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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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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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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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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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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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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9화

DUMMY

(69편)


“..아저씨..지금..무슨..얘길 하는거야?”

슬기는 마치 눈 앞의 천마를 보지도 못하는 듯 텅빈 시선을 허공에 고정시킨 채, 잘 움직이지도 않는 입술을 겨우 열어 간신히 한마디 내뱉었다.

내심 놀란 천마는 이 여자가 왜이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이나 싶었다.

“꿈 얘기하는 건데?”시큰둥한 천마의 목소리는 팽팽하게 당겨졌던 슬기의 신경을 툭 끊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뭐?”

잠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천마를 쳐다 보던 슬기의 눈에 빠르게 빛이 돌아왔다.

“아, 그래...맞아, 아저씨 꿈 얘기였지?”

그랬다. 슬기의 7개월 전 사건과 꼭 같은 이야기였지만, 여러 가지로 슬기의 경험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의 얘기는 다만 지난 밤 꿈 얘기에 불과했다. 그녀는 단 한번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얘기하거나, 혹은 비슷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일행과 나눈 적이 없었다. 아저씨가 그녀의 사정을 알고 얘기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

슬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이미 오랫동안 자신의 불행에 대해 스스로 아파했고, 후회했고, 위로했기에 뜻밖의 고통에서도 힘들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뭔가 찝찝한게 있긴 했지만, 슬기는 더 이상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그녀는 아직 그녀의 아픔을,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시온 안에서 그녀는 당차고, 때로는 무모하고, 말보다 주먹부터 나가는 씩씩한 여 권사로 충분했다.

“그래, 원래 교통사고라는게 흔한 일이고, 머리 셋 달린 히드라나 오크 같은건 대표적인 판타지 생명체 아니겠어? 호호”

갑자기 슬기가 웃기 시작하자, 천마와 광개토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울려고 하더니 갑자기 왜이러지? 하는 의문이 둘의 머리에 동시에 떠올랐다.

슬기가 웃다 말고, 광개토에게 으르렁거렸다.

“안 웃니, 개토야? 안 웃어?”

웃는 미소 뒤에 감춰진 살벌한 위협. 평소의 슬기 모습이었다.

“아하하하. 맞습니다. 흔한 일이고, 흔한 꿈이죠. 하하하”

원래대로 돌아온 슬기를 보고 광개토는 매우 자발적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열심히 웃어제낀 그들은 천마의 요청에 따라 천막에서 조금 떨어진 숲 속 공터에 모였다.

팔짱을 낀 천마가 우뚝 서 있고, 그의 앞에 슬기, 광개토, 실리엔이 차례대로 옆으로 줄지어 섰다. 슬기의 눈에 망토를 걸치지 않은 천마의 모습이 눈에 띠었지만, 곧 그녀 자신이 바느질을 하겠다고 망토를 벗겼던 사실이 기억났다.

“어제 말한 바와 같이 오늘부터 수련을 시작한다.”

“에? 진짜, 진짜로 수련을 한다는 거야?”

천마의 나지막한 선언에 슬기가 깜짝 놀라 반문했다. 분명 어제 천마가 그런 얘기를 하긴 했지만, 그냥 성좌를 떠나기 위한 구실인 줄만 알았다.

천마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본좌의 일언은 일만금이니라. 한번 내 뱉은 말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법!”


어제 저녁, 계속 군사를 기다려야 하나 어찌하나 고민중이던 슬기에게 천마가 말했었다.

“너희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과연 본좌가 계속 너희들을 지키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너희 스스로가 지킬 힘을 가지게 연단을 시키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구나. 아가씨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때 옆에 서있던 광개토가 대신 말했었다.

“당연히, 스스로 지킬 힘을 기르는 것이 좋지 싶습니다.”

슬기도 맞장구를 쳤지만 한편으론 자신들에게 이런 것을 묻는 천마의 의도가 궁금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너희들은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본좌가 너희들의 뒷바라지를 해줄 수는 없는 노릇. 진정 너희가 강해지길 원한다면 지금 바로 본좌와 함께 떠나자꾸나.”

