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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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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827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3 07:00
조회
456
추천
5
글자
11쪽

68화

DUMMY

(68편)


꿈이란 것은 때로는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몇 년이고 기억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눈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 이슬처럼 사라져버리고 만다.

아침 일찍 슬기와 광개토가 접속할 즈음, 밤새 멍하니 있던 천마의 머릿속에 꿈은 겨우 한 두조각 남아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 몇 주간 단 한번도 놓치지 않았던 천마와 광개토의 새벽 수련이 끝나고, 슬기가 준비한 아침을 함께 먹는 시간이었다.

모두들 천막 앞 공터에 모인 가운데, 슬기가 끓인 닭백숙이 고소한 닭고기 내음을 풍기며 모두의 식욕을 자극했다.

슬기가 솥뚜껑을 열자, 그와 동시에 닭백숙의 닭다리 한쪽이 허공으로 저 혼자 살랑살랑 올라가더니,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저 혼자 헤쳐 모여를 시작했다. 곧 집합한 살들은 줄지어 천마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뼈는 바닥에 떨어졌다.

“음~”

밥상 예의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천마 였지만, 다들 그런 천마의 모습이 익숙했다. 그는 음식 앞에서 무자비하고 잔인한 포식자였다.

슬기를 비롯한 나머지는 빠른 손놀림으로 각자의 몫을 챙겨 그릇에 담았다. 그 와중에도 닭고기는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분리되어 끊임없이 천마의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천마의 식탐을 알고 있는 슬기가 넉넉하게 끓였기에 다들 불만 없이 식사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열심히 닭 목을 빨고 있는 실리엔을 보며 슬기가 이죽거렸다.

“쟤는 닭 먹을 때도 천성이 어디 안가네? 저것 봐, 목을 빨고 있잖아.”

실리엔이 단호하게 목의 살점을 물어뜯고는 말했다.

“맛있어요.”

슬기는 친히 목 부위만 모두 모아다가 실리엔의 그릇에 담아주며 말했다.

“이거 먹으면 노래를 잘한다더라.”

그 말에 광개토가 손뼉을 쳤다.

“우리 리엔이는 목소리가 예뻐서 틀림없이 노래도 잘할 거 같습니다!”

슬기가 광개토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이 형님은 어때? 노래 잘할 거 같아?”

아직도 삐쳐있는지 슬기는 자신을 형님으로 지칭했다. 그래서 광개토는 두 엄지를 치켜들어야만 했다.

“당연합니다. 누님! 누님의 목소리는, 목소리만 들으면 진짜 미인대회 입상자 같...”

“숟가락 내려놔라.”

슬기의 목소리는 광개토의 말대로 아름다웠지만, 단호했다. 그리고 두 번 말하는 법이 없었다.


다 먹고 난 천마가 말했다.

“싱겁군.”

“진작에 말을 하든가, 다 처먹고 나서는 말을 말든가!”

늘 다 먹고 나서 지랄을 하는 천마가 아니꼬와 슬기는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대체 저 자가 다 먹고 이러는 건 무슨 꼬장인가 싶었다.

문득 꿈의 한 조각이 떠오른 천마가 엉거주춤을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이게 뭔지 아느냐?”

천마는 살짝 벌린 무릎을 굽히고, 두 팔을 살며시 앞으로 뻗어 무언가를 잡은 시늉을 한 채로 엉덩이는 뒤로 빼고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음... 뭐지? 아저씨 그렇게 잠깐 있어 볼래?”

영락없는 천마의 오토바이 자세, 또는 다소 엉거주춤한 기마자세가 슬기 눈에 천마가 자진해서 벌을 서는 걸로 보였다.

“흐음~ 이게 뭐지? 뭘까?”

그녀는 뜸을 들이며 천마의 벌 선 모습을 즐겁게 둘러보았다. 그때 이 자세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하게 만들고 싶은 슬기의 마음도 모르고 광개토가 끼어들었다.

“그거 똥 마려운 자세 아닙니까?”

