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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양치기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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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복숭아
작품등록일 :
2024.08.0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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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히사릴 언덕에는 언제나 산들바람이 불었다.

저 서쪽의 한없이 높은 산맥에서부터 시작해, 짧고 뻣뻣한 잡초들을 휩쓸며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이.


양치기 투란은 볕 드는 들판에 누워 그 산들바람을 맞으며 양 떼를 감시하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아니, 가장 덜 싫어하는 일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을 터다.

양털을 깎거나 축사를 청소하는 것보다 편한 일이라서 그럴 뿐, 이를 즐거워한 적은 없으니까.


사실 그를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고된 노동 따위가 아닌 지루함이었다.

늘 눈을 뜰 때마다 똑같은 풍경, 똑같은 건물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시간에 잠드는 나날.

가끔은 그러다 말하는 법마저 잊을까 싶어 혼자 말을 걸며 대답하는 것을 놀이 삼기도 했다.


이러한 고독을 이기지 못해, 혹은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 몇 개를 교환하기 위해 언덕 아래의 작은 마을로 내려가기도 했으나 이 역시 썩 즐겁지는 않았다.

왜냐면 마을의 주민들 모두가 투란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물론 투란 역시 그들을 싫어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해도 채 기울지 않았는데, 젊은 놈이 벌써 농땡이나 피우고 있는 게냐?”


느지막한 오후, 평소처럼 볕 드는 들판에 누워 양 떼를 감시하던 투란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의 이름은 라부스.

언덕 아랫마을의 장로 중 한 명이었다.

투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하는 대신 얼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비키쇼, 영감. 햇빛 가리니까.”


투란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싫어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더 싫어하는 게 바로 저 늙은이였다.

오 년 전, 투란의 어머니가 죽자 재산을 관리해 주겠다면서 은근슬쩍 언덕의 양들을 모두 마을의 공동 소유로 돌리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투란은 마을 사람들과 거의 전쟁에 가까운 다툼을 치러 가며 양을 돌려받아야만 했다.


퉁명스러운 태도에 라부스의 얼굴이 굳었으나, 그는 이내 이를 악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기야 화를 내 봐야 무엇 하겠는가?

여기서 주먹 싸움이라도 한다면 코가 깨져 내려가야 하는 쪽은 그일 게 뻔한데.


“지난밤에 롭이 마을 어귀에서 마수를 발견했다. 온몸이 새카만 그림자로 뒤덮이고 덩치가 집채만 한 표범이라더구나.”


마수란 마법의 힘을 깨우친 짐승을 이르는 말로, 평범한 동물보다 체격이 크고 머리가 좋으며 온갖 신비한 힘을 다뤘다.

동종 내에서도 개체 차이는 있으나 보통은 강한 짐승이 변이할수록 위험한 마수가 되며, 표범 마수쯤 되면 평범한 사람들이 감히 당해내기 어려웠다.


“저런.”

“겁먹지 않는 게냐? 이 근방에서 마수가 노릴 가능성이 큰 게 너일 텐데도?”

“무서워하고 있는데? 그것도 엄청.”


말과 달리, 투란의 얼굴에 동요한 기색은 없었다.

라부스가 보기에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였다.

대체 간덩이가 어떻게 되어 먹었기에 위험한 마수의 출현을 저런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들처럼 울타리 안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튼, 촌장이 마수를 토벌할 마법사를 청하러 도시로 갔으니 몸조심하거라. 웬만하면 양도 멀리 끌고 가지 말고.”


물론 그가 투란을 걱정하는 마음에 이런 사실을 알려주러 온 것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이 양치기 놈 따위 확 물려가 버렸으면 좋겠다만, 투란의 양들은 마을의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자 보온재, 수출품이었기 때문이다.


투란이 죽는다는 건 그 모두를 잃게 된다는 의미였다.

설마 마수가 사람의 사정을 봐가면서 양치기만 물어 죽이고 양 떼를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까.

그러한 속내를 짐작하고 있기에, 투란 역시 조금의 감사함도 느끼지 않고 한껏 비꼬았다.


“걱정해 주셔서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말 다 했으면 빨리 꺼져. 당신 입 냄새 때문에 코가 썩을 것 같으니까.”


라부스가 투덜대며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투란은 그가 조금 전 했던 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법사라···.’


