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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님의 서재입니다.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조회수 :
82,399
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작성
19.11.01 23:27
조회
61
추천
1
글자
11쪽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DUMMY

“하루야.”

“......”

“아이 참, 하루야!”

“......”

“허허, 참. 어머니께서 네가 이러고 있는 모습 보시면 좋아하시겠어? 이제 그만 보내드리자고.”


갑작스러운 하루 어머니의 죽음에 집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침울해졌다. 평생 하나뿐인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운 좋게 늙은 몸을 이끌고 조선에 넘어와서 수년을 살다가 정묘년에 호란을 한 번 겪으시고 나서 점점 쇠약해지시더니 남으신 명을 다 사시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하지만 하루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이 하필이면 오늘 찾아왔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먹고 머리속이 새하얗게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나마 드는 생각이 있었다면 자신이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불효자였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환장하겠네. 이래가지고 장례나 치러드릴 수 있겠어? 그만 어머니 손을 놓아드려. 벌써 몇 시간째여?”

“그치만...”

“응?”

“나는 평생 어머니한테 고생만 시켜드렸는걸... 이제 좀 모시고 살면서 내 불효를 씻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떠나 버리시니...”

“아니야, 세상에 너 같은 효자가 어디 있냐? 전쟁 통에 부모도 버린 자식이 한 둘이 아닌데 저 멀리 일본에 계신 어머니를 여기까지 모셔 와서 이렇게 보살핀 사람은 조선팔도! 아니지, 아니지. 이 온 세상에서 너 하나밖에 없을 거야!”


마루는 하루한테 어깨동무를 하면서 다정하게 얘기를 하며 위로를 했다. 오랜만에 한 어깨동무를 하면서 하루를 다독여줬다. 자신보다 키 크고 훤칠했던 하루의 몸이 지금 이 순간에는 작고 쪼그라든 것처럼 느껴졌다. 영원할 것 같던 친구의 젊음도 세월 앞에서는 조금씩 밀리면서 주름살 하나를 긋고 머리털 하나를 희게 만들더니 어느 순간 회갑을 바라보고 있은 늙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늙어버린 친구가 옆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으니 같이 별일 다 곁으며 바로 옆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친구로썬 말은 못해도 마음이 참 텁텁했다.


위로의 말도 멈추고 아무말 없이 서로 한참을 앉아 있으면서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들어내고 있음을 서로의 몸짓이나 눈빛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소우스케와 켄타도 도착을 했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구나.”

“소식은 다 전해 들었어...”

“하루! 뭘 이렇게 멍 때리고 있어? 아 어머님의 마지막 순간 함께해 드려야 될 거 아니야?”

“맞아. 이 사람아. 마지막순간에 잘 챙겨드리지 않는 게 가장 큰 불효인 거 몰라? 자자, 우리도 도와줄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마지막을 선사해 드리자!”


들어오자마자 딱 봐도 너무 침울한 분위기에 소우스케와 켄타는 조금이라도 상황을 밝게 만들어서 하루 어머님의 장례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려 했다. 마루도 이에 질세라 하루를 계속 달래고 달래서 하루가 겨우 눈물을 이기고 웃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 보내드리자!”

“이렇게 나와야 우리 친구 하루 아니겠어?”

“좋아! 잘 생각했어! 아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을 치러 드리자고!”

“그 전에 잠깐! 나는 어머니를 화장해 드릴거야.”


갑자기 어머니를 화장하겠다고 말하자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화장은 조선에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흔한 장례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려가 아닌 이상 누가 화장으로 자신의 부모나 형제들을 보내주겠는가?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하루의 말은 왜 그가 화장을 선택했는지를 잘 알려줬다.


“화장? 아니 왜 다른 장례법들을 놔두고 굳이 화장이야?”

“저 상태로는 어머니를 모시고 가지 못하잖아.”

“에이, 이 사람아 네 친구들이 친구 어머님 상여도 못 들어주겠냐?”

“그리고 마루네 부모님이 묻혀계신 곳까지는 그렇게 멀지도 않잖아?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반나절이면 갔다 오는 데?”

“하하, 나는 어머니를 멀리 모셔가서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멀리 모셔간다고? 아니 도대체 어디로 보내드리려고? 언제 명당자리라도 알아놨어?”

