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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건 님의 서재입니다.

리쥬베 -다시 만날 그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sunggun
작품등록일 :
2019.04.01 23:38
최근연재일 :
2019.05.07 19:13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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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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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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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아레아리스 - 5

DUMMY

산맥 틈새에 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창문에 닿은 햇빛이 집안에 따스함을 가져다주었다. 밤새 거세지기만 하던 강풍과 눈발은 어디로 갔는지 살랑거리는 풀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조용히 귓가에 스며들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들려오는 도마와 불소리에 살며시 눈꺼풀을 올린 아렐은, 일어나자마자 자주 드는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잘 잤나요? 다른 사람에게 거는 마법은 서툴러서 침대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소파도 나쁘진 않죠? 아직 비몽사몽 해 보이는데, 세수부터 하고 오는 게 어때요?”

“아··· 네···”


부엌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대부분을 귓전에서 떨어뜨리며 소파에서 일어난 그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던 담요를 대충 소파 위에 얹어두고는 휘청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화장실은 지하실로 내려가면 바로 왼쪽에 있어요.”


왠지 모르게 즐거워하는 음색의 목소리였지만, 아렐은 이에 눈치채지 못한 채 계단을 내려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바로 눈앞에 놓인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자 기세 좋게 물이 흘러나왔고, 그는 손을 가져다 댔다.


“으앗!”


손만 닿았을 뿐인데 몸 전체로 퍼져가는 차가운 감각에 눈이 번쩍 뜨인 아렐은 살짝 주저하면서도 손을 먼저 헹구고 난 뒤 두 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로 가져갔다. 크러스트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생긴 강줄기에서 받아오는 천연수에는 쉽게 느껴볼 수 없는 상쾌함이 있었지만, 그는 그저 얼얼함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냉수를 끼얹었다. 정신이 멀쩡해지고도 남아 살짝 피곤해진 듯한 기분마저 들기 시작해 물기를 가볍게 털어내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부엌에서는 아직 메아윌이 요리 중이었던 것 같았지만 그가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식탁에 앉자마자 접시들을 들고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빵이나 베이컨을 이용한 간단한 요리나 샐러드 등을 옮겨오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고, 아렐도 덩달아 기분이 즐거워짐을 느끼며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잘 먹었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설거지를 마친 아렐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앉자, 메아윌은 들고 있던 물컵을 내려놓고 얘기를 시작했다.


“부탁은 단순해요. 저와 함께 가까운 도시까지 가서 물건을 몇 가지 사고파는 동안 저를 지켜주시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저에게 생명의 위협이 될지도 모를 마족을 처리해주시는 겁니다.”

“마족은 제 원래 임무의 범주에 포함되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 호위도 상관없습니다만, 가까운 도시라면 왕도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왕도까지 갔다가, 다시 이 근처까지 돌아올 거에요. 그 사이에 이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아렐은 당황하며 순간 할 말을 잃었지만, 턱에 손을 괸 채 잠시 생각하고는 질문했다.


“하지만 왕도까지 가는 데에는 사흘 정도가 걸린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왕복하면 5일을 훨씬 넘겨버립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히’ 갔을 때 걸리는 시간이에요. 걱정하지 말고, 9시에는 출발할 거니까 준비하고 계세요.”


현관문 옆에 걸려있던 시계를 손으로 가리키며 그리 말하고는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지하실로 내려가 버렸다. 혼자 남은 아렐은 걱정이 되었지만, 어제 들은 바로는 지름길이 있다는 듯했으니 그쪽으로 가는 건가 싶었다. 부탁을 전부 해결한 뒤에는 바로 빠져나가는 길을 알려줄 듯하니 놓고 갈 물건이 없도록 잘 챙겨야 했지만, 애초부터 용린갑을 입은 채 나이프 두 자루만 차고 왔던 터라 짐이 따로 있을 리가 없었다.

아직 시간은 7시 30분. 메아윌을 기다리면서 심심해진 그는 아직 탁자 위에 펼쳐져 있던 지도를 두루 보면서 조금 기억해두기도 하고, 텅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하고, 벽난로에 타고 남은 장작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도 그녀는 분주히 아래위를 오가며 물건을 가방에 넣기도 하고 빼기도 했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계를 보니 아직 8시 20분. 결국, 한숨을 쉬며 일어선 아렐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목 뒤의 장치를 눌렀다.


