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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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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811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1 17:00
조회
436
추천
5
글자
11쪽

64화

DUMMY

(64편)


슬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굳게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에게 진실이라고 세뇌를 걸며 소리쳤다.

“우리 꼬맹이는 사람이야!”

슬기의 말에 니긴마가 그만 푸하하,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아니, 지금 흡혈귀가 플레이어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자기도 모르게 평소의 말투가 나오자, 니긴마는 곧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서 다시 정중하게 연극조로 말했다.

“그럴 리가, 분명 흡혈귀는 사람이 아니라 몹이라고 알고 있네만? 어찌하여 그리 말도 안되는 허언을 하시오?”

니긴마는 이어 주변을 둘러보며 모두가 공감할만한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한번 욕을 해보시면 어떨까? 몹은 욕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 어디 한번 오늘의 여주인공께선 비록 레이디의 체면에 쉽지 않으시겠지만, 단 한마디만 욕을 해주실 수 있겠소?”

그러면서 니긴마는 정중하게 무릎을 굽히며 요청 자세를 취해왔다.

슬기는 살짝 애가 탔다. 저 꼬맹이의 머릿속에 든 알차다 못해 옹골찬 욕설이 딱 한마디라도 튀어나오면 좋겠는데, 안타까운 점은 아저씨가 옆에 있어야만 실리엔이 마음껏 마음속에 든 욕을 퍼붓는다는 것이었다!

실리엔이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슬기가 다급히 말했다.

“요 꼬맹이가 얼마나 욕을 잘하는데! 우리 일행의 남자 중에서 얘한테 욕 쳐 듣다 자살하려고 한 녀석도 있다고!”

하지만 니긴마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슬기를 제지했다.

“이 신성한 니긴마의 극장에서 허위사실이나 거짓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소, 이건 마지막 경고~유후”

슬기의 귀에 니긴마의 마지막 웃음 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변태스러웠다.

“신성같은 소리하네. 넌 실성한 거 같아!”

“허위사실! 거짓뉴스!!”

슬기의 팩트폭행에 니긴마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공조를 구했다.

“역시나 저 소녀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걸 보아 몹임에 틀림이 없소.”

그리고 니긴마는 실리엔에게 물었다.

“너는 대체 무엇이냐? 흡혈귀, 뱀파이어지? 맞지?”

실리엔의 작고 붉은 입술이 열렸다.

“본녀는 트란실의 언데드 군주, 실리엔 반 작퀸이다.”

어느덧 키가 자란 실리엔의 자태에서 군주로서의 위엄이 약간이나마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바라고 바라던 고백이 튀어나오자 니긴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자, 이 자리에 자리하신 귀빈 여러분, 드디어 흡혈귀가 자신의 정체를 고백했습니다. 무려 언데드 군주라는군요!!”

의기양양하게 외쳐대던 니긴마가 슬기와 광개토를 손가락질했다.

“그리고 저 연놈들은 언데드 군주라는 년과 한패거리고요. 생각해보십시오. 몹과 한 패인 녀석들이 제대로된 놈들일까요? 아군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언데드들은 천마군의 편이라더고 하던데, 어디 할말이라도 있으신가?”

니긴마의 마지막 한마디는 일부러 잔뜩 목소리를 깔아서 한 터라, 괜시리 더욱 신뢰감을 주는 느낌이 있었다.

“...착한 몹도 있을 수 있지, 무슨..”

“그럴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뱀파이어는 아니지.”

슬기의 변명이 씨알도 먹히지 않았는지, 주위의 모든 군중들이 니긴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씨발, 지네 편들끼리 잔뜩 모여서 편파 판정 오지네.”

슬기는 여론도, 논리도, 무력도 니긴마의 상대가 되지 않음을 인정했다. 다만 그럼에도 계속 입을 놀리고 있는 것은 조만간에 돌아올 천마때문이었다.

‘이 아저씨가, 제자 수련시키다가 열받아서 하늘로 승천했나, 올 시간이 되었는데 왜 이렇게 안와?’

