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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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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조회수 :
104,802
추천수 :
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4 09:33
조회
433
추천
7
글자
12쪽

71화

DUMMY

(71편)


광개토는 혼몽 중에 정신을 차린 것도, 잃은 것도 아닌 그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본디 시온의 시스템 설정상, 유저가 사망에 이르거나 정신을 잃으면 로그 아웃이 되어야 하지만, 광개토의 경우에는 그의 몸을 돌며 지탱하고 있는 천마교 사제의 고유 능력으로 강화된 자연 치유력이, 그의 정신이 몸을 떠나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서 전해오는 고통들이 뜨겁게 한차례 몰아치면 이어서 시원한 치유력이다가와 아픔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온 몸을 돌고 있는 고통과 치유력에 의해 광개토는 고통 속에서 평안을 느끼고, 아픔 속에서도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청량한 기운이 외부에서 몸 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청량한 외부 기운과 고통을 어루만지던 치유력의 시원함이 어우러지자 광개토는 문득 정신이 드는 것을 느꼈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그런 생각을 하며 일어나려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실리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녀가 조금만 더 자랐어도 그냥 죽여버리는 건데, 더 성장하려면 졸라 열 받지만 어쩔 수 없군.”

광개토는 상황을 깨달았다. 실리엔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구나.

그녀의 살벌한 목소리에 광개토는 일부러 눈을 뜨지 않았다. 그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실리엔의 얼굴은 유일하게 보고 싶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광개토는 그 상태로 그저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다가 몸이 뭔가로 덮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부드러운 천이었는데, 놀랍게도 혼몽중에 느꼈던 청량한 기운은 이 천에서 흘러나왔던 것이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청량한 기운이 흘러나와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어서 실리엔이 그 천을 끌어 광개토의 얼굴까지 덮는 게 느껴졌다. 얼굴에도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에 광개토는 기분이 좋다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응? 이건 사람이 죽으면 얼굴에 천 덮는 그거 아냐?’

산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하는 실리엔의 행동에 광개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를 정말 죽여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몸 떨림에서 살해충동을 간신히 참는다는게 느껴졌다.

“그래도 짜증나니까 한 방은 쑤셔 박아야겠어. 설마 이 한방에 이 변태 새끼가 뒤지지는 않겠지?”

실리엔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갑자기 옆구리에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금세라도 공격을 받을 것 같은 그 기세. 천마와의 짧은 수련에서 무수히 느꼈던 바로 그 위기감이었다.

‘이런!? 옆구리를 차이겠어!!’

광개토는 슬며시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실리엔이 그를 한번 걷어찰 모양인데, 굳이 네가 때리고 싶다 하면 내가 그냥 맞아줄게!! 그런 마음이었다. 그는 옆구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예상하고 있던 고통이 닥쳐오지 않았다. 속으로 열을 세던 광개토는 끝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괜찮아. 리엔아. 때리고 싶으면 때려.”

신기하게도 언제 아팠냐는 듯 광개토의 몸은 이미 다 나아있었다. 기절해 있는 동안에도 ‘자연 치유력 강화’ 효과가 끊임없이 작동한 모양이었다.

다 나은 자신의 몸에 감탄하던 광개토는 곧 멍하게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실리엔을 발견했다. 실리엔이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인님, 일어나셨군요. 소녀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아, 아니..”

당황한 광개토는 손사레를 치며 생각했다.

‘방금까지 나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더니, 이게 무슨 일이지?’

혹시나 하여 주변을 둘러봐도 사부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조금의 그 히스테리는 사부님이 곁에 있을 때마다 나오는 거였는데?’

광개토는 어쨌거나 원상태로 돌아온 실리엔의 모습에 안도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곧바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실리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가락 잘리고 싶나, 틈만 나면 손잡고 난리네. 이 변태 새끼가!”

갑자기 돌변한 실리엔이 살벌하게 눈꼬리를 치켜 세웠다.

그 모습에 광개토는 한가지 무서운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설마...?”




광개토를 대할 땐 그렇게 혹독하더니, 알고보니 천마는 좋은 스승이었다.

“아저씨, 오전 대련하는 내내 살살해줬으면 좋겠어.”

한번 세게 처맞은 슬기가 그렇게 말했더니, 천마는 별로 내켜 하는 표정이 아니었지만, 그의 손속은 눈에 띄게 매서움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둘 사이에 오가는 훈훈한 주먹질은 슬기가 충분히 감당할 만한 공방 수준이라 순식간에 수십여 합을 겨루어 나갔다.

마치 잘 짜여진 무술 영화의 합처럼 서로간의 공격과 방어가 딱딱 들어 맞아지자 슬기는 기분이 상쾌했다.

‘그래 이 맛에 권사하는 거지!’

주먹과 주먹, 팔꿈치와 팔꿈치, 무릎과 무릎이 맞부딪히는 쾌감에 슬기는 저도 모르게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깨달음을 얻는 그런 고상한 경지는 아니었고, 그저 자아도취의 단계였다. 정교하게 맞물려지는 합 속에서 마치 자신이 절대 고수가 된 것같은 착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천마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고, 공격에 실린 위력이 점점 강해져갔다.

“아저씨, 살살 해달라고 했잖아. 살살~”

슬기가 되먹지 않은 얼굴로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렸지만, 천마의 공세는 약해지기는커녕 더더욱 강해져만 갔다.

