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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님의 서재입니다.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조회수 :
82,403
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작성
19.11.06 07:00
조회
69
추천
1
글자
11쪽

152.일본행(4)-보내드리다.

DUMMY

“어머니... 고향에 거의 다 왔습니다. 곧 있으면 아버지와 함께 편히 주무실 수 있겠네요.”


하루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해 나갈 때 쯤 또 하나의 큰 상실감을 얻어서 며칠 주저앉아있었다. 하지만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둔해지는 법, 자신이 일본에 온 목적을 다시 상고한 하루는 무거운 마음을 잘 추스르고 고향 나가시노로 향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길은 그대로 남아 있네요, 어머니.”


하루는 어머니의 유골함을 잘 받들고 천천히 고향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어릴 때부터 수천 번은 걸어 다닌 길이었지만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살던 마을로 들어가자 얘기가 달라졌다.


하루는 자신이 어릴 적에 살던 곳에 들어와 이리저리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제는 옛 흔적이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민가의 건물들은 거의 그대로였으나 사람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구면인 사람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저번 통신사 때만 해도 아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 동네에서 내가 어릴 적부터 알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았구나... 그도 그럴 것이 또래들은 시집장가에 윗세대들은 이미 돌아가셨겠지...”


하루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어머니의 유골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가 향했던 곳은 자신이 일본에서 살았던 집이었다.


“하하, 완전 개판이네.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완전히 폐가가 되어버렸구나. 어머니 집 꼴 좀 보세요,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겠어요?”


하루는 뒤돌아서서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집을 쭉 훑어보실 수 있도록 한 다음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따뜻한 온기와 밥 짓는 냄새가 뭉게뭉게 퍼져 나왔을 하루의 고향집은 을씨년스럽고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여름철 무성하게 자란 풀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쉽게 허락해 주지 않았고 집 안에는 이미 벌레나 쥐들의 천국이었다.


“가만 있어보자, 풀이 하도 많아서 삽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군요.”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꺾어가면서 집안으로 들어가 구석구석을 찾아봤지만 삽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풀이 너무 많아서 햇빛이 깊숙한 곳까지 들지 않아 집안은 대낮인데도 캄캄했다. 그러던 중 발에 툭하고 뭔가가 걸렸고 손으로 만져보자 삽과 그 밖의 농기구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루는 얼른 녹슨 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보는 게 좋겠네요.”


하루는 이미 남의 세상이 되어버린 자신의 집이 아쉬웠지만 녹슨 삽을 들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집을 나서자 앞에는 하나네 집이 있었는데 그 집도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하나네 집도 이제 아무도 살지 않나 봅니다...”


하나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려고 했지만 나쁜 감정만 계속 우러나올 것 같아서 서둘러 마음을 다잡고 아버지를 묻어드린 곳으로 걸어 나갔다. 지역 공동묘지까지 나아가는 길은 칙칙하긴 했어도 뭔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기분도 들었다. 그 경계에 들어오고 몇 걸음 걷다보니 한 곳에 고요히 묻혀 계신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냈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내기는 비교적 간단했는데 대부분의 일본묘지는 납골묘를 한 반면에 하루네 아버지는 조선식으로 묻어 놓고 작은 비석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석판 여러 장을 구해서 가져다놓고, 하루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조선의 예법대로 일본 땅에서 아버지께 큰 절을 올렸다.


“불초소자 아버지께 문안 올립니다. 불효막심하여 살아계셨을 때 어머니께 해드렸던 것의 절반도 못해드린 점 깊이 반성하고 이렇게라도 마지막 효를 다하려고 합니다. 부디 잠시 아버지의 잠자리를 건드리겠사오나 어머니와 다시 100년 지기를 연결해 드리는 것이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하루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예를 다한 다음에 고향집에서 가지고 온 녹슨 삽을 가지고 땅을 파내려 갔다. 그래도 공동묘지 주변이라서 다른 사람이 가끔 신경을 써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발길이 닿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풀이 고향집에서 자란 것만큼 억세진 않아 땅을 파기 어렵지 않았다.


옷에 흙먼지가 묻어날 정도로 수백 번 삽질을 하자 드디어 아버지가 계신 나무관이 보였고 그 옆에 어머니의 영원한 안식의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 되었다. 하루는 다시 한 번 아버지께 큰 절을 올렸고, 먼 길을 꼭 끌어안고 모셔온 어머니의 유골함을 앞에 놓고 이번에는 어머니께 큰 절을 올렸다.


“불초소자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올립니다. 살아계실 적에 늘 마음고생만 시켜서 송구하옵고 이제 아버지와 함께 안식하실 영원한 잠자리를 마련해 드리오니 부디 저승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좋은 시간 보내시옵소서.”


하루는 절을 마치고 구해온 석판들을 판판하게 잘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어머니의 유골함을 살포시 올려놓은 뒤 남은 석판들을 뚜껑삼아 빈틈없이 잘 덮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와 자신의 불효를 상고하며 포근한 흙이불을 덮어드렸다.


파냈던 흙들을 다시 판판하게 다지면서 묘지를 다시 메우는 과정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삽질은 하다 쉬고를 반복하면서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가 돼서야 끝이 났다.


무덤이 다시 잘 정돈되고 난 다음에 하루는 미리 제작해온 작은 비석을 아버지의 성함이 적혀있는 비석 옆에 함께 박아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절을 올렸다. 마지막 절을 올리면서 참고 있었던 눈물을 모두 쏟아냈다.