“아니? 그래도 어머니를 아버지 계신 곳에 함께 묻어드리는 것이 마지막 예의 아니겠니? 그래서 일본의 나가시노 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갈 거야.”


그렇다. 하루가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최고의 장례는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어 드리는 거였다. 이것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한 생각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어렵게 살다가 아들 덕 몇 번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신 아버지를 위한 처사기도 했다.


“나는 이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서 50근 넘는 물건들을 오랫동안 들고 나르지 못하겠더라. 팔도 시끈시끈 아파오고 말이야. 그리고 이 상태로 들고가면 어머님의 날씨에 부패하겠지... 그래서 어머님을 일본까지 무리하지 않고 모셔다 드리고 오려면 이 방법밖에는 생각나질 않아서.”

“캬.”

“그래, 하루가 생각한 곳이 바로 명당이네. 가족과 함께 묻히는 것 보다 더 좋은 명당자리가 있을까?”

“좋아, 알았어. 그러면 다들 우선 기본적인 장례절차들을 준비해줘. 나는 화장을 해줄 수 있는 스님을 찾아보고 올 테니까.”


하루의 기분이 밝은 상태로 돌아오자 하루의 어머니 유키의 장례식은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장례절차에 맞춰서 어머니를 관에 모셔 놓고, 가까운 이웃들에게 부고를 알리고 조문객들을 받았다. 지난 번에 쌀을 무상으로 나눠줬던 터라 생각보다 많은 이웃사촌들이 와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변변치는 않지만 작은 함이나 목화 솜뭉치 같은 작은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예물들을 갖고 왔다. 다들 변변찮은 살림 속에서 거절하려고 했으나 이미 대기근 속 생명의 은인으로 불리는 하루와 그의 가족들은 마을에서 최고의 인기가족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졌고, 긴 침묵 속에서 고인의 영과 혼을 기렸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켄타가 불러온 스님이 집 마당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했다. 하루와 가족들도 합장을 하면서 스님을 맞이했다.


“어머님께서 예전에 불교를 믿으셨습니까?”

“아니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고인을 보내드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야 우리 승려들은 최대한 도와드릴 겁니다. 우리 아드님의 얼굴을 보니 상당히 많은 시련들이 있었나 보군요.”

“네? 아, 맞아요. 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죠. 근데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임진년과 정묘년에 일어났던 왜와의 전쟁과 얼마전에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던 일을 겪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상당히 언변이 뛰어나신 분이시군요! 허나, 그 외에도 고민이 남아 있는 얼굴인 것 같아서 소승이 괜히 한 번 어머니를 보내드리기 전에 좀 친해지려고 한 말입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드님께서 같고 계신 그 고민들 아드님께서 이승을 떠나시기 전에 다 해결 됩니다.”


스님은 첫 만남부터 하루의 관상을 읽어내고는 오묘한 말들을 해주셨다. 아무리 친해지려고 한 말이라 하지만 사람 기분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스님은 하루의 어머님이 잠들어 계신 관으로 가서 불경을 외운 다음에 같이 따라온 절 사람들과 같이 화장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뒤 언덕에서 진행된 화장은 어머님이 계시는 관 주변으로 나무와 짚들이 켜켜히 쌓아 놓은 뒤 염불을 하면서 불을 놓은 것으로 이어졌다. 마치 눈앞에 용광로가 있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는 관을 보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가볍기도 했다.


‘어머니. 좀 뜨겁긴 하시겠지만 참으셔요. 이 못난 아들 이렇게라도 해서 아버지 계신 곳에 모셔드린 다음에 함께 저승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하루는 타오르고 계신 어머니를 보며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불길은 점점 작아졌고, 스님은 천천히 불경을 외우면서 다가가 하루 어머님의 유골을 수습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어머님께서 굉장하셨던 분이셨나 봅니다. 보통 승려들도 이렇게 많은 사리들이 만들어지지는 않는 데 말이죠.”

“저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하셔서 그러셨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쇼. 남은 절차를 진행한 다음에 어머님을 함에다 잘 담아드리겠습니다.”


스님은 정성스럽게 준비된 함에 하루 어머님의 유골조각들을 잘 모아서 살포시 담아냈다. 그리고 잘 동봉한 다음 마지막으로 불경을 외우며 기도를 드린 뒤 망자의 넋을 기리고 장례를 마쳤다.