어느덧 뼈를 울리는 고통에 슬기는 뒤로 물러서며 천마를 쳐다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보이지 않는 그의 눈, 그리고 익숙한 콧잔등과 입매, 살짝 각진듯한 그의 턱선. 그럼에도 그의 모습이 갑자기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마가 강력하게 내지르는 주먹이 슬기의 십자로 교차한 양팔위로 떨어졌다.


우득-


“꺄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양팔의 뼈가 동시에 부러지고, 슬기는 비명과 함께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녀는 순식간에 5미터 가량을 날아가서는 근처의 나무 둥지에 부딪혀 떨어졌다.

천마의 살벌한 위세와, 경감되었다고는 하지만 팔에서 전해오는 커다란 고통에 슬기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팔!! 내 팔, 내 팔이 으윽~! 아저씨, 왜 이래?? 미쳤어?”

그리고 슬기는 보았다. 저 앞에 우뚝 선 천마에게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강대한 기운이 뻗쳐 나오는 것을. 머리카락에 가렸지만 천마의 눈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검은색 빛이 새까맣게 번뜩였고, 그의 온몸에서 검은 연기가 아지렁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그 모습은 마치 그녀가 익히 알던 천마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크크크, 아직 준비도 안된 것들이 본좌 앞에 나타났구나.”

낯설게 변해버린 천마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고는 섬뜩한 기세를 내뿜으며 잠시 가만히 서 있더니 살짝 몸을 웅크렸다. 마치 기를 모으는 듯한 그의 자세에서 곧 가공할 흡입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한 흡입력인지 주변의 기운들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게 보이는 듯했다.


우우우웅--


천마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간이 공명음을 울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천마의 몸 속으로 엄청난 양의 기운들이 마구 밀려 들어갔다. 밑빠진 독처럼 쉴세 없이 빨려들어가는 기운들이었지만, 어쨌든 결국엔 한계에 도달하고 말것이었다.

‘저 기운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면 이 주변은 초토화되어버릴거야.’

슬기의 눈에 비친 천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한 폭탄이었다. 곧 그의 몸에 응축된 기운이 터져나오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도 공포스럽게 변해버린 천마의 모습에 슬기는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다만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점차 모여드는 기운의 기세가 줄어드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슬기의 머릿속에 두려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곧 임계점이야... 이제 폭발할거라고!’

블랙홀처럼 모든 기운을 빨아들인 천마는 분명 까만 빛으로 둘러싸였는데도, 그 심연과도 같은 어둠이 찬란하게 빛나는 듯한 기묘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심연의 어둠 한가운데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새까만 점 하나가 나타났다. 만약 심연이라는 것이 생명체라면 가히 심장이라 부를만한 것이었다.


꿈틀


그 점이 정말 심장처럼 꿈틀 거린 순간, 슬기는 곧이어 벌어진 참사를 예측했다. 이제 곧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천마는 폭발할 것이고, 슬기를 비롯한 이 주변은 흔적도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져버릴 것이었다. 그동안 봐 왔던 최고의 강자들, 권마니 괴마니 하는 것들도 이 폭발 앞에서는 손톱하나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끝이야!’

방금까지 화기애애하게 훈훈한 주먹질을 주고받던 그가 갑자기 돌변하고, 이렇게 폭발하려고 하다니. 일련의 과정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폭발을 예상하며 눈을 질끈 감으려는 그 순간!!

갑자기 천마의 몸 위로 잿빛 망토가 씌워졌다.


푸시시시


그리고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모든 기운과 기세가 사라졌다. 천마의 새까맣던 온 몸이 순식간에 제 색깔을 되찾고, 천마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슬기가 익히 알던 그 것이었다.

“헉헉, 제가 제때 온거 맞습니까?”

천마의 등 뒤로 광개토가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천마에게 씌워진 망토의 끝자락이 들려 있었다.

천마가 그런 광개토를 보며 말했다.

“네 놈은 아직 세 번을 못 피했으니 아직 수련이 끝나지 않았느니라.”

평소와 같은 천마의 말투에 슬기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울고 말았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 그녀는 갑자기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경험을 했었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이 변하고, 절체 절명의 위기 속에서 마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을 맛보았었다. 그랬었기에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낯설던 것이 다시 익숙함으로 돌아오자 그만 울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눈물을 광개토가 발견하고,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본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아가씨가 우는데 말입니다?”

‘정말 못 볼 꼴입니다!!’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천마가 슬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곧 슬기의 팔이 부러진 걸 발견했다.

“응? 누가 너의 팔을 이렇게 만들었느냐?”

천마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긴장했다.

‘대체 감히 어느 누가 고금 무적의 절대 고수인 본좌의 이목을 속이고서 아가씨의 팔을 부러뜨렸단 말인가? 정말로 본좌의 이목을 속이고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이냐?’

그간 제대로된 적수를 만나지 못했던 천마는 재빨리 경각심을 일깨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긴장한 자세로 주변을 둘러보는 천마의 그 모습이 묘하게 웃겨 슬기는 웃고 말았다.

“아저씨, 니가 했어. 멍청아.”

슬기가 웃으며 하는 말에 천마는 어리둥절해하더니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렇지, 본좌가 아니고서야 누가 네년의 팔을 부러뜨릴 수 있겠느냐.”

정체불명의 고수가 사실은 없었다는 사실에 천마는 드러내놓고 웃음을 지었다.

일단 아직은 그가, 그가 아는 한 최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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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72화 19.12.04 423 5 12쪽
» 71화 19.12.04 43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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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69화 19.12.03 439 5 12쪽
68 68화 19.12.03 456 5 11쪽
67 67화 19.12.02 442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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