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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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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806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2 17:00
조회
442
추천
6
글자
12쪽

67화

DUMMY

(67편)


슬기를 강제 로그아웃 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전담 간병인이었다. 슬기의 다이브에서 갑자기 유저의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신체에 이상이 생겼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 들려와서 간병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시온의 세계와 사용자의 뇌를 연결하는 다이브에 굵고 큰 글씨로 ‘강제 종료를 하지마시오.’라고 경고문구가 쓰여져 있었지만, 간병인은 그것을 무시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달려있던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이브의 뚜껑이 열리자마자 아줌마는 슬기에게 달려 들었다.

“아가씨, 이게 무슨 일이래요?”

강제 로그아웃의 충격으로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슬기를 보며 호들갑을 떨던 40대의 간병인 아줌마는 이내 그녀가 그 상태로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 끔찍했던 교통사고 이후 전신불수가 된 그녀는 비쩍 야윈 몸에다 무게도 깃털처럼 가벼워 간병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다이브 옆에 놓인 침대로 그녀를 옮긴 아줌마는 곧 슬기의 손에 흐르는 핏자국을 발견했다.

“어머나, 이게 뭐람? 갑자기 어디서 다치셨대?”

바늘에라도 찔린 듯 가운뎃 손가락 끝에서 몽글몽글 솟아나는 핏방울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간병인 아줌마는 급히 2층 거실에 있는 구급약 상자를 가져왔다.

“대체 어디에 찔리신 거지? 찔릴 만한게 없는데?”

그녀는 연신 중얼거리며 슬기의 손가락에 소독약을 바르고 상처를 면밀히 관찰한 후 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다이브를 열어 날카로운게 있는지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줌마는 지금의 이 직장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어마어마한 부잣집답게 요양업계의 평균보다 훨씬 후한 급여를 주는데도 하는 일이라곤 고작 7개월전에 전신불수가 되어버린 이 집의 첫째 딸을 아침 저녁으로 침대에서 다이브로, 다시 다이브에서 침대로 옮기는게 고작이었다. 그 외에도 소소한 잔업들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놓치고 싶지 않은 직장임에는 분명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간병 아래 있는 이 아가씨에게 어떠한 특별한 일도 발생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 가벼운 소란에 옆 방 문이 열렸다.

“아줌마, 무슨 일 있어요?”

젊은 여성 특유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미인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하는 그 목소리에 간병인 아줌마는 급히 문 앞으로 가서 대답했다.

“아니에요, 둘째 아가씨. 오늘따라 첫째 아가씨께서 평소보다 일찍 나오셔서요.”

“정말요? 이상하네. 평소보다 3시간은 빠른 거 같은데. 이제 재미없나?”

젊은 여성의 목소리에서 살짝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 있는 듯하더니, 크게 흥미는 없는 듯 곧 목소리가 멀어지며 옆 방의 문이 닫혔다.

혹시나 둘째 아가씨가 이 방으로 왔다가 슬기의 상처를 발견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했던 아줌마는 방문 닫히는 소리에 애써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지혜 아가씨가 안 오셔서 다행이네, 다행이야.”

아름다운 외모처럼 성격도 좋은 지혜 아가씨지만, 가끔 히스테리를 부릴 때면 여간 감당하기 힘든 아가씨가 아니었다. 그런 아가씨가 언니 손에 상처가 난 걸 알기라도 했다간 엄청 시달릴게 뻔했다. 마침 바쁜 일이 있는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게 간병인 아줌마 입장에선 천만 다행이었다. 아줌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슬기는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강제종료로 인한 후유증 때문인지 너무나도 머리가 어질어질해 무어라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 슬기는 간신히 손가락에 연결된 패드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

“좀 잘게요. 아줌마.”

슬기의 입이 아닌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 슬기의 의사가 전달되었다.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기의 가냘픈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었다.


*


“이게 무슨 상황이냐?”

갑자기 슬기가 사라지자 천마가 광개토를 노려보며 노한 어조로 물었다.

“아닙니다. 사부님. 제가 아닙니다.”

