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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님의 서재입니다.

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퓨전

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조회수 :
82,395
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작성
19.11.02 19:45
조회
72
추천
1
글자
12쪽

149.일본행(1)-김충선의 조언

DUMMY

“아이고, 이제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나 보군. 옛날이었으면 하루에 200리도 짐을 지고 걸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100리길도 다 채우지 못해서 헥헥 거리니 말이야.”


하루는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크고 작은 고을 몇 개를 지나 닷새 만에 개성에 도착했다. 옛날 청춘이었을 때 같았으면 부지런히 아침부터 밤까지 걸어서 빠르면 이틀 오래걸려도 사흘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자주 쉬어가면서 걷다보니 나흘이나 걸린 것이다. 물론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천천히 걸었던 이유도 있었다.


하루는 한 말끔하게 생긴 주막으로 들어가서 옷을 툭툭 털고 자리에 앉은 다음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 국밥 한 그릇이랑 막걸리 한 사발만 주세요.”

“아이고, 아주 훤칠한 아저씨가 오셨네. 행색을 보아하니 며칠을 걸으신 것 같은데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한양?”

“한양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더 남쪽이면 천안이요?”

“훠얼씬 남쪽으로 갑니다. 부산이나 동래까지 가겠죠.”


하루는 어머니의 유골함과 짐보따리를 옆에 풀어 놓은 다음에 몸을 가지런히 하고 앉았다.


“아이고, 멀리도 가시는 군요. 이거 밥을 두둑하게 챙겨드려야겠네.”

“해서 오늘 여기서 하룻밤 묵었으면 하는데 남는 방이 있습니까?”

“큰 방은 좀 높은 분들이 오셔서 이미 잡았고, 다른 방도 저녁에 오신 손님이 들어가 계셔서 남아 있는 건 주방 옆에 작은 방 하나인데 괜찮으실는지?”

“괜찮습니다. 저 하나 들어가서 잘 건데 사람 하나 누워서 뒹굴 수 있을 정도의 방이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계세요! 얼른 밥과 국을 데워가지고 오겠습니다.”


말끔한 주막이라 그런지 손님들도 제법 많았다. 한쪽에서는 대기근 때문에 농사를 망쳤다면서 툴툴거리고 있는 농민들이 대여섯 명 막걸리를 한없이 마시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꽤나 있어 보이는 가문의 아들들이 삶은 닭에 청주가 담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손님들의 머릿수를 세워보고 자칫하면 방을 구하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남아있는 방이 있다니 다행인 일이다. 천천히 물을 몇 모금 마시다 보니 텅 빈 앉은뱅이 식탁위해 주모가 준비해 온 반찬들이 차려졌다.


“아이고, 국밥 하나 시켰는데 이렇게 많이 차려주십니까?”

“괜찮아요. 아까 저기 양반님들 음식 차려드리고 남은 식재료로 만든 겁니다.”

“전점에 삶은 달걀까지. 이거 오늘 밤새 먹어도 다 못 먹겠네요.”

“술은 바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요. 내일도 먼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마시면 큰일 납니다. 이따 국과 밥이 나오면 받겠습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하루는 예상보다 많은 반찬 가짓수에 깜짝 놀랐다. 이정도 반찬가짓수는 아무리 자신과 마루네 가족이 부농이라고 할지라도 1달에 1~2번 정도밖에 먹지 못할 진수성찬이었다. 고기 전에 굴비 한 마리 그리고 삶은 계란 2개에 김치와 여러 나물들이 차려져 나왔다. 반찬 몇 개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니 이제는 고봉밥과 따끈하게 데워진 된장국 그리고 막걸리 한사발이 나왔다.


“주모, 나이도 그리 많으신 것 같지 않은데 음식 솜씨가 아주 좋습니다.”

“크크크, 다 시어머니한테 전수받은 실력이죠! 음식이 맛없었다면 우리 주막이 이렇게 클 이유가 있겠습니까?”

“푸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제가 살고 있는 평양의 주막들보다 주모네 주막이 열 갑절은 실력이 뛰어난 것 같네요.”

“에이, 아저씨도 참! 맛있게 식사하셔요. 저는 주무시기로 하신 방 좀 치우고 이부자리를 미리 챙겨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루는 막걸리는 홀짝홀짝 마시고 밥과 국을 퍼 먹으며 간만에 폭식을 했다. 음식이 맛있어서 배가 불렀지만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마지막 한 숟가락 까지 싹싹 긁어먹은 하루는 주모의 안내에 따라 작은 방에 들어와 짐을 풀어 놓았다.


“아이고, 잘 먹었다. 대충 씻고 난 다음에 자야지.”


