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니 님의 서재입니다.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조회수 :
82,400
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작성
19.12.26 00:06
조회
134
추천
1
글자
12쪽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DUMMY

「자네 왔는가?」

「하루씨? 아이고 이거 얼마 만에 만나 뵙는 겁니까?」

「한... 오륙년 되었지요?」

「그 정도 된 것 같네요. 어떻게 드디어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시는 겁니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확정 되었네. 나이도 만으로 곧 예순두 살인데 늦기 전에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아요!」

「미나토 이 사람이? 좋아지긴... 아주 쭈글쭈글 할아버지가 다 되었는데 무슨 거짓말도 참.」

「아니요,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뭐랄까 얼굴이 기쁨과 여유로 가득 차 있다 그 말입니다.」

「미나토씨야 말로 그간 장사가 아주 잘 되셨나 얼굴이 폈습니다, 그려.」

「푸하하, 하루씨 말씀대로 인삼이나 홍삼을 팔아보니까 아주 장사가 잘 되더라고요. 덕 좀 봤습니다.」


미나토는 하루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껴안았고 일본어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곁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마루라는 청년을 인식한 하루는 인사를 이어갔다.


“인사해라, 이 분이 내가 말한 미나토라는 분이다.”

“안녕하세요. 그그 뭐였죠?”

“곤니찌와?”

“아, 곤니찌와. 하루님의 수행원을 맡은 마루라고 합니다.”

“네, 곤니찌와. 반갑스브니다. 미나토라고 하브니다. 잘 부탁드려여.”

“조선말 하실 수 있으시군요.”

“네, 조금 할 수 있스브니다.”

“그래, 출항은 언제 쯤 할 예정이신지?”

“한 2주 있다가 바로 출항할 거브니다. 하루상이 말쓰믈 하실 땐 열도말로 좀...”

“아... 크헠 미안하네. 나도 살면서 내가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 가끔 헷갈려.”

“그냥 만능인이라고 하지 그러세요?”

“만능인 그거 나쁘지 않군. 지금 청나라에 있는 친구 중에 만능통역관이 하나 있긴 했는데? 아잇, 그 사람이...”

“일단 들어가서 하시져.”


하루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를 꺼냈다.


“참, 친구들 많았지.”

“저랑 이름이 똑같다던 조선인 친구 말고도요?”

“그럼, 나랑 같이 탈출한 소우스케랑 켄타라는 친구들도 있었고. 너도 전에 봤던 김충선 대장님도 사실상 둘이 친구사이나 다름없단다.”

“지금 말씀하신 세 분은 모두 조선으로 귀화해서 잘 살고 계시다고 하셨죠?”

“물론, 다들 훌륭한 가정을 일으켜 세웠지. 그 곁에서 나도 도움을 주기도 했고 오히려 내가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단다. 서로 피가 섞인 혈육보다도 더 친하게 지냈으니 내가 조선에 와서 이 40년 넘게 잘 버틸 수 있었단다.”

「그럼, 그 만능통역사는 누굽니까?」

“아하. 그 친구는 원래 명나라 사람이었지. 이름은 어드고 사실은 몽골사람인가 그럴 거다. 아버지가 통역관으로 전쟁 중이었던 조선에 오셨는데 우연치 않게 나보다 다섯 살은 어린 꼬마 녀석이 조선군영을 기웃거리면서 뛰어나게 통역을 해주지 뭐냐? 그러던 중에 귀화한 일본인인 나와 친구들이 신기했는지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까 왜란이 끝날 때 쯤 되니 친구가 되어버렸지 뭐냐?”

“그래서 그 친구는 어떻게 지내나요?”

“최근에 만난 것이 북쪽에 여진족이 처 들어왔을 때 포로로 끌려가서 만났지 아마? 이번에는 청나라의 통역관이 되어있더구나? 아마 능력이 좋으니까 망해가는 명나라를 등지고 청으로 갔는데도 바로 임명해서 통역관으로 써 먹었겠지? 그래도 그 친구 덕분에 청나라에서 바져 나올 수 있었어, 아마 지금쯤 포로가 된 조선인들의 말을 통역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하루의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궁금해진 젊은 마루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저랑 이름이 똑같다던 마루라는 아저씨는 어떻게 되신 거예요?”

“하하... 내가 매번 그 친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미루고 미뤘구나. 쩝... 언제까지 끌 수는 없으니 얘기를 해주마.”

“넵.”


하루는 그 날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말을 했다. 그의 눈은 조금씩 붉어졌고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어드의 도움뿐만이 아니었다. 마루의 희생이 없었으면 내가 지금 여기에 없고 하늘나라에 있을지도 모른단다.”

“무슨 일이 있으셨군요.”

