봐.”

슬기는 광개토의 옷자락으로 그의 얼굴을 천천히 닦아 주었다.

의도치 않은 현상이 불러일으킨 참상(?)을 보던 천마가 다른 명령을 내렸다.

“그거 말고, 원래대로 돌아오너라.”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슬기와 광개토는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넘어지고 말았다.

“와, 다행이다!”

원래대로 돌아온 중력감에 인지와 감각이 일치하는 것을 느끼며 슬기는 안도했다.

실리엔도 바닥에 박아놓았던 손가락을 뽑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곧 광개토에게 다가와 상냥하게 말했다.

“주인님. 죄송해요. 방금은 소녀가 부끄러운 나머지 실언을 했나 봐요.”

그 말이 그렇게나 힘이 되었을까, 반쯤 넋 나간 표정이던 광개토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깜짝 놀랄만한 속도로 실리엔의 어깨를 붙잡은 광개토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그렇지, 리엔? 우리 리엔이 나보고 정말로 죽으라고 했던 건 아닌거야, 그렇지?”

그 와중에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글썽하게 모여있었다.옆에 선 슬기는 울면서 웃는 광개토의 그 꼴불견한 모습에, 천마를 슬그머니 실리엔 옆에 갖다 놓고 싶었지만, 조금 전 생기 잃은 광개토가 정말로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실리엔이 한 번 더 진심을 보였다간 정말 광개토가 게임을 접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마지막 남은 우리 편 천마군들이 거의 동시에 모두 쓰러지자, 천마군들이 우루루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것들 좀 처리해줘, 개토야, 꼬맹아. 우리는 성화 키러 가자.”

슬기의 말에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다. 슬기와 광개토, 실리엔이 홀의 중앙에 설치된 연꽃 모양 성화대 쪽으로 뛰어가자 천마는 몸을 돌려 달려 오는 천마군들 앞을 막아섰다. 역시나 이번에도 천마를 무시하고, 슬기 일행쪽을 향해 몸을 날리는 천마군들이 있었지만, 천마의 친절한(이라 쓰고 강압적이라고 읽는다) 권유성 도발에 곧 모두 천마에게 집중했다.

“본좌랑 가위바위보할 까마귀?”

마치 나랑 놀지 않으면 사지를 분질러 버리겠다는 친밀감 가득한 그 발언은 천마군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마를 공격해야 겠다고 마음 먹은 천마군들이 일제히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들려 할 때 갑자기 천마가 두손을 번쩍 펼치며 앞으로 내뻗었다.

마치 잠깐 기다리라는 듯한 그 포즈에 천마군들이 움찔하자, 천마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

천마를 제외한 아무도 그 의미를 모르는 가운데, 천마 홀로 오지게 정신 승리를 거두었다.


붉은 빛의 연꽃모양 구조물은 가까이 다가섬에 따라 꽃잎 사이사이로 계단이 보였다. 구조상 계단은 위쪽의 봉화대로 이어진 듯 했다. 일행은 슬기가 앞장서고, 광개토와 실리엔이 뒤따라오는 형태로 빠르게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예상대로 구조물의 꼭대기는 커다란 봉화대였다. 하지만 봉화대는 꺼져 있었고, 주변 어디에도 불을 붙일만한 것이 없었다.

“어떡하지? 불이 있어야 하는데?”

당황한 슬기가 급하게 주변을 돌아보며 외쳤다.

저기 아래쪽에서는 천마와 천마군들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천마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름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천마군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이 보였지만, 천마군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까처럼 지들끼리 싸우게 만들면 될 걸, 왜 저렇게 고생하며 싸우는거지?”

슬기는 생각 없이 싸우는 천마의 모습에 답답해했지만, 그 내면에는 슬기가 모르는 진실이 있었다. 천마는 아직 슬기와 같은 인지를 갖추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천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그에게서 사람과 같은 융통성 또는 학습 능력을 기대하기란 무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 천마가 이런 전투를 벌이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직접 몸을 움직이고 타격하는 것을 너무 즐거워했기 때문이었다. 평소 허리 한번 굽히는 것도 귀찮아하던 그의 행실을 볼 때 참으로 아이러니한 전투 스타일이었다.

슬기가 계속 불을 찾자, 광개토가 한마디했다.

“아가씨, 계단 아래쪽에 조그만 화로 하나를 봤었지 말입니다.”

“아, 그래? 그럼 개토가 가서 그거 좀 가져와 봐.”

광개토가 난간 역할을 하는 연꽃 모서리를 밟고는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잠시 후 아래쪽에서 광개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화로가 바닥에 딱 붙어서 옮길 수가 없습니다.”

“뭐? 그럼 어떡하지?”

그러자 대략 5초 쯤 뒤에 광개토의 말이 들려왔다.

“그 대신에 옆에 불을 붙일 막대기 같은건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 거기에다 불 붙여서 들고 올라와.”

또 잠시 시간이 흐르고, 광개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이게 좀 이상합니다.”

아래위로 멀찍이 떨어져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여간 목에 부담되는 고역이 아니었다. 결국 슬기는 계단을 뛰쳐 내려 갔다.

