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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건 님의 서재입니다.

리쥬베 -다시 만날 그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sunggun
작품등록일 :
2019.04.01 23:38
최근연재일 :
2019.05.07 19:13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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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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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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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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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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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2장 세이럼 - 23 화로

DUMMY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가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조건물은, 가도를 배회하는 마족들로부터 도시의 시민들을 지키기위해 만들어진 성벽에 딱 붙어있었다. 옛날에는 왕도를 끊임없이 맴돌며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순환열차의 정차역이었던 이 석조건물은, 통일전쟁을 겪으면서 완전히 제 기능을 잃고말았다. 제국군의 공습을 받아 곳곳에 구멍이 크게 뚫려버려 너무나도 처참해보였지만, 이런 장소도 나름의 쓰임새가 있는 법이었다.


멀리서 빛을 보내주는 가로등조차 이곳까지 손길을 뻗지못했고, 건물안에 군데군데 붙여져있는 촛불이나 화로가 그나마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겨울이 스스로 물러나기에는 서글펐는지 건물안은 꽤 쌀쌀했고, 곳곳에서 그들만의 화로에 불을 붙이고 손을 덥혀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아렐과 메아윌이 이곳에 들어왔을때는 모두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온갖 가재도구들을 들이댔지만, 애초부터 적대감이 강하지않았는지, 아니면 그럴 힘조차 없었는지 아렐이 두손을 들어가며 열심히 설득하자 금세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아렐은 그 사람들을 일일히 찾아가 남는 화로가 없는지 물어보았고, 그들은 무뚝뚝하지만 매몰차지는 않은듯 서로가 서로를 가리키며 저곳으로 가라고 일러주었다. 쓴웃음을 지으면서 아렐이 발품을 팔아, 겨우 낡은 쇠화로를 하나 빌려서 메아윌과 함께 구석으로 가 자리잡았다.


“나뭇가지는 여기에 넣어주세요.”

“네.”


화로를 약간 정비해서 불을 붙이고, 달궈지는 쇠를 바라보던 두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후후, 그나저나 여기 정말로 괜찮은건가요?”

“괜찮을 겁니다.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나름의 규칙만 잘 지키면 외부인에게도 험하게 대하지는 않으니까요.”

“몰랐어요. 잘 알고계시네요?”

“뭐··· 저도 살았던 적이 있어서 어느정도는 알고있습니다.”


메아윌은 실수했다! 라는 얼굴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표정은 생각보다 산뜻해보였고, 자신을 다시 쳐다보는 메아윌의 시선을 느껴 상태를 지켜보던 화로에서 눈을 떼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시죠?”


그랬기 때문에 메아윌은, 감옥안에서 그에 대해 생각할때부터 쭉 궁금했었던 점을, 용기내어 그에게 물어보기로했다.


“저, 저기··· 아렐씨만 괜찮다면, 아렐씨의 옛날얘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억지로라는건 절대 아니고, 아렐씨가 싫다면 당연히 안하셔도···”

“음··· 좋아요. 그다지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듣고싶으시다면 말 못할건 없습니다.”


양손을 얼굴앞에서 휘휘 내저으며 어색하게 질문하는 메아윌을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바라본 아렐은, 잠시 고민하더니 딱히 문제될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그러고보면 저번에 통일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때, 저항군이 통일전쟁이 조기에 끝날 수 있도록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했었죠?’

“네, 상당수의 제국군 주요병력들이 전투력을 상실했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요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

“저항군에 의한 총통암살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생각났습니다. 제도에 침입한 저항군에 의해 총통이 암··· 살··· 응···?”


눈에 띄는 아렐은 근처에 숨어있었고, 메아윌이 옷으로 모습을 감춰가며 사온 식재료들로 끓이고있는 스프를 적절하게 저어주면서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한편 이야기를 듣던 메아윌은, 예전 역사서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얼핏 생각나기 시작하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도중에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에 눈치챈 메아윌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나 끝끝내 기억나지않는 답답함에 머리를 싸매고있자, 그 모습에 눈치챈 아렐이 살짝 웃었지만, 그 이상으로 표정을 굳혀가며 말을 이었다.


