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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공포·미스테리

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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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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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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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8화

HONOR CLUB




DUMMY

# 지명


안가로 옮긴 지 수 일이 지나자, 경원은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이곳에서는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경원 자신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며칠이고 침묵할 수도 있었고 아무도 경원에게 그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경원은 자신을 괴롭히던 악몽 같은 기억들이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경원의 몸에 난 수십 군데의 참혹했던 상처들도 결국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아물어져 가고 있었다.


볕이 좋은 날이면 경원은 정원으로 나와 거닐었다. 정원에 있는 것들은 어떻게 모두 저런 색을 입고 있는지, 아무리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자세히 살펴보아도 똑같은 색을 입은 것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햇볕이 따뜻하고 좋은데요.


계단을 올라오던 태호가 경원을 발견했다. 이제 경원은 태호를 보면 살짝 웃어줄 만큼의 여유도 생겼다.


-오셨어요.


태호는 경원의 웃는 얼굴이 기뻤다. 이제는 저 사람도 웃을 수 있을 만큼의 용기는 생긴 것 같았다.


-뭐 하고 계셨어요?


태호는 자신의 품 속에서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꽃들을 보고 있어요. 보세요, 예쁘죠? 똑같은 색을 입은 꽃들이 하나도 없어요. 저기 저 꽃의 이름을 아세요?


정원에 있는 꽃의 이름을 태호가 알 리 없었다. 태호는 손사래를 쳤다.


-하하하. 저는 몰라요. 사실, 여기 꽃이 심어져 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네요. 경원씨 덕분에요. 하하하.


태호는 경원을 보며 웃는 얼굴을 하고 싶었다. 내가 웃고 있으면 경원도 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세요? 오실 땐 늘 연락을 주셨잖아요?


태호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이제서야 이상하다고 느껴진 경원이 물었다.


-경원씨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태호는 서류 봉투의 앞과 뒤를 확인하더니 봉투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반쯤 꺼내어 진 것은 앞면이 뒤집힌 종이 같았다.


-특수부에서, HONOR CLUB에 대한 증거들을 많이 모았어요.


경원은 HONOR CLUB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이 경직돼버리는 것을 느꼈다.


-곧, 클럽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겁니다. 경원씨를 괴롭히던 놈들도 이제 모두 벌을 받게 될 거구요.


그동안 클럽에 대해 긴밀하게 공조해 오던 특수부와 태일신문의 탐사팀은 이미 HONOR CLUB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끝마친 상태였다. HONOR CLUB의 갖가지 비위에 대한 증거와 자료들은 넘쳐났고 오직 언제 세상에 공개할지, 그 시기만 조율하고 있었다.


-참고인 조사가 진행 될 거에요. 클럽의 멤버들이 대부분 사회 지도층들이어서 무작정 클럽에 대한 내용을 공개해버리면, 아마 큰 문제가 일어날 거에요.


경원은 태호가 올려놓은 서류 봉투를 보았다. 앞면이 뒤집어져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이건, 뭐죠?


태호는 반쯤 꺼내어진 서류를 경원이 앉은 쪽으로 돌려 놓았다.


-얼굴들이에요. 경원씨가 알고 있는.


-무슨 말씀이세요?


태호는 계속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관찰자로 추정되는, 얼굴들이에요.


경원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하지만 경원은 곧 고개를 들었고,

태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동안 경원씨의 진술을 토대로 많은 조사가 이뤄졌어요. 경원씨가 진술한 사육장과 관찰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여기 이 얼굴들은 그동안 저희가 조사했던 결과를 종합해 예측한, 관찰자로 추정되는 얼굴들입니다.


조금 전부터 경원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태호는 잘 알고 있었지만,

태호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제가 할 일이 뭐죠?


-힘드시겠지만, 기억을 되살려 주세요. 명성호텔에서 만났던 관찰자들의 얼굴을요. 그리고 지명해 주세요. 그러면, 그들에 대한 조사가 먼저 시작될 겁니다.


이제야 조금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경원의 착각이었다. 이렇게 태호의 몇 마디 말에도 경원은 또다시 무너져버렸고 참혹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제가 기억해 낸다면, 태호씨는 어디까지 할 수 있죠?