“이제 이 어리석은 아들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부디 두 분께서는 오랜만의 만남을 서먹해 하지 마시옵고,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소자 비록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먼 곳에서 부모님께 문안드릴 때면 기쁘게 인사를 받아 주십쇼.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하루는 마지막 절을 공손하게 마친 다음에 일어섰다. 풀어놓았던 짐꾸러기와 낡고 닳아버린 녹슨 삽을 챙겨들고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졌지만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예와 효를 다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은 가벼워졌고 모든 일이 끝났다는 사실에 더 이상 슬픈 감정도 예전만큼 밀려오지 않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다시 빠져나온 하루는 자신이 살던 고향집으로 걸어왔다. 고향집에 돌아오니 이미 해는 져 버렸고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루는 집안으로 들어와서 녹슨 삽을 원래자리에다 갖다 놓았고, 다시 밖으로 나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툴툴 털어냈다.


“오늘은 대충 끼니를 때우고 그냥 여기서 산책이나 하다가 잘까? 앞으로 다시 올지 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고향인데...”


하루는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한결 가벼워진 짐 꾸러기를 펼쳐서 죽통에 들어있는 먹다 남은 말린 견과류들을 하나씩 빼 먹으면서 집주변부터 산책을 시작했다.


낮에 봤던 것과 다르게 밤에 보이는 고향의 모습은 또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았던 고향집도 밤이 되니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보금자리가 되어 있었다. 비록 사람은 그 집에 살지 않았지만 작은 생태계가 그 안에서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웠다.


이 광경을 흥미롭게 살펴본 하루는 천천히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는 하나의 집이 있다는 것을 미리 인지한 하루는 일부러 그쪽을 쳐다보지 않고 재빠르게 큰길 쪽으로 빠져나왔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힘들게 농사일을 하셨던 논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손에서 농사가 지어지고 있는 듯 보였다. 고향집과는 다르게 사람이 손길이 닿은 논의 벼들은 무성하고 질서 있게 자라나고 있었다.


“허허, 역시 사람이 손이 닿은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는 차이가 크구나.”


하루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추억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 나갔다. 어릴 적 자신이 뛰어놀았던 곳, 아버지한테 평생 농민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생떼 부렸던 곳, 고니시 유키나가한테 제발 무사가 되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었던 곳... 어렸을 때의 추억이 모두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였다.


그리고 뒷산에 도착을 하니 이 장소와 관련된 추억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추억이 머릿속에서 기억날수록 오히려 하루는 기분이 급격하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위해서 옥돌을 매일매일 열심히 갈아서 만들던 자신이 모습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이건 아니야!”


하루는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재빨리 눈물이 나오지 않게 고개를 하늘로 들자 밤하늘에는 또 그녀와 함께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서로의 이름을 붙여줬던 추억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아아, 아니야! 이러면...”


하루는 뿜어져 나오는 추억을 억누르기 위해서 재빨리 산속을 걸어 내려왔다. 야간산행에 다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면 오히려 옛 추억이 떠오르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머릿속에는 이팔청춘 그 당시의 기억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이윽고 자신의 이성을 뛰어넘는 추억에 젖은 감정이 자신의 발을 강제로 이끌었고 본능적으로 몸이 이끌리는 대로 돌아온 곳은 바로 자신의 고향집과 하나네 집이 있는 곳이었다.


두 집이 약 오십 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멈춰선 하루의 눈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눈앞에 하나하나씩 펼쳐졌다.


아주 어릴 적에는 여동생처럼 그녀와 함께 뛰어놀면서 즐겁게 보냈고, 사춘기가 오자 그녀를 향한 이상하고 뜨거운 감정들 때문에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면서 얼굴을 붉힌 채 자리를 피했던 순간들도 있었다.


명절에 그녀와 함께 하네츠키(일본 민속놀이)를 했던 기억도, 그녀와 함께 누워서 밤하늘을 헤아렸던 일도... 그녀와 함께 웃고 떠들고 즐겁게 보냈던 순간들이 모두 하루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하루나 그녀에게 직접 만든 목걸이를 건네주면서 고백을 했던 순간까지... 그녀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모든 사건들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하루는 오열하면서 소리쳤다.


“나는... 아직 내 마음 속에는... 이렇게 네가 생상하게 기억되고 움직이고 있는데! 너는 나를 기다리다 지쳐서 나를 포기해 버렸구나! 그렇지만...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순 없니! 제발! 제발!”


이미 떠나버린 사람을 다시 붙잡으려고 몸부림 쳤지만 그녀가 보여준 반응은 다시는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냉담한 반응,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녀를 쉽게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미워! 그렇지만... 제발 한 번만 더! 딱 한 번만...!”


하루는 사랑하는 여인을 쉽사리 보내버릴 수 없었기에 밤새 오열하면서 몸부림쳤다. 그가 그녀를 마음속에서 완전히 놓아주기에는 밤은 너무나도 어둡고 쓸쓸했다.


하루의 오열은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지만...


작가의말

옛 추억에 잠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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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마지막회.마지막 여정(5)-잘 살았소이다. 19.12.28 249 1 13쪽
169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19.12.26 135 1 12쪽
168 168.마지막 여정(3)-일본으로 떠나다. +2 19.12.23 142 2 11쪽
167 167.마지막 여정(2)-임금을 만나다. 19.12.20 103 1 13쪽
166 166.마지막 여정(1)-영웅 마루 19.12.18 7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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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159.또 한 번의 전운(2) 19.12.06 5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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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일본행(4)-보내드리다. 19.11.06 70 1 11쪽
151 151.일본행(3)-식어버린... +1 19.11.05 79 1 11쪽
150 150.일본행(2)-일본인 상인 19.11.04 54 1 12쪽
149 149.일본행(1)-김충선의 조언 19.11.02 73 1 12쪽
148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19.11.01 62 1 11쪽
147 147.대기근과 고난(2) 19.07.16 8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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