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공포·미스테리

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772
추천수 :
117
글자수 :
125,249

작성
22.06.11 18:16
조회
18
추천
2
글자
9쪽

17화

HONOR CLUB




DUMMY

# 그들만의 축제


호란빌딩이 위치한 강남의 한복판에 호란빌딩 옆에 나란히 붙어 서 있는 르네상스 홀이 있었다. 르네상스 홀은 정재계의 유력한 정치인이나 기업인들, 또는 각계각층의 사회 지도층들만이 이용하는 곳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르네상스 홀의 현관 로비를 비롯해 르네상스 홀의 모든 벽면과 바닥은 이태리에서 직수입한 최고급 스타리온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가 그려진 모스크 방식의 둥근 천장은 은은하게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주위를 밝혀주고 있었다. 특정되지 않은 회원들의 연회비만으로 유지된다고 알려진 르네상스 홀은 일반 시민들의 예약이 불가능했고, 천장의 불을 밝히는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눈에 띄게 적었다. 르네상스 홀에서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각 언론들이 자신들만의 창을 통해 이를 온 국민들에게 알리기 바빴고, 이를 기회로 보는 눈치 빠른 장사치들의 노련한 속셈까지 더해져 지상에서 열리는 그 어떤 쇼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르네상스 홀의 행사는 화려하게 포장돼, 사람들에게 보여졌다.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된 유명인들의 행사에 마치 자신이 참석이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져 넋을 잃었고, 눈치 빠른 장사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빼앗아 자신들의 주머니에 가득 채워나갔다.


-아이고, 박교수! 바쁠텐데, 여기까지 찾아와주고 고맙구만.


태일그룹의 정태일 회장은 로비로 걸어들어오는 박교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박교수도 걸음을 재촉해 정회장에게 다가가 그의 두 손을 잡고 반갑게 웃으며 흔들어댔다.


-회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초대해 주신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입니다. 하하하


박교수는 언제나 그렇듯 웃는 얼굴로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식장으로 이어지는 로비를 가득 메운 건, 각계 유력 인사들의 화환이었다. 정재계는 물론이고 교육계와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화환에 적힌 그 이름들만으로도 이 예식이 범상치 않은 인물의 행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정회장! 왜 나와 있는가? 안에 들어가 계셔야지!


저만치서 호란그룹의 창업주인 구양순 전 회장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하하하. 아니 이게 누구야? 구회장? 이게 얼마 만이야? 살아 있었구만, 살아있었어!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서로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운이 좋게도, 죽을 나이가 다 찼지만 버티고 살아있었더니, 내가 자네 손녀 결혼식에도 다 와 보는구만. 하하하. 축하하네, 축하해! 하하하하.


-어허, 이 사람. 죽을 나이라니! 무슨 소리! 우리 아직도 한창나이 아니었던가? 하하하. 그래, 요즘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를, 진호에게 얼핏 들었네만, 어떤가? 할 만 한가?


-농사? 에이, 이 사람. 누가 들으면 웃겠네. 농사는 무슨. 작은 텃밭에 고추랑 오이를 조금 심고 있어. 사는 곳이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간단한 것들은 직접 심어서 길러 먹을 수 밖에 없지. 자네도 이제 그만 일에서 손을 떼고 내가 사는 곳으로 내려오지 않겠나? 자네 손녀가 영특하다고 들었는데, 그 아이에게 회사를 물러주고 내려오는 것이 어떻겠나?


정회장의 손녀인 정한나는 정회장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정회장이 탐탁해하지 않았던 그의 첫째 아들과는 달리, 정한나는 국내 유수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태일그룹 기획실에 입사해 정회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정회장은 추후에 그녀에게 태일그룹을 물려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오래전부터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음, 벌써 나도 그럴 나이가 됐는가? 자네가 내려갔다는 얘기를 듣고서도 나는 아직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네 얼굴의 주름을 보니, 내 얼굴에도 똑같은 것이 있겠구나, 싶구만. 허허허.


정회장은 구회장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굴곡지게 흘러온 그의 세월처럼 구회장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 또한 반듯하게 그려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구회장과의 인연도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다. 40년 전에는 두 사람 모두 패기 만만한 젊은이들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온 국토는 짙은 화약 냄새와 함께 풍비박산이 나 있었고, 그 와중에도 권력을 잡아보려는 자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허물어져 버린 집과 도로를 다시 세우고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그 시기, 정권을 잡은 이들은 국민들에게 무엇이든 보여주어야 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 바로, 건설이었다. 국민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선진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 나라를 올바르게 성장시키기보다는 번쩍거리는 화려한 건물들을 많이 짓는 것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더 큰 도움을 주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전쟁으로 마음까지 피폐해진 국민들은 자신의 눈 앞에서 지어지는 높은 건물들을 보며 마치 자신의 삶이 이 건물처럼 재건이라도 되는 듯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정권을 잡은 이들은 두 사람을 이용해 더 많은 집과 도로를 건설했다. 그들의 보여주기식 성과와 맞물려 두 사람의 사업은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영원할 것 같던 두 사람의 동행은 신 정권이 들어오면서 갈리기 시작했다. 구회장은 새로 정권을 잡은 이들에게 충성을 맹세해 계속해서 기존의 사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고, 정회장은 신 정권의 탄압으로 문을 닫은 언론사들을 인수해 거대 미디어 그룹을 만들었다. 정회장의 미디어를 잘만 이용하면 자신들에게 이롭다 판단한 신 정권이 정회장을 밀어 주었고, 그렇게 신 정권 아래에서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승승장구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예식이 곧 시작될 겁니다.


