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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건 님의 서재입니다.

리쥬베 -다시 만날 그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sunggun
작품등록일 :
2019.04.01 23:38
최근연재일 :
2019.05.07 19:13
연재수 :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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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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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아레아리스 - 13 모닥불

DUMMY

벌레울음소리 하나 들리지않는 차가운 밤. 하늘 위로는 무수한 별들이 크러스트산맥의 봉우리들과 맞닿으려는 듯 흘러가고 있었다. 그 빛의 무리들을 향해 날아가는 재를 쳐다보던 아렐은, 고개를 내려 손에 들고있던 장작을 모닥불에 얹었다.


“설마 이런 길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주민들도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저도 우연히 발견한 길이거든요.”


안에는 스프가 들어있는지 찰랑찰랑 소리를 내는 냄비를 마법으로 띄어가며 메아윌이 모닥불 가까이에 다가왔다. 이미 다른 곳에서 따뜻하게 조리된 스프는 보기에도 맛있어보였고, 그녀가 휴대용컵에 나누어 담아주는 것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자, 여기요.”

“고맙습니다.”


메아윌은 컵을 아렐에게 넘겨주고, 자신의 것까지 마저 따른뒤 미리 가져다놓은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쌓여 있어서 자칫하면 바람이 고일 수도 있지만, 다행히 오늘 밤은 공기가 잔잔하고 온도도 그다지 낮지않았다. 가까이있는 동굴에서 가끔씩 바람이 불어나오기는 했지만, 모닥불에 둘러앉아 따뜻한 스프를 마시기에는 더할나위없을 정도로 안락한 분위기였다.

두손으로 컵을 감싸쥐고 호호 불어가며, 눈을 살짝 올려서 스프를 맛있게 먹고있는 아렐을 쳐다보았다. 시선에 눈치챈것같지만, 눈치채지못한척을 해가며 부끄러운듯 컵에 얼굴을 가려가며 먹는 그의 모습이 재밌어서 웃음을 살짝 짓고, 그녀도 컵에 입을 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것일까···?

그녀는 스스로가 신기했다. 있는 거라고는 눈밖에 없는 왕국에 태어나서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우대해주었다. 그들과 친해지고싶어도 쉽게 좁힐 수 없는 마음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자, 다른 사람과 진심어린 대화를 나눈 적이 드물게 되었다.

혼자 살게 되고나서부터는 더 심해졌다. 가끔씩 찾아오는 왕가의 일꾼들과 드문드문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들은 바쁘다는듯 서둘러 돌아가버렸기에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니었고, 그녀 자신도 딱히 그들과 그런 대화를 나누고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만난 외지인이 반가웠던 것일까?

아마 그런 단순한 이유만은 아닐 것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무서운 말투를 써가며 금방이라도 무기를 들이댈것만 같은 아렐이 무서워서. 너무나도 무서워서 친해지기는 커녕 금방 다른 곳으로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마족과 함께 싸우게되고, 길을 잃어버려 크러스트산맥에서 빠져나가고싶다는 그의 부탁을 듣다보니 어느새 그를 꼭 도와주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과 3일도 안돼는 짧은 시간사이에, 그녀는 자신이 아렐에게 과할 정도로 마음의 문을 열고있다는 것에 눈치챘다. 처음 느껴보는 스스로의 과감한행동에 내심 불안해지기는 했지만···

이 감정이. 싫지는 않았다···


“아렐씨.”

“네?”

“괜찮다면 림제국에 대한 얘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아렐이 스프를 깔끔하게 다 먹고 컵을 내려놓을때를 노려, 메아윌이 말을 걸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부탁에 아렐은 잠시 고민했지만, 제국군의 기밀에 관한 이야기만 아니라면 딱히 상관없겠구나 싶었기에 곧장 수락했다.


“물론 괜찮아요. 뭐가 궁금하신가요?”

“림제국에 대해서 책으로 많이 배우기는 했었어요. 하지만 그 책들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었거든요. 특히 림제국역사에서 가장 핵심을 차지하는 ...‘통일전쟁’에 관한 지식이 압도적으로 부족해요.”