“청나라 기마병들이 뒤늦게 우리를 다시 붙잡으려고 쫓아왔고 우리는 목숨을 건 혈전을 버렸지. 어떻게든 가족들은 살아서 다시 조선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적들이 너무 많았어. 조총과 총통을 쏘고 또 쏴도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 앞장서서 나가있던 마루라는 친구가 비격진천뢰를 잔뜩 품고 자폭을 한 덕분에 적들은 섬멸되었고... 지금의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있을 수 있는 거란다.”

「아하...」

“그래도 저랑 이름이 같은 마루아저씨가 희생하실 만큼 두 분이 정말 사이좋은 친구셨나 봐요.”

“그럼, 그 친구 항상 내가 다시 일본에 있는 애인이랑 연결될 수 있는 마루(하늘)이 되어주겠노라 내가 슬플 때면 외쳤거든. 아마도 내가 그동안 면천을 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을 줬고, 고백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번성시키는 데 있어서도 많은 도움을 줬으니...그런 멋진 최후를 후회 없이 맺으면서 나와 가족들을 살린 거겠지.”

「그런 대단한 친구를 두셨다니 정말로 부럽습니다.」


하루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애를 썼고 더 이상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그는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할 때도 있었고,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다. 그의 60년 인생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길고 화려했기 때문에 몇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끝이 없었다. 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마루라는 청년과 미나토는 하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늘 연극에 푹 빠진 사람들처럼 봤다.


“아이고, 옛날 얘기는 그만 여기까지 하고... 이제 슬슬 일본으로 가야되지 않을까요?”

「아차, 하루씨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벌써 2주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자 빨리 배에 올라타시죠.」

“그나저나 자네 배에 살만한 물건들 없는지요? 내가 이 조선에서 예쁜 옷이나 우아한 장신구들을 찾아봤는데 영 맘에 들지 않아서 몇 개 사질 않았습니다. 미나토씨 배에 괜찮은 물건들이 있다면 내 비싸게 주고서라도 사겠어요.”

「비싸게 안주셔도 됩니다. 원가만 받을게요. 좋은 옷감이라든지 귀한 보석들이라면 제 배에 잔뜩 있습니다. 오사카에 도착하기 까지 아직 시간은 한참 남았으니 하루씨 편하신 대로 천천히 둘러보신 다음에 말씀해주시면 미리 빼 놓았다가 오사카에 도착하면 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가 볼까.”


막상 마지막으로 조선에서 발을 떼어내려고 하니 개운한 기분도 들었지만 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이제 건너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런 나라 조선... 일본에서 있던 시간보다 조선에서 살았던 세월이 2배는 더 길기 때문에 배에 오르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조선 땅을 처음 밟았을 때의 그 벅차오름과 동시에 전투, 그리고 통신사로 일본을 떠날 때의 긴장과 다시 돌아올 때의 아늑함, 여진족한테 붙잡혀서 만주 땅으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을 때의 그 안도감. 그리고 지금 영영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오만가지 모든 감정들이 지금 이 순간 하루의 마음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뭐하세요. 어르신 빨리 올라오세요!”

「곧 배가 떠날 겁니다!」

“아... 알겠네. 금방 올라감세.”


하루는 조선 땅에 있던 흙 한줌을 쥐어든 채로 배에 올라탔다. 이거라면 조선 땅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자신의 손아귀 속에서 책을 펴 읽듯이 죽을 때까지 간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점점 멀어져서 보이지 않는 동래왜관 포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내뱉었다.


‘잘 있어라 조선이여. 거칠지만 포근하고 소소하지만 아름다웠던 네 땅과 하늘. 강과 바다가 있어서 수십 년을 살았어도 힘든 일 잘 견뎌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루는 조선과 작별을 했다.


일본으로 갈 때면 항상 일본과 조선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번에는 특히 그 기억이 더욱 강하게 떠올랐다.


“아잇. 내가 이 길을 벌써 몇 번째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하루씨라면 살면서 제가 이동한 거리만큼은 걷고 건너셨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바닷길이건 땅위건 산속이건 숲이건 어디든지 이동한 거리를 합하면 천하를 다섯 번은 왕복했을 겁니다.”

“에이, 그건 아니죠, 어르신.”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여진족 때문에 만주에 2번 왔다갔지 조선통신사와 어머니 장례 때문에 일본에 4번 왔다갔지. 그 사이에도 조선 내에서 수천 리를 걷고 또 걸었으니 적어도 살면서 십만 리는 이동했을 거다.”

「그 정도면 천하를 다섯 번 까진 아니더라도 한 번 정도는 일주했을 것 같네요.」


하루는 일본과 조선 사이를 왕래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또 다시 옛날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정말로 많이 다녀왔지. 사신으로 갔을 때는 별별 분들을 다 모셔봤단다. 친한 친구사이 같은 나리들, 엄청 엄했던 영감님과 이를 말리셨던 영감님... 다들 좋으셨던 분이였어. 그 분들 덕분에 일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애인도 여러 번 문제없이 만날 수 있었지.”

