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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식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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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넘기
작품등록일 :
2019.11.14 00:35
최근연재일 :
2020.01.16 17:0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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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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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글자수 :
1,122,955

작성
19.12.04 12:00
조회
422
추천
5
글자
12쪽

72화

DUMMY

(72편)


결국 광개토는 오전 내내 천마에게 처맞았다. 어떻게든 두 번까지는 피하겠는데 마지막 세 번째만큼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 차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광개토는 깨달았다.

‘사부님이 나를 가지고 놀고 계시는구나!!’

두 번째까지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사부님이 허락하셨기에 가능했던 것이었고, 세 번째를 도저히 못 피했던 것도 사부님이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슬기가 차려 놓은 밥상을 눈앞에 두고 끝내 세 번째 공격을 허용한 광개토는 강력하게 성토했다.

“그냥 제가 먹는 밥이 아깝다고 말씀을 하시지 말입니다!!”

이토록 집요하게 세 번째 공격만큼은 성공시키는 걸 보면 분명 이건 사부의 고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봐야했다.

산발한 머리에 옷 여기저기에 묻은 핏자국, 관자놀이를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두 눈이 몽땅 한쪽으로 몰린 듯 한 몰골을 하고 주저앉은 광개토를 보고 천마가 한마디 했다.

“어짜피 똥도 안 싸는데 먹어서 무엇하랴.”

천마는 차가운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식탁에 가 앉았다. 그리고 이미 식탁에 앉아 있던 슬기, 실리엔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광개토는 분노를 터뜨릴 곳도 마땅찮아 쓸쓸히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진짜, 똥도 안싸는데 왜 배가 고픈거지? 먹었으면 당연히 똥을 싸야 하는건데. 난 똥을 안쌌잖아. 그럼 소화가 제대로 안되었다는 거고, 뱃 속에 아직 똥이 가득하다는 말인데, 배가 고플 이유가 없잖아.”

“야, 개토!! 밥 먹는데 자꾸 똥 얘기 할래?”

심히 심기가 거슬린 슬기가 숟가락을 들고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슬기의 기세에 광개토가 황급히 천막으로 사라졌다.

“밥 먹는데 밥맛 떨어지게 진짜!”

입맛이 뚝 떨어진 슬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 천마와 실리엔을 쳐다보았다. 둘은 전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변함없는 속도로 밥을 잘 먹고 있었다.

“아저씨는 밥 먹는데 똥 얘기해도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천마는 밥 먹는데 열중하느라 대답도 하지 않고, 대신 실리엔이 물어왔다.

“아가씨, 똥도 먹는 거니요?”

말똥말똥한 눈망울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실리엔을 보고서 슬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 맞아. 맛있어. 나중에 많이 줄게.”

슬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천막 안쪽에서 광개토가 그녀에게 손짓하는게 보였다.


슬기가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광개토가 구석진 그의 자리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왜? 라고 물으려던 그녀는 광개토의 진지한 표정에 질문을 참고 다가갔다.

“아가씨, 혹시 나중에 밖에서 저랑 전화 통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슬기는 직감적으로 광개토가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걸 느꼈다. 아마도 아까 있었던 아저씨 폭주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할 모양이었다.

하지만 슬기는 휴대폰이 없었다.

“미안, 나 폰이 없어.”

“네? 진짜요?”

광개토는 깜짝 놀랐다. 폰 없는 사람이 있다니, 이건 밥 먹고 똥 안 싼다는 말보다 더 어이없는 소리였다. 대체 이 여자의 정체가 뭐길래 폰도 없이 산단 말인가!?

‘요즘 세상에 폰이 없는 사람이라면 저 외모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결론이지만..’

“혹시 아가씨는 미취학 아동?”

“처맞을래? 이래뵈도 너보다 내가 연상이거든.”

슬기가 발끈하자, 광개토도 슬기의 얼굴을 보며 깊이 수긍했다.

“아, 물론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폰이 없다는게 도무지 이해가 안되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현실에서 전신불수 신세인 슬기는 폰이 없었다. 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육성으로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그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그녀의 내밀한 사정을 광개토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폰 게임 중독이 심해서 갖다 버렸어.”

