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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님의 서재입니다.

HONOR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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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
작품등록일 :
2022.05.21 14:36
최근연재일 :
2022.06.1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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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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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5,249

작성
22.06.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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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HONOR CLUB




DUMMY

# 묵호


비린내 가득 한 묵호항을 한 거구의 남자가 걷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었고 진한 갈색의 긴 코트는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고 있었다. 코트 뒤로 넘긴 남자의 장발 또한 바람에 나부끼는 그의 코트 자락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대로변 한쪽 어판장으로 난 작은 길로 접어든 남자는 소주병을 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어판장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꽃무늬 모자를 맞춰 쓰고 온 중년의 부부부터 꼭 붙어 팔장을 끼고 걸어가는 신혼부부들까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좌판이 깔린 바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빽빽이 자리 잡은 좌판 위엔 대구며 명태, 소라 고등어까지 바다속에 있는 것이라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전시돼 있었다. 술병을 든 남자는 어판장에 가득 한 사람들의 시선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야말로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것 처럼 어판장 한가운데 길을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활보하고 있었다.


-이리와! 이리. 언니, 딴 데 가봐야 별거 없어. 뭐 주까? 오징어하고 쥐치는 여기가 최고야. 말만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응?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으려 어판장 사람들은 목청이 떨어져 나가든 말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길까지 따라나서며 그들을 붙잡으려고 했다.


-에이, 씨팔!


소주병을 들고 어판장으로 들어선 남자가 한 좌판 앞에 멈추어 서더니 힘들게 깔아 놓았을 좌판을 냅다 발로 걷어차 버렸다. 좌판 위에 있던 생선들이 길바닥으로 모두 쏟아져 퍼득 거렸다. 가게 안에 있던 주인 내외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 뛰쳐나왔고 옆에서 같이 장사하던 사람들도 모두 놀라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일어섰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엉망이 된 좌판 앞에서 기세 좋게 병나발을 불었다.


-창식이, 에라이 이 호로 새끼야!


좌판이 걷어 차여진 주인 아주머니가 가게 안에서 연탄 부지깽이를 집어 창식이의 면상을 갈기려 했다. 하지만 덩치가 산 만한 창식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날랜 반사신경으로 휘갈겨 들어오는 연탄 부지깽이를 한 손으로 어렵지 않게 낚아챘다.


-니미 씨벌!


부지깽이를 한 손으로 잡은 창식이 가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상스러운 욕설을 했다. 창식은 거칠게 연탄 부지깽이를 구부려 뜨리더니 뒤쪽에 있는 바다 속으로 휙 던져 버렸다. 하지만 창식이보다 연배가 있어 보이는 주위의 어떤 사람도 창식을 뭐라고 야단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슬금슬금 뒷걸음쳐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씨발년아! 도대체 피 같은 내 돈은 언제 갚을거야?


창식은 눈을 부라리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고함을 쳤다. 창식의 나이는 기껏해야 4-50대로 보였고 주인 아주머니는 70은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었다. 주인 아저씨는 다급하게 창식에게 다가가 상황을 수습해 보려 했다.


-이봐, 창식이! 창식이 동생! 이러면 안 되지. 우리가 자네보다 나이도 더 먹었고, 이러면 안되는 거 아냐?


아저씨는 창식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창식은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발을 들어 아저씨를 밀어 버렸다. 80대의 노인이 창식의 발에 밀려 넘어지자 주위에서 이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필 아저씨가 넘어진 곳에 좌판에 있던 생선의 내장이 떨어져 있었고 두 팔로 지지해 일어서려던 아저씨는 손에 묻은 그것의 냄새를 맡곤 기겁을 했다.


-씨발것들이 뒤질려고! 나이가 어째?


창식은 들고 있던 소주병을 바닥에 던져 깨 부쉈다. 깨진 유리병이 아저씨 몸에까지 튀었지만 다행히 아저씨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하여튼 좋은 말로 하면 상황이 좋은 줄 알아요. 에휴, 나도 미친 놈이지. 이런 엿 같은 상황에도 또 말로 설득을 하고 있네!


창식은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내가 다 말하지 않았나? 내 돈은 비싸니까 신중하게 결정하라구? 쓸 거면 얼마든지 써도 돼지만 이자는 많이 내야 된다고 말 했는데? 그쪽도 다 설명 듣고, 그러자고 한 거잖아? 아니야?


주인 아주머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창식아! 내가 니 엄마 친구다. 모르냐?