“정말요?”

“물론.”

「그나저나 하루씨 애인분도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10년에 한 번 만나서 며칠~몇 주 있다가 헤어지는 관계인데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지금까지 하루씨를 기다리고 있는 것 보면 말이죠. 이건 뭐 일 년에 하루 칠석날에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 관계보다도 더 대단한 사랑 아닙니까?」

“그렇긴 하죠. 미나토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는 정말로 착한 여자지요. 나는 정말로 못된 남자고 말이야. 에휴...”

“그래도 어르신이 잘 해주신 것들이 있으니까 일본에 계신 애인분도 이렇게 어르신이 다시 돌아와 줄 것이라 믿고 기다려 주시고 계시는 거 아닐까요?”

“흠... 그런가? 그렇겠지?”

「당연하죠. 저 같아도 약속한 애인을 평생 잊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면서 사랑하는 이런 사람이 있다면 흔들리는 순간은 있을 수 있어도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 것 같네요.」

「으이구, 미나토씨 남잔데 어떻게 여자마음을 그렇게 잘 아실까요?」

“저라도요!”

“너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잖아! 좋아하는 여자는 있기나 하니?”

“물론... 헤헤...”

“어이구, 저거 얼굴 빨개진 거 보소. 옛날이야기 하기는 글렀군.”


하루는 바다에 퉤 하고 한 번 침을 뱉은 다음에 고요한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봄이 다가오고 있나보구나.”

“그러게요. 일본에 도착하면 슬슬 꽃이 피기 시작하겠죠?”

「정말로 기가 막힌 때에 일본에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

“꼭 약속했던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미나토씨의 대상선이야 일정대로 착착 움직이니까 걱정은 없습니다.”


하루는 바다 건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하나를 생각하며 마지막 여정의 끝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견우와 직녀보다도 더욱 슬프지만 행복한 두 여인사이의 마지막 만남이 잘 이루어지길 바라며.


작가의말

다음화는 여러분들이 그토록 기다리시던 마지막 화입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잘 완결 짓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속작! + Q&A 20.01.08 79 0 -
공지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9.12.02 68 0 -
공지 작품 소개3, 등장인물(*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18.10.29 645 0 -
공지 작품 소개2, 글의 특징 +2 18.05.20 782 0 -
공지 작품소개 (1) +3 18.05.19 1,345 0 -
171 뒷 이야기(소설을 시작할 때부터 끝낼 때까지 조니한테 있었던 일) +2 20.01.03 191 1 7쪽
170 마지막회.마지막 여정(5)-잘 살았소이다. 19.12.28 249 1 13쪽
»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19.12.26 135 1 12쪽
168 168.마지막 여정(3)-일본으로 떠나다. +2 19.12.23 142 2 11쪽
167 167.마지막 여정(2)-임금을 만나다. 19.12.20 103 1 13쪽
166 166.마지막 여정(1)-영웅 마루 19.12.18 70 1 12쪽
165 165.병자호란(5)-쫓는 자, 쫓기는 자 19.12.16 67 1 17쪽
164 164.병자호란(4)-포로가 될 것인가... 19.12.14 56 1 14쪽
163 163.병자호란(3)-항복 19.12.13 79 1 11쪽
162 162.병자호란(2)-몸을 옮기다. 19.12.11 59 1 11쪽
161 161.병자호란(1)-조선을 쳐야만 하겠노라. 19.12.09 118 1 11쪽
160 160.또 한 번의 전운(3) 19.12.07 58 1 12쪽
159 159.또 한 번의 전운(2) 19.12.06 52 1 12쪽
158 158.또 한 번의 전운(1)-불안한 양국 관계 19.12.04 57 1 11쪽
157 157.다시 집으로 19.12.02 74 1 12쪽
156 156.산킨코타이(3)-일정의 끝 19.11.30 61 1 11쪽
155 155.산킨코타이(2)-두 이복형제의 만남 19.11.18 88 1 11쪽
154 154.산킨코타이(1)-합류 19.11.11 66 1 11쪽
153 153.옥새를 찾아라! 19.11.07 54 1 12쪽
152 152.일본행(4)-보내드리다. 19.11.06 69 1 11쪽
151 151.일본행(3)-식어버린... +1 19.11.05 78 1 11쪽
150 150.일본행(2)-일본인 상인 19.11.04 54 1 12쪽
149 149.일본행(1)-김충선의 조언 19.11.02 73 1 12쪽
148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19.11.01 62 1 11쪽
147 147.대기근과 고난(2) 19.07.16 83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