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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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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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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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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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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HONOR CLUB




DUMMY

# 주인과 하인


호란빌딩 48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렸다. 그가 내린 곳엔 책상 하나를 놓고 앉아 있는 김비서가 있었다. 김비서는 이 건물의 주인인 호란그룹 구진호 회장의 비서였다. 김비서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부터 그쪽을 쭉 주시하고 있었고 남자가 그곳에서 내리자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호란빌딩 48층은 구진호 회장이 쓰고 있는 층이었다. 특별히 약속이 있지 않으면 48층에 올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 이사님?


김비서는 느닷없이 열린 엘리베이터에도 놀랐지만, 그곳에서 내린 사람이 강이사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무슨 용무시죠? 선약이 있으셨던가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남자는 호란그룹의 실세 강기호 이사였다. 후줄근한 양복을 입은 강기호 이사는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강기호 이사는 그룹의 주인인 구진호 회장과 중고등학교 동창인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호란그룹의 창업주인 구양순 전 회장은 구진호 회장의 후계자 수업을 위해 구회장을 회사의 가장 말단 조직에, 그것도 가장 말단 사원으로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입사시켰다. 구양순 전 회장은 구회장이 회사를 이끌려면 그룹의 가장 밑바닥부터 일을 배워 차근차근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젊음을 바쳐 이룩한 이 그룹이 위기를 맞게 되더라도 자신의 후계자가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구회장이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몇몇 그룹 임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극비사항이었다. 구회장은 입사 초기에 창업주의 뜻에 맞게 회사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업무 준비를 했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미처 처리하지 못한 남은 잔업까지 완벽히 처리했다. 구회장은 말단 사원으로 입사한 후 창업주의 뜻에 따라 차근차근 그룹의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회사 일에 싫증을 느낀 구회장은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잦은 지각은 예사였고 아무 이유 없이 며칠씩 결근하는 일도 수시로 벌어졌다. 그가 창업주의 아들임을 몰랐던 직장 상사는 어느 날 그를 불러 호되게 야단쳤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임원실에 불려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혼쭐이 났고 그 다음 날 바로 회사에서 쫒겨나고 말았다.


회사일은 관심 밖이었지만 창업주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구회장은 자신의 옆에 자신의 일을 믿고 맡겨도 좋을 만한 사람을 두려고 했다. 그 사람에게 귀찮고 성가신 일을 모두 맡기고 자신은 편안하게 놀며 회사를 다닐 생각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줄 사람으로 궁리 끝에 그가 찾아낸 사람이 바로 강기호였다.


강기호는 구회장과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서울의 명문대를 졸업 후 미국에서 MBA 과정을 수료한 재원이었다. 강기호는 구회장의 부름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구회장을 잘만 이용하면 자신의 앞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강기호는 어리석고 무능한 구회장의 비위를 살살 맞춰주고 잘만 구슬리면 자신의 뜻대로 얼마든지 구회장을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기호는 적당히 구회장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차근차근 신임을 쌓은 뒤 구회장 모르게 아예 호란그룹을 통째로 먹으려는 야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구회장의 밑으로 들어간 강기호는 구회장의 바람대로 탁월한 업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맡는 프로젝트마다 모두 그만의 탁월한 방식으로 성공시켜 막대한 이득을 회사에 안겨 주었다. 강기호가 입사할 당시 불과 15개의 계열사를 거느렸던 호란그룹은 그가 입사하고 채 10년이 안 되어 30개에 육박하는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 되어 있었다. 이제 호란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은 신문 일면을 장식할 정도로 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호란그룹의 창업주는 이 모든 성과가 자신의 아들의 능력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이제야말로 자신이 세운 그룹을 아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창업주는 서둘러 자신의 아들에게 회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는 그룹 내 모든 인사권과 결재권을 아들에게 넘기고 선산이 있는 충청도로 떠나버렸다. 막대한 공을 세운 강기호는 40대의 나이에 국내 굴지의 호란그룹 이사로 등재되었다. 강이사는 구회장을 대신해 그룹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관여했고 심지어 임원까지 직접 임명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를 통하지 않으면 구회장을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도록 사내 조직까지 그의 입맛대로 개편해 버렸다. 그룹 내 임원들은 그의 행동이 도가 지나치다며 원성이 자자했지만 강기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회장은 그룹 내 모든 일을 강기호에게 맡기고 술과 유흥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강기호는 그런 구회장을 등에 업고 자신의 뜻대로 그룹을 움직였다. 그의 뜻에 따르지 않거나 맘에 들지 않는 임원은 즉각 해임시켜 버렸다. 호란그룹 실세들의 강기호 적응기가 끝나자 어느새 그는 왕위의 왕, 상왕이 되어 있었다.