처음에 슬기는 이 아저씨가 왜 이러나 싶었었다.

“아니, 그동안 목걸이 그거 하나 찾겠다고 그 먼거리를 달려와서, 더원 공격대도 두 개나 개박살내고, 천마 제자라는 괴마도 잡고, 응? 그 고생들을 해왔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냥 떠나자고? 하루만 더 기다리면 그 군사 영감을 만날텐데 갑자기 왠 미친 소리야? 어제 하루 종일 정원을 만들겠다고 사람 몸뚱아리를 허공에 마구 돌려 대드만, 아저씨 정신이 헤까닥 돌았나 보네!?”

하지만 그런 욕설에도 천마는 의외로 강경했다. 그리고 이어진 광개토의 말이 슬기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제가 경험이 많아서 잘 아는데 말입니다. 제가 초중고를 쭉 약자의 입장에서 그런 강자들의 눈빛을 많이 봤단 말입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자들은 절대 호락호락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자기들한테 필요한 만큼 어떻게든 사부님과 저희들을 써먹고 또 써먹고 계속 써먹을 겁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그와 우리의 관계에서는 우리가 을이니까 말입니다.”

아쉬운 건 우리고, 그렇기에 우리가 을이라는 광개토의 말, 그리고 을이기에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 어쩌지?”

“일단은 그놈들한테,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그 칼자루가 사실은 우리에게 그리 큰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번쯤 알려줄 필요가 있을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너도 아저씨 말처럼 일단은 떠나자는 말이네?”

“맞습니다. 아가씨.”

결국 슬기는 심사숙고 끝에 확실한 이득을 위해 일단 일보 후퇴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슬기는 광개토를 다시 보았다. 항상 찐따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니. 그가 살짝 멋있어 보이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안절부절해하던 광개토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사부님! 제가 오늘 오전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수련을 못할거 같습니다.”

이 찐따 같은 놈!! 슬기는 수련을 피하려고 하는 광개토가 참으로 한심스러워 보였다.

천마보다 더 눈꼬리가 올라간 슬기가 말했다.

“이것봐라. 어디서 갑자기 없던 약속을 만들고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래, 아니지? 중요한 일이 아니지? 잔말 말고 같이 수련하자?”

침을 튀겨가며 화를 내는 슬기의 공세 앞에 결국 광개토는 두 손을 들었다.

천마가 간단하게 수련 일정을 공지했다.

오전에는 대련 위주의 수련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대련에서 얻은 깨달음과 그 외 무공을 연마하는 개인 수련을 한다는 일정이었다.

“대련 말입니까? 누구랑 말입니까?”

깜짝 놀란 광개토의 질문에 천마가 본인을 가리켰다.

“본좌가 그동안 너에게 무심했구나.”

“..그런 것입니까, 사부님?”

천마의 지시에 따라 슬기와 실리엔은 한 켠에 물러나 앉고, 천마와 광개토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광개토는 침을 꼴딱 삼키며 천마의 주먹을 바라보았다. 저 주먹은 일찍이 사람을 그냥 때리고 지나간 적이 없는 주먹이었다. 항상 머리를 박살내거나, 몸통을 뚫어버리거나, 사지를 끊어버리기만 했었지, 자비나 배려 따윈 비오는 날의 먼지만큼도 없었다.

“사부님...설마 저를 불구로 만드실건 아니시지 말입니다?”

“제자놈이 사부를 천하의 악당으로 아는구나.”

천마의 촉이 어찌나 예리한지 광개토는 살이 떨릴 지경이었다.

천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너의 수준에 맞추어 공격할 것이니, 어디 한번 너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 보거라.”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사부님.”

살짝 몸을 띄어 뒤로 몇걸음 거리만큼 물러난 천마가 팔짱을 끼고 자리에 섰다. 그렇게 뒤로 물러선 천마를 보며 어리둥절해하던 광개토는 갑자기 느껴지는 어떤 기운에 급히 팔을 들었다. 하지만 그 날카로운 기운은 이미 광개토의 이마를 치고 지나갔고, 퍽 소리와 함께 광개토는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으아~ 사부님 이게 뭡니까?”