“반은 맞습니다. 제도로 침입한 저항군이아니라, 제도에 있었던 저항군의 동료였습니다.”

“아! 생각났습니다. 총통이 누구보다도 신뢰했던 직속 친위대장 지넨 페르노···아···! 에?!”


아렐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기억속에서 단단히 밖혀있던 돌을 끄집어낸 그녀는, 열띤 미소를 지어가며 말했지만, 도중에 어떤 사실에 눈치챈 그녀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레 소리친 그녀의 목소리는 군데군데 이가 빠지기는 했어도 매끈하게 다듬어진 돌벽에 튕겨 곳곳에 전달되었고, 소란을 듣고 달려온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둘이서 사과하며 다시금 대화의 흐름을 이어갔다.


“미안해요. 그만 깜짝 놀라서··· 그런데 지넨 페르노아라니··· 설마 아렐씨···?”

“그렇습니다. 지넨 페르노아는 제 증조부에 해당하시는 분이죠. 저도 전해들은 이야기이기에 정확한 사실은 모릅니다만, 당시 총통각하께서 가장 신뢰한 상급장교가 딱 두명있었다고 합니다. 한명은 앞서말한 저의 증조부, 또 한명은 특수작전지휘관을 맡고있던 카릴 사이문 3경대령이죠. 그 둘은 어느누구보다 총통각하께 충성을 맹세하고 수행했다고 하는데, 당시 사이문 3경대령은 반역혐의를 받아 연금상태에 있었고, 총통각하의 곁에는 페르노아 친위대장만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그때.”

“네, 저항군들이 안개처럼 사라진 그날, 총통각하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곧이어 친위대장은 총통암살혐의로 구속됩니다. 각하의 뒤를 이어 총통이 되신 각하의 아드님, 프레드릭 란도르젠 각하가 그에게 죄가 있음을 발표했고, 곧바로 페르노아 가문은 제도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사이문 3경대령이 이후 무혐의처분을 받은 점때문에 약간의 정치적논란은 있었지만, 곧 제국에 다대한 공로를 바치고 돌아가셨으니, 총통각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잘못된 결단을 내리셨던 것이겠죠.”

“아렐씨···”


그저 담담하게, 본인의 얘기는 아니지만, 자신의 가문에 있었던 비화를 그저 조용히 읊어내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메아윌은 왠지모르게 마음이 답답해졌다.


“페르노아 가문은··· 완전히 몰락해버렸습니다. 림제국은 통일전쟁으로 합병된 수많은 국가의 시민들도 차별없이 받아들이도록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가 저희가 살던 시대의 나름 평화로운 제국이었습니다만, 저희 가문의 취급은 달랐습니다. 그럴만도 하겠죠. 제국의 버팀목을 없애버렸으니··· 제국의 변두리로 쫒겨난 페르노아는 어다에도 기댈곳이 없었습니다. 증조부를 제외하면 실형은 전혀 내려지지않았지만, 이미 모든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저희 가문을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주지않았죠. 당연한 사실입니다.”


너무나도 우울해지고, 무엇보다 메아윌 자신이 슬퍼지는 이야기에 이제는 그만 듣고싶어지기까지했지만, 정작 아직 아렐 본인의 이야기는 나오지도않았고, 얘기해달라고 한 입장이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태어났을 때는 어느 정도 살만했던 것 같습니다. 초기에는 생활을 위해 일이라도 해야했지만, 아무리 천하거나 고된 일이더라도 가문을 밝히면 문전박대당했고, 기껏 돈이 생기더라도 물건을 살 수가 없었으니까요. 병합된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총통을 암살한 우리 가문에게 나름대로 감사하고 있었다는 듯했습니다만, 그들도 제국군의 보복이 두려워서 돕지는 못했었다는군요. 뭐, 애초에 저희 집안이 그걸 받았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만···”

“네?”