-회장님, 안에 계세요?


강기호는 멈칫거렸다. 무서울 것 하나 없는 호란그룹 강기호 이사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색했다.


-네 계세요. 하지만 아무리 강이사님 이라고 해도 선약이 있지 않으면 회장님을 뵐 수 없다는 건 강이사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죠?


김비서는 강이사를 처음 대하는 직원처럼 쌀쌀맞게 대했다. 하지만 강기호는 김비서의 무례 따위는 신경 쓸 여력이 없어 보였다.


-김비서! 꼭 좀 만나게 해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강기호는 김비서에게 사정했다. 평소대로라면 김비서는 냉정하게 만남이 불가함을 조목조목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강기호 이사였다. 호란그룹의 왕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회장님을 뵐 수는 없어요. 그리고 안에는 이미, 어머! 강이사님!


강기호는 김비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회장실의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놀란 김비서가 급하게 강기호를 제지하려 했지만 강기호는 이미 회장실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넓고 굴곡진 커다란 유리 밖으로 한강이 길게 펼쳐져 보이고 구회장은 뒤돌아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구회장의 옆에는 곧게 박혀있는 머릿돌처럼 창주가 서 있었다.


-강이사님! 강이사님, 이러시면 안 돼요!


강기호를 따라 들어온 김비서가 소리를 질렀다. 김비서의 말에 구회장이 잠시 고개를 돌려 강기호를 보더니 이내 다시 몸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됐어, 김비서. 나가봐


구회장의 지시에 강기호를 쫓아 들어왔던 김비서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 나갔다. 강기호는 뒷모습만 보이는 구회장에게 다가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회장님!


강기호는 비명처럼 구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제가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흑흑흑.


강기호는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로 울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언제 나왔냐?


구회장은 여전히 창밖을 응시한 채 낮고 굵은 목소리로 강기호에게 물었다.


-3일, 3일 됐습니다.


강기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일어나라.


구회장은 의자에서 일어나 방 가운데에 있는 쇼파에 앉았다. 구회장은 강기호를 보며 다시 한 번 다그쳤다.


-일어나라구 새끼야! 그만 질질 짜고 일루와.


강기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구회장에게 다가갔다.


-창주야? 기호 내 친구니까 예의는 지키라고 했잖아? 내가 말한 대로 했어?


구회장은 창가에 서 있던 창주에게 물었다.


-네? 네, 회장님. 틀림없이 예의를 지켰..., 억!


구회장은 창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탁자에 있던 크리스털 재떨이를 집어 창주에게 던졌다. 재떨이는 창주의 왼쪽 눈에 부딪혀 떨어졌고 창주의 눈에서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마구 솟구쳤다.


-뭐, 예의를 지켜? 개새끼. 사육장에 니 꼬붕들만 있는 줄 알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


구회장의 고함치는 소리에 창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피가 쏟아지는 왼쪽 눈을 손으로 막더니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구회장은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계속해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강기호의 몸은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기호야?


구회장이 강기호에게 말을 걸었다.


-사육장, 니가 만들자고 했잖아? 니가 거기 규칙도 혼자 다 만들고 누구를 입원시켜야 하는 지 또 누굴 퇴원 시킬건지, 그런 거 다 니가 정했잖아? 그치?


구회장은 말하는 중에도 화가 나는 듯 말끝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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