구조물 바닥에 다다르자 광개토와 실리엔이 서 있는 곳에 정말로 조그만 화로 같은 것이 보였다. 막 광개토에게서 막대기를 넘겨받은 실리엔이 화로에 막대기를 집어 넣는 중이었다. 막대기는 애초에 불을 붙이는 용도였는지 손잡이 반대쪽에 기름 먹인 헝겊이 둘려 있었다.

슬기가 다가가자 실리엔이 화로에서 불이 붙지 않은 막대기를 꺼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님, 소녀도 불이 붙지 않아요.”

슬기가 보니 화로 속은 뜨겁게 달궈진 숯불 같은게 가득 담겨있는데, 불꽃이 신기하게도 녹색이었다. 슬기는 실리엔의 손에서 낚아채듯 막대기를 뺏어 쥐고는 둘을 한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으이구, 이런 불 붙일 열정도 없는 것들아.”

그리고 슬기가 막대기 한쪽 끝을 화로에 집어 넣자 당연하게도 곧 화르륵 소리와 함께 녹색 불이 붙었다.

“어, 저랑 리엔이가 할 때는 정말 안되었었지 말입니다.”

광개토가 억울하다는 듯이 펄쩍 뛰었지만, 슬기는 처녀가 애를 낳아도 변명을 한다고 생각하며, 광개토를 한심스럽게 쳐다보다가 그에게 불 붙은 막대기를 건넸다.

“이거 봐. 뭐가 어렵다고 이걸 못해?”

핀잔을 들으며 광개토가 막대기를 받는 순간, 거짓말처럼 막대기의 불이 픽 하고 꺼져 버렸다.

“이, 이거 보십시오!”

깜짝 놀란 광개토와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슬기가 막대기를 뺏어 들고는 다시 붙을 붙였다.

그리고 광개토에게 건네자 방금의 기사가 거짓이 아니었다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맹렬히 불타던 녹색 불꽃이 다시 순식간에 꺼져 버렸다.

“...으으.. 저는 저주를 받은 거지 말입니다.”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천마기가 작용한 결과로 봉화가 꺼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광개토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다. 원래 ‘천마기’는 봉화를 끄는 존재인 천마군의 기운이기에 천마기를 가진 광개토가 불을 붙이지 못하는건 당연한 이치였다. 실리엔도 마찬가지였다.

두손을 벌벌 떨며 자기 비하에 빠진 광개토를 잠시 쳐다보던 슬기는 곧 바깥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광개토에게 주지 않고, 그녀가 직접 들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곧장 봉화대 앞에 다다른 슬기는 망설임 없이 손에 들린 불 붙은 막대기를 봉화대 속으로 밀어 넣었다.


*


내성 입구 앞 공터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천마군과 더 원의 두 공격대 간의 전투였다.

굳이 싸우려 들지 않는 천마군에게 굳이 싸움을 걸어가며 전투를 벌이던 아라곤의 눈 앞에 황금색 귓말벌레가 나타났다. 그리고 퍼스트 클래스의 공격대장이자, 현재 더 원 캠프의 지도자인 에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점령군은 전멸했다. 당장 철수하라.”

애시당초 진작에 날렸어야 할 귓말이었건만, 에릭이 천마 일행을 향한 죄책감에 지나치게 빠지는 바람에 뒤늦게 이제서야 전투군에게 퇴각 명령을 전해 온 것이었다.

귓말을 들은 아라곤이 니긴마 쪽을 바라보자 니긴마도 막 귓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니긴마의 모양새가 곧 퇴각 명령을 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아라곤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전멸했다고? 그럼 그가 죽었단 말인가?’

드래곤 공격대를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5분도 안걸렸건만, 아라곤과 그 공격대원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속이다 거짓을 믿는 단계에 이르렀다)에 단신으로 전멸시킨 그가, 세 개의 공격대 속에서도 전혀 위축되는 모습 없이 저 새끼(니긴마)를 죽여 버리고, 에릭마저 가지고 놀던 그가 죽었다는 말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소리였다.

여전히 아라곤의 기억속에서 천마는 소천마보다도 강하면 강했지, 못하지 않는 괴물이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도깨비들아, 모여라!!”

한창 전투의 소란함이 가득한 가운데 니긴마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수많은 소음을 뚫고 아라곤의 귀를 때렸다. 다들 모이라고 하는 걸 봐서 니긴마는 ‘공격대 귀환’을 쓸 생각인 듯 했다.

“어쨌든 명령은 명령이니까.”

아라곤은 그토록 강력했던 괴물의 죽음을 애도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이제 퇴각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때, 그의 눈에 성탑에서 피어오르는 녹색 불길이 보였다.

“어?”

아라곤은 나지막히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려 다른 성탑들을 쳐다보았다.

여덟 개의 성탑에서 여덟 개의 녹색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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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19.12.04 43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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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19.12.03 43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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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67화 19.12.02 443 6 12쪽
66 66화 19.12.02 465 4 13쪽
65 65화 19.12.02 450 6 12쪽
64 64화 19.12.01 437 5 11쪽
63 63화 19.12.01 460 4 12쪽
62 62화 19.12.01 455 4 11쪽
61 61화 19.11.30 47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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