“통일전쟁··· 거북하시다면 그 이름으로 안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저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아뇨. 딱히 거북한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인식이 조금···”

“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이 전쟁에 대한 일을 알게되었을때, 무심코 어라? 침략전쟁이 아니라? 라고 중얼거렸을 정도니까요··· 어쨋든 통일전쟁에 관해서라···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는 모두 말씀드릴께요.”


아렐은 통일전쟁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잠시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메아윌역시 이를 알았기에 얌전히 기다리면서 컵에 남아있던 스프를 마저 먹었다. 미지근해 진뒤 차가워지고싶어하는 스프를 목으로 넘기자, 따듯해졌던 몸이 조금씩 식어가는 느낌이 들었기에 조금씩 모닥불가까이로 다가갔다. 옷에 불똥이 튀지않도록 조심하면서 거리를 잡고있자, 정리가 끝났는지 아렐이 눈을 떴다.


“역사적인물에 대한 설명도 섞어가면서, 전쟁의 전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좋을대로 하셔도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아렐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모닥불에 가까이 다가가더니, 목을 한번 가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림제국은 오랜기간동안, 나라의 핵심통치자인 황제를 중심으로, 왕정국가의 형태를 이루고있었습니다. 때에 따라, 또 필요에 따라 세습되기도 하고, 선출되기도 했던 황제는 최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 최선의 정치를 해왔고, 국민들의 애국심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런데 바이스 레넌이 차기 황제로 선출되고나서는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이 1대 총통이신거죠?”

“맞습니다. 레넌각하는 스스로에게 총통이라는 새 직함을 부여한 뒤, 중합주의라고 불리는 새 이념을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중합주의라는 이념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국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 이념이 전쟁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저도 읽었었습니다. 분명··· ‘우수한 제국민은 주변국가를 받아들이고, 융합하여, 그들로 하여금 우수한 국민이 되도록 할 책임이 있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확합니다. 이 이념은 지금도 림제국의 뿌리를 지탱하고 있죠. 어쨋거나, 당시 제국이라고 불리기에는 다소 작은 국토탓에 주변국들로부터 자주 무시를 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던 제국민들에게는 솔깃한 소리였겠죠. 그것이 비록 선민사상에 찌든 것이라 할지라도···”

“아렐씨는 중합주의를 별로 안좋아하시나봐요?”

“현재는 오히려 중합주의에 깊이 심취한 제국민을 보기힘듭니다. 뭐··· 그 중에서 제가 특히 혐오하기는 합니다만··· 제 취향과는 달리, 중합주의로 인해 제국민은 일치단결할 수 있었죠. 하지만 바로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국의 국력과 군사력이 나름 강하긴했지만, 주변국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에는 아직 부족했으니까요. 때문에 레넌각하는 기회를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때, 맞장구를 쳐가면서도 집중하며 듣고있던 메아윌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생각에 빠졌다. 이를 눈치챈 아렐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며 이야기를 잠시 쉬었다. 모닥불이 장작을 파고들어가며 구조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조금 지켜보자, 이내 그녀가 고개를 들고 질문했다.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2대 총통의 이름이 기억나지않네요··· 어떤 분이셨죠?”

“기억나지않는게 정상입니다. 그분은 이름이 없죠.”

“네? 아무리 그래도 상징적인 인물이 이름이 없다는건 많이 불편할 것 같은데···”

“많은 역사가들이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2대 총통. 그야말로 총통이라는 직함의 대표적 인물로서 자리매김 했기때문에 총통의 대명사가 된 그분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총통의 자리를 물려받은지 얼마지나지않아 국경이 인접해있던 주변 3국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꽤나 파격적인 결단이네요. 동시에 세 나라를 상대로라니.”

“레넌각하의 퇴임 거의 직전에 개발된 항공기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시에는 대기중을 장악하고있는 마류에 대한 개념은 물론, 마류물리학의 기초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었으니까요. 운동하는 물체가 마류에 방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해명해내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림제국만이 유일하게, ‘마기회로’를 이용해서 무사히 하늘을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를 개발한 것입니다.”