“어디 보자··· 충전율 96%. 중요 부위 손상 0. 산소 잔량 99··· 어? 충전율 96%?”


호위 임무를 수행하는데 앞서 몸이라도 풀 겸 오랜만에 대인전연습이라도 해보기 위해 용린갑을 완전가동시키고 상태를 점검했다. 그런데 아렐의 눈에 보인 마력 충전량이 96%, 처음 동굴에서 봤을 때보다 1% 늘어나 있었다. 용린갑은 완전가동을 한 뒤 움직일 때 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무시무시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완전가동상태가 아니더라도 항상 부분 가동되어 갑옷 자체의 방어성능을 향상해준다. 또한,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더라도 순식간에 반응한 용린갑이 마력을 소모하여 충격을 상쇄시켜준다. 그렇기에 다리에 돌이 짓눌렸을 때도 용린갑과 다리가 뭉개지는 대신 마력이 5% 정도 감소하는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완전가동이 아니더라도, 마력 층에 의한 1차 방어, 강화된 용린갑에 의한 2차 방어가 된다는 얘기지만, 제한적인 가동이라 할지라도 언제 공격받을지도 모르는데 계속해서 마력을 소모해버려서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 마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따라서 충격을 상쇄시키기 위한 급격한 마력 소모는 어쩔 수 없더라도, 용린갑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마력 소모를 막기 위해 제국은 특별한 기술을 넣었다.

하나만으로 항공기 한 대를 움직일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마기 회로를 무려 두 개나 투자해,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의 흐름인 마류를 이용해 마력을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로써 아슬아슬하게 마력의 소모와 충전을 평행하게 유지하게 되었지만, 아직 충전이 소모를 웃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국군 내부에서 열심히 개발 중이기는 하지만, 완성되었다 하더라고 이 용린갑에는 아직 적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신기한 현상에 아렐은 우선 수치표시계가 고장 난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모든 기능이 문제없이 가동된 것으로 확인되는 현재로서는 고장을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높아진 충전율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머리한구석으로 치워둔 뒤 본래 목적인 훈련을 하기위해 집 앞 공터에서 자세를 잡았다.


“후우···”


후보생 시절 상급장교로부터 몸으로 직접 배운 격투술을 몸이 이끄는 대로 먼저 나아가게 한다. 최근에는 마족과의 실전이 전부였기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때 보고 기억한 상대방의 다양한 움직임을 투영해가며 가능한 실전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점점 속도를 높였다.

조금씩 응용을 섞어가며 상대방을 압도하여 바닥에 눕힌 뒤 쉬지 않고 자세를 바로잡아 왼손에 나이프를 쥐었다. 그 상태로 여러 무기를 차례대로 투영해가며 얼마만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반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조금 다른 움직임도 취해가며 전보다는 더 발전된 동작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실험해봤다.

마지막으로는 무기를 갑자기 잃었을 때를 대비해 다양한 무기를 상대로 각각 어떤 회피술과 방어술을 취해야 할지 떠올려본 다음 자세를 풀고 숨을 가다듬었다.


투구를 써도 숨을 쉬는 데는 아무런 문제 없었지만, 아무래도 답답함은 영 가시질 않았기에 완전가동을 해제하고 얼굴을 드러냈다. 살인적이었던 공기가 지금은 상쾌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며 그는 기지개를 한번 피고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일 자체가 실전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실전이 온통 마족과의 싸움이었던 탓에 동작 도중 어색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연습해보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각을 되찾은 듯했지만, 주무기인 장검류를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연습해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아렐은 일단 만족하고, 뜨거워졌던 몸이 식어가는 탓인지 다시금 추위가 얼굴로 달려드는 감각을 느끼며 집안으로 돌아가려다가 창문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던 메아윌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이 맞자마자 곧바로 창문가를 떠났고, 그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문을 열었다.