광개토가 아는 체를 하며 말하자, 천마는 입에 착 감기는 ‘똥’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흐음, 왠지 욕같은데...”

사실 스스로도 욕으로 많이 썼던 단어이건만, 이렇게 또 따로 때놓고 보니 새로움이 가득한 단어였다.

“알 듯 하다가도 모를 단어구나. 똥이란...”

분명히 아는 단어라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본적은 한번도 없다는 아이러니가 천마의 머리를 지배했다.

광개토는 그렇게 똥으로 고찰하는 천마의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다행이지 말입니다. 시온에서는 똥을 안 싸도 돼서.”

“음? 왜 안 싸는 것이냐?”

자꾸 당연한 질문을 하는 천마의 모습에 광개토는 또 시작인가 하며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똥 싸러 갈 수는 없으니까, 다이브가 강제로 똥을 참게 만들잖습니까? 뇌파를 막 조절해 가지고 말입니다. 저보다 오래 하셨을텐데 그것도 모르십니까?”

어려운 설명들을 거두절미하고 간단하게 핵심만 광개토가 말했다. 그는 겨우 똥을 왜 안싸나 같은 설명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어찌보면 오만불손한 광개토의 행동이었지만, 천마는 사라지려 하는 꿈의 조각을 붙잡느라 신경쓰지 않았다.

“이게 똥 싸는 자세라고? 음.. 그런데 왜 여자랑 같이 이런 자세를 한거지? 같이 똥을 싸는 것인가?”

천마가 여자랑 같이 그런 자세를 취했다고 말하자 슬기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내가 보기에는 똥 싸려고 굳이 손을 그렇게 앞으로 내밀지는 않을거 같고, 뭐 자전거나 오토바이크 타는 자세가 아닐까?”

“그래, 아가씨야. 네 말이 옳다!! 바이크!!”

슬기의 도움으로 천마의 머릿 속에 가득하던 안개가 걷혔다. 천마는 천천히(조심스럽게 말한다는게 겨우 말 속도를 느리게 하는게 다였다) 슬기에게 물었다.

“바이크라는 것은 너희 요괴들의 세상에 있는 물건이렷다.”

슬기는 그런 천마의 말에 잠시 할말을 잃었다.

‘이 아저씨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정신병자 흉내를 내려는 거지?’

어쨌든 슬기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맞아. 현실에 있지.”

‘현실’이라는 단어가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이어서 천마가 물었다.

“그럼 요괴의 세상에도 당연히 머리 세 개짜리 거대 도마뱀이 있겠구나!”

천마의 머리 속에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괴물을 처치했던 꿈의 장면이 떠올랐다. 바이크가 요괴 세상의 물건이라면 괴물 역시 그럴 것이라 추측했다.

“아니!! 없지, 절대로!! 이 아저씨가 꿈을 꾸시나!!?”

예상과 다른 슬기의 격렬한 반응에 천마는 움찔했다.

“없..다고?”

천마는 꿈의 어디까지가 실존하는 것이며,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천마는 다시 물었다.

“그럼.. 오크는?”

“오크? 어디, 여기? 현실?”

“그..쪽.”

“현실에 오크가 왜 있어?! 어떻게 있어?”

진작부터 천마의 정신병자 놀음에 질려있었지만, 오늘따라 더 심하다고 슬기는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이종교배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여러 연구 시설들에 대한 소문이 떠올랐다.

‘혹시 그런거 보고 얘기하는건가?’

오크는 딱 그 생김새가 만약 인간과 돼지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진다면 갖게 될 생김새였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런 얘기들은 루머이고, 꿈같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허허...”

천마는 자조적인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만 팔짱을 끼고 말았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인가?”

이제 그런 정신병자 놀이는 그만 하라고 말하려던 슬기는 허허로운 기운을 뿌리며 생각에 빠진 천마의 모습에 할 말을 참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천마의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천마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럼...지혜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나?”