“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례식을 잘 마무리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합니다. 그럼 소승은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잠깐만요. 그래도 이렇게 도와 주셨는데 쌀이라도 조금 담아드리겠습니다.”

“허허, 소승은 그런 거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홀로 지내는 중인지라 크게 밥걱정 하지 않고 살고 있고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면, 가시기 전에 스님의 법명이라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뭐. 그 정도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소승의 법명은 스스로 자(自) 자에 이룰 성(成) 자를 자성이라고 합니다.”

“아하, 자성스님. 감사합니다. 자성스님. 살펴서 들어가십쇼.”

“기회가 된다면 또 인연이 이어지겠죠.”


하루와 친구들은 스님에게 합장을 올렸다. 확실히 오랜 세월을 스님으로 살아왔던 사람인지라 말 하나도 무겁고 뜻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 어머님의 장례식은 모두 끝이 났다.




“웃차!”

“다른 거는 더 챙기지 않아도 되겠어?”

“그럼. 옷 몇 개랑 은자 몇 냥이면 충분하지. 그리고 혹시 몰라서 호신용 칼도 가져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럼, 다녀올게!”

“그래, 너무 무리 하지 말고. 다치지 않게 잘 다녀와!”

“가다가 넘어지지 말고! 수상한 사람들 보이면 얼른 도망쳐!”

“잘 다녀와야 한다? 우리 잊지 말고!”

“그래 이 녀석들아!”


하루는 친구들을 한 명씩 꼭 안아줬다.


“삼촌 잘 다녀오세요!”

“그래, 너희들도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한다?”

“당숙 할부쥐! 잘 다녀와!”

“그래, 우리 손주들도 엄마 말씀 잘 듣고 무럭무럭 자라나야 한다?”

“하루 할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네, 저희들 걱정은 하지 마십쇼.

“허허, 너희들 나 없다고 울기라도 해 봐라! 아주 마고 할머니가 확! 헤헤, 잘들 있으라고!”


하루는 가족, 친구들의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눈 다음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랜만에 나서는 먼 여정은 쉽게 발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일본을 다녀올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있는 세월동안 일본을 몇 번이나 갈 수 있을까? 기회가 있을 때 몸을 움직여서 실천해야 한다. 여유를 부리고 있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까.


‘어머니, 같이 고향으로 여행 한 번 떠나 봅시다!’


하루는 지팡이를 집고 어머니의 유골함을 등에 짊어진 채 일본으로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겼다.


작가의말

작년에 왔던 조니가 죽지도 않고 돌아왔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죽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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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마지막회.마지막 여정(5)-잘 살았소이다. 19.12.28 249 1 13쪽
169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19.12.26 134 1 12쪽
168 168.마지막 여정(3)-일본으로 떠나다. +2 19.12.23 142 2 11쪽
167 167.마지막 여정(2)-임금을 만나다. 19.12.20 103 1 13쪽
166 166.마지막 여정(1)-영웅 마루 19.12.18 70 1 12쪽
165 165.병자호란(5)-쫓는 자, 쫓기는 자 19.12.16 67 1 17쪽
164 164.병자호란(4)-포로가 될 것인가... 19.12.14 56 1 14쪽
163 163.병자호란(3)-항복 19.12.13 79 1 11쪽
162 162.병자호란(2)-몸을 옮기다. 19.12.11 59 1 11쪽
161 161.병자호란(1)-조선을 쳐야만 하겠노라. 19.12.09 118 1 11쪽
160 160.또 한 번의 전운(3) 19.12.07 58 1 12쪽
159 159.또 한 번의 전운(2) 19.12.06 52 1 12쪽
158 158.또 한 번의 전운(1)-불안한 양국 관계 19.12.04 57 1 11쪽
157 157.다시 집으로 19.12.02 74 1 12쪽
156 156.산킨코타이(3)-일정의 끝 19.11.30 61 1 11쪽
155 155.산킨코타이(2)-두 이복형제의 만남 19.11.18 88 1 11쪽
154 154.산킨코타이(1)-합류 19.11.11 6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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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151.일본행(3)-식어버린... +1 19.11.05 78 1 11쪽
150 150.일본행(2)-일본인 상인 19.11.04 54 1 12쪽
149 149.일본행(1)-김충선의 조언 19.11.02 73 1 12쪽
»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19.11.01 62 1 11쪽
147 147.대기근과 고난(2) 19.07.16 8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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