“저희 집안은··· 저희 할아버지는 끝까지 인정하시지않으셨습니다. 거의 제국초기부터 무신가문으로 왕과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 페르노아 가문에서도, 증조부의 총통바라기는 대단했었다고 하니까요. 그때문에 부인과 아들은 쓸쓸한 생활을 해야했지만, 이에 불만을 갖지않고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페르노아 가문의 충성심은 대단했다고합니다. 뭐··· 저의 아버지에 이르러서는 충성심의 일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만···”


자조하며 고개를 든 아렐은, 금방이라도 울것같이 아렐을 쳐다보는 메아윌에게 깜짝 놀랐다. 하룻밤사이에 이렇게 많이 울다가는 눈가가 빨갛게 물드는게 아닐지 걱정될 정도였는데, 그녀는 울지는 않았고 벌떡 일어서더니 성큼성큼 아렐에게로 걸어와서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아무런 잘못도 하지않은 아렐씨마저 그런 대우를 받았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서 말하기도 했고, 아렐의 귀가 상당히 좋은 점도 있어서 그녀의 작은 중얼거림도 다 들렸지만, 아렐은 굳이 대답하지않고 작게 쓴웃음을 지은뒤 말했다.


“그만 할까요?”

“아, 아니에요. 아직 아렐씨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잖아요.”

“이제부터 나옵니다. 어··· 제국의 변두리에서 제가 태어난 것은 46년입니···”

“에?!”

“네?”

“아렐씨 46년생이셨어요?!

“그, 그렇습니다만.”


가깝다···

바로 옆에 앉아서 아렐을 향해 고개를 쭉 내민채 바라보는 메아윌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몸이 다가왔고, 어째선지 미묘하게 흥분한 눈치로 말했다.


“저보다 2살 연상이셨네요! 저는 좀더 나이가 많으실 줄 알았아요!”

“뭐··· 제가 좀 늙어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긴합니다.”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외모는 충분히 젊어보여요. 다만 아마도 그런 말들은 말투때문에 듣는 것일걸요?”

“그렇습니까?”

“분명 그렇다니까요.”

“음··· 뭐, 어쨌든. 제가 태어나고 나서··· 솔직히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어릴적 저는 굉장히 불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어째서 우리집은 이렇게 허름할까, 어째서 우리집은 항상 똑같은 것만 먹을까, 어째서 우리집은 아무것도 없는걸까··· 항상 불만이 있었고, 항상 부모님께 대드는 건방진 꼬맹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희 어머니께서 저에게 이런 말을 하시더군요. ‘그렇게 불만이 많으면 너가 직접 일해보렴.” 언제나 상냥하시던 어머니 입에서 나온 차가운 말에 저는 굉장히 당황했습니다만··· 그정도로 저희 부모님께서는 상당한 고생을 하셨었던 거겠죠. 하지만 그런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그저 당황했고, 한편으로는 그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곧바로 일을 시작하셨나요?”

“맞긴 합니다만,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로 더 대담했습니다. 그냥 그길로 집을 나와버렸거든요.”

“네? 그게 몇 살때 일이에요?”

“6살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새 얼굴을 제자리로 되돌리고 이야기를 듣던 메아윌은, 그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얼마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죠?”

“아뇨···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한번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미리 꺼내두었던 국자로 향하던 그의 손이 잠시 멈추고, 저 높이 위치해있는 건물의 천장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쩐지 짐작이 된 메아윌은, 그를 조금 내버려두고 자신이 국자를 집어 대신 스프를 컵에 나누어담았다. 조용히 그의 손에 손잡이를 쥐어주자, 따스해지는 온기를 느꼈는지 곧 시선을 내렸고, 메아윌에게 미소를 지으며 스프에 입김을 불었다.


“집을 나와서··· 무작정 제도로 향했습니다. 왜 제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행히 친절한 분들을 여럿 만나서 탈없이 제도에 도착할 수 있었죠. 그분들 덕에 중간중간마다 심부름도 하면서 잔돈도 벌 수 있었구요. 제도에 입성한 저는, 무턱대고 돌아다녔습니다. 어머니말씀대로 일을 구하려고도 해보고, 잠을 재워줄만한 곳을 찾아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할법한 행동들을 그대로 하고 다녔죠. 근데 전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었습니다.”

“네? 무엇을요?”