정회장의 아들이 두 사람을 예식장 안으로 안내했다. 예식을 위해 참석한 하객들 사이로 언론을 통해 이미 익숙한 인물들이 여럿 보였다.


-정태일 회장님의 손녀이신 정한나 님의 예식에 참석해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 박효진입니다.


예식의 사회는 유명 아나운서가 맡았다. 팡파레가 울리며 예식이 시작되었고, 참석한 하객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처음 보는 낯선 이들과 눈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 다시, 세상으로


끼이익하고 강남파출소 유치장의 문이 열렸다. 유치장 안에는 아직도 술이 덜 깬 사람들이 몸을 움찔거리며 열린 유치장 문을 쳐다 보았다. 한쪽 구석 모퉁이에 앉아 있던 지경원은 차반장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차반장은 지경원을 데리고 나와 파출소 앞에 있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벤치 옆 자판기 커피 머신은 파리 끈끈이처럼 진득한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경원씨가 얘기한 곳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경원씨가 말한 남자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태석 말이에요.


경찰은 경원의 진술대로 명성호텔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경원이 진술한 남자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경원의 말대로라면 그의 시신이 그곳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명성호텔 903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날을 기억해줄 CCTV에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원씨가 갔었다는 명성호텔의 내부 CCTV에도, 그날 경원씨의 모습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경원은 차반장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아무, 흔적이 없었다구요?


-네. 아무 흔적도 없었습니다. 903호에서도 우리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경원씨의 머리카락이라도 찾아보려 해 봤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경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제가 찔렀는데요, 분명. 그 새끼를 수십 번 찔렀어요, 흐흐흑. 그 새끼를, 수십 번, 수십 번. 찔렀다구요, 수십 번을. 흐흐흑.


경원은 오열했다. 그날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는데, 사람들은 그 일이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분명 그 짐승 같은 놈을 찔러 죽였었는데, 내가 환영이라도 봤다는 얘기일까? 아니다. 나는 분명 그 짐승만도 못한 새끼를 수십 번 찔러 죽였다. 놈의 얼굴에 침을 뱉고, 발로 놈의 머리를 짓밟았다. 놈은 분명 그곳에 죽어 있어야 했다.


-모발에서 검출된 마약 성분 때문에, 추가 조사가 진행될 겁니다. 전화기 항상 휴대하시고, 출석 명령이 떨어지면 그때, 협조해 주세요.


차반장은 경원이 연행될 때 압수했던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경원에게 전화기를 돌려준 차반장은 차를 몰고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경원은 지금 파출소 앞 횡단보도에 서 있다. 지경원의 앞으로 차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고, 횡단보도의 불은 바뀌지 않고, 계속해서 빨간색 이었다.




다음편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HONOR CLUB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0 30화 +2 22.06.18 21 2 10쪽
29 29화 22.06.18 20 1 10쪽
28 28화 +1 22.06.18 21 2 9쪽
27 27화 22.06.18 17 1 9쪽
26 26화 +2 22.06.16 17 2 9쪽
25 25화 22.06.16 16 1 10쪽
24 24화 22.06.15 21 2 9쪽
23 23화 +3 22.06.15 21 5 9쪽
22 22화 22.06.14 23 4 9쪽
21 21화 22.06.14 20 4 9쪽
20 20화 +1 22.06.13 21 3 9쪽
19 19화 22.06.12 23 3 9쪽
18 18화 22.06.11 21 3 9쪽
» 17화 22.06.11 19 2 9쪽
16 16화 +1 22.06.11 21 3 10쪽
15 15화 22.06.10 20 3 9쪽
14 14화 +1 22.06.10 24 4 9쪽
13 13화 22.06.10 24 3 10쪽
12 12화 +1 22.06.09 24 3 10쪽
11 11화 22.06.09 24 2 10쪽
10 10화 +2 22.06.08 28 4 10쪽
9 9화 22.06.08 22 3 10쪽
8 8화 +1 22.06.07 25 4 9쪽
7 7화 22.06.07 24 3 9쪽
6 6화 +1 22.06.06 27 5 9쪽
5 5화 +1 22.06.06 28 5 9쪽
4 4화 22.06.04 34 9 9쪽
3 3화 +2 22.06.04 39 7 9쪽
2 2화 +2 22.05.27 48 10 10쪽
1 1화 +3 22.05.21 80 14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