“여기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웬일, 한 손엔 물을, 한 손엔 수건을 들고 다가온 메아윌이 그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살짝 놀라면서도 어느새 그녀의 상냥한 감정에 익숙해져 가는 감각을 느낀 아렐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며 물을 받아들었다. 제법 말라 있던 목 안을 시원하게 적셔주고 난 뒤 비어버린 물컵과 함께 얼굴을 내리자, 그녀는 수건을 양손으로 끌어안은 채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땀 한 방울 안 나네요.”

“아뇨, 땀이 나오기는 하지만, 갑옷이 벌써 다 흡수해버려서 그런 겁니다. 머리 부분은 벗어버렸으니까 점점 다시 나기 시작할 텐데··· 저, 이거 써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화장실도 쓰고 싶다면 쓰세요. 저는 다 썼으니까.”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 뒤 지하실로 내려온 그는 차가운 물로 살짝 얼굴을 헹구고, 머리를 만져보았다. 역시나 머리카락 안쪽에도 땀이 나 기분 나쁜 습기가 차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투구를 써서 잠시간 기다리다가 벗었다.

뽀송뽀송해진 머리를 만져보며 1층으로 다시 올라오니 메아윌이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8시 50분. 조금 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옅게 화장이 되어있었고, 외출복으로 보이는 빨간 겨울옷도 입고 있었다. 깔끔해진 벽난로를 말없이 바라보던 그녀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출발하기 전에, 가능하다면 당신의 실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까요?”

“네?”

“그 마족을 보며 아슬아슬하다고 했던 말. 저는 무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어제보다 더 작은 마족을 옛날에 우리 왕국 군인들이 힘겹게 잡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당신과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생각해요.”

“...”

“실제로 당신은 그 마족을 잡으면서도 굉장히 여유로워 보였고요. 저에 대한 태도가 확 바뀐 걸 보면 제가 마족을 공격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궁금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거짓말이었다는 얘기죠.”

“...”


아렐은 그녀가 무슨 질문을 하려고 하고,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예상해가며 긴장했다. 인제 와서 거짓말할 것 때문에 안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면 곤란했고, 용린갑이나 특수부대에 관해 깊게 파고들어 왔다가는 그가 먼저 그녀에게서 떠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자신이 그녀를 적대시할 생각이 이미 전혀 없다는 점을 깨달은 아렐은 속으로 꽤 놀랐고, 표정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려는 건 아니에요. 저도 거짓말한 두 개쯤은 할지도 모르는 거죠. 그래도 제가 호위나 마족 토벌의 부탁을 한 만큼 당신의 실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으면 해요.”


괜한 걱정을 하는 것만 같아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에 빠지는 그를 메아윌이 걱정스럽게 쳐다봤고, 그 시선을 깨달은 아렐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들어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출발할 시간이 되어버렸으니, 길을 걸어가면서 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렇네요. 그럼 슬슬 출발하죠.”


시계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메아윌은 미소를 지으며 아렐의 등을 살짝 밀더니 현관문으로 향했다. 그녀를 따라 집을 나서자 아까 느꼈던 공기의 상쾌함은 순간적인 착각이 아니었던 듯 온도도 어제보다 크게 올라가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목 뒤로 향하던 손을 내린 아렐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리고 그녀의 모습을 눈으로 쫓다가, 깜짝 놀랐다.


“그거··· 전부 가져갈 생각입니까?”

“물론이죠.”


아렐의 눈앞에는 그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여유가 남을 것 같은 거대한 포댓자루가 있었고, 그 안에는 내용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자루에 뚫린 구멍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고는 대답하며 허리를 일으켰다.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한 답변을 받은 아렐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다물고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자루를 향해 손을 뻗더니 잠시간 입으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포자가 살짝 빛나더니 중력을 무시하며 공중에 뜬 채,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메아윌을 따라 떠다니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당신에게도 써보려고 했지만··· 아직 사람한테 써보는 건 그다지 연습해보지 못했거든요. 혹시라도 장기가 따로따로 움직일 위험은 피하는 게 좋아 보였어요.”