하루는 자신이 가져온 짐에 도둑맞은 건 없는지 한 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사용한 은자 한 냥이 다른 값싼 화폐(면포같은 것들)로 바뀐 거 외에는 사라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의 유골함도 가지런히 잘 있었다. 하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잠시 밖에 나가 대충 물 한바가지를 얻어서 얼굴과 손발을 씻은 다음에 다시 방안에 들어와 이불을 덮고 바로 누웠다.


‘앞으로 며칠을 더 걸어야 부산항에 도착할 수 있을까. 일본은 조선에서 온 나를 무사히 반겨줄까.’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에 들었다.



꼬끼오!

아침 닭소리가 울렸다. 하루는 천천히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 다음 몸을 조금 풀은 다음에 주모가 준 흰죽을 먹고 하루 묵은 값에 조금 더 얹어서 쥐어 준 다음에 다시 먼 길을 나섰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같은 방식으로 걷고 또 걸어서 남쪽으로 향했다. 한양의 북대문을 지나 광화문을 거쳐 남대문으로 빠져나왔다. 한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내려왔고 평택을 지나 천안 삼거리를 거쳐 경상도 쪽으로 방향을 정해 나갔다.


‘이제 오늘은 대구를 지나가겠군.’


하루는 드디어 대구에 도착했다. 고을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평양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에 있는 자신의 고향에 있었던 옛 사람들과의 추억도 희미하게 올라왔다.


“이 녀석들아! 할아버지가 뭘 잘못했다는 게냐!”

“에이, 할아버지. 무슨 술래잡기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것들이! 할애비가 일본에서 꼬마였을 땐 말이야! 이런 식으로 술래를 잡아서 번갈아 가면서 했었다고!”

“할아버지! 여기는 조선이에요! 조선의 놀이규칙을 따라야죠!”

“조선이건 일본이건 무슨 상관이니? 재미있게 뛰어 놀 수만 있으면 되는 거지. 언제는 일본 놀이도구 만들어서 놀아줬더니 좋아했더니만 이번에는 너희들이랑 규칙이 다르다고 끼워주지 않는 거냐?”


어느 기와집 담장 넘어서 들려오는 소리가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에서 일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왠지 그 사람임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루는 열려있는 대문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확인했고 역시나 그가 예상했던 사람이 맞았다.


“김충선 대장님!”

“에? 누가 나를 부르는 거지? 아이고! 아이고 이게 누구야! 평양성의 하루군!”

“어디서 지내시나 했는데 여기서 살고 계셨군요!”

“살면서 내가 자네 집을 중간중간 들른 적은 있어도 자네가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건 처음이구만! 자자자 들어오게. 아이고, 뭔 짐이 이렇게 많아? 어서 들어와서 앉게. 여보! 차 좀 끓여와야겠소. 아주 귀한 손님이 찾아왔어!”


그는 바로 낼 모레 환갑이 되는 나이 때문에 무관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자신의 생가로 내려와서 쉬고 있었던 사야가 김충선 장군이었다. 자신의 자손들과 동네 꼬마들을 불러서 놀아주고 있었던 김충선은 하루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크게 반가워하며 그를 맞이해 줬다. 김충선은 하루를 꼭 앉아 준 다음에 사랑채로 하루를 데리고 들어왔다.


“너희들은 이거 가지고 가서 엿 사 먹어라. 오랜만에 손님이 와서 말이야.”

“그나저나 집에 뭔 애들이 이렇게 많아요?”

“뭐긴 뭐야. 다 내 새끼들 아니면 동네 꼬맹이들이지. 가끔씩 이렇게 아이들 모아 놓고 정신없이 뛰어놀다 보면 내일모레 회갑인 나도 10살짜리 철부지 꼬맹이가 된 거 같아.”

“하하, 하긴 저도 그래요. 마루 손자들이랑 놀아주다보면 시간 가는지 모르고 저도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아요.”

“어어, 고마워 이리 줘요. 자, 들어가서 차나 한 잔 마시자고.”


김충선은 그의 아내가 건네 준 다과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와 뽀얀 한과가 올려 있는 다반은 둘이 수다를 하면서 먹기에 참으로 적합했다.


“녹차 향이 좋네요.”

“그치? 올해 처음 올라온 잎으로 우려낸 차라 순하고 좋을 거야. 아이고,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이렇게 멀리까지 걸어오고. 행색이나 짐 꾸린 걸 보니까 엄청 멀리 떠나는 것 같은데? 일본?”

“네, 맞아요. 일본으로 가고 있었던 중이었어요.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묻어드리려고요.”