천마는 항상 30분동안 수련하고, 마치 학교와 집, 또는 직장과 집밖에 모르는 땡돌이처럼 곧장 돌아오곤 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천마가 돌아올 시간이다.

니긴마도 그런 슬기의 낌새를 눈치 챘는지 슬슬 서두르기 시작했다.

“밤이 길면 꿈자리가 사나운 법, 이제 뻗대는 짓거리는 그만하고, 얌전히 항복해라.”

“항복? 포박이라도 할 거냐?”

그 말과 동시에 슬기의 주변으로 도깨비 공격대원 서너 명이 무기를 들고 슬기를 에워쌌다.

“너처럼 약해빠진 것에 포박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

니긴마의 말은 진실이었다. 더 원 길드 소속의 공격대에 속한 그 어느 누구도 슬기보다 약한 자가 없었다. 애초에 슬기는 그들에게 포박을 해야할 만한 위협거리가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녀를 에워싼 네 명의 위협에 슬기는 천천히 에릭과 아라곤이 있는 방향으로 몰려 버렸고, 그로 인해 한창 불 타고 있는 천막 옆으로 작은 연무장만한 공터가 만들어졌다. 실리엔이 그 가운데 서있고, 니긴마의 손짓에 따라 도깨비 공격대원 세 명이 앞으로 나왔다.

“꼴에 군주 랍시고, 꽤 하더군. 재밌게 놀아 줘라.”

니긴마의 신호에 곧 3 대 1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실리엔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손톱 공격을 가했지만, 공격대의 세 놈도 모두 만만찮은 움직임을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공격대장인 니긴마의 움직임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 몸놀림이었다.


캉, 캉캉-


손톱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몇 합이 오간 후, 한 공격대원의 장창이 실리엔의 왼쪽 어깨를 날카롭게 찍고 빠져나갔다.

“아악-!”

실리엔이 그런 비명을 지를거라고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슬기는 그 애처로운 목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것을 느꼈다.

“이런 비겁한 새끼들!”

슬기가 이빨을 드러내며 화를 냈지만, 어느새 근처로 온 니긴마는 미소를 잃지 않은 모습으로 말했다.

“자, 네 년이 우리 길드의 물건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나의 애병도 비롯해서 말이지. 그것들을 순순히 내놓으면, 혹시 알까? 저 언데드년을 천천히 죽여줄지도.”

슬기는 실리엔을 쳐다보았다. 공격대원 세 놈의 합격술이 이제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모양인지, 실리엔은 수세에 몰린 채 이리 저리 쫓겨다니기 급급한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실리엔은 도망가지 않고 그들의 공격을 버텨내는 것이, 마치 슬기를 두고는 갈 수 없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것 같았다.

아악, 하고 다시 한번 실리엔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를 들은 슬기가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말했다.

“알겠어. 물건들을 돌려주겠어.”

슬기는 등에 달라붙은 크로스백 형태의 인벤토리를 가슴쪽으로 당겨다가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아이템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장화 한 켤레, 귀걸이 한 쌍, 벨트 하나, 또 벨트 하나, 목걸이 한 개...

그때 니긴마가 말했다.

“이번에도 잡스러운 것이 나오면 저 년의 한쪽 팔을 날려버리겠다.”

‘이런 우라질...’

슬기는 그 옛날, 무리하게 고기 5인분을 먹고서 급체 했던 때와 같은 복통을 느꼈다. 배가 너무 아팠다. 언제나 불필요하고 불만족스러운 지출은 배가 아픈 법이다.

‘아냐, 이건 다 필요한 지출이야.’

아까 니긴마의 공격을 받았을 때 다급히 달려와 앞을 막아주던 실리엔의 모습을 떠올렸다. 평소에 ‘밀가루’니 ‘꼬맹이’니 하면서 동료 대우를 해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슬기를 위해 몸을 날려와 주었다.

‘무기 아이템을 잡스럽다고 하지는 않겠지.’

슬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잡스런 검을 하나 붙잡았다.

‘아까운 걸 어쩌라고!’

슬기의 손을 따라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검 자루가 나오자, 아라곤이 탄성을 질렀다.

“용이빨!!”

“아니야, 그건 여기 없어.”

