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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님의 서재입니다.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조회수 :
82,402
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작성
19.11.05 07:00
조회
78
추천
1
글자
11쪽

151.일본행(3)-식어버린...

DUMMY

「하루씨 그러면 남은 여정도 잘 마치시길 바래요.」

「네, 오사카까지 데려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왔을 때보다 더 편하게 왔습니다!」

「하하! 제 배가 파도에 잘 견디기는 하죠! 저도 뭐, 이렇게 좋은 인연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혹시라도 조선에 돌아가실 일이 생기시면 2달 주기로 지금처럼 오사카에 도착하니까 날짜를 맞춰서 찾아오시면 하루씨를 조선까지 또 안전하게 모셔드리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미나토씨도 오사카에서 하실 일 잘 마무리 하시고 선원들과 좋은일 가득하시길 빕니다.」


하루와 미나토는 오사카에 상륙한 다음 사흘정도를 같이 지내다가 헤어졌다. 오사카에 내려서 바다에서 겪은 피로를 충분히 해소한 하루는 서둘러 계속 동쪽으로 향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바닷길을 통해 오는 사이 하루는 한복에서 기모노로 바꿔 입었는데 원래 태생이 일본출신인지라 처음 보는 사람이면 누구든 일본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조선식 상투만 수십 년 했다가 춈마게(일본식 상투)를 하니까 머리카락이 일본인들이 보기에 상투도 춈마게도 아닌 어색하게 묵인 머리가 되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곤 했다.


「묵을 방 있습니까?」

「예예, 물론입니다. 몇 명이 주무실 건가요?」

「혼자입니다. 때문에 작은 방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따라 오시죠.」


하루는 일본 숙소에 들어갔다. 미나토와 그의 상인들과 함께 돌아다닐 때는 시끌시끌했지만 막상 다시 혼자가 되니 뭔가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식사는 바로 드릴까요?」

「네, 그래 주시면 좋죠.」

「곧 바로 밥과 반찬을 내오겠습니다.」


일본 숙소는 조선의 방보다는 깔끔하고 정갈했지만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깔려 있는 다다미 바닥은 조선의 방바닥과는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분명 하루의 고국에서 느낄 수 있는 방구조이지만 그에게는 조선의 초가집, 기와집이 더 정겹고 그립게 느껴졌다.


「식사 나왔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근데, 죄송하지만 밥을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돈은 더 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일본에 오면서 느낀 건데, 조선에서 살면서 밥 양이 참 많이 늘었다. 아침 일찍 먹고 점심에는 가끔 참을 먹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 굶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해가 지고나면 또 밥을 두둑하게 먹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가족들과 수다를 떨다가 잠에 들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침과 저녁을 먹고 가끔 점심을 먹었지만 조선에서 만큼 많이 먹지는 않았다. 자기도 모른 사이에 식습관마저 완전히 조선인이 되어 있었던 하루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미소국을 후루룩 마셨다.


“조선의 된장국은 더 진하고 구수한데 일본의 미소국은 뭔가 허전하게 느껴지는 군. 그래도 이게 조선음식이랑 가장 비슷하니까.”


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밥을 먹으면서 조선말로 혼자 중얼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조선말을 사용하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을 하루는 밥을 다 먹을 때 피식 거리면서 또 중얼거렸다.


“허허, 나도 이제 완전히 조선인이네. 하기야 일본에서 살던 세월보다 갑절의 시간을 조선에서 살았으니까 당연하지. 생긴 것만 일본인이지 행동도 습성도 말도 모두 조선인이 되었구나...”


하루는 그릇들을 말끔하게 정리해서 내 놓은 다음에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뭐가 어떻게 되었든 일단 당장은 동쪽으로 부지런히 나아가야 되니까.


미나토가 거의 공짜로 배를 태워서 오사카까지 보내줬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긴 하루는 다테바(일본 에도시대의 역참)에서 이용 가능한 당나귀를 한 마리 빌려서 타고 나고야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확실히 두발로 걸어서 가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말을 타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말보다는 느리긴 해도 당나귀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편하고 빠르니까 하루는 크게 만족했다.