-무슨 말씀이세요?


-그날, 명성호텔에서 놈들끼리 얘기하던 걸 똑똑히 기억해요. 주식을 조작한다고도 했구요, 전투기를 사 온다고도 했어요.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자식 자랑도 있었구요. 저를 강간하면서 말이에요.


경원은 예전처럼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경원의 말 속에서 여전히 분노가 느껴졌지만 그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태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태호씨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걸, 태호씨가 알기는 할까요? 그놈들은 자기 집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었어요. 이 나라가 마치 놈들의 놀이터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죠. 태호씨가, 그놈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HONOR CLUB에 대한 수사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드러나는 인물들의 면면에 태호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는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고 TV에 나와 자신의 전문 지식을 설파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대권을 노리는 여당의 유력 정치인도 있었고 성인으로 추대될 만한 종교계의 거물도 있었다. 물론 모든 클럽의 회원들이 경원을 괴롭히던 놈들처럼 욕망을 드러내거나 비리에 연루된 자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경원을 괴롭히는 자들이 누군지 알면서도 눈을 감고 입을 닫아 암묵적으로 그들과 행동을 함께했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경원씨가 용기를 내 준다면, 제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약속할 수 있어요.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경원씨도 용기를 내 주세요.


태호의 얼굴을 경원은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한동안 말이 없던 경원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 추궁


호란빌딩 48층. 구회장의 비서실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회장님, 김동우씨가 도착했습니다.


구회장은 위스키를 든 손이 떨리지 않도록, 힘껏 쥐고 있었다.


-들여보내요.


회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동우가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회장님.


동우는 멀리서도 구회장이 화를 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상인가 뭔가 하는 놈이 니 애비냐?


구회장은 몸도 돌리지 않은 채 였다.


-얘기해 봐 씨발놈아!


동우는 허리를 굽혔다.


-죄송합니다. 한 동네에서 자란 형제같은 놈 이었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구회장의 얼굴이 비웃음으로 변했다.


-지랄한다. 사람 껍데기를 명태 껍질 벗기듯 하는 새끼가, 형제같은 놈? 내가 너를 몰랐으면 그런가 보다 할 뻔 했다.


자리에 앉은 구회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리고나서 한번 –후-하고 담배 연기를 뱉어내더니 위스키를 들이켰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아무 생각 없이 창주를 저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테고.


동우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강기호와 나눴던 비밀스러운 얘기들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혼자서는 못할 거 같아서 애들 좀 데리고 올라왔습니다. 회장님만 허락하시면, 창주 애들 내보내고 우리 애들로 채워 넣겠습니다.


구회장은 동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소름끼치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오늘 밤에 하려고 준비시켜 놨습니다.


-쪽수는, 안 밀리고?


-강릉하고 속초에서도 끌어모아 왔습니다. 쪽수로 밀릴 일은 없을 겁니다.


잔인하기만 한 줄 았았던 동우가 이미 강릉과 속초에서 사람까지 끌어들였을 줄은 구회장도 미처 짐작하지 못한 듯 했다.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동우의 모습은 아니었다.


-너도 대가리 쓰냐? 아무리 생각해도 니 대가리에서 나온 거 같지는 않은데?


동우는 구회장의 말에 순간 긴장했다. 구회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보였다는 걸 동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사육장 폐쇄한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적당한 데 자리 좀 알아봐. 노인네들이 사육장 없으니까 똥줄이 타는지 빨리 다시 문 열라고 지랄들이네. 창주 없으니까 이제부터 관리도 니가 하고 폐기물 처리하는 것도 계속하고.


-알겠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준비해 보겠습니다.


동우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동우가 나간 뒤에도 꼼짝하지 않던 구회장은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기호가 가지고 있는 게 도대체 뭐야? 음..., 꾸물댈 시간 없는 거 알지? 특수부에서 준비 끝낸 거 같더라. 우리한테 마지막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인 것 같다. 준비 잘 해보자.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구회장은 잔을 들어 술잔에 해를 비춰 보았다.


방금 전까지 모든 걸 태워버릴 것처럼 활활 타오르던 붉은 태양은

구회장의 손에 들린 술잔에 힘없이 녹아들더니

곧,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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