마치 슬기가 사라진 것이 광개토의 탓이라도 되는 냥 얼굴이 붉어지는 천마를 보며 광개토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리고 광개토는 얼른 바늘을 집어 들고서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이게... 독바늘인가, 마법에 걸린 바늘인가? 고작 이거에 찔렸다고 잠이 들어버릴 수가 있나?”

광개토는 이해할 수 없는 눈앞의 상황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차마 하고 싶지 않았던 말까지 끝내 내뱉고 말았다.

“지가 무슨 오로라 공주도 아니고...”

“그게 무엇이냐?”

천마가 으르렁 거리자 광개토는 잔뜩 쫄아서 급히 설명이랍시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아주 오래된 얘긴데 말입니다. 오로라라는 공주가 있었는데, 이런 바늘 같은거에 찔려 가지고 100년동안 잠들었다가 나중에 왕자의 키스로 다시 깨어나는 겁니다. 그게.. 생일파티에 초대 안 받았다고 마녀가 꼬장을 부려서 그렇게 된건데...바늘에 마법이 걸려 있어서 말입니다.”

“마녀... 바늘? 백...년...?”


부웅--


광개토는 뭔가 지나간 것을 느끼고 나서야 자신의 손에 들린 바늘이 스프링처럼 찌그러진 것을 발견했다.

“으헉!!”

찌그러진 바늘이 어찌나 뜨거웠던지 광개토는 바늘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눈깜짝할 새에 사부의 주먹이 그의 코 앞을 지나 바늘을 찌그러뜨려버리고 다시 돌아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저 주먹이 내 머리통으로 날아왔더라면!!’

잠시나마 머리 잃은 자신의 모습, 혹은 머리통이 몸속으로 파고든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던 광개토는 천마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뭐라도 말을 해야했다.

“사부님, 아닐겁니다. 아가씨는 계모가 미워할 만큼 예쁘지도 않고, 독살할 가치도 전혀 없지 말입니다.”

광개토는 급하게 얘기하느라 자신이 지금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얘기하는지, 백설공주를 얘기하는지도 알지 못하고서 되는대로 마구 말을 내뱉었다.

“..독사과를 안먹은 이상, 아마도 곧 다시 접속하거나...”

무심코 내뱉던 광개토는 말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나 슬기가 로그인을 다시 안하면 그의 입장은 이만저만 난처한 게 아니게 될 것이었다.

광개토는 뒷말에 여지를 남겼다.

“어쩌면 내일 아침에 로그인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슬슬 밤이기도 하니 이왕 로그아웃한 김에 말입니다.”

“로그아웃 말이냐?”

살짝 두통을 느끼면서 천마는 예전에 슬기가 이것에 대해 언급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이것을 잠이라고 했었고, 잠을 통해 요괴들은 요괴들만의 세상으로 간다는 얘기를 잠깐 나눈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때 그녀는 천마에게도 잠을 자보라고 권했었다.

“흠, 그럼 본좌도 로그 아웃을 한번 해볼까?”

천마는 요괴들의 세상이라는 것에 대해 은근히 기대하는 바가 있어 저도 모르게 살짝 들뜬 어투로 말을 했는데, 광개토에게는 그 어투가 마치 로그아웃을 하고서 슬기를 찾아가겠다는 느낌으로 전달되었다. 그 바람에 광개토는 큰 오해를 하고 말았다.

‘아, 사부님은 아가씨랑 게임 밖에서도 아는 사이시구나.’

그런 생각을 한 광개토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지 말입니다. 로그아웃 하십시오. 사부님.”

천마는 이내 자리에 누웠고, 눈을 감는 천마를 보고 광개토도 잽싸게 자신의 자리로 누웠다. 만약의 경우에 뭔가 뜻대로 되지 않은 사부가 다시 자신을 추궁한다면 버텨낼 자신이 없었던 광개토였다.

그래서 광개토는 천마가 잠들고서 몸이 사라지지 않는 현상을 살피지 못했다.


