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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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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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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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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글자수 :
125,249

작성
22.06.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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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0화

HONOR CLUB




DUMMY

# 제주


아무렇게나 뻗어있는 지뢰 모양의 해안 방파제 구조물을 거친 파도가 양 옆에서 쉬지 않고 때리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붉은 등대의 불빛이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며 간헐적으로 먼 바다를 비추고 있었고 조업을 일찍 마친 선박들은 등대의 불빛을 보며 서둘러 하나 둘,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바다쪽으로 부는 바람이 방파제 구조물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더니 신비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붉은 등대가 있는 방파제 끝에서 강기호는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얼핏 듣기에 노랫소리 같기도 했지만 주의 깊게 들어보면 그저 짧게 내뱉는 탄식 소리 같았다. 고개 숙인 강기호의 뒷모습은 방파제의 밤 풍경과 묘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청량한 제주의 밤바람은 강기호의 온 몸을 쓰다듬으며 먼 바다 어딘가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우와, 좋다. 정말 좋구나!


동우는 멀리서 강기호를 발견하고 등대 밑 강기호가 앉아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동우는 걸어 오면서 두 팔을 있는 힘껏 벌리더니 마음껏 밤바다의 체취를 들이마셨다.


-언제 오셨어요? 저녁은, 어떻게? 드신 거에요? 어, 아니 왜 소주를 안주도 없이 드세요? 뭐야, 이거 진짜 안주가 없네!


동우의 목소리에 강기호가 몸을 세우고 다가오는 동우를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저녁? 있지! 여기, 여기 있지. 내 저녁!


강기호는 피식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소주병을 흔들어 보였다.


-이거 하나면 나 같은 놈한테는 최고의 저녁이지. 음, 그래 최고의 저녁. 낄낄낄.


강기호의 자조섞인 웃음소리가 밤바다에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여기까지 오셔서 여태 아무것도 안 드신 거에요? 에휴, 미리 전화하셨으면 먹을 거 좀 사오는 건데, 지금이라도 사 와요?


동우는 강기호의 행색이 추레한 것이 보기 좋지 않았다. 강기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던 동우는 강기호가 딱하게 보였다. 동우는 기호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강기호 옆에 앉더니 기호에게 담배 하나를 건넸다. 강기호는 동우가 건넨 담배를 받아 물고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를 응시했다.


-흐흐. 지금 내가 뭘 먹으면, 그 맛을 느낄 수나 있을까?


동우는 강기호의 말이 세상을 다 산 사람이 내뱉는 말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그런 말씀을, 여기 이러고 앉아 계시니까 제가 알던 강이사님이 맞는지 의심스럽네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사님이 그 호란그룹 강이사님이 맞냐고 물어 볼 겁니다. 늘 기름 바른 머리에 쫙 붙는 슈트를 입고 다니시더니, 어째, 오늘 모습은 너무 낯서네요. 제가 알던 그 강이사님이 맞지요?


동우는 강기호의 기분을 풀어 주고 싶은 듯 했다.


-얘기 다 들었어요. 그러게,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창주 그 새끼, 독사 같은 놈이니까 조심하셔야 한다구.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더니. 그러게 왜 제 말을 무시하셔 가지고. 그때 저하고 손만 잡으셨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동우는 강기호의 비위를 긁고 있었다. 동우의 말에 강기호는 크게 빈정이 상했다.


-그래? 그래, 너 잘났다. 아주 여기 신통한 도사님 나셨네. 어이구, 도사님? 제가 미처 못 알아 뵙고 큰 실수를 했네요, 용서해 주세요 도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니다, 잘못을 빌려면 큰 절을 해야지. 도사님, 여기 제 절 받으세요.


강기호는 허리를 숙여 절하는 시늉을 했다. 강기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동우는 아차 싶었다.


-아이고, 됐어요 됐어.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 그런 겁니다.


동우는 절하는 강기호를 두 팔로 만류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에요? 그냥 이대로 물러 나시는 거에요?


강기호는 아무 말도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끼룩, 끼룩. 밤바다의 주인인 갈매기들이 허공을 맴돌며 두 사람을 아까부터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나 팔 다리 다 잘렸다. 구회장, 그 씹새끼가 내 책상까지 치워 버렸거든. 자기 눈에 안 띄는 데서 숨만 쉬고 있으란다. 눈에 띄면 밟아 죽여버린다나.


강기호의 얼굴에서 분노와 함께 서글픔이 느껴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목숨 바쳐 일했지만 호란그룹은 영원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호란그룹의 주인은 처음부터 구진호였고 그 사실은 강기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뒤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가, 도와드려요?


동우는 강기호를 보며 웃고 있었다.