슬기가 말하는 어이없는 이유에 광개토는 그녀가 전번을 알려주기 싫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지만, 캐묻진 않았다. 여자가 원치 않는데도 전화번호를 묻는 것은 잘못 걸리면 3년 이하의 징역을 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기본법 침해 행위 중 하나였다. 광개토, 즉 현실의 장병태는 주변에 그와 같은 사유로 처벌받는 남자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럼 그냥 여기서 말하면 되겠습니까?”

광개토는 흘깃 천막 입구를 노려보았다. 금세라도 천마가 들어올 것 같았다.

“아마 20분은 더 먹을걸?”

음식에 대한 천마의 탐욕을 아는 슬기가 단정 짓듯 말했다.

“혹시 사부님의 망토를 만져 보셨습니까?”

천마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광개토가 꺼낸 뜻밖의 화제에 슬기는 잠시 당황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만져봤지. 그거 수선하려다가 피도 봤잖아.”

“그럼 그 신기한 느낌도 느껴 보셨겠습니다?”

“어떤 느낌?”

슬기는 가만히 망토를 수선하던 때를 떠올렸다.

“뭔가 청량한 게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신비로운 기운, 못 느끼셨습니까?”

슬기는 광개토의 말을 듣고 보니 망토를 만졌을 당시에 뭔가 시원했던 거 같기도 했다.

“그랬다 치고. 그래서?”

슬기의 재촉에 다시 한번 입구쪽을 흘깃 쳐다본 광개토가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무래도 그 망토가 이상한 작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번씩 우리 리엔이가 이상한 소리를 할 때면..”

광개토의 말을 들으며 슬기의 머릿속에 어떤 광경이 하나 떠올랐다.

자꾸 실리엔에게 치근덕대는 광개토와 그런 광개토에게 욕하는 실리엔.

‘정상 아닌가? 나라도 개 쌍욕을 퍼부었을텐데.’

슬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광개토의 말에 집중했다.

“항상 사부님이 리엔이 곁에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오전에도 갑자기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라는 표정을 짓는 슬기에게 광개토는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분명 그때 천막 안에 사부님은 안 계셨습니다! 대신 그곳에 있었던 것은 바로 사부님의 잿빛 망토였었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망토가 어떤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 아이템이거나, 어쩌면...버그 아이템일 수 있다는 말이지?”

“엇, 버그 아이템까지는 생각도 못해봤습니다만, 그런 것도 있습니까?”

광개토는 버그 아이템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귀를 쫑긋했다.

“암튼 간에..”

슬기는 버그 아이템에 대해 설명하기가 매우 귀찮아 그냥 넘어가려 했다. 사실 버그 아이템이란 소문만 무성할 뿐, 목격자도 없고, 실체도 불분명한 물건으로, 다만 시온 내부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나 현상을 설명하는 용도로 가끔 쓰일 뿐이었다.

“개토, 네 말의 핵심이 뭐야?”

“어쩌면 사부님도...”

광개토의 말을 듣는 순간, 슬기는 제멋대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별별 생각들을 애써 제어했다. 그녀는 그저 마음속으로 섣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되뇌이고 되뇌었다.

“...망토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 어떤 식으로?”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동안 항상 사부님께서 그 망토를 착용하셨었고, 오늘 처음으로 망토를 벗으셨었지 말입니다?”

“그랬나?”

슬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제 기억에는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갑자기 변하셨습니다.”

광개토의 말을 듣는 순간, 슬기의 기억 속에서 폭주하던 천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천마는 갑자기 그녀의 양팔을 부러뜨렸었고, 일대를 모조리 파괴하려 했었다.

“만약 제가 그때 사부님께 망토를 씌워드리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슬기는 광개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겉으로는 아닌 척했다. 그냥 심리적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모르지. 그냥 그대로 끝났을지도.”

슬기의 말에 광개토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광개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건 망토가 닿은 순간 사부님이 원래대로 돌아오셨다는 겁니다.”

“그래, 그건 인정해.”

그리고 둘은 입을 다물었다. 둘의 머릿속에서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생각의 흐름이 이어졌지만, 둘 다 차마 입 밖으로 그 생각들을 꺼내 놓지 않았다. 그 생각들을 꺼내놓는 순간 실체가 없던 것들이 실체를 가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어쨌든 사부님은 그 망토를 벗으시면 안될 거 같습니다.”

“나도 동의.”