항공기에 대한 말을 마쳤을 때, 아렐이 목을 축이고자 물이 담겨진 포대를 찾았다. 마침 메아윌 바로 옆에 포대가 있었기때문에 잡아서 건네주고, 그녀는 마류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마류란, 대기중에 분포하는 공기와는 또다른, 대류하는 물질. 마류물리학이 많이 발전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 움직임을 연산하고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정도로 불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가장 중요한 점은, 어째선지 생물들은 마류의 물리적인 접촉을 인식조차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생물외의 독립적인 운동을 하는 물체들은 하나같이 마류에 의한 물리적인 방해를 받아서, 과거에는 항공기는 커녕, 돌맹이를 던지는 것조차 표적을 제대로 맞추기 쉽지않았다.

그런데 그 위업을 처음으로 달성한 림제국. 당시에는 이루말할 수없는 크나큰 혁신이었을 것이다.


“항공기의 군사적이용에 착안하고나서는, 개전을 향한 움직임이 빨라졌습니다. 아시다시피 마류는 수직적인 움직임보다 수평적인 움직임에 더 심한 간섭을 하기때문에 폭탄을 지상에서 발사하는 건 언제나 고역이었죠. 그런데 만약 폭탄을 대량으로 운반하기 용이한 항공기가 공중에서 표적을 향해 폭탄을 투하한다면··· 하다못해 항공기에 태운 군인을 안전하게 지상에 착륙시킬 수만 있다면··· 전술은 수십 수백만가지가 만들어졌고, 총통각하는 이를 바탕으로 중합주의를 몸소 실천하고자 주변국들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네,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오히려 전쟁의 발단부분만 잘 알아둔다면 전개과정따위는 순식간에 넘길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전쟁이 짧게 짧게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저는 세이렌왕국에 대해 자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이렌왕국··· 아! 신경쓰지말고 계속해주세요.”

“예. 아시다시피, 세이렌왕국은 이 크러스트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국가로, 당시 이 대륙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대국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병을 대량으로 보유하고있는 국가였기때문에, 당시의 제국군도, 세이렌왕국을 향한 개전을 계속해서 미루어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간접적인 전투는 여러번 있었습니다만, 왕국측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진 않았었구요.”

“하지만 세이렌왕국은···”

“네, 허무하다 싶을정도로 단시간에 합병되었죠. 국가규모에 비례해서 보자면 다른 그 어느 나라보다 최단시간에 제국에게 패배하고 합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이렌왕국이야말로 통일전쟁의 최후를 좌지우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위에서 별똥별이 흘러가 떨어졌다. 과거에 아레아왕국이 세이렌왕국과 전쟁을 한 적이있다는 역사적사실을 알고있기때문일까, 왠지모를 가슴속 웅성거림을 무마하고자 고개를 든 메아윌은 산맥을 넘어가 사라지는 별똥별을 때마침 볼 수 있었다. 별무리같은 반짝임이 오랫동안 남아 산맥 언저리에 머물렀지만, 그녀는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지못하고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세이렌왕국이 타국에 파병한 군대와의 전투는 있었지만, 역사서에 기록될 법한 왕국과의 직접적인 전투는 통일전쟁 전반에는 존재하지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 왕국은 크러스트3국동맹이나 에른왕국과 같은 국가들과 큰 전쟁을 벌였고, 그 중에는 대규모 마족들에 의한 침입을 받기도 했었죠. 그리고 통일전쟁이 중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즈음, 세이렌왕국이 에른왕국과의 전쟁을 일단락 지었을때, 제국군사령부는 왕국을 칠 적절한 시기가 도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어째서죠? 제가 알기로는 왕국은 에른왕국과의 전쟁을 압도적인 우위에 선채 끝맺었다고 알고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였죠. 세이렌왕국군이 2개로 나뉘어 왕국 수도에서 대립한, 내전이 발발했던 겁니다.”

“내전이요? 그런 일이···”

“제 기억에는 이틀간의 일이라고 알고있습니다. 에른왕국으로 출전한 왕국군의 제1군이 귀환을 시작한 당일부터, 다음날 저녁 제국군이 왕도 상공에 대규모 공수작전을 펼치기 전까지의 2일간. 당시에 너무나도 큰 권력을 장악하게된 왕국군의 총사령관에 대항하고자, 그의 직속군인 제1군이 수도에 없는 틈을 타, 국왕과 그 휘하의 제2군이 국군사령부를 습격했고, 당시 총사령관의 휘하에 남아있던 수도방위사령부가 이에 대항하면서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내전발발 소식을 빠르게 접한 제국군사령부는 즉각적인 결단을 내려 대량의 군인들과 수송기, 폭격기를 출격시켰고, 습격에 패배해 총사령관 휘하의 간부들이 탈출할때 즈음, 제국군은 승리에 취한 제2군을 섬멸하고 수도를 장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국에 걸맞지않는 최후였네요··· 그런데 탈출이라니, 간부들이 탈출한 시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수있었던 거죠? 붙잡는데 성공한건가요?”