“그래, 이정도만 타고 가도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하겠다. 당나귀가 내가 짐이 많다고 욕 좀 하겠는걸? 미안하다, 저 앞 우물까지 가면 내가 바로 물을 퍼서 주마.”


하루는 매일 한 번씩 다테바에 들러 당나귀를 갈아타면서 나고야로 쭉 나아갔다. 당나귀를 타고 다니니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도 하루가 꽤나 신분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알아서 길을 비켜줬다. 때문에 걱정했던 도적이나 강도에게 당할 위험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고야에 도착했다.


「여기 고생한 당나귀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돈은 은자밖에 없는데 괜찮으신가요?」

「아이고, 나리께서 좋은 말들 놔두시고 고작 나귀만 타고 다니셨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동전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나저나 어디 에도로 가십니까?」

「에도? 아니요, 저는 나가시노라는 작은 성에 사적인 일이 있어서 거기로 갑니다.」

「아하, 그렇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쇼. 동전 가져 오겠습니다.」


은자를 보고 하루가 신분이 좀 높은 사람으로 생각한 다테바의 관리인은 재빨리 자물쇠로 잠겨 있는 금고함을 열어 은자를 집어넣고 동전들을 꺼내 거슬러줬다.


조선과 달리 일본의 장점은 에도시대에 들어서면서 화폐가 통일되었다는 점이었다. 도쿠가와 막부는 전국의 화폐를 통일함으로써 상권발달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러한 점은 멀리 여행하는 하루가 조선에서처럼 은자 외에 물건으로 결제할 때 면포나 기타 보석같은 것으로 거래하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조선도 은자보다 낮은 값어치의 화폐가 유통되면 좋으려만...”

「네?」

「아닙니다. 그냥 혼자 멍 때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하하, 나리께서 생각이 많으신가 보군요. 여기 거스름돈입니다.」


하루는 거스름돈을 주섬주섬 받고 나온 다음 나고야의 거리를 방황했다. 무의식적으로 큰 성 안을 활보하고 다녔지만 몸은 본능적으로 어딘가를 향했다.


이미 나고야에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하루의 머릿속에는 그녀에 대한 생각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하나야...”


하루는 계속해서 몸이 이끌리는 곳으로 걸어 나갔고 몇 번 와본 적 있는 기와건물에 도착했다. 늘 그녀가 있었던 방 앞에 서자 예전에 느꼈던 감정처럼 마음에서 뭔가가 올라와서 작게 콩닥콩닥 거렸다.


하지만 성급하게 하루는 성급하게 나서지 못했다. 하나의 반응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하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나 다름없었기에 한참을 망설였다.


「누구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저 지나가다가 잠시 생각에 잠겨서 멍 때리고 있었습니다.」

「네. 그렇군요. 여기는 ‘하나’ 소실어머님의 계시는 곳입니다. 비록 정실부인은 아니셨지만 그분의 다도에 대한 예와 여러 재주가 뛰어나셔서 제가 모시고 있는 주군께서도 극진히 모시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그거 참 다행입니다.」

「네?」

「아뇨, 대단한 분이시라고요.」

「뭐, 그럼 저는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나 어머님! 주군께서 보내온 서신이 있습니다! 잠시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한 시중으로 보이는 여인이 종종걸음으로 찾아왔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하나가 있는 방이 맞다는 것을 확신한 하루는 괜히 마음이 더욱 떨려왔다.


「제가 직접 나가겠어요.」


방 안에서 작은소리로 직접 나오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지긴 했어도 그녀의 목소리라고 확신한 하루는 갑자기 긴장돼서 등과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긴 침묵 끝에 문이 열렸고 오랜만에 하루와 하나의 눈이 마주쳤다.