용이빨은 이미 오래전에 은행의 창고에 들어갔다. 용이빨이 간절했던 아라곤의 눈에 용이빨처럼 보였던 검은 용이빨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천마가 그동안 상대했던 적들이 적이니만큼, 그렇게 수준이 떨어지는 무기도 아니었다. 일반 플레이어들의 눈에서는 충분히 욕심을 부릴 만한 무기였다.

하지만 상대는 세계 1위 레이드 길드 ‘더 원’의 공격대장으로 더럽게 눈이 높은 자였다.

검을 받아든 니긴마가 아무렇게나 뒤로 던져버리고는 크게 외쳤다.

“한쪽 팔을 잘라라.”

슬기는 그 명령에 놀라 소리쳤다.

“그건 잡템이 아니잖아!”

“나한테는 잡템이야.”

하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실리엔은 쉽게 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팔을 잘라야 된다는 명령이 제약으로 작용해 공격대원들의 손발이 어지러워 졌다.

“호호호, 팔 자를 능력도 안되면서 오버한거야?”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안도한 슬기가 비웃자, 니긴마의 얼굴이 굳어 갔다. 굳은 표정의 그가 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세우자, 곧 군중 역할을 하고 있던 공격대원 중에 한 명이 더 나와 실리엔을 압박해 들어갔다. 그녀를 공격하는 인원이 네 명으로 불어나자, 순식간에 실리엔은 이전보다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슬기는 자신의 비웃음이 상황을 그렇게 만든거 같아 실리엔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실리엔은 간신히 팔을 간수하며 버티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던 니긴마가 다시 슬기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대양의 바늘이 나와야 할 거다. 안 그러면 저년의 팔과 같이 목도 쳐버릴거야.”

잡스런 반지를 꺼내려던 슬기는 흠칫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실리엔의 주검을 껴안고, 대성통곡을 할 광개토의 모습이 떠올랐다.

슬기는 인벤토리에 손을 넣고서 생각했다.

‘대양의 바늘.’

곧 슬기의 손에 단단한 검자루가 잡혔다. 슬기는 천천히 검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검은 더럽게 길어서 천천히 꺼내는 슬기의 팔과 어깨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대양의 바늘은 거의 2미터에 이르는 장검이었다. 160센티를 조금 넘는 슬기로서는 아예 가방을 내려놓고, 빼내야 했다.

니긴마는 마음같아선 슬기대신 검자루를 쥐고서 쑥 잡아빼고 싶었지만,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은 시스템적으로 가방의 주인만이 가능한 고유의 권한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이 개입되면 아이템은 도로 가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니긴마는 애타는 마음으로 슬기가 ‘대양의 바늘’을 완전히 꺼내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하지만 슬기의 입장에서는 빨리 꺼내서 좋을게 하나도 없었다. 이 핑크머리 변태남은 생긴 꼴부터 전혀 신뢰가 가지 않아, 받을걸 다 받고나면, 더 나쁜 놈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슬기는 천천히 검을 꺼내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저씨, 빨리 좀 오라고, 이 씨발 새끼야!!’


그리고 그때,


쿠아아앙--


마치 박격포가 터진듯한 어마어마한 굉음이 실리엔과 공격대원 네명이 공방을 벌이던 바로 그 자리에서 터져나왔다.

“우와아악!”

폭발의 충격음과 이어서 들이닥친 강렬한 먼지 바람에 군중들은 모두 몇걸음이나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그 직후, 쒸아아아앙- 하는 파공음이 들려왔다. 얼마나 빨리 왔는지 소리보다 먼저 도착했던 것이다.

먼지가 자욱한 가운데, 차갑다 못해 온 혈관을 얼려버릴거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검은 콩 만한 것들이 왜 이렇게 지랄들이야, 응? 대가리에 싹 날 때까지 전부 다 밭에 거꾸로 심어버릴까?”


그 목소리에 단 한 사람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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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19.12.04 434 7 12쪽
70 70화 19.12.03 437 5 11쪽
69 69화 19.12.03 439 5 12쪽
68 68화 19.12.03 456 5 11쪽
67 67화 19.12.02 44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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