-니가?


강기호가 놀란 듯 동우를 쳐다봤다.


-니가, 어떻게?


-뭐, 어떻게는. 그냥 말씀만 하세요? 제가 도와 드려요?


빙긋 웃고 있는 동우의 얼굴을 보자 강기호는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꼈다.


-너도 죽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지?


강기호는 동우의 다짐을 받으려 대답을 유도했다.


-음, 뭐 안 죽는 사람 있습니까? 남자로 태어나서 크게 판 한번 벌려보고 죽는 것도 괜찮지요. 좁아터진데서 서로 니꺼니 내꺼니,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가지고 고만고만한 놈들끼리 으르렁대며 사는 거 보다는 낫겠지요. 게다가 이사님 같은 분과 함께한다면, 전 승산이 있다고 보는데, 이사님은 어떠세요? 우리 두 사람이 같이 호란그룹, 해 먹어 버릴까요?


동우는 히죽 웃으며 강기호를 쳐다보았다. 동우는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강기호 역시 동우가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지만 설마 그 발톱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리 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린 듯 했다.


-뜻밖이네. 스마일 김동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동우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사님,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몸뚱이 하나 믿고 여기까지 왔구요. 이 정도면 스스로 어깨 두드려주면서 잘 살았다고 할 만한 데, 성질이 뭣 같아서. 누가 내 위에 있으면 잠이 안 오네요. 뭐, 이사님도 그러시겠지만.


동우와 강기호는 서로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을 탐색하던 갈매기들도 모두 어딘가로 사라져 밤바다엔 무거운 침묵만 감싸고 있었다.


# 헤븐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지만 정실장은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무언가 계산이 맞지 않는지, 중간중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실장님? 어르신 오셨어요.


헤븐의 여종업원이 정실장에게 누군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그래? 어 어서, 어서 이리 모시고 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사람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여종업원은 노인의 팔을 부축하더니 노인의 움직임이 수월하도록 옆에서 같이 걸으며 노인을 도왔다.


-어머, 회장님! 이러시기에요? 이게 얼마 만이에요? 정말 저한테 이렇게 무심하게 대하실 거에요? 연락도 한 번 안주시고, 저 토라질 거에요!


정실장은 농익은 애교를 부리며 노인을 부축했다. 정실장은 노인을 데리고 어느 한 방으로 들어갔다. 노인을 자리에 앉힌 정실장은 그 옆에 착 달라붙어 노인의 한 팔에 자신의 몸을 감쌌다. 정실장의 풍만한 젖가슴이 노인의 팔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말 이러시기에요? 그동안 어떻게 연락 한 번 없으세요?


정실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이 껄껄 거렸다.


-껄껄껄. 이거 내가 정실장에게 큰 잘못을 했군.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내가 나이 먹고 시골 내려가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텃밭을 가꾸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구. 그래서 내가 정실장한테 연락도 못 해봤네. 미안하네. 껄껄껄.


노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다른 회원님들이 구회장님 안부를 물어보곤 했어요. 먼저번에는 박교수님이랑 정회장님이랑 해서 네 분이나 다녀 가셨는걸요. 그때도 그분들이 구회장님 안부를 물어보시는데, 제가 뭐 아는 게 있어야 알려드리지요. 회장님 정말 너무하세요. 그래도 저한테는 어떻게 지내시는 지 연락이라도 한 번 주실 줄 알았는데.


정실장은 섭섭한 눈치였다. 지금 정실장 옆에 앉아 있는 노인은 호란그룹의 창업주, 구양순 전 회장이었다. 구 전 회장은 정실장과 오래전부터 알아 왔던 사이인 듯 서로 거리낌이 전혀 없었다.


-껄껄걸. 글쎄 내가 마안하다니까! 이렇게, 이렇게 빌께. 용서해 주라.


구 전 회장은 손바닥을 비비며 싹싹 빌었다. 위엄있어 보이는 그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이, 몰라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영란이 곧 들어올 거에요. 영란이, 괜찮으시죠? 회장님은 늘 영란이만 찾으셨잖아요. 설마 그새 취향이 바뀐 건 아니시겠죠?


-아냐. 난 영란이만 넣어 주면 돼. 껄껄껄.


수분이 빠져나가 뼈와 살이 붙은 그 나이의 여느 노인들과는 다르게, 구회장의 얼굴은 살이 올라 통통했고 번들번들 윤기까지 흘렀다. 구 전 회장은 정실장과 얘기하는 와중에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앳되 보이는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고 구 전 회장의 껄껄껄하는 웃음 소리가 닫힌 방 문에 막혀 둔탁하게 들리고 있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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