「하나씨...?」


하루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데 제 방 앞에 있는 겁니까?」

「아, 길가다가 사색에 잠기신 분이라고 해서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당장 쫓아내 주세요!」

「하나씨? 그게 무슨...?」

「여기가 어떤 분의 집인지 모르십니까? 사무라이의 집에 함부로 돌아왔다간 좋은 꼴 못 보는 거 잘 알고 계시지 않나요? 당장 나가세요! 당장! 뭐, 하고 계세요? 얼른 쫓아내 주세요!」

「네? 네네, 알겠습니다. 하나 어머님의 나가시랍니다. 큰 일 생기기 전에 어서 나가시죠.」


시중은 하루의 팔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균 남성보다 덩치가 있었던 하루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당황스러워서 흔들리는 눈동자로 하나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뭐라고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겨우겨우 마지못해 끌려 나가면서 한 마디 말을 꺼냈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루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는 하나를 등 진채 밖으로 나왔다. 사실 힘으로 버텼다면 억지로라도 하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겠지만 그녀의 달라진 태도로 나오면 어떻게 대할지 생각하고 있었던 그는 이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한숨을 쉬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너덜너덜 걸었다.


‘도대체 하나가 왜 저럴까? 하기야 매번 일을 벌려놓기만 하고 인생에 피해만 끼친 내가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수십 년을 기다렸는데 오히려 달라지는 상황은 없었겠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역만리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오랜 기간 남처럼 지냈는데 말이야... 오히려 자신의 지금 주어진 위치가 만족스럽고 자신이 그 지위에 올라갈 때까지 큰 힘 써주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겠지...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반응이야... 오히려 저번 조선통신사 방문 때까지 나를 기다려 준 것만 해도... 대단히 오래... 나를 기다려 줬던 거야...’


눈 끝에 몽글몽글 물이 맺혔다. 그녀가 자신을 또 다시 기쁘게 반겨줬으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 역시 견딜 만큼 견뎠을 것이다. 참을 만큼 참았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진즉에 차버리고도 남았을 무능한 남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 번의 통신사 방문 때 반겨줬던 것만 해도 질기게 이어진 인연이었다. 이제 그녀가 거부하니 스스로도 마음을 정리할 수밖에...


하지만 하루의 마음은 그녀의 반응 때문에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마치 심장이 돌로 변해 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놓기 싫었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지금 이 순간 하루에게는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절망스러웠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희망이었고 버팀목이었던 그녀가 하루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루는 눈물이 눈앞을 가려서 더 이상 앞을 보고 걸을 수 없었다. 골목길에 들어가 털썩 주저앉은 하루는 소리죽여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눅눅하고 어두운 골목길 안에서... 그리고 마음속으로 계속 소리쳤다.


‘하나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고야를 그냥 지나쳐 버릴 걸...


작가의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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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마지막회.마지막 여정(5)-잘 살았소이다. 19.12.28 249 1 13쪽
169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19.12.26 135 1 12쪽
168 168.마지막 여정(3)-일본으로 떠나다. +2 19.12.23 142 2 11쪽
167 167.마지막 여정(2)-임금을 만나다. 19.12.20 103 1 13쪽
166 166.마지막 여정(1)-영웅 마루 19.12.18 71 1 12쪽
165 165.병자호란(5)-쫓는 자, 쫓기는 자 19.12.16 67 1 17쪽
164 164.병자호란(4)-포로가 될 것인가... 19.12.14 56 1 14쪽
163 163.병자호란(3)-항복 19.12.13 7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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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61.병자호란(1)-조선을 쳐야만 하겠노라. 19.12.09 118 1 11쪽
160 160.또 한 번의 전운(3) 19.12.07 58 1 12쪽
159 159.또 한 번의 전운(2) 19.12.06 52 1 12쪽
158 158.또 한 번의 전운(1)-불안한 양국 관계 19.12.04 57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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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156.산킨코타이(3)-일정의 끝 19.11.30 61 1 11쪽
155 155.산킨코타이(2)-두 이복형제의 만남 19.11.18 88 1 11쪽
154 154.산킨코타이(1)-합류 19.11.11 6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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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52.일본행(4)-보내드리다. 19.11.06 69 1 11쪽
» 151.일본행(3)-식어버린... +1 19.11.05 79 1 11쪽
150 150.일본행(2)-일본인 상인 19.11.04 54 1 12쪽
149 149.일본행(1)-김충선의 조언 19.11.02 73 1 12쪽
148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19.11.01 62 1 11쪽
147 147.대기근과 고난(2) 19.07.16 8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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