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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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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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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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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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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78화

DUMMY

천하무식 천마 78화




“깊은 산중에 끌려 온지도 한 달이 지났네. 어때? 아저씨가 보기에 나랑 개토, 좀 강해진 거 같아?”

천마 옆에 쪼그리고 앉은 슬기가 턱을 쳐들며 물어오자, 천마는 주먹 쥔 손을 들더니 그중 엄지와 검지만을 벌려 집게 모양을 만들고 그 사이 공간을 아주 살짝만 벌렸다.

“너희들이 원래 이정도 수준이었다면.”

그리고 천마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 정도라고 할 수 있겠군.”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슬기가 깜짝 놀라 외쳤다.

“뭐야? 방금 움직인 거야? 안 움직인 거야, 손가락이 왜 전혀 꼼짝도 안 하는 거야? 한 달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거야, 뭐야?”

천마는 1 나노의 오차도 없이 일행이 성장한 만큼 손가락을 벌렸지만, 애초에 그 기준이 본인이었던 만큼 슬기가 그 변화를 감지해 내기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혹시 손가락 장애 아니지? 원래 거기서 더 안 벌어진다던지?”

슬기가 엄한 소리를 해대며 다짜고짜 천마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하나씩 붙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벌리기 위해 기습적으로 힘껏 두 팔을 당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마의 손가락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쇳조각 마냥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오기가 발동한 슬기는 젖먹던 힘까지 쏟아붓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뒤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지친 목소리로 슬기가 투정을 부렸다.

“와, 이 아저씨 고집 보소! 아저씨? 이렇게 살면 안 돼.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응? 배려가 없어, 왜? 적당히 상대방의 기분도 봐가면서 한 번씩 좋은 말도 해주고 그래야지. 사람이 왜 이렇게 팍팍해?”

“자신의 상태는 항상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느니라. 단지 기분이 좋으려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평가를 내렸다간,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야.”

헉!

천마의 묵직한 정론 공격에 슬기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가슴을 부여잡고 말았다. 본래 진실이라는 게 아픈 법이라지만,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천마에게 받고 보니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둘 사이에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겨우 호흡을 가다듬은 슬기가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는 지난 한달 동안 헛고생한 거네? 나나 개토나 그렇게 열심히 수련을 했는데 그래도 아무 발전이 없었다는 거니깐.”

“금일 일몰이나 명일 일출이다.”

천마가 뜬금없이 슬기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내뱉자, 슬기가 바로 되물었다.

“뭐가?”

“제자 놈의 파천무 일단공이 극에 다다랐다.”

천마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대답에 슬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3개월 걸린다며?”

“본좌가 언제? 본좌는 그저 3개월 안에 이단공에 이르지 못하면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라고 경고를 했을 뿐이니라.”

그 말에 슬기가 어머, 하고 입을 벌렸다.

“그렇다면 오늘 내일 중으로 개토가 이단공에 오른다는 거야? 이야, 아직 두 달도 안 되었을텐데, 맨날 처 맞고 쓰러지기만 하더니, 그래도 수련이 성과가 있긴 있었나 보네!”

슬기가 자신의 일도 아닌데, 자기 일처럼 손뼉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달 보름간의 동행이 그들을 마치 가족처럼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차가운 천마의 목소리는 그리 밝은 내용이 아니었다.

“그 말은, 일단공의 마감시한 또한 당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일 일몰과 명일 일출의 수련의 중요성이 더할 나위 없이 높아졌다는 거지. 만약 이 수련들을 놓치기라도 했다가는..”

하지만 슬기가 보기에 그건 천마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건 뭐, 문제될 게 없겠지? 개토가 딴 건 몰라도 지금껏 춤(파천무) 연습을 빠진적은 한 번도 없잖아?”

슬기가 웃으며 말했지만, 천마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전혀 웃지 않았다.


*


천마기는 느리지만 한결같은 속도로 장병태의 혈맥을 따라 온 몸을 돌고 돌았다.

울렁울렁~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잔 물결처럼 천마기는 그렇게 장병태의 몸 곳곳에 기이할 정도로 강한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 기운을 받은 장병태의 세포들은 원래 낼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나 강한 힘을 낼 수 있었고, 훨씬 강력한 지구력으로 쉽게 지치지도 않았다. 천마기가 장병태의 몸을 강력하게 변화시킨 것이었다.