“제가 지넨 페르노아의 증손자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번도 들은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저희집이 단순히 못사는 집인줄로만 알고있었습니다. 제도에 도착하기전에도 그냥 이름만 말하면서 다녔었으니 문제없었고요. 그런데 겨우겨우 어느 공장의 친절한 사람을 만나서 잡일이라도 시켜준다는 말에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어리지만 고용계약서를 써야된다기에 잘 모르지만 이름과 성을 말해주었구요. 그런데 그들은 저의 성을 듣더니, 자신들이 잘못들었다고 생각한듯 몇번이고 물어보더군요.”

“페르노아라는 성씨를 쓰는 다른 집안은 없나요?”

“전에는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있더라도 바꿨을 겁니다. 제국에서 저희 집안빼고는 쓰지못하도록 완전히 금지시켰으니까요.”

“철저하네요···”

“... 결국 매우 미안한 얼굴로 저같은 꼬마를 향해 고개를 숙여주는 아저씨들을 뒤로, 저는 빈민가로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눈치는 조금 빠른 편이었기에 성씨를 밝히면 안된다는 것도 깨달았고, 빈민가에서 요령좋게 살아가는 법도 금방 터득할 수 있었지요.”

“제도 주변에도 빈민가가 있었나요?”

“지금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을 빠져나오기전까지는 아직 멀쩡했었죠. 어쨋거나 빈민가에서의 생활이 나름 잘 시작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때부터는 저의 기억이 그다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기억이 잘 안나시나요?”

“네, 어지간히도 힘들었어서 정신적으로 버티기위해 자기방어차원에서 기억이 지워지기라도 한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또렷하게 기억하고있는 순간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제국군의 모집공고를 봤을때부터입니다. 제가 15살때의 일이었죠··· 이렇게 생각해보니 8살때 즈음부터 거의 8년간의 기억이 없다는 점은··· 좀 비정상적일지도 모르겠네요..”

“음··· 그래도 그게 정말로 고통스러운 기억때문이라면, 굳이 기억해내지 않는것도 좋지않겠어요? 비정상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적이기에 가능한 자기방어라고 생각해요.”

“그런걸까요···”


얘기를 하며 과거의 기억에 집중하고있었더니, 무의식적으로 입김은 계속 불고있었던듯, 스프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만 것에 눈치챘다. 옆에서 자그마한 웃음소리가 들리기에 아렐이 고개를 돌리자, 식어버린 스프를 들고 망연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키득키득 웃고있는 메아윌의 모습이 보였다. 약간 삐진 그가 항의의 시선을 담아 메아윌을 쳐다보자, 그녀는 불쑥 자신의 컵을 내밀었다.


“아직 불도 안꺼졌고, 그건 다시 데우죠. 그동안 제걸로 나눠먹어요.”


눈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면서도 수줍은듯 입가를 가리는 메아윌의 모습에, 그는 그만 부끄러워져서 반론이나 의문을 제기하지도 못한채 그녀의 말을 따랐다. 왠지모르게 두둥실 떠오르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컵에서 자신의 컵으로 흘러내리는 스프를 말없이 보고있자, 메아윌이 말했다.


“그런데 제국군에서는 아렐씨를 받아주신거죠? 어떻게 가능했나요?”

“아··· 자세히 말하자면 살짝 복잡하기도하고, 기밀에 저촉되기도 합니다만··· 뭐, 상관없겠죠.”

“정말로 괜찮은건가요? 저 갑자기 잡혀가는건 싫은데요···”


어차피 60년보다 더 먼 과거로 와버리기도 했고, 관련되는 기밀이 아직 써내려가지도 않았을 시기니까 상관없지않을까 생각하며 여태까지 말하기 주저했던 부분들을 말하기로 했다. 어쩌면 다시 원래 시점으로 돌아갔을때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말만 안하면 될일이고, 무엇보다 메아윌을 신뢰했기에 그냥 털어놓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밀을 훌훌 털어놓아 버리기로 한 그와는 달리,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컵표면에 방울져 흘러내리는 스프국물을 혀로 핥아 먹은 그녀에게 아렐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우리 둘만 입다물고 있으면 아무 문제없으니까요.”

“문제는 많이 있는것 같은데요··· 에이, 그래요. 그냥 궁금하니까 얘기해주세요.”