신비한 힘을 다루는 짐승을 마수라 하듯, 신비한 힘을 다루는 인간은 마법사라 불렀다.

다르게는 귀족이나 기사라고도 했는데, 마수가 같은 종의 짐승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되듯 마법사는 인간 사회의 최상위층에 군림했다.


‘얼마나 강하려나.’


이런 시골 촌장이 불러서 올 정도면 아마 마법사 중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작자일 터.

하지만 그런 이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기는 했다.

가까이 갔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몰래 훔쳐보는 식으로라도.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도중, 투란의 코에 미묘한 냄새가 걸려들었다.


‘피 냄새?’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은 듯 신선한 피 냄새였다.

옆에 세워둔 지팡이를 쥐고 후각의 인도를 따라 걷자, 얼마 지나지 않아 냄새가 시작된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투란은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찼다.


‘나한테 조심하라더니 정작 자기가 먼저 갔구만.’


갈기갈기 찢겨 흩뿌려진 탓에 마치 흐드러지게 핀 빨간 꽃처럼 보이는 라부스의 시체.

전신에 새겨진 선명한 발톱 자국으로 보건대, 그를 공격한 것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분명했다.


“너냐?”


[그르릉-]


투란이 뒤돌아보며 묻자 나무 아래의 그늘에서 솟구친 그림자가 모여들어 짐승의 형상을 취했다.

어깨높이만 못해도 이 미터는 될, 곰도 뚝딱 잡아먹을 크기의 거대한 표범······.

투란은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며 선언했다.


“죽어.”


그 순간, 표범의 머리 위로 번갯불이 튀었다.

움찔 놀라며 뒤로 펄쩍 뛰었던 놈은 이내 자극을 받아 화가 났는지 포효하며 투란을 향해 도약했다.


“안 되나······멈춰.”


두 번째 명령에 표범의 몸이 움찔하며 멈추는가 싶었으나, 이번에도 채 일 초도 되지 않아 번갯불이 튀며 몸이 자유로워졌다.

눈앞의 나약한 먹잇감이 무언가 이상한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표범은 더 지체하지 않고 곧장 앞발을 휙 휘둘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응하지도 못한 채 일격에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힘과 속도로.


하지만 순식간에 먹잇감을 찢으리라던 예상과 달리 날카로운 발톱은 무력하게 허공을 갈랐다.

그것이 아주 잠깐 움찔한 순간 투란 역시 비상식적으로 빠르게 움직여 뒤로 물러났기 때문이었다.


“죽이는 게 안 될 줄은 알았지만, 멈추는 정도도 안 되는 거구나······.”


투란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투석구와 둥글게 깎아낸 돌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매겼다.

그런 뒤 이를 두어 바퀴 돌리며 주문을 외웠다.


“단단해져라, 빨라져라, 꿰뚫어라-목표는 머리.”


정말로 직관적이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다소 우스꽝스럽게마저 느껴지는 주문.

그와 함께 한쪽 끈을 놓은 순간, 해방된 돌멩이는 바람을 찢는 굉음을 내며 마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수의 직감이 외쳤다.

저 공격 앞에서 그의 튼튼한 가죽 따윈 소용없을 것이라고.


[캬악!]


경악하여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자 본래 명중했어야 할 돌멩이가 아슬아슬하게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채 안심할 새도 없이, 저 멀리 날아가야 할 돌멩이는 마치 누군가 직접 조종하는 것처럼 크게 휘며 돌아와 마수의 뒤통수에 꽂혀 미간을 뚫고 나왔다.

두개골과 뇌가 으깨진 표범 마수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쯧.”


마을 놈들 좋은 일만 했다는 생각에 혀를 차며, 투란은 죽은 마수의 꼬리를 잡아끌었다.

평범한 남자라면 몇 명이 힘을 합쳐 들어야 할 거구건만, 마치 죽은 개라도 끌고 가는 것처럼 가볍게.


‘어디 골짜기에나 던져둘까.’


그러면 남은 잔해는 벌레와 짐승들이 적당히 처리해줄 터였다.

썩 깔끔한 뒤처리라 하기는 어렵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마을의 겁쟁이들은 마수의 흔적을 따라올 용기가 없을 것이고, 며칠 뒤 촌장이 고용한 마법사가 왔을 때쯤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세상의 서쪽 끝, 히사릴 언덕에 사는 양치기 따위가 마법사라는 사실은 들통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수박복숭아입니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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