사실 천마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파천무에 의해 생겨났던 천마기가 ‘만겁돌파의 망토’에서 생성된 흐름을 타고, 광개토의 몸을 지나 병태의 몸에 도달한 것은 한 달 보름도 더 된 과거였었다. 처음에 넘어올 당시만 해도, ‘만겁돌파의 망토’를 돌파한 천마기는 너무나도 미약하고 보잘 것 없어 금세라도 아침이슬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자연기의 성질을 가진 천마기는 특유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실날같은 기운을 기어이 이어나갔고, 결국 한달 전 폭발적인 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 수련 첫날 당시에 쓰러진 광개토의 몸 위에 실리엔이 ‘만겁돌파의 망토’를 덮어준 것이었다.

한층 강해진 천마기와 마법으로 강화된 자연 치유력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망토를 통해 게임 세계를 돌파해내었고, 마침내 장병태의 몸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한들 그 본질은 천마기, 그것도 파천무 일단공에 다다른 천마기였다. 그리고 이 기운은 정해진 순리에 의해 곧 이단공으로 올라서야만 했다.

천마기는 조금씩 속도를 올려가며 진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가상현실 복지학과.

일명 ‘가복과’라 불리우는 이 전공은 대략 5년전 쯤에 생겨난 신생 학문이었다. 가상현실이 일상화, 일반화 됨에 따라 가상현실에 특화된 사회 복지 시스템이 필요해진 까닭이었다.

그리고 지금 대학가의 한 호프집에서 가복과 일학년의 술판이 벌어졌다.

조교를 포함해 열 한 명이 세 개의 테이블을 나란히 붙여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물론 가상현실 복지학과 학생들답게 술자리 최고의 이야깃거리는 바로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같은 과 4년 선배이자, 새내기들의 왕언니, 왕누나를 자처하는 조교의 주도 아래 학생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게임들을 실토했다.


장병태는 가장 변두리 좌석에 앉아 술을 홀짝이다가 열 한명 중에 여덟 명이, 조교까지도 시온을 한다는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시온이 1위지.’

다른 게임을 한다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하는 게임의 장점을 어필하려고 애써보았지만, 이미 시온이 가져다주는 ‘제2의 삶’에 빠져버린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들의 주장을 아예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마침 병태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학우도 시온을 하지 않는다는 세 명 중 하나였다.

“너도 시온이 최고라고 생각해?”

기습적으로 받은 옆자리 여학우의 질문에 병태는 깜짝 놀라 그 여학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평범한 얼굴, 살짝 튀어나온 앞니와 어두운 실내에서도 여과 없이 잘 드러나 보이는 금속 치아 교정기, 세련되지 못한 옷차림.

‘그래, 내 옆에나 앉아 있을 법한 친구로구나.’

병태는 최대한 속내를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그야, 시온에서는 멋지고 예쁘게 살 수 있으니까.”

병태의 대답에 여학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거야 어느 가상현실게임이든 똑같은 거 아냐?”

여학우의 대답을 들은 병태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게임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게임의 차이 아닐까? 시온은 게임 같은 현실 같거든.”

본인이 생각해도 그럴듯한 대답인거 같아 내심 뿌듯했지만 예상과 다른 여학우의 무반응에 병태는 살짝 당황했다.

“내가 말을 너무 어렵게 했나? 게임 같은 현실 같은 게임? 하하. 이거 참 어렵다. 그지? 내가 설명을 너무 어렵게 한 거 같아.”

하지만 여학우의 무반응으로 보였던 모습은 사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것이었다. 병태가 당황해하자 여학우가 밝은 목소리로 대꾸해주었다.

“아니야. 현실 같은 게임과 게임 같은 현실, 너무 적절한 표현이었어. 네 말대로 내가 하던 게임은 정말로 현실 같긴 했지만 그저 게임일 뿐이었거든. 네 말을 듣고 나니 현실처럼 느껴진다는 시온도 한번 해보고 싶어지는데?”

살짝 자조어린 목소리로 말하던 여학우가 다시 병태를 바라보며 웃었다.

“너 생각보다 되게 말 잘한다. 너 이름, 장병태 맞지?”

“어, 어? 어. 맞아. 너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별명이 아니라)을 알고 있다는 낯선 경험에 살짝 말을 더듬었던 병태는 곧 괜히 상대가 오해할까봐 살짝 기분이 언짢아졌다.

‘마치 여자앞에서 떨려서 긴장한 것처럼 보이면 안되는데.’