“그 부분이 아주 중요한 점인데··· 아니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시간에 관해서는 폐허가 된 국군사령부의 잔해속에서 총사령관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메모지들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제2군의 행동예측표와 그에 맞춘 방위군의 대처작전일람, 그리고 탈출루트와 시간표가 다양한 상황에 맞춰져 수십가지정도 적혀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국군의 침입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작전개요도까지 상세했기에, 제국군사령부에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죠. 어째서 이정도로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패배하여 부하들을 도망치게 했는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렐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666독립대대에 임관되기위한 여러가지 훈련과정 속에는 당연히 전략, 전술공부도 있었고, 이때 세이렌왕국군 총사령관인 크라우넨 르윈드 총장의 전략해설서를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의 제국군이 세이렌왕국을 제일 두려워했던 이유를.

얼핏보기에는 전부 이전에 공부했었던 전략들을 한데 모아놓은 두꺼운 해설서라고 밖에 생각되지않았지만,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알게되었다. 그야 이미 보았던 내용일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전에 공부했던 제국군의 현대식 전략,전술지침서가 전부 이 전략해설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야 림제국과 세이렌왕국사이에는 당시부터 기술력이나 장병들의 전개, 전투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크라우넨총장은 모든 상황을 알고, 또 미래를 미리 보기라도 했었는지 대부분의 전략,전술지침들이 약간의 수정만 가한다면 현대전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법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제국군의 참모들은 이를 바탕으로 더욱 발전된 지침서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설마··· 내전에서도 일부러 졌다는 말인가요?”

“많은 제국역사가들이 인정하고싶어하지 않는 추측이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전을 전부터 예상하고있던 그라면, 어차피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던 에른왕국과의 전쟁에 왕국군의 주력인 제1군을 전부 투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투입했고, 결과적으로 수도방위전력만으로 내전을 치루었지요. 표면상으로는 큰 전력차를 극복하지못하고 부하들을 도망치게 했다지만, 사실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요?”

“그전에 우선 이후 전쟁전개양상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세이렌왕국의 수도를 큰 피해없이 점령한 제국군은 왕국의 국토를 포함해 대륙의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손에 넣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점령을 위한 진군을 방해할 자는 거의 없었죠. 하지만 세이렌왕국과의 전쟁으로 왕가가 전멸하고 국가가 붕괴하여 신경도 안쓰고있던 에른왕국에서 예기치못한 움직임이 있었던 겁니다.”

“설마···”

“예. 탈출했던 총사령관의 부하들이 향한 곳이 바로 에른왕국이었던 것이죠. 그곳에서 그들은 제1군과 만났고, 당시 왕국전체에 퍼져 게릴라로 제국군을 곤란하게했던 세이렌왕국군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제3군과의 합류도 성사시켜버립니다. 이때부터 제국군은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바로 저항군이라는 존재가 탄생하게 됨으로써 말입니다.”


메아윌이 읽었던 낡고 얼마안돼는 분량의 제국역사서에도, 이 저항군에 관한 기록은 분명하게 있었고, 읽었던 기억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통일전쟁이 후반부에 등장한 대규모 군사단체 ‘저항군’. 세이렌왕국군의 잔당이라고 예상한 제국군은 서둘러서 그들을 섬멸하고자 했지만, 예상이상으로 병력의 수가 많았고, 제국군과 맞붙어도 밀리지않는 기술력과 숙련도, 그리고 통솔력으로인해 초반에 섬멸하겠다는 제국군의 방침은 보기좋게 실패하고, 오히려 이들의 영향을 받아 이미 점령당한 나라들에서도 저항군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출귀몰하게 나타나 제국군에게 적지않는 타격을 주는 저항군의 존재는 제국군사령부와 총통의 속을 썩였고, 결국에는 침략을 위한 진군을 잠시 멈추면서까지 저항군을 잡기위한 노력을 아끼지않았습니다.”