“하하, 알겠습니다. 당시에 저도 안될걸 뻔히 알면서 제국군에 지원할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공고에 끌린 저는 그냥 무작정 적혀있는 장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곳에서 절 기다리고있던 진짜 모집은, 단순한 일반병 모집이 아니었죠. 저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666독립대대란 부대에 대해서.”

“그러면 처음부터 마족처리부대에 들어가셨던 거군요?”

“그렇죠. 저는 3기 훈련생신분으로 들어갔습니다. 2기까지는 최고등급의 기밀이 유지되었던 것 같았지만, 저희 3기때부터는 독립부대가 되기도하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일도 많아져서 공개모집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뭐, 이게 단순한 특수부대같은건 아니었죠. 저도 근성이라면 나름 자신이 있었습니다만, 여기서 훈련생들에게 행해졌던 훈련은, 훈련이라기보다는 실험에 가까울정도로 저희들을 괴롭혔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저를 받아주었던 것이겠죠. 일반인에게 시켰다가는 금세 언론에서 걸고넘어질법한 일들이었으니까요.”

“실험··· 그렇다면 아렐씨 혼자서 3기훈련생이었던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동기도 여럿있었고··· 하지만 나중에 나름 친해져서 얘기를 들어보면, 모두들 사연이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컵에 반밖에 담겨있지않아서 였을까, 어느새 수분으로 미끈해진 바닥을 보며 아렐은 그들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직업을 얻을 수 있었을 지는 모르지만, 평균을 뛰어넘는 고액의 보수가 적힌 계약서를 눈앞에 두고, 나를 포함한 동기들은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대에 찬 우리들을 기다리고있었던건 지옥과도 같은 험한훈련들, 그리고 매일 밤 몸에 놓아지는 정체불명의 약들··· 생각만해도 진저리가 나고,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적인지 제국군의 계산인지, 동기들중에 낙오자는 한명도 없었고, 모두들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강병이 될 수 있었지만··· 마족과의 전투로 인해 전사해버린 녀석들도 적진않았다.


“그래도 뭐··· 여러모로 역경이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이번 작전에 참여했고, 그 결과 메아윌씨도 만날 수 있었으니, 제가 걸어온 길들도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기도합니다.”


아렐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으면서 자신의 과거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다시 냄비에 담아 덥혀지고있던 스프의 온도를 확이하고, 각자의 컵에 나누어담는 작업을 하려할때, 옆에서 ‘기습은 치사하잖아요···’ 라고 중얼거리는 메아윌의 말이 들려왔지만, 뜻이 이해되지않았던 그는 머리로 의문부호를 그리면서도 되묻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저 마치고, 식기들을 정리했다. 메아윌은 잠자리를 어떻게하면 안락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아렐의 의견을 묻기위해 그를 쳐다보았는데, 그는 마침 용린갑의 수납함에서 꺼낸 무언가를 입안으로 넣으려하고있었다.

흥미가 생긴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았다.


“그게 뭐예요?”

“아··· 별건아니고, 보험같은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직 입안에 넣지않았던 그것을 메아윌에게 보여주자, 그녀는 무심코 깜짝 놀라면서 뒷걸음질쳤다.


“엣! 그거 진짜 이빨이예요?”

“설마요. 가짜입니다. 깨물면 부서지게 되어있습니다.”

“음···? 사탕?”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안에는 약이 들어있죠.”


약이라는 말에 영 꺼림칙한 기분이 든 메아윌이었지만, 호기심에 이기지는 못하고 내용물의 정체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렐은 얼버무리며 웃을뿐, 무슨 약인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입안으로 가져가 가짜이빨을 끼워넣는 아렐을 불만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던 그녀는, 이내 포기하고 잠자리에 대해 질문했다.


이미 주변에서 취식을 하던 빈민가의 사람들은 불을 끄고 잠을 청한뒤였지만, 미약하게 불이 남은 그들의 자리에서는, 밤늦게까지 작게, 소곤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두려워진 아렐이 억지로 대화를 중단하고, 삐진듯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돌린 메아윌이 잠든 것은 결국 날짜가 바뀐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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