눈 앞의 여학우는 그렇게 까지 매력적인 여자가 아니었기에 그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난 해영이야, 정해영.”

강성근과 전대식, 그리고 이지수 다음으로 병태가 알게 된 학과 동기의 이름이었다.

해영이가 눈부신 치아 교정기를 드러내며 병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병태는 엉거주춤하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둘이 손을 맞잡고 흔드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휘파람과 함께 귀에 익은 강성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과감한 스~퀴~인~ 쉽!! 우리 병태랑 해영이랑 엄청 친해졌나보네!”

강성근의 격렬한 호들갑에 둘은 인상을 쓰며 재빨리 손을 놓았다. 하지만 이미 주변은 휘파람과 환호성으로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렇게 시끄러워진 동안에 성근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맞다. 우리 병태가 말이야. 시온의.. 그 뭐냐, 그러니까 선구자거든.”

이어지는 성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성근과 병태를 오갔다.

“뭔 선구잔데?”

“왜? 고렙이야?”

성근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못하고 몇몇이 성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가만히 다른 학우들의 말을 듣던 성근이가 가만히 고개를 젓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병태가 말이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며 모두의 주목을 끈 성근이가 뒷말을 이었다.

“..시온에서 사부를 모시고서 무술을 배우고 있다고 하더라고(몇몇이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로, 진짜라니까! 내가 저 놈이 배웠다는 무술도 직접 봤거든.”

그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짓자, 성근이가 예전에 병태가 했던 포즈를 어설프게 흉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성근의 눈신호를 받은 전대식도 그런 성근의 옆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야, 내가 언제..”

병태가 황급히 그들을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무술을 빙자한 그들의 병신춤사위는 순식간에 절정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절정이라는 것은 병태의 예상대로 격렬한 구토 장면이었다(예전에 파천무를 시연했을 때 갑작스러운 구토 기운에 꽤나 고생했던 병태였었다).

“쿠에에켁켁!!”

둘은 동시에 그렇게 구토 흉내를 내었고, 성근이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이 마지막 동작이 진짜 어렵더라고. 아무래도 독문 무술의 호흡법 같은데. 안 그러냐, 병태야?”“그러지 말고, 오리지널로 한 번 보여줘 봐.”

빙긋이 웃으며 한술 더 뜨는 전대식의 말에 가뜩이나 붉어져 있던 병태의 얼굴이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방금 우리 둘이 한 것처럼 해영이랑 같이 커플 춤 어때?”

성근이의 잔인한 권유에 다른 여학우가 뒷말을 붙였다.

“해영이는 못해영이라서 못할 걸. 쟨 항상 못해영~ 그러거든.”

그 말에 대여섯 명이 동시에 폭소를 내뱉었다. 웃지 않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조교와 병태, 그리고 해영이를 비롯한 두엇에 불과했다.

병태는 가슴 가득 밀려오는 미안함에 고개를 돌려 정해영을 내려다보았다. 해영이는 빨개진 얼굴로 아무도 없는 정면만을 응시하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테이블에서 찬물을 끼얹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형님 누님들,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굴어. 병신같이!?”

거침없는 그 목소리에 가복과 학생들의 시선이 소리를 따라 돌아갔다.

“씨발, 형님네들이 여기 전세 냈냐고?!”

목소리를 따라가니 건너편 테이블에 둘러앉은 남자 일곱, 여자 셋의 무리가 보였다.

나름 성년인냥 꾸몄고, 얼굴도 꽤나 삭아보였지만, 그래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고등학생 티가 나는 것들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상대의 연령을 가늠한 성근이 일어선 채로 손가락질을 하며 버럭 호통을 쳤다.

“너희들, 고딩처럼 보이는데, 대낮부터 술집에 와서 술이나 처먹고..”

“지랄하네. 여기 못된 동생들한테 처 맞아볼래, 응?!”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고딩의 포효에 성근의 말은 가다말고 어디론가 날아가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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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19.12.04 423 5 12쪽
71 71화 19.12.04 434 7 12쪽
70 70화 19.12.03 437 5 11쪽
69 69화 19.12.03 439 5 12쪽
68 68화 19.12.03 456 5 11쪽
67 67화 19.12.02 443 6 12쪽
66 66화 19.12.02 465 4 13쪽
65 65화 19.12.02 450 6 12쪽
64 64화 19.12.01 437 5 11쪽
63 63화 19.12.01 460 4 12쪽
62 62화 19.12.01 455 4 11쪽
61 61화 19.11.30 47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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