가까스로 다시 일어난 광개토는 다시금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에 급히 양팔을 교차하여 방어자세를 취했다.


퍽-


몸통을 방비했건만, 이번에는 왼쪽다리 허벅지였다. 광개토가 크게 휘청이고는 급히 양손을 앞으로 뻗고 마구 휘저으며 중단 신호를 보냈다.

“사부님 잠깐만 말입니다!!”

혹시나 모를 날카로운 기운을 경계하던 광개토는 다가오는 기운이 없는 걸 느끼고 황급히 소리쳤다.

“아니, 사부님? 눈에도 안보이는 공격을 하시면 제가 어떻게 하라는 말이십니까?”

그러자 천마가 미동도 없이 대꾸했다.

“손은 눈보다 빠른 법이다. 적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려다가는 당하기 십상이니라.”

천마의 대답에 광개토는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네? 눈으로도 못 따라가는 그런 빠른 공격을 어떻게 막습니까?”

“손으로 막아야지.”

천마의 대답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 광개토는 그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눈에도 안보이는 공격을 손으로 어떻게 막습니까?”

“그럼 죽던가.”

잠시 할말을 잃고서 우두커니 서있는 광개토를 보고 있던 천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본좌의 공격은 그리 빠르지도 않았고, 강하지도 않았다. 모두 네 놈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공격이었는데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니라. 만약 네가 보이지 않는 이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눈에 뻔히 보이는 공격이야 막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랴.”

그리고 이어서 천마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제부터는 막지도 말고, 오직 피하기만 하도록 해라. 만약 자꾸 막으려 든다면.”

잠시 말을 중단한 천마가 말했다.

“불구로 만들어 버리겠다.”

천마의 잔인무도한 선언에 광개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하지만 광개토의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천마는 곧 수련 재개를 선언했다.

천마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눈으로 보려고 하면..”

그리고 다시 날아들기 시작하는 무형의 기운. 광개토는 갑자기 느껴지는 그 살벌한 기세에 급히 팔을 치켜들었다.

“..늦는대도.”

천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콱-


“억!!!”

막으려고 쳐 들었던 광개토의 팔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비록 현실에 비해 30프로에 불과한 고통이라지만, 뼈를 울리는 듯한 그 고통에 광개토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느껴지는 섬뜩한 기세. 발목을 향해 날아드는 그 기세에 황급히 몸을 띄웠지만, 한 박자 느렸는지, 발목을 노리던 기운이 발등을 치고 지나갔다.

“컥!!”

무형의 기운은 마치 커다란 돌멩이처럼 단단했고, 속도도 무척 빨라 맞은 순간의 데미지가 상당하였다. 반쯤 몸을 띄우던 그 자세로 앞으로 넘어진 광개토는 발등을 부여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발등의 뼈라도 부서진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그렇게 피를 쏟고 바닥을 구르는 광개토의 처참한 몰골에 슬기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아니, 이게 뭐지? 광개토가 아저씨한테 뭘 많이 잘못했나? 이게 수련이야, 학대야, 폭력이야?’

수련을 한다더니, 이건 아예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을 어떻게 막거나 피하라는 말인가? 슬기는 천마의 의도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본 천마의 표정은 전혀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등의 감정의 동요가 없었으며 오직 관찰자의 시선으로 대상의 상태와 반응을 살펴보는 모습 뿐이었다. 그 모습은 정말로 그저 아끼는 제자를 가르치는 엄한 스승의 모습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 모습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바닥을 뒹구는 광개토를 보며 천마가 턱을 긁적였다.

“흠. 본좌가 네 녀석의 능력을 과대평가 했을까?”

엎드러진 광개토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광개토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천마는 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니면 과소 평가를 했을까? 분명히 피하라고 말했건만, 자꾸 막으려고 하는 걸 보면 이 정도 공격은 피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군. 기대보다 뛰어난 제자를 위해 속도를 더 올려야겠어.”

사부의 무정한 오해에 광개토는 정말이지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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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70화 19.12.03 438 5 11쪽
» 69화 19.12.03 440 5 12쪽
68 68화 19.12.03 457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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