-그래서?


-그래서? 너 어렸을 때 내 젖 먹고 큰 거 기억 안 나냐? 니가 사람 새끼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니가 어렸을 때 니 엄마 죽고, 너 굶어 죽을까 봐 내가 품에 안고 밤낮으로 젖 물렸다. 그걸 알면 니가 나한테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암, 사람 새끼면 지 밥 먹여준 사람한테 이렇게는 못하지, 암! 그렇지, 그렇고 말고!


아주머니는 황망한 표정으로 창식을 보며 울부짖었다. 그러나 창식의 표정으로 보아 아주머니의 애원은 통하지 않을 듯 싶었다.


-씨팔. 아이 몰라, 몰라. 난 그런 거 모르니까 빨리 내 돈이나 갚으쇼. 일주일 더 줄 테니까 그때까지 밀린 이자하고 원금, 꼭 준비해. 다음엔 말로 끝내지 않을 거요!


창식은 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돌아서 어판장 입구로 다시 나갔다. 길바닥에 널부러져 엉망이 된 좌판을 보며 주인 내외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 유통


-요새 물건이 왜 자꾸 늦어지지?


동우는 요새 들어 물건의 납품 시간이 자꾸 늦어지는 이유가 궁금했다.


-러시아에서는 제 때 보내는 것 같은데, 항구에서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진식은 허리를 굽혀 동우에게 말했다.


-무슨?


-항구에 있는 놈들에게 들은 얘긴 데, 묵호에 양아치 하나가 있는데요, 그게 상 또라이라고 합니다.


동우는 어리둥절 했다. 러시아 물건이 묵호로 들어오는 건 당연한 거고, 묵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이 관리하던 곳인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소리야? 묵호에 또라이가 한 둘이 아닌 데? 그리고 묵호는 우리가 관리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 애들 말구요 형님. 창식이라고, 거기 토박이인데 완전 쌩 양아칩니다.


-창식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그러니까 걔가 우리 일을 방해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 한 놈 때문에 어른들 물건이 자꾸 늦어지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동우가 진식에게 눈을 부라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안 그래도 저희 쪽 애들 몇 놈 풀어서 조질려고 했는데 오히려 당했습니다. 그놈이 엄청난 거구인데다가 몸은 또 얼마나 날래던 지, 날래기가 다람쥐보다 더 날래서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식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동우파는 국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조직인데 그깟 지방 촌놈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그놈 하나 때문에 자신들의 사업마저 막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은 조직의 이인자인 진식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동우에겐 아직 놈에 대해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놈이 묵호항에 텐트를 치고 거기서 숙식을 한답니다. 우리 물건이 거기로 들어오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배 들어오는 날만 되면 거기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가 물건 내리기도 전에 러시아 애들 배에 올라가서 돈 될만한 건 죄다 챙겨 가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애들이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가 몇 놈 작살이 났답니다.


-그런 게 어딨어? 힘 좋고 날랜 놈이라도 겨우 한 놈인데, 쪽수로 눌러버리면 되잖아? 한 놈 이라며? 근데 우리 애들은 뭐 하고 있었어? 그놈 꼬라지 부리는 걸 그냥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형님도 아시다시피 러시아 애들은 이틀 전에 들어와서 물건을 내리지 않습니까? 우리 애들은 물건 다 내려주면 그때서야 물건 찾으러 가구요. 놈은 그 사이를 기가 막히게 노린 거 같습니다. 우리 애들도 물건 가지러 갈 때 겨우 한 두명 가거든요. 여럿이 갈 일도 아니었구요. 그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 애들 단단히 준비시켜서 머릿수 맞춰서 내려 보낼려구요. 이런 일 다른 데 소문나면 우린 얼굴 못 들고 다닙니다.


진식의 말에 동우가 진식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알긴 아네?


동우는 말을 마치고 책상 위의 현금다발을 작은 가죽가방 안으로 하나씩 옮겼다.


-길상이 한테서는 아직 연락 없고?


돈다발을 집어넣던 동우가 갑자기 진식에게 물었다.


-네. 어떻게 된 일인지 벌써 이주일이나 지났는데 아무 연락이 없습니다. 길상이 형님 봤다는 놈도 한 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요?


동우는 다시 돈다발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뭐, 그런 것도 같고. 창주 흔들어 보려고 작전 짠 건데, 들켰을까?


동우가 빙그레 웃으며 진식을 보았다. 진식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다음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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