“어떻게 됐나요? 결국에는 저항군이 패배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이후로 제국이 더이상의 진군을 멈추고 통일전쟁을 종식한 걸 보면 제국군도 꽤 피해를 입었던 거 아닌가요?”

“꽤··· 라고 단정짓기 힘들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국군의 근간을 이루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보병들중 상당수가 이 대륙서부에서 고립된채 전투력을 상실했고, 존재만으로도 주변국가들을 공포에 떨게한 제국군 공수부대가 괴멸당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저항군을 더이상 회생불가능할정도로 섬멸하는데 성공했습니다만, 한때는 제국수도까지 저항군들에게 포위당하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그정도일줄은 몰랐네요··· 종전에 큰 기여를 한 셈인가요.”

“그렇죠. 어쨋든 이 결과를 두고보았을때, 저는 세이렌왕국 총사령관의 내전패배가 전략적인 한 수가 아니었나··· 라고 생각되는 겁니다. 본인이 사망하는 것까지 계산한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1군을 에른왕국에 놔두었으며, 내전직후부터 제3군을 이용해 제국군의 속을 썩이게 하였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들이자 후에 저항군의 수장이 된 ‘라마일 르윈드’를 당시 내전에서 탈출시킨 것이 모두 그의 노림수대로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이렌왕국은 더이상 존재하지않고, 림제국이 아직까지 건재한이상, 그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풀기어려운 미스테리입니다.”

“라마일··· 르윈드···”

“메아윌씨?”


메아윌은 어딘가 꺼림칙하기라도 한듯, 한때 다양한 별칭으로 역사서에 실려있던 인물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통일전쟁에 대한 일련의 설명을 마친뒤, 말주변이 없는 자신의 설명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불안해하며 그녀의 얼굴을 본 아렐은, 그녀의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곧, 라마일 르윈드라는 이름이 아레아왕국에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짐작한 그는 조용히 모닥불을 쬐며 그녀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그 이후로 저항군에 대한 언급하는 일은 없었고, 전쟁에 대한 얘기를 한창 하느라 험악해지고 살벌해진것 같은 분위기만이 그들 주변을 감돌았다.

이 분위기가 꺼림칙했던 메아윌은 엉덩이를 들어서 조금이지만 아렐의 곁으로 이동했고, 이를 눈치챈 아렐은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무마하고자, 동료들과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를 하나 둘씩 꺼내가며 다시금 분위기를 따뜻하게 녹였다.

그의 약간은 경직된 목소리와, 그녀의 정말로 행복해보이는 미소와 조용한 웃음소리가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에 겹쳐가며 연기에 묶여 하늘높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연기가 밤하늘에 녹아없어지면서, 메아윌이 처음 경험해보는 야영의 밤이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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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장 르윈드 - 28 19.05.04 72 0 8쪽
28 3장 르윈드 - 27 19.05.02 4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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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장 세이럼 - 22 19.04.26 55 0 10쪽
22 2장 세이럼 - 21 19.04.25 57 0 10쪽
21 2장 세이럼 - 20 19.04.24 56 0 9쪽
20 2장 세이럼 - 19 19.04.23 66 0 9쪽
19 2장 세이럼 - 18 19.04.22 67 0 9쪽
18 2장 세이럼 - 17 19.04.20 62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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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장 세이럼 - 14 +1 19.04.17 77 0 18쪽
» 1장 아레아리스 - 13 모닥불 19.04.16 70 0 20쪽
13 1장 아레아리스 - 12 19.04.15 75 0 13쪽
12 1장 아레아리스 - 11 19.04.13 160 0 10쪽
11 1장 아레아리스 - 10 19.04.12 54 0 13쪽
10 1장 아레아리스 - 9 19.04.11 54 0 12쪽
9 1장 아레아리스 - 8 19.04.10 55 0 16쪽
8 1장 아레아리스 - 7 19.04.09 50 0 17쪽
7 1장 아레아리스 - 6 19.04.08 55 0 13쪽
6 1장 아레아리스 - 5 19.04.06 70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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