하루는 유골함의 형체를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가 왜 일본에 가야만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아이고, 효자네. 일본에 가족들이 남아 있었다고 해도 하루군처럼 그렇게 열성으로는 못 보살펴 드렸을 거야.”

“헤헤. 저도 불효자죠 뭘. 만날 마음고생만 시켜드렸는데요.”

“평양성에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 건가?”

“네, 늘 정신없죠. 마루도 그렇고 소우스케랑 켄타도 다 손자를 보고 있어서 아주 매일매일이 시끄러워요.”

“크크크, 그건 나랑 상황이 똑같구먼. 힘들어서 사직서를 내고 잠시 내려와서 요양 중에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이 몸은 북방에 금나라 놈들이 몰려온다고 하면 냅다 달려 나갈 거야!”

“역시 대장님! 대장부 중에 대장부십니다!”


하루와 김충선은 이런저런 안부를 묻고 옛 추억들을 꺼내 이야기 하며 차를 마셨다. 그간 김충선 대장님과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나저나 일본에 간다면 나가시노만 들를 것인가?”

“예?”

“아, 그. 왜 자네가 사랑하는 여인도 있지 않아. 하나였나? 맞지 하나양.”

“네, 하나 맞죠.”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자 하루는 잠시 손이 떨렸다. 일본으로 향하면서 그녀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친한 사람이 그녀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사람이 뭔 그런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내가 아는 남자다운 하루의 모습은 어디로 가있고!”

“에...음...”

“뭘 그렇게 망설이나? 친구! 솔직히 말해서 하나양을 잊을 수 없는 거 잘 알아.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리운 사람을 만나야 하지 않겠나?”

“그래도... 하나가 저를 좋아할 까요? 저같이 세상 최악의 사내를...”

“좋아하다 말고! 하루군처럼 진심으로 다가가는 남자가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나? 내가 30년 지기 친구로써 말하는 것이야! 아, 돌아가신 어머님도 당연히 잘 모셔드려야 되지만 살아있는 애인도 극진히 모셔야지! 암, 그것이 도리야!”

“대장....”


김충선 아니. 자신보다 몇 살 위의 형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하루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숨기고 있던 하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다시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하루군. 짧으면 십년 길어야 20여년 남은 인생 멋들어지게 완성시키게. 살면서 후회스러운 일은 저지르지 않아야지!”

“대장님.”

“오늘은 해도 기울어가니 내 집에서 머물다 가더라고! 사나이가 그깟 미련 때문에 평생 후회하면 쓰겠나! 전장에서도 용맹했던 하루 아니야! 어깨 딱 펴고 일본으로 가게! 돌아가신 자네 어머니도 아들이 먼 곳 일본에 있는 사랑하는 여인과 잘 되는 것을 원하고 계실 걸세!”


자신감을 회복한 하루는 주먹을 꾹 쥐고 다짐했다.


“예! 그럼요! 어머니도 잘 보내드리고! 하나와도 다시 만나서 잘 얘기하겠습니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렇게 하루는 김충선의 집에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굳은 다짐을 마쳤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으며 두 사람은 못다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작가의말

이번에는 중도포기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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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마지막회.마지막 여정(5)-잘 살았소이다. 19.12.28 249 1 13쪽
169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19.12.26 134 1 12쪽
168 168.마지막 여정(3)-일본으로 떠나다. +2 19.12.23 142 2 11쪽
167 167.마지막 여정(2)-임금을 만나다. 19.12.20 103 1 13쪽
166 166.마지막 여정(1)-영웅 마루 19.12.18 7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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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64.병자호란(4)-포로가 될 것인가... 19.12.14 56 1 14쪽
163 163.병자호란(3)-항복 19.12.13 79 1 11쪽
162 162.병자호란(2)-몸을 옮기다. 19.12.11 5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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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160.또 한 번의 전운(3) 19.12.07 57 1 12쪽
159 159.또 한 번의 전운(2) 19.12.06 52 1 12쪽
158 158.또 한 번의 전운(1)-불안한 양국 관계 19.12.04 57 1 11쪽
157 157.다시 집으로 19.12.02 7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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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155.산킨코타이(2)-두 이복형제의 만남 19.11.18 88 1 11쪽
154 154.산킨코타이(1)-합류 19.11.11 6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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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152.일본행(4)-보내드리다. 19.11.06 69 1 11쪽
151 151.일본행(3)-식어버린... +1 19.11.05 78 1 11쪽
150 150.일본행(2)-일본인 상인 19.11.04 54 1 12쪽
» 149.일본행(1)-김충선의 조언 19.11.02 73 1 12쪽
148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19.11.01 61 1 11쪽
147 147.대기근과 고난(2) 19.07.16 8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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