*


천마는 문득 앞에 어떤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느꼈다. 언뜻 보기에 슬기와 비슷한 키와 체구를 가진 여자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큰 눈망울에 웃는 눈매가 무척 매력적인,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긴 생머리 그녀가 천마를 반겼다.

“오빠, 우리 오늘 어디 가요?”

여자의 밝은 미소는 어둡던 천마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데.”

천마는 스스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좋은 데가 어디지? 하고 생각했다.

곧 천마와 이름 모를 여자는 함께 바이크를 탔다. 어느새 자신이 쓰고 있던 헬맷을 여자에게 준 천마는 처음 보는 바이크를 마치 10년은 몰아본 것처럼 익숙하게 몰고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둘은 마치 연인처럼 서로의 몸을 밀착한 채 스피드를 만끽하며 평지와 언덕, 산길을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장면들은 현실처럼 생생했지만, 또한 꿈처럼 모호하기도 했다.

달리다가 도중에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도마뱀이 나왔을 때는 천마가 검을 들어 도마뱀의 머리를 싹둑 싹둑 잘라버렸고, 바이크가 오크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할 때면, 천마와 여자가 서로의 뒤를 지켜주며 검과 주먹으로 오크들을 처치해 나가기도 했다.

천마는 능숙한 솜씨로 검을 휘둘러 오크들을 차근차근 죽여나갔고, 여자 또한 선녀같은 겉보기와 다르게 무척이나 박력있는 주먹질과 발길질로 오크들을 처치했다.

이어서 둘은 바이크를 타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이크를 타고 90도로 깎아지른 절벽을 달려 올라간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광경이었지만, 천마는 그 장면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절벽에 오른 그들의 바이크는 절벽 위의 어떤 오두막집에 이르렀고, 천마는 품속에서 어떤 작은 물건을 꺼내 오두막집에서 나온 중년의 남자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시 바이크를 타고 내려오려는데,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트럭이 하나 나타났다.


쿠앙--!!


트럭은 천마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그와 여자를 덮치고 말았다.

형편없이 날아가버린 그들. 그리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쳐진 바이크와 여자, 그리고 천마.

깨진 헬멧은 저만치 튕겨나가버렸고, 쓰러진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피투성이 몸을 이끌고 천마가 간신히 여자 옆으로 다가가자 여자가 그를 올려다 보며 신음했다.

“오..빠...”

그 목소리가 어찌나 가슴을 아프게 파고 드는지 천마는 이겨내기 어려운 슬픔을 느꼈다.

“지혜야.!..정신차려, 지혜야!”

그렇게 외치다가 문득 천마는 깨달았다. 이 여자의 이름이 지혜구나!

천마가 그녀를 잡으려는 순간, 갑자기 양쪽에서 그의 팔을 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그 남자들은 말없이 천마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여자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천마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순간 사방이 크게 흔들리며 천마는 눈을 뜨고 말았다.


잠시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던 천마는 곧 앞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실리엔을 발견했다.

“네가 보이는 걸 보니 이번에도 로그아웃인지 뭔지 하는게 안된 모양이로구나.”

곧바로 현실을 인지하며, 천마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슬픔이라는 감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마는 로그아웃이라는게 왜 안되는걸까 생각하며 이에 대해 물어볼 생각으로 광개토를 찾았다.

“제자놈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실리엔이 대답했다.

“천마님이 주무시자 마자, 주인님도 주무시러 가셨어요.”

아무래도 제자놈이 도망친거 같다고 생각한 천마가 이번에는 실리엔에게 물었다.

“너는 로그 아웃하지 않느냐?”

실리엔이 도리어 반문했다.

“로그아웃이 뭔가요, 천마님?”

그러고보니 천마와 실리엔은 슬기와 광개토가 로그아웃을 하고 나면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며 밤을 지새곤 했었다. 그럴때면 천마는 천마대로, 실리엔은 실리엔대로 아무 생각없이 몇시간이고 가만히 있곤 했다. 둘 다 생각이 없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너는 잠을 자지 않느냐?”

그러자 실리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소녀가 왜 잠을 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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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19.12.04 43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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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19.12.03 439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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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19.12.01 45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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