“망토로 사부님의 목을 묶어놔야 할 거 같습니다.”

“아예, 망토로 옷을 지어 입히면 어떨까?”

“그건...아이템을 변형시켜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아예 미이라처럼 칭칭 감아버릴까?”

“저기, 아가씨. 그냥 가만히 두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둘은 이 사건을 이런 미온적인 해결책 수준에서 덮기로 했다. 왠지 더 파고들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천막을 먼저 나가려는 광개토에게 슬기가 나지막이 말했다.

“망토를 두르고 있는 모습과, 벗은 모습 중에 어떤 모습이 아저씨의 진짜 모습일까?”

발걸음을 멈춘 광개토가 아픈 속내를 드러냈다.

“리엔이는 망토의 영향을 받을 때가 더 진실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부님도 망토를 두르고 계실 때가 진실한 모습일거 같습니다.”

“그렇지? 지금 모습이 진짜 모습인거지?”

고개를 끄덕인 광개토는 천막을 나갔고, 슬기는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후 수련이 마침내 들이닥쳤다.

오전에 행했던 대련을 두고 천마가 솔루션을 내놓았다. 감히 천마의 솔루션을 거부하겠다는 멍청이는 없었다. 어쨌든 천마는 극강의 고수였고, 그런 고수를 사사한다는 것은 큰 기연이자 기회였다(그럼에도 슬기는 시온에 이런 시스템이 있나? 하고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명색이 제자라고, 천마는 광개토에게 먼저 개인 수련 거리를 던져주었다.

“너의 파천무는 비록 일단공에 불과하나, 그것만으로도 범인의 능력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허나 너는 아직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그저 의식적으로만 겨우 활용할 따름이다. 그래서는 결코 눈보다 빠를 수 없고, 적의 공격보다는 반 수 처질 수밖에 없다.”

“사부님. 그래도 이걸로 저보다 강한 적들을 많이 물리쳤습니다!”

아닌게아니라, 광개토는 아직 150렙 정도에 불과했지만, 신체 능력을 기이하게 상승시켜주는 파천무의 덕으로 50렙 정도 차이나는 몹들은 우습게 상대했고, 게다가 그와 거의 백렙 가량 차이나는 슬기의 공세를 버텨내기도 했었고, 아예 그런 슬기보다 강한 적들과도 맞붙은 바가 있었었다. 물론 이긴 적은 없었지만.

하지만 지금 이순간 갑작스럽게 전개된 천마의 기공을 막아내진 못했다.

퍽, 소리와 함께 광개토의 고개가 크게 젖혀졌고, 그는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허억. 사부님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갑자기 공격하시면 못 피하지 말입니다.”

그러자 천마가 대꾸했다.

“아프라고 때린건데? 제자 놈이 혀가 너무 길구나. 이제 대꾸할 때마다 때릴테니 그렇게 알거라.”

그리고 생각났다는 듯이 천마가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자꾸 대꾸하면 세 번째는 혀를 뽑아 버리겠다.”

“헉, 사부님 그런 게 어딨습니까?”

광개토는 말을 내뱉자마자, 또다시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제는 혀를 뽑을 차례구나.”

천마의 으스스한 목소리에 광개토는 양손으로 입을 막고서 조심스레 일어났다.

그렇게 광개토가 조용해지자, 그제야 비로소 천마는 방해 없이 솔루션을 이어갈 수 있었다.

“네 놈은 이제부터 어떤 행동을 하든지, 파천무를 운용하도록 해라. 걷든지 뛰든지, 밥을 먹든지 물을 마시든지, 주먹을 뻗든지 발을 뻗든지 간에 말이다. 알겠느냐?”

말없이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는 광개토를 보며 천마가 역정을 냈다.

“그딴 식으로 버릇없이 고개만 까딱거리면 목을 꺾어버리겠다.”

광개토는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없는 함정에 빠진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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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3화 19.12.04 43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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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1화 19.12.04 433 7 12쪽
70 70화 19.12.03 437 5 11쪽
69 69화 19.12.03 439 5 12쪽
68 68화 19.12.03 456 5 11쪽
67 67화 19.12.02 442 6 12쪽
66 66화 19.12.02 464 4 13쪽
65 65화 19.12.02 450 6 12쪽
64 64화 19.12.01 436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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