구궁-, 전혀 생각지 못한 천마의 질문에 슬기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천마의 질문을 듣는 순간 광개토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러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는 지혜라는 여자가 이지혜만 해도 세 명, 정지혜가 두 명, 김지혜가 두 명, 강지혜가 한 명, 서지혜도 한 명, 박지혜가 네 명인데...이걸 안다고 해야하나?’

광개토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 슬기가 말했다.

“지혜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지..”

슬기의 대답에 천마의 얼굴이 밝아지려는 순간, 슬기의 뒷말이 이어졌다.

“못해도 수백 명은 넘을걸? 어쩌면 천 명도 더 될지도 몰라.”

내 이름이 그렇게나 흔하냐며 소리치는 세상의 수많은 지혜들의 항의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 했지만, 슬기는 사실을 적시했다.

“성은 몰라? 이지혜인지, 박지혜인지 몰라?”

으음, 하고 천마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히 탄식을 내뱉었다.

‘내 동생만 해도 이름이 지혜인데. 그리고 예전에...’

슬기는 그렇게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당장 천마가 무슨 의도로 그 이름을 꺼냈는지 모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광개토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사부님. 혹시 지혜라는 여자가 사부님께 사기라도 쳤습니까?”

천마가 고개를 들어 광개토를 보며 말했다.

“같이 똥을 싸... 아니 바이크라는 걸 탔었지. 머리가 셋 달린 도마뱀도 잡았고, 오크 마을도 부수고..”

천마의 그 아련한 표정에 광개토는 흥분하여 외쳤다.

“와, 정말입니까, 사부님? 그럼 그 지혜라는 분이 과거의 여자라는 겁니까?”

슬기는 천마의 말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머리가 셋 달린 도마뱀이나 오크 마을 등은 그녀의 기억속에도 있는 상황이었고, 장면이었다. 그리고 지혜라는 이름은...

“꿈에서 말이다.”

결국 꿈이었다는 천마의 말에 슬기의 마음 속에 내심 차오르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가 틀어진 슬기는 한껏 비꼬는 말투와 표정으로 신랄하게 천마의 꿈을 까내렸다.

“꿈속의 여인이 지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년이랑 바이크도 타고, 괴물 대가리도 날리고 하니 좋디? 괜한 오크 마을을 쳐들어가서는 죄 없는 오크들을 마구 죽여대고 아주 그냥 살인마들끼리 피의 유희를 즐기셨겠어? 얼라이언스를 위하여!!”

빈정거림의 대미는 수십 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초창기 MMORPG의 명대사로 마무리지어졌다.

“아니, 갑자기 거대한 쇳덩어리가 달려와서는 본좌와 그 여자를 쳤고,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천마의 입에서 담담하게 흘러나온 꿈의 충격적인 엔딩에, 신랄하게 춤추던 슬기의 입이 그만 멈추고 말았다. 그만큼 천마의 마지막 말은 슬기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거대한 쇳덩어리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광개토가 묻자, 천마는 천천히 그 형태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묘사하기 시작했다.

“본좌보다 두 배 정도 키가 크고, 옆으로는 본좌가 누운 것보다 1.5배 정도 컸는데, 양 옆으로 바퀴가 달려 있었다. 언뜻 보기에 안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쇠로 만든 마차같았는데, 말이 없는데도 말도 안되게 무척 빠른 속도로 움직였었지.”

천마의 말대로 상상력을 굴린 광개토가 이내 확신하듯 말했다.

“버스나 트럭 같은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가씨?”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천마도 덩달아 물었다.

“버스, 트럭? 그것이 무엇이냐?”

하지만 슬기에게는 대답이 없었고, 그녀를 돌아본 광개토와 천마는 처음 보는 슬기의 백지장처럼 새하얀 얼굴에 깜짝 놀랐다.

귀신을 본 것같은 표정의 슬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지금..무슨..얘길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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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19.12.03 438 5 11쪽
69 69화 19.12.03 439 5 12쪽
» 68화 19.12.03 457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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