신기한 듯 흥미롭게 바라보는 아렐에게 한마디 하고는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앞서갔다. 그녀를 보며 아렐은 끔찍한 상상에 살짝 몸을 떨었고, 쓴웃음을 지으며 발길을 서둘렀다. 어제 건너왔던 외길의 옆에 나 있던 샛길을 따라 서로 말없이 걸어갔다. 하지만 아렐은 말이 없을 뿐 둥둥 떠다니는 자루를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그 점에 눈치챈 메아윌은 웃으며 말했다.


“많이 신경 쓰이나 보네요. 관심이 있다면 나중에 얘기해줄게요. 이제부터 집중을 많이 해야 해서 정신이 흐트러지면 안 되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대놓고 신기한 힘을 아렐 앞에서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함부로 물어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먼저 질문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던 그는 뜻밖의 제안에 감사해 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아렐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말을 돌려 했다는 점에 눈치채고, 자꾸만 자루로 향하는 눈을 돌리며 시선을 돌렸다.

주변에는 안개가 걷혀 말끔하게 드러난 산맥들이 줄지어 보였고, 그나마 날이 풀려서인지 드문드문 나타나는 야생동물들을 보며 감탄을 흘렸다. 살짝 미끄러운 눈밭을 완만하게 30분 정도 내려가자, 보이는 풍경이 바뀌면서 메아윌이 다리를 멈췄다.


“협곡···. 입니까? 규모가 엄청나군요.”

“그렇죠. 저 밑으로 꽤 넓은 길이 나 있어요. 왕도로 통하는 길이죠. 평범하게 간다면 협곡을 멀리 빙 돌아서 도착하는 길이지만, 서둘러야 하니까 이쪽에서 바로 갑시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산새가 눈앞에서 끊기고, 대도시 하나쯤은 들어갈 법한 협곡이 눈앞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발밑으로 보이는 협곡의 깊이도 얕볼 수 없었다. 저 밑에 보이는 나무들이 먼지처럼 작게 보이는 크기를 생각하자면 용린갑을 완전가동시킨 상태일지라도 무턱대고 떨어졌다가는 눈뜨고 못 볼 꼴이 될 것이 뻔했다.

고공낙하를 여러 번 수행해본 아렐조차 발을 살짝 뒤로 빼버린 광경에 그녀는 성큼 다가서서 벼랑 바로 앞에 섰다.


“조금 아래에 보이는 저곳. 저기에서부터 협곡 밑바닥까지 지그재그로 이동해야 하는데, 일정 높이마다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걸 통해서 올라오기는 힘들지만, 내려갈 때는 착지만 잘한다면 아주 편하게 갈 수 있죠. 어떤가요? 이 정도 높이라면 뛰어내려도 문제없죠?”


아렐도 다가가서 절벽 밑을 자세히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짧게는 20m에서 길게는 30m 정도까지 절벽 곳곳에 돌출된 부분이 있었다. 메아윌은 그가 절벽동굴에서 떨어져 안정적으로 착지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문제없을 거로 생각했고, 실제로 충격으로 인해 마력을 조금 소모할 뿐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 있는 높이였다.

아렐은 발판이 뛰어내리는 사람의 무게를 충분히 견딜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은 여러 번 지나갔다는 그녀의 말을 믿었다.

걱정스러운 눈치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메아윌은 그의 시선을 웃어넘기고는 짐을 먼저 아래로 던졌다. 빠르게 떨어지던 포댓자루는 돌출부의 조금 위에서 슬그머니 감속하더니 가볍게 내려앉았다.


“문제없어 보이네요. 안전하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한번 내려가기 시작하면 바로 다음 발판을 향해 뛰어주세요. 제가 먼저 갈 테니까 바짝 붙어 따라오세요.”


메아윌은 옆으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책을 꺼내더니 눈을 감고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가방과 책을 품에 안은 채, 협곡을 향해 주저 없이 떨어졌다. 조마조마하며 지켜보다가 타이밍을 맞추어 그녀와 함께 떨어진 아렐은, 그녀가 발판에 마치 깃털처럼 사뿐히 착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안심했다. 그 뒤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바로바로 다음 발판을 향해 떨어지는 그녀를 따라, 정신없이 절벽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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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장 세이럼 - 14 +1 19.04.17 77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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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아레아리스 - 8 19.04.10 55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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